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09자)

하얀 가장자리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해녀 배의 엔진은 시동을 걸 때마다 세 번 기침을 했다⁠.

새벽 여섯 시 포구에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배는 해녀회가 함께 부리는 작은 목선이었고⁠, 키를 잡는 선장은 서른 해째 해녀들을 깊은 바다에 내려 주고 다시 건져 온 사람이었다⁠. 뱃전에 테왁 셋이 묶여 있었다⁠. 숙자의 낡은 주황 테왁⁠, 도담의 테왁⁠, 그리고 고옥녀의 박 테왁⁠. 박 테왁은 이섭이 들고 탔다⁠. 수습은 깊은 물에 들 수 없었지만 배에 타는 것은 막지 않았다⁠. 배 위에 남는 사람은 물에 든 사람들의 테왁을 지킨다⁠. 테왁이 어디 떠 있는지 보고⁠, 이 아래 공기 방울을 세고⁠, 방울이 끊기면 소리를 지른다⁠.

고옥녀는 포구 계단에서 이섭을 배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가서 잘 봐 두라⁠. 니가 들어갈 데다⁠.⁠”

배가 방파제를 벗어나자 너울이 뱃머리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세 번째 너울에서 이섭의 얼굴이 하얘졌고⁠, 다섯 번째에 이섭은 뱃전에 매달렸다⁠.

“⁠고기 밥 준다⁠.⁠”

선장이 키를 잡은 채 말했다⁠. 이섭은 아침에 먹은 귤 두 개를 바다에 돌려주고⁠, 고개를 들어 미안하다고 했다⁠. 선장은 큰여 고기들이 귤은 처음 먹어 볼 거라고 했다⁠. 숙자는 이 소동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뱃머리에 앉아 고무옷 모자를 썼다⁠. 왼쪽 귀를 덮는 고무를 손바닥으로 오래 눌렀다⁠.

“⁠어멍⁠.⁠”

“⁠말 시키지 말라⁠. 숨 아낀다⁠.⁠”

“⁠십 년 만이우다⁠.⁠”

“⁠알아⁠.⁠”

도담은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았다⁠. 큰여에 든 마지막 날을 도담은 기억했다⁠. 스물넷이었다⁠. 이날 숙자는 큰여 바닥에서 올라와 테왁을 잡고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귀에서 피가 흘러 고무옷 목덜미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후로 숙자는 칠 미터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니가 니 눈으로 보고 정허라⁠. 나도 내 눈으로 보고 정헌다⁠.⁠”

숙자가 말했다⁠. 이게 오늘 큰여에 가는 까닭이었다⁠. 도담은 이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어머니는 어젯밤 불턱 입구에서 무엇을 보았든⁠, 이걸 묻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배가 멈췄다⁠. 안개가 걷히면서 큰여 위의 물빛이 드러났다⁠. 짙은 남색이었다⁠. 그리고 이 남색 위에 하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파랑도개발 조사선이었다⁠. 백 미터쯤 떨어진 자리에서 닻을 내리고 있었고⁠, 뱃전에 카메라를 든 사람 둘과 흰 운동화를 신은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

숙자가 먼저 들어갔다⁠.

도담은 물 위 테왁에서 어머니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숙자는 머리를 꽂지 않고 발부터 미끄러지듯 가라앉았다⁠. 귀를 아끼는 사람의 하강이었다⁠. 삼 미터⁠, 오 미터⁠. 숙자의 몸이 남색 속으로 작아졌다⁠. 육 미터쯤에서 코를 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귀를 맞추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다시 내려갔다⁠.

일 분이 지나 숙자가 올라왔다⁠. 숨비소리가 길고 낮았다⁠. 도담이 아는 어머니의 소리였다⁠. 숙자는 테왁을 잡고 숨을 고르며 손가락 여덟 개를 펴 보였다⁠. 팔 미터까지 내려갔다는 표시였다⁠. 그리고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어 흔들었다⁠. 바닥이 이상하다는 손짓이었다⁠.

이번에는 도담이 들어갈 차례였다⁠. 숙자가 테왁에 남아 짝을 섰다⁠. 한 사람이 바닥에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은 물 위에서 지킨다⁠. 큰여의 규칙이었고⁠, 십 년 만에 돌아온 어머니도 이 규칙을 한 치도 어기지 않았다⁠.

물속은 생각보다 밝았다⁠. 햇빛이 남색 물을 뚫고 비스듬히 내려와 바위들 위로 그물처럼 흔들렸다⁠. 오 미터에서 큰여의 가장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위가 계단처럼 깊어지는 자리였다⁠. 도담은 어릴 적 할머니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의 망사리 속에서 이 바위들을 알았다⁠. 감태가 키 높이로 자라 바다 밑에서도 숲이라 부르던 곳이었다⁠.

숲이 없었다⁠.

바위가 하얬다⁠. 흰 석회 껍데기가 바위마다 눌어붙어 있었고⁠, 이 위로 보라색 성게만 수십 마리씩 엎드려 있었다⁠. 감태가 붙어 있던 자리마다 뿌리 자국만 갈색 점으로 남아 있었다⁠. 도담은 팔 미터 바닥에 손을 짚었다⁠. 거칠었다⁠. 살아 있는 바위의 미끈함이 없었다⁠.

설명회 사진 속 바다와 같았다⁠. 바위 모양만 달랐다⁠. 큰여 바위는 동쪽으로 갈라져 있었고⁠, 이 갈라진 틈에도 하얀 껍데기가 들어차 있었다⁠.

도담은 더 안쪽을 보았다⁠. 하얀 계단 너머⁠, 물이 깊어지는 쪽으로 어둡고 푸른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감태 숲일 수도 있었고 그냥 깊은 물빛일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숨이 모자랐다⁠. 바닥을 찼다⁠.

물 위에서 모녀는 말없이 테왁을 붙들고 숨을 골랐다⁠. 숙자가 손가락으로 하얀 계단 너머를 가리켰다⁠. 저 안쪽을 보고 오겠다는 손짓이었다⁠. 도담은 고개를 저었다⁠. 숙자는 딸의 고갯짓을 보지 않은 것처럼 숨을 길게 들이쉬고 다시 내려갔다⁠.

도담은 얼굴을 물에 대고 어머니를 보았다⁠. 물 위의 짝은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었다⁠. 숙자는 팔 미터 하얀 계단에 닿아 바위를 짚고 안쪽으로 몸을 밀었다⁠. 공기 방울이 일정하게 올라왔다⁠. 이십 초⁠, 삼십 초⁠.

방울이 멈췄다⁠.

숙자의 손이 왼쪽 귀로 올라가 있었다⁠. 숙자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기울었다⁠. 위아래를 잃은 사람이 기우는 방식이었다⁠. 고무옷 목덜미에서 붉은 실 같은 것이 풀려 나와 물에 흩어졌다⁠.

도담은 생각하지 않았다⁠. 테왁을 놓고 머리부터 꽂았다⁠. 팔 미터 바닥에서 어머니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바위를 걷어찼다⁠.

올라가는 팔 미터는 길었다⁠. 숙자의 몸이 무거웠다⁠. 숨을 반쯤 쓴 몸이었고⁠, 숙자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팔을 허우적거렸다⁠. 도담은 이 팔을 제 몸에 감기게 두고 위로만 찼다⁠. 수면의 빛이 가까워지다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쉴 틈 없이 다시 든 물이라 가슴 위쪽에서 숨이 타들어 갔다⁠. 손에 쥔 것을 놓으라고⁠, 수강생들에게 가르친 말이 떠올랐다⁠. 놓지 않았다⁠.

수면이 터졌다⁠.

*

이섭이 뱃전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다⁠. 테왁 셋 아래로 공기 방울이 끊긴 것을 보았고⁠, 선장에게 소리를 질렀고⁠, 배를 두 사람 쪽으로 붙인 참이었다⁠.

“⁠어머니 먼저요⁠!⁠”

이섭이 팔을 뻗었다⁠. 도담은 숙자의 등을 밀어 올렸다⁠. 이섭이 숙자의 고무옷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뒤로 넘어지며 끌어당겼다⁠. 숙자의 몸이 뱃전을 넘어 갑판에 미끄러졌다⁠. 이섭은 이 아래 깔렸다⁠. 서울에서 계단 세 층에 숨이 찼다던 남자가 예순두 살 해녀 하나를 통째로 안고 갑판에 누워 있었다⁠.

숙자가 이섭의 팔을 쥐었다⁠. 손톱이 이섭의 팔뚝에 박혔다⁠. 숙자는 그대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바닷물을 토했다⁠. 왼쪽 귀에서 피가 볼을 타고 내려왔다⁠.

도담이 뱃전을 넘어왔을 때⁠, 숙자는 아직 이섭의 팔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얀 조사선이 오십 미터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피경칠이 뱃전에서 손나팔을 만들었다⁠.

“⁠다치셨으면 저희 배로 옮기시죠⁠! 저희 배가 훨씬 빠릅니다⁠! 성산 쪽 병원까지 이십 분이면 됩니다⁠!⁠”

카메라 둘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나는 사람 손에⁠, 하나는 배 꼬리 기중기에 달려 물속으로 내려가 있다가 지금 막 올라오는 중이었다⁠. 물속 카메라였다⁠. 도담은 이 카메라가 물속에서 무엇을 찍었는지 알았다⁠. 하얀 계단과⁠, 이 위에서 기울어지는 해녀 하나와⁠, 이 해녀를 안고 올라가는 해녀 하나⁠.

“⁠마을어장에서 나갑서⁠!⁠”

도담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 허가 받은 조사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람이 다쳤잖습니까⁠!⁠”

숙자가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 귀를 조사선 쪽으로 돌렸다⁠. 피 묻은 얼굴로⁠, 숙자는 갑판에 앉은 채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물 위로 이상하게 멀리 갔다⁠.

“⁠느네 배엔 안 탄다⁠.⁠”

선장이 엔진을 걸었다⁠. 세 번 기침을 하고⁠, 배가 돌았다⁠. 조사선은 따라오지 않았다⁠. 이 자리에 남아 물속 카메라를 다시 내렸다⁠.

*

보건지소의 의사는 젊었고⁠, 말을 돌리지 않았다⁠.

“⁠고막이 다시 찢어졌고요⁠, 안쪽 귀까지 다쳤어요⁠. 어지럼증은 며칠이면 가라앉을 수도 있는데⁠, 앞으로 물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얕은 데도요⁠.⁠”

숙자는 침대에 앉아 오른쪽 귀로 이 말을 다 들었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나가자 숙자는 창밖을 보았다⁠. 보건지소 창으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돌담과 귤밭만 보였다⁠.

“⁠봤지⁠?⁠”

숙자가 말했다⁠. 딸을 보지 않았다⁠.

“⁠반은 하얗다⁠. 내가 마지막 들어간 해엔 그 계단에 감태가 허리까지 왔다⁠. 십 년에 반이다⁠. 십 년 더 가믄 다 하얗다⁠. 그땐 보상금도 없다⁠. 죽은 바당엔 아무도 돈 안 준다⁠.⁠”

“⁠반은 안 하얗수다⁠.⁠”

“⁠니가 그 반에 들어가 봤나⁠?⁠”

도담은 대답하지 못했다⁠. 들어가 보지 못했다⁠. 하얀 계단 너머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을 뿐이었다⁠.

숙자가 이불 위에 놓인 제 손을 보았다⁠. 빗창 손잡이 자국이 패어 있는 손이었다⁠.

“⁠나는 오늘로 끝이다⁠. 니도 알지⁠?⁠”

“⁠알아마씨⁠.⁠”

“⁠그럼 됐다⁠. 해녀회장은 바당에 안 들어도 할 수 있다⁠.⁠”

숙자가 누웠다⁠. 왼쪽 귀를 베개에 대고⁠, 오른쪽 귀를 천장에 둔 채⁠. 도담은 어머니가 일부러 그렇게 누웠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누우면 아무 말도 듣지 않을 수 있었다⁠.

복도에 이섭이 앉아 있었다⁠. 팔뚝에 숙자의 손톱 자국 넷이 초승달처럼 박혀 있었다⁠. 도담은 이 옆에 앉았다⁠. 이섭의 팔을 끌어다 손톱 자국을 손가락으로 덮었다⁠.

“⁠고마워⁠.⁠”

“⁠어머니가 끝까지 안 놓으셨어요⁠.⁠”

“⁠우리 어멍은 원래 안 놔⁠.⁠”

*

이날 밤 마을회관에서 상생위원회 설명회가 열렸다⁠. 이장이 급하게 잡은 자리였다⁠.

흰 천에 영상이 떴다⁠. 물속이었다⁠. 하얀 바위 계단⁠, 보라색 성게들⁠. 그리고 화면 한쪽에서 해녀 하나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물에 풀린 붉은 실이 보였다⁠. 다른 해녀가 이 몸을 안고 위로 올라갔다⁠. 화면 아래에 하얀 글씨가 떴다⁠. 큰여⁠, 수심 팔 미터⁠, 오늘 아침⁠.

회관 안의 숨소리가 다 멈췄다⁠. 숙자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왼쪽 귀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오늘 아침 해녀회장님이 큰여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이 바다는 이미 죽었고⁠, 해녀분들께도 위험합니다⁠. 저희는 이 바다를 더 이상 해녀분들의 몸으로 지키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피경칠은 웃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담은 이 숙인 고개가 이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본 뒤의 고개라는 것을 알았다⁠.

“⁠영상 끄십서⁠.⁠”

도담이 일어섰다⁠. 피경칠이 도담을 보았다⁠.

“⁠어머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그 영상 우리 어멍 얼굴이우다⁠. 허락 받았수까⁠?⁠”

“⁠도 허가 조사 중에 찍힌 겁니다⁠.⁠”

이때 숙자가 일어섰다⁠. 붕대 감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회관 전체를 보았다⁠. 해녀 스물아홉이 다 와 있었다⁠. 어촌계 남자들도⁠, 겨레도⁠, 고옥녀도⁠, 회관 맨 뒤 벽에 등을 붙인 이섭도⁠.

“⁠해녀회는 동의허쿠다⁠.⁠”

회관이 술렁였다⁠. 이장이 손수건을 떨어뜨렸다⁠. 고옥녀가 앉은 채로 숙자의 등을 보았다⁠.

“⁠해녀회장 이름으로 말허는 거다⁠. 총회 때 해녀회는 동의로 간다⁠.⁠”

도담은 앉지 않았다⁠. 맨 앞줄 어머니의 등과⁠, 연단의 피경칠과⁠, 흰 천 위에 멈춘 영상 속 기울어진 해녀를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회관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

“⁠해녀회장⁠, 다시 뽑읍서⁠.⁠”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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