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82자)

박 테왁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칼끝은 떨리고 있었다⁠.

도담은 이 떨림을 보았다⁠. 겨레의 손목이 백열등 아래에서 하얗게 질려 있었고⁠, 칼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튀어나와 있었다⁠. 찌를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들킨 사람의 손이었다⁠. 도담은 문턱을 넘어 창고 안으로 들어가⁠, 겨레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칼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짤랑 소리를 냈다⁠.

“⁠누가 시켰어⁠?⁠”

“⁠아무도요⁠.⁠”

겨레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겨레의 운동화 밑에 테왁 천 조각이 깔려 있었다⁠. 도담은 창고 안쪽을 둘러보았다⁠. 앞에 놓인 여섯 개만이 아니었다⁠. 벽에 걸어 둔 나머지 여덟 개도 끈이 매듭 위에서 잘려 있었다⁠. 이섭의 테왁⁠, 둥근 돌이 든 이 테왁도 천이 한 뼘 갈라져 스티로폼 하얀 속살이 보였다⁠.

“⁠학교 거만 했어요⁠. 삼춘들 건 안 건드렸어요⁠.⁠”

“⁠그게 자랑이야⁠?⁠”

“⁠누나는 바다가 있잖아요⁠.⁠”

겨레가 고개를 들었다⁠. 스물여덟 살 얼굴에서 열여덟 살 때 얼굴이 보였다⁠. 같은 해 봄 이 포구에서 배를 타고 제주시로⁠,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마을 사람들이 포구에 나와 손을 흔들었다⁠.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서울에서 육 년 있다가 짐 싸서 왔어요⁠. 같이 학교 다닌 애들 열한 명 중에 이 마을에 남은 애가 하나도 없어요⁠. 리조트 들어오면 일자리가 서른 개래요⁠. 서른 개요⁠, 누나⁠. 해녀학교 졸업생 일곱 명 받아서 뭐 해요⁠. 다 할머니 될 때까지 소라 따요⁠?⁠”

도담은 대답하지 않고 칼을 주워 접었다⁠. 그리고 겨레의 바람막이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숙자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말로 안 되는 사람은 몸을 먼저 세운다⁠.

*

이장 집 마당에 어선 그물이 널려 있었다⁠. 아침 여섯 시였고⁠, 문명보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마당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다가 아들의 목덜미를 쥐고 들어오는 도담을 보았다⁠. 얼굴에 비누 거품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도담은 접은 칼과 잘린 테왁 끈 한 묶음을 수돗가 시멘트 위에 내려놓았다⁠.

“⁠학교 테왁 열네 개우다⁠. 다 그었수다⁠.⁠”

이장은 물을 끼얹어 얼굴의 거품을 씻어 냈다⁠. 씻어 내는 데 오래 걸렸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서야 아들을 보았다⁠. 손을 들었다⁠. 겨레가 눈을 감았다⁠. 손은 내려오지 않았다⁠.

“⁠테왁 값 내가 물어 주켜⁠. 하여튼 간에 경찰은 부르지 말라⁠.⁠”

“⁠테왁 값은 당연히 물어 주셔야 허고⁠.⁠”

“⁠그럼 뭘 더 바라⁠.⁠”

“⁠총회우다⁠. 팔월 그믐에서 하루도 당기지 맙서⁠. 해녀 삼춘들 앞에서 약속허십서⁠.⁠”

이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총회 날짜는 이장과 피경칠이 정한 것이었다⁠. 도담은 이 날짜가 이섭의 숨에 걸린 마지막 줄이라는 것을 알았다⁠. 팔월 그믐 전 마지막 조금까지⁠, 큰여 바닥에 닿아야 했다⁠.

“⁠경찰 부르믄 겨레는 회사에서 잘리고⁠, 마을에선 테왁 그은 놈 되고⁠. 이장님은 상생위원장 자리 내놓고⁠.⁠”

도담은 말을 멈췄다⁠. 협박이었다⁠. 이걸 알았고⁠, 이장도 알았다⁠. 수돗가 꼭지에서 물방울이 시멘트에 떨어지는 소리가 세 번 났다⁠.

“⁠약속허켜⁠.⁠”

이날 아침 불턱에서 이장은 해녀 스물넷 앞에 서서⁠, 총회는 팔월 그믐이고 이 날짜는 당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테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도담도 하지 않았다⁠. 해녀들은 이장이 왜 갑자기 불턱까지 와서 이 말을 하는지 몰라 서로 얼굴만 보았다⁠.

“⁠이장⁠, 아침부터 무사 왔나⁠? 환갑잔치 또 허나⁠?⁠”

고옥녀가 물었다⁠. 무사는 왜냐는 말이다⁠. 이장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자 고옥녀는 몸국이 맛있었으니 한 번 더 해도 된다고 했고⁠, 삼춘 하나가 이번엔 돼지를 두 마리 잡으라고 했고⁠, 또 하나가 돼지 값은 회사가 내느냐고 물었다⁠. 이장은 대답하지 못하고 손수건만 꺼냈다⁠. 이른 아침이라 땀이 날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이마를 오래 닦았다⁠. 불턱을 나가는 이장의 러닝셔츠 등판이 젖어 있었다⁠.

숙자만 웃지 않고 딸을 오래 보았다⁠.

*

학교 테왁이 다 못 쓰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고옥녀는 아무 말도 없이 제 집 창고로 갔다⁠.

한참 뒤 고옥녀가 들고 나온 것은 누런 공이었다⁠. 말린 박을 통째로 쓴 테왁이었다⁠. 스티로폼이 나오기 전⁠, 이 섬의 해녀들은 다 이런 박에 그물을 엮어 물에 띄웠다⁠. 박 껍질은 오래되어 꿀색으로 바래 있었고⁠, 손때가 닿는 위쪽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그물은 몇 번 새로 엮었는지 매듭마다 색이 달랐다⁠.

“⁠예순 해 된 거여⁠.⁠”

“⁠삼춘 거우까⁠?⁠”

“⁠옛날 거여⁠.⁠”

고옥녀는 이 말만 하고 테왁을 이섭에게 안겼다⁠. 이섭은 이것을 받다가 생각보다 가벼워 팔이 위로 튀었다⁠.

“⁠깨지믄 니도 같이 깨진다⁠.⁠”

고옥녀가 말했다⁠. 웃지 않았다⁠. 그리고 숙자에게 가서⁠, 이 멸치가 할망바당에서 하루에 소라 열 개를 따 오면 수습을 돌려주라고 했다⁠. 숙자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열 개믄⁠.⁠”

*

도담은 할망바당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금지를 받은 해녀는 물에 들 수 없었지만 바위에 앉는 것까지 막는 규칙은 없었다⁠.

고옥녀가 물에 드는 것을 도담은 오랜만에 보았다⁠. 여든 살 몸이 고무옷 안에서 작았다⁠. 박 테왁 옆에 이섭을 세워 두고 물에 들기 전 마지막 말을 했다⁠.

“⁠물에 들믄 입 다물라⁠. 멸치는 입 벌리고 죽는다⁠.⁠”

“⁠네⁠, 삼춘⁠.⁠”

“⁠대답도 하지 마라⁠. 지금부터 입 다물라⁠.⁠”

이섭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옥녀가 먼저 머리를 꽂았다⁠. 다리가 하늘로 섰다가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물결 하나 일지 않았다⁠. 이섭이 따라 꽂았다⁠. 이섭의 다리는 하늘로 서기 전에 한 번 흔들렸고⁠, 물보라가 일었다⁠.

물이 맑았다⁠. 바위에서도 바닥이 보였다⁠. 사 미터 바닥에서 고옥녀는 바위 하나에 손을 짚고 엎드려⁠, 다른 손으로 이섭에게 바위틈을 가리켰다⁠. 이섭이 골갱이를 틈에 넣어 소라를 긁어냈다⁠. 소라 하나가 이섭의 손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이걸 박 테왁의 그물로 가져가려고 바로 올라가지 않고⁠, 옆 틈을 하나 더 보았다⁠.

도담은 바위 위에서 입 속으로 세었다⁠. 이섭이 올라올 때 오십오 초였다⁠. 소라 둘이 그물에 들어갔다⁠.

여덟 번째 물에서 소라가 아홉이 되었다⁠. 열 번째 물에서 이섭이 비명을 지르며 솟아올랐다⁠. 이섭의 왼손에 문어 한 마리가 달려 있었다⁠. 다리 여덟 개가 이섭의 팔을 감고⁠, 몸통이 손등을 덮고 있었다⁠. 팔을 흔들자 문어가 더 세게 감겼다⁠.

“⁠입 다물랜 했지⁠!⁠”

고옥녀가 물 위에서 소리쳤다⁠. 이섭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비명을 콧소리로 질렀다⁠.

도담이 바위 위에서 웃다가 미끄러질 뻔했다⁠. 해녀 삼춘 몇이 할망바당 가장자리에서 고개를 내밀고 구경했다⁠. 결국 고옥녀가 헤엄쳐 와 문어 머리를 손가락으로 뒤집었다⁠. 문어는 그제야 팔을 풀었고⁠, 이섭의 손등에 빨판 자국이 동그랗게 남았다⁠. 문어 입이 문 자리에서 피가 한 방울 맺혔다⁠.

“⁠그럼 이거 열 개우까⁠?⁠”

불턱에서 그물을 쏟으며 고옥녀가 물었다⁠. 소라 아홉⁠, 문어 하나⁠. 숙자가 그물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문어가 물었으믄 문어가 딴 거지⁠, 멸치가 딴 거냐⁠?⁠”

삼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옥녀는 문어를 들어 숙자 코앞에 흔들었다⁠. 숙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섭이 일어나 박 테왁을 집었다⁠.

“⁠한 번 더 들어갈게요⁠. 삼춘⁠, 짝 서 주세요⁠.⁠”

고옥녀가 끙 소리를 내며 고무옷 지퍼를 도로 올렸다⁠. 이섭이 올려 주려 하자 손등을 때렸다⁠. 이날 열한 번째 물에서 소라 하나를 쥐고 올라왔다⁠. 손바닥보다 작은 소라였다⁠. 그래도 열 개였다⁠.

숙자가 그물에서 소라 열 개를 세고 일어섰다⁠. 골갱이를 이섭에게 돌려주었다⁠.

“⁠수습⁠.⁠”

해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래도 도담은 이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긴 말이라는 걸 알았다⁠.

*

이 주 금요일 아침⁠, 하얀 배 한 척이 큰여 위에 멈춰 섰다⁠.

배 꼬리에 기중기 하나가 달려 있었고⁠, 뱃전에 파랑도개발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사람 몇이 뱃전에서 노란 줄을 바다로 내렸다⁠. 줄 끝에 무언가 무거운 쇳덩이가 달려 있었다⁠. 숨비개 포구에서 이 배를 맨 먼저 본 것은 바위에 앉아 있던 도담이었다⁠.

포구 방파제 끝에 피경칠이 서 있었다⁠. 휴대폰 화면을 도담에게 내밀었다⁠.

“⁠도에서 받은 사전 해양조사 허가입니다⁠. 큰여 바닥을 찍어 오라고 하더군요⁠. 붉은 부표 말이 많아서요⁠. 이번엔 큰여에서 직접 찍겠습니다⁠.⁠”

“⁠마을어장에 배 띄우믄 해녀회에 먼저 말허는 거⁠, 모르우꽈⁠?⁠”

“⁠압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해녀회는 허가를 내주는 곳이 아니죠⁠.⁠”

피경칠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덧붙였다⁠.

“⁠그리고 창고에 도둑이 들었다면서요⁠. 테왁이 다 찢어졌다고⁠. 마음이 아프네요⁠.⁠”

도담은 이섭을 보았다⁠. 이 이야기는 불턱에서도⁠, 위판장에서도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이장 집 수돗가에 있던 셋만 알았다⁠.

“⁠누구한테 들었수까⁠?⁠”

“⁠마을이 작잖아요⁠.⁠”

피경칠은 흰 운동화로 방파제 위의 물기를 피해 걸어갔다⁠. 도담은 큰여 위의 하얀 배를 보았다⁠. 노란 줄이 물속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

보름째 밤⁠, 금지가 풀렸다⁠.

불턱에 장작을 지핀 것은 도담이었다⁠. 내일 새벽 물에 들려면 고무옷을 말려 둬야 했다⁠. 이섭이 박 테왁의 그물을 다시 엮고 있었다⁠. 문어에게 물린 손등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불이 올라오자 돌담 안이 붉어졌다⁠. 장작이 터지는 소리와 멀리 파도가 돌담을 치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이섭의 손이 그물을 엮다가 멈췄다⁠.

“⁠내일부터 다시 물에 드시네요⁠.⁠”

“⁠응⁠.⁠”

“⁠제 짝은 옥녀 삼춘이고요⁠.⁠”

“⁠응⁠.⁠”

“⁠강사님 짝은요⁠?⁠”

도담은 장작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이섭이 그물을 내려놓고 불가로 와 도담 옆에 앉았다⁠. 어깨가 닿았다⁠. 비켜 앉지 않았다⁠.

이섭이 도담의 손을 잡았다⁠. 도담의 손톱 밑에 박혀 있던 성게 가시를 이섭은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섭은 손톱 끝으로 이 가시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따끔했다⁠. 가시가 빠지자 피가 한 점 맺혔고⁠, 이섭은 이 손가락을 제 입술로 가져갔다⁠.

도담은 숨을 멈췄다⁠. 바닥으로 꽂기 직전의 숨이었다⁠. 소금 맛이 이섭의 입술에서 도담의 손끝으로 옮아왔다⁠. 손을 빼지 않고 다른 손으로 이섭의 뒷덜미를 잡았다⁠. 보름 전 포구의 검은 물속에서 움켜쥐었던 바로 이 자리였다⁠. 이번에는 끌어올리지 않고 끌어당겼다⁠.

입술이 닿았다⁠. 이섭의 입술은 차가웠다가⁠, 금방 뜨거워졌다⁠. 장작 연기와 소금과 반창고의 약 냄새가 섞였다⁠. 도담은 숨을 세지 않았다⁠. 처음으로 세지 않았다⁠.

돌담 입구에서 자갈 밟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떨어졌다⁠. 고옥녀가 아니었다⁠. 현숙자가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 보온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내일 새벽 딸이 마실 보리차였을 것이다⁠. 숙자는 불가의 두 사람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보았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도담은 알 수 없었다⁠.

숙자가 보온병을 돌담 위에 내려놓았다⁠.

“⁠내일 조금이다⁠. 큰여 간다⁠. 나영 같이⁠.⁠”

도담이 일어섰다⁠. 숙자는 이섭을 보지 않고 딸에게만 말했다⁠.

“⁠니 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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