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55자)

테왁에 손댄 사람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피경칠의 흰 운동화는 돌담 안쪽 첫 돌 위에 그대로 있었다⁠.

도담은 물러서지 않았다⁠. 등 뒤에서 장작불이 탔고⁠, 이 열이 고무옷 없는 등판을 데웠다⁠. 피경칠은 웃었다⁠. 웃으면서 반 발짝을 더 디뎠다⁠. 운동화 앞코가 도담의 슬리퍼 앞코에 닿았다⁠.

“⁠도담 씨⁠, 잠깐이면 됩니다⁠. 돈을 드리겠다는 거지 뺏겠다는 게 아닙니다⁠.⁠”

“⁠여긴 물질허는 사람 자리우다⁠. 한 발도 더 못 들어옵니다⁠.⁠”

“⁠그건 해녀회 규칙이죠⁠. 해녀회장님이 정하실 일이고요⁠.⁠”

피경칠이 고개를 돌려 불가의 숙자를 보았다⁠. 다들 숙자를 보았다⁠. 이장도⁠, 현장소장도⁠, 검은 가방 속 돈다발도⁠. 숙자는 해녀회장이었고⁠, 보상금 쪽에 서 있었다⁠.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올 수 있었다⁠.

숙자가 일어섰다⁠. 귀에 감은 붕대가 장작불에 붉게 물들어 보였다⁠.

“⁠해녀회장이 말헌다⁠.⁠”

숙자는 피경칠의 운동화를 보았다⁠. 다음에 딸의 등을 보았다⁠.

“⁠이 돌담 안은 바당에서 나온 몸만 들어온다⁠. 이사님은 물질 안 허지 않수까⁠? 나가십서⁠.⁠”

피경칠의 웃음이 처음으로 얼굴에서 떨어졌다⁠. 피경칠은 숙자를 보았다⁠. 바다를 팔겠다고 회관에서 말한 해녀회장이 지금 피경칠을 불턱에서 내보내고 있었다⁠. 피경칠은 이 둘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 같이 있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받으실 분은 밖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운동화가 돌담 밖으로 물러갔다⁠. 도담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들었다⁠. 불턱 안에서 누군가 일어서는 소리를⁠.

해녀 셋이 일어섰다⁠. 무릎이 아파 늘 불가에 앉는 삼춘과⁠, 남편이 병원에 있는 삼춘과⁠, 손주 대학 등록금 이야기를 하던 삼춘이었다⁠. 셋은 아무에게도 눈을 맞추지 않고 돌담 밖으로 나갔다⁠. 도담은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숙자도 붙잡지 않았다⁠. 돌담 너머에서 가방 지퍼 여는 소리가 났다⁠.

고옥녀가 깐 귤을 입에 넣지 않고 손에 쥔 채 말했다⁠.

“⁠천만 원이믄 소라가 오백 관이여⁠.⁠”

아무도 웃지 않았다⁠.

*

총회 날 아침⁠, 도담은 무릎 아픈 삼춘의 집 마당에 서 있었다⁠.

돈을 돌려 달라고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도담도 몰랐다⁠. 삼춘은 마루에 앉아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양쪽 무릎에 세 장씩⁠. 마루 끝에 어젯밤 받은 돈다발이 띠지를 두른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세어 보지도 않은 것이었다⁠.

“⁠앉으라⁠.⁠”

삼춘이 말했다⁠. 도담은 마루 끝⁠, 돈다발 옆에 앉았다⁠.

“⁠나 마흔여섯 해 물질했다⁠. 열네 살부터⁠. 무릎에 연골이 없댄⁠. 의사가 그러더라⁠. 물에 들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거 같다⁠. 그래도 들었다⁠. 안 들믄 돈이 없으니까⁠. 해녀 연금이랜 허는 거⁠, 한 달에 몇 십만 원이다⁠. 그걸로 약값도 안 된다⁠.⁠”

삼춘은 파스를 한 장 더 붙였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오래 문질렀다⁠.

“⁠도담아⁠, 니 말 맞다⁠. 큰여 안쪽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나는 큰여 안쪽에 못 간다⁠. 할망바당도 이제 겨우 간다⁠. 산 바당이믄 뭐 허느냐⁠? 나 무릎이 죽었는디⁠.⁠”

도담에게는 돌려줄 말이 없었다⁠. 삼춘의 무릎 위 파스에서 박하 냄새가 올라와 눈이 따가웠다⁠.

“⁠오늘 나 동의에 넣는다⁠. 니 미워서 아니다⁠.⁠”

“⁠알아마씨⁠.⁠”

도담은 일어섰다⁠. 삼춘이 돈다발 옆의 귤 하나를 집어 도담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할머니들은 미안할 때 꼭 귤을 쥐여 주었다⁠. 도담은 이 귤을 까지 않고 주머니에 넣은 채 회관으로 걸었다⁠.

*

어촌계 총회는 다음 날 오후 두 시⁠,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계원은 마흔둘이었다⁠. 해녀 스물아홉에 배를 부리는 남자 열셋⁠. 방석이 모자라 뒷줄은 플라스틱 의자를 놓았다⁠. 앞쪽 탁자에 나무 투표함 하나가 놓여 있었고⁠, 이 옆에 이장이 앉아 연신 이마를 닦았다⁠. 회관 맨 뒤에 정장 차림의 낯선 남자 하나가 서류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누구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피경칠이 먼저 섰다⁠. 흰 천에 다시 이 영상이 떴다⁠. 하얀 계단⁠, 기울어지는 해녀⁠. 그리고 일억 오천이라는 새 숫자가 떴다⁠.

“⁠어젯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이 바다는 위험하고⁠, 이미 죽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값입니다⁠.⁠”

이섭이 손을 들었다⁠. 이장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섭은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이 리조트를 설계했습니다⁠. 큰여에 구멍 마흔 개를 화약으로 뚫는 설계였습니다⁠. 그리고 동의를 받은 뒤에 감정을 다시 해서 보상금을 낮추는 회의에 저도 있었습니다⁠. 일억 오천도 오늘 밤까지의 숫자입니다⁠. 동의서에 도장이 찍히면 그다음 숫자는 회사가 정합니다⁠.⁠”

“⁠이분은 오늘 아침 영업비밀 누설로 고소된 분입니다⁠.⁠”

피경칠이 말했다⁠. 웃음이 돌아와 있었다⁠.

“⁠회사 도면을 훔쳐 나가 마을을 흔들고 있는 분이죠⁠. 그 말을 믿으실지는 여러분이 정하시면 됩니다⁠.⁠”

회관이 웅성거렸다⁠. 뒷줄 어선 하는 남자 하나가 고소당한 사람 말을 왜 듣느냐고 소리쳤다⁠. 이섭은 앉지 않았다⁠. 이 소리를 다 듣고 나서야 앉았다⁠.

이때 회관 문이 열렸다⁠.

문겨레였다⁠. 사흘 전에 입던 바람막이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회사 글씨가 박힌 가슴 쪽을 테이프로 덮어 두었다⁠. 수염이 자라 있었고 눈이 붉었다⁠. 이장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계원 아들도 말해도 됩니까⁠?⁠”

겨레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해녀학교 테왁 열네 개⁠, 제가 그었습니다⁠.⁠”

회관이 조용해졌다⁠. 해녀 스물여섯의 고개가 일제히 겨레에게 돌아갔다⁠. 어젯밤 돌담 밖으로 나간 셋은 고개를 숙였다⁠.

“⁠현장소장님이 시켰습니다⁠. 며칠만 물질 못 하게 하라고⁠. 테왁 값은 회사가 물어 준다고⁠.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아버지 집 마당에서 도담 누나랑 있었던 일⁠, 제가 이사님께 전화로 다 말씀드렸습니다⁠. 그것도 시키셔서요⁠.⁠”

현장소장이 회관 맨 앞 의자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피경칠은 겨레를 보았다⁠. 입꼬리 하나 내려가지 않았다⁠.

“⁠문겨레 씨는 지난주에 계약이 끝난 분입니다⁠. 회사에 서운한 게 많으실 겁니다⁠.⁠”

“⁠네⁠, 서운해요⁠.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에요⁠.⁠”

겨레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접이식 칼이었다⁠. 이날 새벽 도담이 빼앗아 이장 집 수돗가에 내려놓았던 이 칼⁠. 이장이 이걸 보관하고 있었고⁠, 아들이 오늘 이걸 들고 온 것이었다⁠. 겨레는 칼을 투표함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걸로 그었어요⁠. 회사가 사 준 칼이에요⁠. 현장 비품이라고⁠.⁠”

*

해녀들 사이에서 한 마디가 나왔다⁠. 누가 먼저 했는지 모를 말이었다⁠.

“⁠테왁에 손대는 놈은 바당 사람 아니다⁠.⁠”

이 말이 회관을 한 바퀴 돌았다⁠. 불턱에서⁠, 포구에서⁠, 할머니들의 할머니들 때부터 해 오던 말이었다⁠. 테왁은 숨이었다⁠. 물에서 올라온 해녀가 맨 먼저 잡는 것⁠. 이것을 칼로 그은 사람에게는 소라 한 개도 팔지 않는다는 것이 이 바다의 법이었다⁠.

숙자가 일어섰다⁠.

숙자는 붕대 감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회관을 둘러보았다⁠. 해녀 스물아홉을⁠, 어선 하는 남자 열셋을⁠, 겨레를⁠, 칼을⁠, 피경칠을⁠.

“⁠나는 바당 팔자고 했다⁠. 그 생각은 안 바꾼다⁠. 하얀 건 하얗고⁠, 십 년 뒤는 십 년 뒤다⁠.⁠”

해녀들이 숨을 죽였다⁠.

“⁠근데 테왁에 칼 댄 사람한테는 못 판다⁠. 해녀회는 오늘 동의로 안 간다⁠. 각자 정허라⁠. 나는 반대에 넣는다⁠.⁠”

숙자는 앞으로 걸어가 투표용지에 무언가를 적고⁠, 접어서⁠, 투표함에 넣었다⁠. 모두가 보는 앞이었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도담은 어머니의 등을 보았다⁠. 오른쪽 어깨가 왼쪽보다 조금 높았다⁠. 소리를 듣느라 평생 한쪽으로 기울인 어깨였다⁠.

*

투표가 끝나고 표를 셀 때 고옥녀가 앞으로 나왔다⁠.

“⁠나가 센다⁠.⁠”

“⁠삼춘⁠, 이건 이장이⁠…⁠…⁠”

“⁠이장이 세믄 땀 때문에 종이 다 젖는다⁠.⁠”

회관에 처음으로 웃음이 났다⁠. 고옥녀는 표를 하나씩 펴서 소리 내어 읽었다⁠. 동의⁠, 반대⁠, 동의⁠. 고옥녀의 셈은 열을 넘기자 느려졌지만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스물을 넘기자 제 손가락이 모자란다며 옆에 앉은 이장의 손을 끌어다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이장은 손수건 쥔 손을 내주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결국 다른 손을 통째로 내주고 표가 하나 읽힐 때마다 제 손가락이 접히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동의 쪽 손가락을 접을 때마다 이장의 얼굴이 펴졌고⁠, 반대 쪽을 접을 때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표 하나를 펴던 멈췄다⁠. 동의도 반대도 아니고⁠, 종이 가운데 작은 물고기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가늘고 길고 눈이 컸다⁠.

“⁠멸치다⁠.⁠”

이섭이 고개를 숙였다⁠. 계원이 아니라 투표권이 없었다⁠. 누가 그린 건지 회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았고⁠, 고옥녀는 이 표를 제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무효⁠. 근데 나가 갖는다⁠.⁠”

마지막 표까지 다 읽고 고옥녀가 숫자를 말했다⁠.

“⁠동의 스물일곱⁠. 반대 열넷⁠. 멸치 하나⁠.⁠”

스물여덟이 필요했다⁠. 한 표가 모자랐다⁠.

회관이 터졌다⁠. 해녀들이 서로 손을 잡았고⁠, 어선 하는 남자 몇이 의자를 걷어찼다⁠. 이장이 손수건을 얼굴에 덮었다⁠. 도담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이섭이 도담의 손을 잡았다⁠. 이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박혔을 것이다⁠.

피경칠은 웃고 있었다⁠.

피경칠이 회관 맨 뒤를 돌아보며 손짓했다⁠. 서류 가방을 든 낯선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도청 해양산업과 과장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건조했다⁠.

“⁠오늘 어촌계 동의가 나오지 않은 것은 확인했습니다⁠. 다만 파랑도개발이 이 해역을 해양관광 거점지구로 지정해 달라고 도에 신청했고⁠, 도는 그 검토를 위해 공유수면 측량을 진행합니다⁠. 거점지구로 지정되면 어촌계 동의 없이도 감정 보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측량은 열흘 뒤⁠, 이달 마지막 조금 첫날입니다⁠.⁠”

이달 마지막 조금은 도담이 큰여 안쪽 전복을 따 오겠다고 불턱에서 말한 날이었다⁠.

“⁠우리 물때에 우리 바당에 배 띄우믄⁠…⁠…⁠”

숙자가 말했다⁠.

“⁠해경이 함께 나옵니다⁠. 안전 때문에요⁠.⁠”

피경칠이 대답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숙자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해녀회장님⁠, 오늘 결정 존중합니다⁠. 저희는 이제 다른 길로 가겠습니다⁠.⁠”

*

회관이 비었다⁠. 의자가 몇 개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 투표용지 접힌 자국이 남은 종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탁자 위의 칼은 이장이 가져갔다⁠.

숙자는 맨 앞줄에 남아 있었다⁠. 도담과 이섭도 남았다⁠.

숙자가 무릎 위에 놓아 둔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 안에서 쇠막대 하나가 나왔다⁠. 빗창이었다⁠. 손잡이에 감은 끈이 삭아 있었고⁠, 쇠는 녹이 슬었다가 누가 오래 닦았는지 군데군데 빛이 났다⁠. 끝이 조금 휘어 있었다⁠. 바위에 박혔다가 빠진 자국이었다⁠.

“⁠니 할망 거다⁠.⁠”

도담은 배로 숨을 들이쉬었다⁠.

“⁠그날 다음 날⁠, 동네 상군들이 들어가서 니 할망 데리고 나왔다⁠. 이것도 같이⁠. 바위에 박혀 있었댄 허더라⁠. 나가 마흔두 해 닦았다⁠.⁠”

숙자는 빗창을 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쇠가 차가웠다⁠. 손잡이에 패인 손가락 자국이 도담의 손가락에 그대로 맞았다⁠. 할머니의 손⁠, 어머니가 마흔두 해 닦은 손이었다⁠.

“⁠측량 날 큰여 가라⁠. 해녀회장이 허락헌다⁠.⁠”

“⁠어멍⁠.⁠”

“⁠대신⁠.⁠”

숙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처음으로 딸 옆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이섭이 등을 폈다⁠.

“⁠짝은 나가 정헌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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