1화(5,444자)

점심 뭐 먹지가 들렸다

면접관 속마음이 들린다 · 피오담

2026년 10월 13일 화요일 아침 일곱 시⁠, 면목동 백조세탁 2층 거울 앞에서 엄마가 내 재킷 어깨를 손바닥으로 두 번 털었다⁠. 아래층 스팀다리미에서 올라온 김이 계단을 타고 방까지 들어와 거울이 뿌옜다⁠. 소매로 닦자 내가 나왔다⁠. 마른 몸에 남색 정장 재킷⁠, 엄마가 새벽 다섯 시에 다린 흰 블라우스⁠, 귀 뒤로 넘긴 어깨까지 오는 검은 단발⁠. 동그란 얼굴에 눈만 커서 고등학교 때 별명이 놀란 부엉이였다⁠.

“⁠지퍼⁠.⁠”

“⁠치마에 지퍼 없어⁠, 엄마⁠.⁠”

“⁠그럼 단추⁠.⁠”

“⁠다 잠갔어⁠.⁠”

“⁠그럼 됐다⁠. 가서 웃지 마라⁠. 너 웃으면 잇몸 나온다⁠.⁠”

엄마는 다리미 손잡이를 쥐던 손으로 내 등을 한 번 밀었다⁠. 하루 종일 다리미 열이 배어 있는 손이라 등이 따뜻했다⁠.

휴대전화에는 문자 마흔한 통이 따로 모여 있었다⁠. 내가 붙인 폴더 이름은 「⁠뛰어난 역량⁠」이었다⁠. 서른아홉 통이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했고⁠, 두 통은 인사도 없이 「⁠불합격⁠」 세 글자였다⁠. 차라리 두 통이 정직했다⁠. 마흔두 번째 지원서가 처음으로 서류를 넘고 인적성 시험을 넘고 실무 면접을 넘었다⁠. 오늘이 최종이었다⁠.

*

성수동 결담 본사는 옛 구두 공장을 고친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1층 로비에는 아직 가죽 냄새가 남아 있었다⁠. 7층 대기실 앞에서 인사팀 직원이 번호표를 나눠 주었다⁠. 파란 목줄에 투명 케이스⁠, 안에 흰 종이 한 장⁠.

「⁠지원자 41⁠」

나는 번호표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마흔한 번 떨어지고 받은 번호가 41번이었다⁠. 회사가 내 문자 폴더를 열어 보고 골라 준 번호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대기실 의자는 셋이었다⁠. 오른쪽 남자는 「⁠지원자 43⁠」을 목에 걸고 눈을 감은 채 입술만 달싹였다⁠. “⁠토익 990⁠, 오픽 최고 등급⁠, 한국사 1급⁠, 공모전 수상 일곱 번⁠…⁠…⁠.⁠” 자기소개를 세 번째 돌리는 중이었다⁠. 왼쪽 여자는 「⁠지원자 42⁠」였다⁠. 검정 정장 무릎 위에서 손가락 두 개가 쉬지 않고 무언가를 두드렸다⁠. 쿵⁠, 따⁠, 쿵쿵⁠, 따⁠. 손톱이 짧았고 오른손 검지 옆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긴장되세요⁠?⁠” 내가 물었다⁠.

“⁠아뇨⁠. 연습이요⁠.⁠” 여자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사 분의 사 박자⁠.⁠”

“⁠면접에 박자가 있어요⁠?⁠”

“⁠제 면접엔 있어요⁠.⁠”

벽에 달린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소리 없이 흘렀다⁠. 「⁠고용부⁠, 하반기 채용 공정성 점검 착수⁠」 자막 밑으로 화장품 수출 그래프가 지나갔다⁠. 43번이 눈을 뜨고 자막을 읽더니 혼잣말을 했다⁠. “⁠하반기에 점검하면 상반기는 누가 봐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면접장은 7층 대회의실이었다⁠. 흰 벽에 큰 창⁠, 창밖으로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와 회색 공장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긴 책상에 면접관 넷이 앉아 있었다⁠. 맨 왼쪽은 안경 쓴 반백의 남자였다⁠. 검은 정장에 짙은 빨간 넥타이⁠, 앞에 흰 머그잔⁠, 명패에 「⁠전무 도형석⁠」⁠. 다음은 갈색 머리를 뒤로 묶은 베이지 재킷의 여자로⁠, 깍지 낀 손에 턱을 얹고 있었다⁠. 「⁠인사팀장 소경민⁠」⁠. 다음 자리에는 넥타이를 맨 통통한 남자가 노트북을 열어 놓고 볼에 손을 괴었다⁠. 「⁠마케팅팀장 차동만⁠」⁠. 맨 오른쪽은 안경 쓴 단발 여자로⁠, 평가표 묶음을 들고 펜 끝을 턱에 대고 있었다⁠. 「⁠인사팀 대리 노미란⁠」⁠.

우리 셋은 맞은편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가운데⁠, 왼쪽에 42번⁠, 오른쪽에 43번⁠. 의자에 등이 닿는 순간이었다⁠.

‘⁠점심 뭐 먹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남자 목소리였는데⁠, 차동만 팀장의 입은 닫혀 있었다⁠. 볼에 손을 괸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뼈해장국은 어제 먹었고⁠. 냉면은 날이 쌀쌀하고⁠.⁠’

“⁠저기⁠, 방금⁠…⁠…⁠.⁠”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넷이 동시에 나를 보았다⁠. 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사장 조카로 정해졌는데⁠. 빨리 끝내자⁠.⁠’ 낮고 느린 목소리⁠, 도형석 전무였다⁠.

‘⁠이 사람 뽑고 싶다⁠. 서류 점수 제일 높던 사람⁠.⁠’ 소경민 팀장이었다⁠.

‘⁠학비⁠…⁠… 이번 달 상환일이 25일이었나⁠, 26일이었나⁠.⁠’ 노미란 대리였다⁠.

나는 오른손을 귀에 갖다 댔다⁠. 귓속이 울리는 게 아니었다⁠. 목소리는 귀 바깥⁠, 책상 너머에서 건너왔다⁠. 입술은 하나도 안 움직이는데 말만 넘어왔다⁠.

“⁠지원자분⁠, 괜찮으세요⁠?⁠” 소경민 팀장이 이번에는 소리 내어 물었다⁠.

“⁠네⁠. 귀가 좀⁠…⁠… 높은 데 올라와서요⁠.⁠”

“⁠7층인데요⁠.⁠”

“⁠저희 집이 2층이라서요⁠.⁠”

43번이 옆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숨소리만은 진짜 귀로 들어왔다⁠.

*

첫 질문은 차동만 팀장이 던졌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냉면 말고 칼국수⁠. 성수역 뒤 칼국수⁠. 화요일에 쉬던가⁠.⁠’

43번이 먼저 대답했다⁠. “⁠저는 마라톤으로 풉니다⁠. 풀코스 세 번 완주했고⁠, 최고 기록은 세 시간 사십⁠…⁠…⁠.⁠” 차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칼국수 집 휴무일을 셌다⁠.

42번은 짧았다⁠. “⁠음악 들어요⁠.⁠” 차 팀장이 펜을 들다 마는 사이⁠, 왼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어왔다⁠.

‘⁠이 사람 붙었으면 좋겠다⁠. 41번⁠. 대답 잘하게 생겼다⁠. 그럼 내가 떨어지고⁠, 큰아버지도 할 말 없고⁠, 나는 합주실 간다⁠. 쿵⁠, 따⁠, 쿵쿵⁠, 따⁠.⁠’

42번은 앞만 보고 있었다⁠. 무릎 위 손가락만 박자를 셌다⁠. 나를 재고 있는 사람의 속이었다⁠. 면접관만 들리는 게 아니었다⁠.

“⁠41번 지원자분⁠.⁠”

‘⁠칼국수냐⁠, 뼈해장국이냐⁠.⁠’

“⁠저는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풉니다⁠.⁠” 입이 먼저 나갔다⁠. “⁠어제 뼈해장국을 먹었으면 오늘은 칼국수를 먹어요⁠. 성수역 뒤에 화요일에도 여는 칼국수 집이 있거든요⁠. 고르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안 들거든요⁠.⁠”

성수역 뒤에 칼국수 집이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차 팀장 손에서 펜이 굴러떨어졌다⁠.

‘⁠어⁠? 화요일에 연다고⁠?⁠’

차 팀장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점수 칸에 숫자를 넣는 손이 빨랐다⁠. 노미란 대리는 웃음을 참느라 평가표로 입을 가렸다⁠. ‘⁠이 사람 웃기다⁠. 아⁠, 상환일 26일이다⁠.⁠’

*

도형석 전무가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잔 바닥이 책상에 닿는 소리는 작았는데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백윤아 씨⁠, 아버님은 무슨 일 하세요⁠?⁠”

‘⁠어차피 떨어질 애⁠. 집안이나 보자⁠.⁠’

소경민 팀장이 깍지 낀 손을 풀었다⁠. ‘⁠전무님⁠, 그거 묻지 마세요⁠.⁠’ 속으로만 했다⁠. 입은 다물고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마흔한 번 떨어지는 동안 취준 카페에서 외운 문장이 혀끝에 와 있었다⁠.

“⁠채용절차법이 2019년부터 지원자 가족의 학력이나 직업⁠, 재산을 서류에 적게 하지 못하게 막았는데요⁠. 서류로 못 받는 걸 면접에서 물으시는 거죠⁠?⁠”

43번이 의자에서 등을 뗐다⁠. 42번 손가락이 멈췄다⁠.

도형석 전무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서류에 적으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 대화하자는 겁니다⁠. 법을 잘 아시네⁠.⁠”

‘⁠법 공부한 애는 귀찮다⁠. C⁠.⁠’

“⁠대화라면 제가 안 해도 되는 거죠⁠?⁠”

“⁠안 하셔도 됩니다⁠. 그것도 평가에 들어가지만요⁠.⁠”

‘⁠C 마이너스⁠.⁠’

나는 웃었다⁠. 엄마가 웃지 말라고 했는데 웃어 버렸다⁠. 잇몸이 나왔을 것이다⁠.

“⁠저희 엄마는 면목동에서 백조세탁을 하세요⁠. 아버지는 제가 열 살 때 집을 나가서 지금 뭐 하는지 몰라요⁠. 오늘 이 재킷도 엄마가 새벽 다섯 시에 다렸어요⁠. 전무님 정장도 맡기시면 잘해 드려요⁠. 빨간 넥타이는 드라이로요⁠.⁠”

차동만 팀장이 기침을 했다⁠. 웃음을 기침으로 바꾸는 소리였다⁠. ‘⁠백조세탁⁠. 이름 좋네⁠. 칼국수 먹고 싶다⁠.⁠’

*

마지막 순서는 늘 같았다⁠. 소경민 팀장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한 분씩 해 주세요⁠.⁠”

43번은 준비한 문장을 일 분 동안 쏟았다⁠. 42번은 “⁠뽑아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책 읽듯 했고⁠, 속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뽑지 마세요⁠. 진짜로⁠.⁠’

내 차례였다⁠. 소경민 팀장의 속이 먼저 들어왔다⁠.

‘⁠이 사람 뽑고 싶다⁠. 근데 전무님이 이미 정했고⁠. 큰애 등록금이 내년 2월⁠, 작은애 학원비가 다음 주⁠. 내가 버티면 내 자리가 없다⁠.⁠’

도형석 전무의 속이 위에 겹쳤다⁠.

‘⁠조카는 1등으로 올리면 된다⁠. 41번은 떨구고⁠.⁠’

경민 팀장의 목소리는 작았고 전무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둘 다 입은 다물고 있었다⁠. 나만 들었다⁠. 마흔한 통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문자 뒤에도 이런 목소리가 있었을까⁠.

“⁠합격자⁠, 이미 정해져 있지 않나요⁠?⁠”

방이 멈췄다⁠. 노미란 대리의 펜 끝이 평가표 위에서 굳었다⁠. 차동만 팀장 머릿속의 칼국수가 뚝 끊겼다⁠. 42번의 박자도 끊겼다⁠.

“⁠사장님 조카분으로요⁠. 제가 잘못 들었으면 죄송합니다⁠.⁠”

잘못 들은 건 아니었다⁠. 들은 대로 말했다⁠.

도형석 전무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천천히⁠, 양쪽 알을 다 닦고 다시 쓴 뒤에야 입을 열었다⁠.

“⁠백윤아 씨⁠, 상상력이 좋으시네요⁠. 마케팅에 꼭 필요한 덕목이죠⁠.⁠” 전무는 손바닥으로 문을 가리켰다⁠. “⁠수고하셨습니다⁠.⁠”

‘⁠누가 흘렸지⁠.⁠’

*

대기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기는데 43번이 내 앞을 막았다⁠. 목에 건 번호표가 숨 쉴 때마다 들썩였다⁠.

“⁠방금 그거⁠, 왜 그러셨어요⁠?⁠”

“⁠뭘요⁠?⁠”

“⁠정해져 있냐고요⁠. 저까지 떨어지면 책임지실 거예요⁠? 저 이번이 세 번째 해예요⁠. 토익 990이고요⁠.⁠”

‘⁠이 여자 때문에 면접 분위기 망했다⁠. 저 질문만 없었으면 내가 2등은 했다⁠. 아버지한테 뭐라고 하지⁠.⁠’

43번의 속은 겉말보다 조용했고 더 아팠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토익 축하드려요⁠”라고 했다⁠. 43번은 입을 벌렸다가 닫고 가방을 메고 나가 버렸다⁠. 「⁠탁성우⁠」라고 수놓인 에코백이 문틈에서 흔들렸다⁠.

42번은 의자에 앉은 채 구두를 벗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무릎을 두드렸다⁠. 쿵⁠, 따⁠, 쿵쿵⁠, 따⁠.

‘⁠백윤아⁠. 이름 외웠다⁠. 찾아봐야지⁠.⁠’

“⁠수고하셨어요⁠.⁠” 42번이 소리 내어 한 말은 그것뿐이었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손 하나가 문을 막았다⁠. 도형석 전무였다⁠. 7층에서 1층까지 둘뿐이었다⁠. 거울 벽에 반백 머리와 내 단발이 나란히 비쳤다⁠.

“⁠어디서 들었어요⁠?⁠”

“⁠들은 게 아니라 짐작이요⁠.⁠”

‘⁠거짓말⁠. 확신하는 얼굴이다⁠.⁠’

“⁠증거 있어요⁠?⁠”

전무의 목소리는 면접장에서와 똑같이 낮고 느렸다⁠.

‘⁠있을 리 없지⁠. 자료는 인사팀 안에만 있다⁠. 인사팀에서 흘렸으면⁠…⁠… 소경민⁠.⁠’

숫자가 4에서 3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한 말은 내 입에서 나왔는데⁠, 전무 머릿속에서는 경민 팀장 입에서 나온 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를 뽑고 싶다고 속으로 말하던 사람이 내 질문 하나 때문에 먼저 잘릴 판이었다⁠.

“⁠있어요⁠.⁠”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하자 전무의 속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있다고⁠? 메일인가⁠. 소경민부터 확인한다⁠. 오늘 오후에⁠.⁠’

문이 열렸다⁠. 로비에서 가죽 냄새가 다시 났다⁠. 전무는 먼저 내리지 않고 열림 버튼을 눌러 문을 잡아 주었다⁠. 끝까지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백윤아 씨⁠.⁠”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갔다⁠. 나는 로비 한가운데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엄마였다⁠.

「⁠끝났냐⁠. 웃었냐⁠.⁠」

답장을 치다가 지웠다⁠. 엘리베이터 위 숫자판이 5⁠, 6을 지나 7에서 멈췄다⁠. 나는 목에 건 번호표를 빼지 않고 위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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