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39자)

한 표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해녀회 규약에는 회장을 다시 뽑는 길이 한 줄 있었다⁠. 해녀 삼분의 일이 원하면 다시 뽑는다⁠. 스물아홉의 삼분의 일⁠, 열 명이었다⁠.

도담은 이튿날 새벽 불턱에서 손을 들어 줄 사람을 찾았다⁠. 서류에 이름을 받는 일이 아니었다⁠. 불턱 규칙은 늘 손이었다⁠. 도담이 말하고 해녀들이 손을 들면 이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손은 그냥 올라가지 않았다⁠.

“⁠불턱 지붕⁠.⁠”

맨 먼저 입을 연 것은 무릎이 아파 늘 불가 가장 가까이에 앉는 삼춘이었다⁠.

“⁠비 오믄 장작이 다 젖는다⁠. 회장 되믄 지붕부터 올리라⁠.⁠”

“⁠올리쿠다⁠.⁠”

“⁠탈의장에 노래방 기계⁠.⁠”

“⁠노래방 기계는 무사요⁠?⁠”

“⁠물에서 나오믄 몸 녹일 게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보리차만 마시니 목이 쉬지⁠.⁠”

“⁠…⁠… 놓쿠다⁠.⁠”

“⁠새 고무옷⁠, 같이 맞추믄 싸게 해 준댄 허더라⁠.⁠”

“⁠그것도 허쿠다⁠.⁠”

“⁠귤 따는 날 그 멸치 빌려주라⁠.⁠”

삼춘들이 웃었다⁠. 도담은 웃지 않고 이것도 하겠다고 했다⁠. 손이 하나씩 올라가 일곱이 되고 여덟이 되었다⁠. 아홉 번째 손이 올라가고 나서 불턱이 조용해졌다⁠. 다들 한 사람을 보았다⁠. 고옥녀는 장작을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안 낀다⁠.⁠”

고옥녀가 말했다⁠. 도담을 보지 않았다⁠.

열 번째 손은 의외의 자리에서 올라왔다⁠. 해녀회에 든 지 두 해밖에 안 된⁠, 제주시에서 시집온 마흔 살 하군 해녀였다⁠. 이 사람은 손을 들고 나서 제 손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나는 바당 판다는 말이 무서워서⁠. 그것뿐이우다⁠.⁠”

열이었다⁠. 선거는 사흘 뒤 불턱에서 하기로 했다⁠. 표는 소라 껍데기로 던지기로 했다⁠. 바구니 둘을 놓고⁠, 해녀마다 빈 소라 껍데기 하나씩을 쥐고 나와 한쪽에 넣는다⁠. 해녀회가 옛날부터 해 오던 방식이었다⁠.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도 다 던질 수 있었다⁠.

*

사흘 동안 도담은 물에서 이섭을 놓지 않았다⁠.

중군 바당은 할망바당 바깥⁠, 칠 미터 안팎의 바다였다⁠. 수습은 할망바당에서 시작하지만⁠, 짝이 상군이면 중군 바당까지는 데려갈 수 있었다⁠. 이것도 규칙이었다⁠. 고옥녀는 이섭을 보내며 박 테왁을 이섭의 품에 안겼다⁠.

칠 미터는 사 미터와 다른 바다였다⁠. 귀를 누르는 힘이 두 배였고⁠, 빛이 한 겹 어두웠고⁠, 물이 손목에 감기듯 차가웠다⁠. 이섭은 처음 두 번을 오 미터에서 돌아왔다⁠. 귀를 맞추지 못했다⁠. 세 번째에 도담이 이섭의 옆에 붙어 함께 내려갔다⁠. 코를 쥐고 고개를 흔드는 것을 보여 주자 따라 했다⁠. 이섭의 얼굴이 펴졌다⁠. 귀가 뚫린 얼굴이었다⁠.

칠 미터 바닥은 감태가 군데군데 살아 있었다⁠. 이 그늘 바위틈에서 이섭이 무언가를 보고 멈췄다⁠. 전복이었다⁠. 처음 보는 전복이었다⁠. 껍데기에 구멍이 줄지어 나 있었고⁠, 가장자리로 연둣빛 살이 물결처럼 나와 있었다⁠. 이섭이 골갱이 대신 손을 뻗었다⁠.

도담이 이섭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제 손바닥을 펴서 전복 옆에 대 보였다⁠. 전복은 도담의 손바닥보다 작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전복은 안 딴다⁠. 해녀회가 정한 크기였다⁠. 이섭은 전복을 오래 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올라와서 숨비소리를 내고도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일 분 십 초⁠.⁠”

“⁠전복 봤어요⁠.⁠”

“⁠알아⁠.⁠”

“⁠작아서 놔줬어요⁠.⁠”

“⁠알아⁠. 내가 잡았잖아⁠.⁠”

이섭이 테왁에 턱을 얹고 웃었다⁠. 도담은 이 웃음이 숨을 다 쓴 사람의 웃음이라는 걸 알았다⁠. 몸이 비면 사람은 쉽게 웃는다⁠.

*

선거 전날⁠, 도담은 포구 끝 컨테이너 사무실로 갔다⁠.

어머니가 기울어지던 영상을 지우라고 말하러 간 길이었다⁠. 컨테이너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피경칠의 목소리가 났다⁠. 도담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홍삼 한 상자씩⁠. 봉투는 상자 밑에⁠. 선거가 내일이니 오늘 저녁까지 돌리면 돼⁠. 현 회장님 쪽으로⁠.⁠”

“⁠이사님⁠, 이번엔 안 해요⁠.⁠”

겨레의 목소리였다⁠. 작았지만 분명했다⁠.

“⁠안 한다고⁠?⁠”

“⁠테왁 일로 아버지가 해녀 삼춘들 앞에서 고개 숙였어요⁠. 저 때문에요⁠. 이번엔 안 해요⁠.⁠”

잠깐 조용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문겨레 씨⁠, 현지 채용 계약이 석 달 단위인 건 알지⁠?⁠”

“⁠알아요⁠.⁠”

“⁠알면 됐어⁠.⁠”

겨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앞의 도담을 보고 멈칫했다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겨레의 손에 홍삼 상자가 없었다⁠.

도담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섰다⁠. 피경칠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홍삼 상자 스물몇 개가 쌓여 있었다⁠. 도담을 보고도 상자를 치우지 않았다⁠.

“⁠어머님 영상⁠, 지우러 오셨죠⁠?⁠”

“⁠예⁠.⁠”

“⁠그건 도청에 제출했습니다⁠. 이제 제 것이 아닙니다⁠.⁠”

“⁠그 상자는 이사님 거고요⁠?⁠”

“⁠선물입니다⁠. 해녀회장 선거와는 무관하죠⁠.⁠”

피경칠은 홍삼 상자 하나를 도담 쪽으로 밀었다⁠.

“⁠도담 씨⁠, 하나만 알려 드릴게요⁠. 드론 부수고 카드 가져간 거⁠, 조사선 앞에서 고함친 거⁠, 회사 법무팀이 업무방해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소장이 이미 써져 있어요⁠. 아직 안 냈을 뿐이고⁠.⁠”

“⁠내십서⁠.⁠”

“⁠그렇게 쉽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업무방해는 벌금이 아니라 전과입니다⁠. 전과 있는 사람은 해녀회장이 못 된다는 거⁠, 규약에 있지 않나요⁠?⁠”

규약에 그런 줄은 없었다⁠. 그러나 도담은 이 말이 어디에 꽂히는지 알았다⁠. 해녀들은 경찰서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저었다⁠.

도담은 홍삼 상자를 이섭의 앞으로 도로 밀었다⁠.

*

선거는 불턱에서 했다⁠. 해녀 스물아홉이 다 왔다⁠. 귀에 붕대를 감은 숙자도 왔다⁠.

바구니 둘이 장작불 양쪽에 놓였다⁠. 왼쪽은 숙자⁠, 오른쪽은 도담⁠. 던지기 전에 둘이 한마디씩 했다⁠.

숙자는 일어서지 않고 앉은 채로 말했다⁠.

“⁠나는 바당을 판다⁠. 니들 무릎 값 받고⁠. 큰여 가장자리 하얀 거⁠, 나가 봤다⁠. 니들 다 봤지⁠? 영상으로⁠. 십 년 뒤 하얀 바당 앞에서 빈손으로 서지 말라고 파는 거다⁠. 내 딸한테도 그 꼴 안 보이려고 파는 거고⁠.⁠”

삼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운데 몇은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도담은 일어섰다⁠.

“⁠하얀 건 가장자리우다⁠. 안쪽은 아직 아무도 안 봤수다⁠. 총회 전 마지막 조금에 제가 큰여 안쪽 전복 따 오쿠다⁠. 따 오믄 그 바당은 산 바당이우다⁠. 산 바당은 일억에 안 팝니다⁠.⁠”

“⁠누구랑⁠?⁠”

숙자가 물었다⁠. 불턱이 조용해졌다⁠.

“⁠니 짝이 누구냐⁠? 칠 미터 겨우 내려간 수습 해남이냐⁠?⁠”

“⁠예⁠.⁠”

삼춘 몇이 숨을 들이켰다⁠. 숙자는 성한 귀 쪽으로 고개를 틀어 딸을 오래 보았다⁠.

“⁠그럼 나는 너한테 표 못 준다⁠. 내 딸을 육지 멸치 손에 맡기진 못 헌다⁠.⁠”

해녀들이 하나씩 나와 껍데기를 던졌다⁠. 소라 껍데기가 바구니 바닥에 부딪는 소리가 장작 터지는 소리와 섞였다⁠. 누가 어느 쪽에 던지는지 다 보였다⁠. 감추는 방식이 아니었다⁠. 불턱의 선거는 늘 그랬다⁠.

눈이 어두운 삼춘 하나가 던진 껍데기가 바구니 테를 맞고 튀어 장작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 표를 어느 편으로 칠지를 두고 불턱이 한참 시끄러웠다⁠. 불에 들어갔으니 바당 판다는 편이라는 사람⁠, 불은 가운데니 무효라는 사람⁠, 그냥 불에 구워 먹자는 사람⁠. 결국 이 삼춘이 새 껍데기를 쥐고 나와⁠, 이번에는 던지지 않고 바구니 안에 손을 넣어 바닥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어느 쪽 바구니인지는 다들 보았다⁠. 불 속의 껍데기는 그대로 검게 탔다⁠.

스물여덟 번째까지 열넷 대 열넷이었다⁠.

마지막이 고옥녀였다⁠. 고옥녀는 쭈글쭈글한 손에 소라 껍데기를 쥐고 오래 서 있었다⁠. 도담을 보았고⁠, 숙자를 보았다⁠. 그리고 숙자 쪽 바구니에 껍데기를 넣었다⁠. 넣고 나서 숙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가에 도로 앉아 귤을 깠다⁠.

열다섯 대 열넷⁠.

도담은 바구니를 보지 않았다⁠. 고옥녀를 보았다⁠. 고옥녀는 귤만 보았다⁠.

해녀들이 하나둘 불턱을 나간 뒤에도 고옥녀는 귤을 다 까지 않고 껍질만 손가락으로 찢고 있었다⁠. 도담이 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삼춘⁠, 무사 그쪽에 넣었수까⁠?⁠”

“⁠넣고 싶은 데 넣었주⁠.⁠”

“⁠지난번엔 멸치 받아 주랜⁠, 할망바당 내가 정헌댄 허셨잖수까⁠? 큰여 전복 따 오믄 산 바당이라는 거⁠, 삼춘이 제일 잘 알잖수까⁠?⁠”

고옥녀가 귤껍질을 불에 던졌다⁠. 껍질이 오그라들며 시큼한 연기를 냈다⁠.

“⁠니는 니 할망 닮아서 고집이 세다⁠.⁠”

“⁠할망 얘기는 무사 나와요⁠?⁠”

고옥녀는 대답하지 않고 일어섰다⁠. 무릎을 짚고 한 번에 일어서지 못해 돌담을 잡았다⁠. 도담이 팔을 내밀자 이 팔을 잡지 않고 돌담만 짚고 나갔다⁠. 할머니 이야기를 고옥녀가 먼저 꺼낸 것은 도담이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

이날 밤 비가 왔다⁠. 별채의 슬레이트 지붕 위로 빗소리가 촘촘했다⁠.

도담은 우산 없이 별채 문을 두드렸다⁠. 이섭이 문을 열었다⁠. 도담의 머리칼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수건을 가져와 도담의 머리에 씌웠다⁠. 수건에서 이섭의 냄새가 났다⁠. 활석 가루와 비누⁠, 그리고 고옥녀네 귤 창고의 시큼한 냄새⁠.

“⁠졌어⁠.⁠”

“⁠알아요⁠. 옥녀 삼춘이 와서 말했어요⁠. 귤 세 개 주고 가셨어요⁠.⁠”

도담은 웃으려다 못 웃었다⁠. 이섭이 수건으로 도담의 머리를 천천히 닦았다⁠. 이섭의 손이 귀 뒤에서 멈췄다⁠. 물속에서 이섭의 귀를 맞춰 주던 이 손짓을⁠, 이섭이 도담의 귀 뒤에서 하고 있었다⁠.

도담이 이섭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손가락이 차가워서 단추 하나에 오래 걸렸다⁠. 이섭의 어깨에 고무옷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칠 미터 물이 하루 종일 이섭의 몸을 누른 자리였다⁠. 도담은 이 자국을 입술로 따라갔다⁠. 소금 맛이 났다⁠. 아직 다 씻기지 않은 바다였다⁠.

이섭이 배로 숨을 들이쉬었다⁠. 도담은 손바닥을 이섭의 명치에 댔다⁠. 포구에서 숨을 가르치던 이 자리였다⁠. 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빨랐다⁠. 이번에는 느려지라고 하지 않았다⁠.

이불 위로 눕자 빗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이섭의 손이 도담의 등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도담이 이섭의 고무옷 지퍼를 올려 주던 바로 이 길이었다⁠. 도담의 숨이 얕아졌다가 깊어졌다⁠. 물속에서처럼 숨을 아끼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도 세지 않았다⁠. 도담은 처음으로 숨을 다 써 버리는 법을 이섭의 몸 위에서 배웠다⁠.

새벽녘 빗소리가 그쳤을 때 도담은 이섭의 가슴에 귀를 대고 누워 있었다⁠. 이섭의 숨이 길었다⁠. 일 분 십 초보다 훨씬 길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깬 것은 도담이었다⁠.

여섯 시였다⁠. 이섭은 아직 자고 있었다⁠. 도담은 이섭의 셔츠를 걸치고 문을 열었다⁠. 흰 운동화가 문턱 앞에 있었다⁠. 비 그친 마당의 젖은 흙을 피해 돌 위에만 올라선 운동화였다⁠.

피경칠이 도담을 보았다⁠. 놀라지 않았다⁠. 이런 아침을 미리 짜 둔 얼굴이었다⁠.

“⁠아⁠, 도담 씨도 계셨네요⁠. 잘됐습니다⁠. 두 번 걸음 안 해도 되겠어요⁠.⁠”

“⁠무슨 일이우까⁠?⁠”

“⁠주 대리 짐 날짜 잡으러 왔습니다⁠. 모르셨어요⁠?⁠”

등 뒤에서 이불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주 대리가 그저께 저하고 약속했습니다⁠. 총회 끝나면 다음 날 서울로 돌아오기로⁠. 복직하고⁠, 총회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 대가로 회사는 도담 씨 업무방해 고소장을 안 냅니다⁠. 저는 약속 지키는 사람이라⁠, 날짜를 받아 두려고요⁠.⁠”

도담은 돌아보았다⁠.

이섭이 이불을 걷고 앉아 있었다⁠. 이섭의 어깨에 어젯밤 도담이 입술로 따라간 고무옷 자국이 아직 붉었다⁠. 도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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