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475자)

나 대신 정하지 마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피경칠은 날짜를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

도담이 대답 대신 문을 닫았고⁠, 문 너머에서 흰 운동화가 젖은 돌을 밟고 멀어지는 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이섭은 이불 위에 앉아 셔츠를 찾고 있었다⁠. 셔츠는 도담이 입고 있었다⁠.

“⁠언제 했어⁠?⁠”

“⁠그저께요⁠. 컨테이너에서요⁠. 강사님이 오시기 한 시간 전에⁠.⁠”

“⁠나 그 자리에 갔었어⁠. 한 시간 뒤에⁠.⁠”

“⁠알아요⁠. 이사님이 강사님한테 고소장 얘기 하실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먼저⁠…⁠…⁠”

“⁠먼저 뭐⁠?⁠”

이섭이 이불 끝을 쥐었다⁠. 말을 고르고 있었다⁠. 도담은 말을 고르는 동안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손이 떨려서 단추 하나에 오래 걸렸다⁠. 어젯밤 이섭의 셔츠를 풀 때와 같은 손이었는데 떨리는 까닭이 달랐다⁠.

“⁠업무방해는 전과가 남는대요⁠. 강사님 이름으로⁠. 그럼 해녀회장 선거에도 못 나오시고⁠, 해녀회에서 말할 자리도 없어지고⁠. 저 하나 서울 가면 다 없던 일이 된대요⁠. 저는 어차피 큰여에 못 들어가잖아요⁠. 상군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가 빠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니가 생각했어⁠.⁠”

“⁠네⁠.⁠”

“⁠나한테 안 묻고⁠.⁠”

이섭이 고개를 숙였다⁠. 도담은 셔츠를 벗어 이섭의 무릎에 놓았다⁠. 그리고 제 젖은 옷을 집어 들었다⁠. 어젯밤 비에 젖은 채 방구석에 던져 둔 옷이라 아직 축축하고 차가웠다⁠. 이걸 그대로 입었다⁠. 살갗에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 대신 정하지 마⁠.⁠”

“⁠…⁠…⁠”

“⁠우리 어멍도 나 대신 정해⁠. 바당 팔아서 나 살리겠다고⁠. 옥녀 삼춘도 나 대신 정했어⁠. 이제 너도 나 대신 정해⁠. 다들 나를 살리겠다고 나 대신 정해⁠.⁠”

도담은 문고리를 잡았다⁠.

“⁠짝 물린다⁠. 너랑은 안 들어가⁠.⁠”

문을 열자 아침 바람이 들어왔다⁠. 슬레이트 지붕에서 빗물이 마지막 몇 방울 떨어졌다⁠. 등 뒤에서 이섭이 무언가 말하려다 삼키는 소리가 났다⁠. 도담은 돌아보지 않았다⁠.

*

컨테이너 사무실 문은 이번에도 반쯤 열려 있었다⁠. 도담은 노크하지 않았다⁠.

피경칠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홍삼 상자는 책상에서 치워져 있었다⁠. 도담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날짜 주시러 오셨습니까⁠?⁠”

“⁠고소허십서⁠.⁠”

피경칠이 눈썹을 올렸다⁠.

“⁠주이섭이 이사님하고 한 약속은 그 사람 혼자 한 거우다⁠. 나는 안 했수다⁠. 나 대신 아무도 약속 못 헙니다⁠. 고소허십서⁠. 경찰서 가쿠다⁠.⁠”

피경칠은 잠깐 도담을 보다가⁠, 책상 서랍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로 돌려놓았다⁠.

“⁠법무팀입니다⁠.⁠”

“⁠어제 말한 업무방해 건⁠, 오늘 접수해 주세요⁠. 피고소인 양도담⁠. 그리고 주이섭 영업비밀 건도 같이⁠.⁠”

“⁠둘 다요⁠? 주이섭 씨 건은 합의하셨다고⁠…⁠…⁠”

“⁠합의가 깨졌습니다⁠. 둘 다⁠.⁠”

피경칠이 전화를 끊었다⁠. 처음부터 이 전화를 걸 생각이었던 사람처럼 손이 빨랐다⁠.

“⁠그리고 도담 씨⁠, 기왕 오셨으니 하나 더⁠. 총회 날짜가 바뀌었습니다⁠. 이장님이 어젯밤 결정하셨어요⁠. 팔월 그믐이 아니라 다음 주 수요일입니다⁠. 도담 씨가 큰여에 들어가시려던 마지막 조금보다 열흘이 빠르죠⁠. 전복이 올라오기 전에 총회가 끝납니다⁠.⁠”

도담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이장이 불턱에서 해녀 스물넷 앞에 서서 한 약속이었다⁠.

“⁠이장이 약속했수다⁠. 하루도 안 당긴댄⁠.⁠”

“⁠이장님 어선 빚 상환일이 이달 말입니다⁠. 보상금 선지급은 총회 동의 다음 날 나가고요⁠. 약속보다 날짜가 셉니다⁠.⁠”

*

이장은 마을회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어선 사진이 붙은 달력이 걸려 있었고⁠, 이달 말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약속허셨잖수까⁠?⁠”

“⁠알아⁠.⁠”

“⁠해녀 삼춘들 앞에서⁠.⁠”

“⁠알아⁠, 도담아⁠.⁠”

이장은 손수건을 꺼내지 않았다⁠. 땀이 나지 않았다⁠. 그냥 지쳐 보였다⁠.

“⁠배가 두 척이었다⁠. 하나는 작년에 팔았고⁠. 남은 하나 빚이 사천이다⁠. 이달 말 못 갚으믄 그것도 넘어간다⁠. 그럼 숨비개에 고기 잡는 배가 넷에서 셋 된다⁠. 니는 바당 지킨다고 허지만⁠, 나는 배를 지켜야 된다⁠.⁠”

“⁠그럼 겨레 일 말허쿠다⁠. 테왁 그은 거⁠.⁠”

“⁠말허라⁠.⁠”

도담이 멈췄다⁠.

“⁠겨레는 어제 회사에서 잘렸다⁠. 계약이 석 달짜리였는데⁠, 연장 안 한댄⁠. 홍삼 상자 안 돌려서⁠. 이제 그놈은 잃을 게 없다⁠. 말허고 싶으믄 말허라⁠.⁠”

이장이 처음으로 손수건을 꺼냈다⁠. 이마가 아니라 눈을 닦았다⁠.

“⁠겨레는 어디 있수까⁠?⁠”

“⁠몰라⁠. 어젯밤부터 안 들어왔다⁠. 휴대폰도 꺼 놨고⁠.⁠”

“⁠찾아봅서⁠.⁠”

“⁠찾아서 뭐 허게⁠. 테왁 그은 놈이라고 니가 경찰서 데려가게⁠?⁠”

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장은 달력의 빨간 동그라미를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 손가락이 동그라미 위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

고옥녀는 마당 평상에서 소라 껍데기를 닦고 있었다⁠. 선거 때 던진 껍데기들이었다⁠. 도담이 평상 끝에 앉자 고옥녀는 닦던 껍데기를 하나 도담 손에 쥐여 주었다⁠.

“⁠무사 숙자한테 넣었는지 물으러 왔지⁠?⁠”

“⁠예⁠.⁠”

고옥녀는 한참 껍데기만 닦았다⁠. 그러다 별채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 박 테왁⁠, 니 할망 거여⁠.⁠”

도담은 손에 쥔 껍데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마흔두 해 전이다⁠. 조금 날이었다⁠. 니 할망이 큰여 바닥에 들고⁠, 나가 위에서 테왁 잡고 짝을 섰다⁠. 니 할망은 큰여 감태 숲 안에 손바닥 두 개만 한 전복이 있댄 했다⁠. 세 번을 들어가서 세 번을 못 뗐다⁠. 네 번째 들어갈 때 나가 그만허랜 했다⁠. 니 할망이 웃으멍 이번엔 뗀다 했다⁠.⁠”

고옥녀가 껍데기를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여든 살 손이 떨리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방울이 끊겼다⁠. 나가 들어갔다⁠. 세 번을 들어갔다⁠. 니 할망은 감태 숲 안에 있었다⁠. 손은 전복에 붙어 있었고⁠. 빗창이 바위에 박혀 있었고⁠. 나는 그 깊이까지 못 갔다⁠. 숨이 모자랐다⁠.⁠”

“⁠…⁠…⁠”

“⁠올라와 보니 박 테왁만 떠 있었다⁠. 주인 없이⁠. 그 테왁 들고 포구에 왔더니 니 어멍이 서 있더라⁠. 스물이었다⁠.⁠”

도담은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배로 들이쉬었다⁠. 들이쉬어지지 않았다⁠. 어깨만 올라갔다⁠.

“⁠니 할망은 손에 쥔 걸 안 놨다⁠. 니도 안 놓는다⁠. 니 어멍 끌고 올라올 때도 안 놨지⁠. 니가 그 바당에 수습 해남 데리고 들어가믄⁠, 니가 바닥에 있을 때 그 멸치가 위에서 테왁 잡고 있을 거 아니냐⁠? 짝은 위에서 테왁만 본다⁠. 나가 봤다⁠. 그게 어떤 건지⁠.⁠”

고옥녀가 껍데기를 하나 더 닦았다⁠.

“⁠그래서 숙자한테 넣었다⁠. 니 어멍이 이기믄 바당은 팔려도 니는 산다⁠.⁠”

도담의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고옥녀가 껍데기 닦던 걸레로 콧물을 닦았다⁠. 그리고 걸레를 털며 덧붙였다⁠.

“⁠근데 그 멸치⁠, 오늘 바당에 안 들어갔다⁠. 혼자는 안 들어간다고⁠. 니 짝 기다린다고 그 박 테왁 안고 아침부터 포구에 앉아 있더라⁠. 나가 짝 서 주켄 해도 싫댄 허더라⁠. 고집 센 것들끼리 잘들 논다⁠.⁠”

*

이섭은 포구 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아 있었다⁠. 물이 이섭의 발목까지 찰랑였다⁠. 박 테왁을 무릎 위에 안고 있었다⁠.

도담은 이 옆에 앉았다⁠. 둘은 한동안 바다만 보았다⁠. 사리가 지나 물살이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큰여 쪽으로 해녀 배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 물질하는 상군 없는 배였다⁠.

“⁠이사님한테 전화했어요⁠. 서울 안 간다고⁠. 총회에서 말한다고⁠.⁠”

“⁠알아⁠. 피경칠이 법무팀에 둘 다 넣으라고 하더라⁠.⁠”

“⁠둘 다요⁠?⁠”

“⁠둘 다⁠. 너랑 나랑⁠.⁠”

이섭이 도담을 보았다⁠. 도담은 이 눈을 받았다⁠.

“⁠짝은 서로 정하는 거야⁠. 한쪽이 정하는 거 아니야⁠. 다음엔 나한테 먼저 물어⁠.⁠”

“⁠다음이 있어요⁠?⁠”

“⁠오늘 있어⁠.⁠”

도담은 일어서서 고무옷 지퍼를 올렸다⁠. 이섭의 등 뒤로 돌아가 이섭의 지퍼도 올려 주었다⁠. 지퍼 손잡이가 이섭의 목덜미에 닿자 이섭이 어깨를 한 번 떨었다⁠.

중군 바당 끝은 큰여로 이어지는 비탈이었다⁠. 해녀회가 정한 오늘의 물때 안이었고⁠, 상군이 수습을 데리고 들 수 있는 가장 깊은 자리였다⁠. 이 너머부터가 큰여⁠, 상군 둘만 드는 바다였다⁠.

도담이 물 위에서 박 테왁을 잡고 짝을 섰다⁠. 이섭이 머리부터 꽂았다⁠. 다리가 하늘로 섰다가⁠, 고옥녀처럼 물결 하나 없이 미끄러졌다⁠.

도담은 테왁에 턱을 걸고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칠 미터에서 이섭이 코를 쥐고 고개를 흔들었고⁠, 팔 미터를 지나면서 이섭의 몸이 남색 속으로 작아졌다⁠. 구 미터쯤에서 작은 방울 셋이 줄지어 올라와 도담의 턱밑에서 터졌다⁠. 그리고 십 미터 비탈의 바위에 이섭의 손이 닿았다⁠. 이 바위 너머로 큰여의 하얀 계단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섭은 손을 짚은 채 하얀 계단을 오래 보았다⁠. 제가 네모 마흔 개를 그렸던 이 바다였다⁠.

이섭이 올라왔다⁠. 숨비소리가 처음으로 휘파람처럼 났다⁠. 짧고 높았다⁠.

“⁠일 분 이십오 초⁠.⁠”

이섭이 박 테왁에 이마를 댔다⁠. 마흔두 해 전 주인 없이 떠 있던 테왁이었다⁠. 이 이야기를 아직 몰랐다⁠. 도담은 오늘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

총회 전날 밤⁠, 불턱에 해녀들이 모였다⁠.

큰일 전날 밤에는 늘 그렇게 했다⁠. 물에 들지 않아도 장작을 지피고⁠, 보리차를 돌리고⁠, 아무 말이나 했다⁠. 숙자가 귀에 붕대를 감고 불가에 앉아 있었다⁠. 고옥녀가 귤을 까고 있었다⁠. 이섭은 수습이라 불턱에 들 수 있었고⁠, 돌담 가장 끝에 앉아 있었다⁠.

이섭이 앉자마자 품평이 다시 시작되었다⁠.

“⁠십 미터 내려갔댄⁠?⁠”

“⁠일 분 이십오 초랜⁠.⁠”

“⁠그럼 이제 국물용은 아니다⁠.⁠”

“⁠뭐로 올려 줄 거라⁠?⁠”

“⁠구이용⁠.⁠”

“⁠구이용은 무슨⁠. 아직 살이 없는디⁠.⁠”

“⁠살은 없어도 구워 먹은 사람은 있댄 허더라⁠.⁠”

불턱이 뒤집어졌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 다들 알았다⁠. 아침마다 고옥녀네 앞 고샅을 지나 물에 드는 삼춘이었고⁠, 별채 앞 돌 위에 놓인 도담의 고무 슬리퍼를 이 삼춘이 못 봤을 리 없었다⁠. 도담은 장작을 밀어 넣는 척 고개를 숙였다⁠. 귀까지 뜨거웠다⁠. 이섭은 보리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려 돌담에 이마를 박았다⁠.

숙자는 성한 귀를 불 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한참 있다가 숙자가 말했다⁠.

“⁠느네 입 다물라⁠. 내일 총회다⁠.⁠”

이 말에 삼춘들은 더 크게 웃었다⁠. 해녀회장이 화를 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고옥녀가 귤 한 쪽을 숙자 입에 넣어 주었다⁠. 숙자는 이걸 뱉지 않았다⁠.

돌담 바깥에서 자동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피경칠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장이 뒤따랐고⁠, 맨 뒤로 시행사 현장소장이 검은 가방 하나를 들고 따라왔다⁠. 피경칠은 돌담 입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내일 총회 전에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회사가 보상금을 다시 정했습니다⁠. 계원 한 분에 일억 오천입니다⁠. 그리고 내일 동의해 주시는 분께는 오늘 밤 선금으로 천만 원씩 바로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서요⁠.⁠”

현장소장이 검은 가방 지퍼를 열었다⁠. 장작불 빛에 띠지 두른 돈다발이 비쳤다⁠. 해녀 몇이 숨을 들이켰다⁠. 보리차 컵을 든 손이 멈췄다⁠.

피경칠의 흰 운동화가 돌담 안쪽 첫 돌을 밟았다⁠.

도담이 일어섰다⁠. 불과 이 사이로 걸어 나갔다⁠. 장작불이 도담의 등 뒤에서 탔다⁠. 피경칠의 운동화 앞코에서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불턱엔 물질허는 사람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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