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28자)

붉은 부표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새벽 다섯 시 반 불턱의 장작에는 아직 불이 붙지 않았다⁠.

해녀회는 중요한 일을 물에 들기 전 불턱에서 정했다⁠. 물에서 나오면 몸이 지쳐 말이 짧아지고⁠, 짧은 말은 싸움이 된다⁠. 해녀 스물넷이 돌담 안에 둘러앉았다⁠. 고무옷을 반쯤 입은 사람⁠, 아직 몸빼 바지를 입은 사람⁠, 보온병에 담아 온 보리차를 따르는 사람⁠. 아무도 장작에 성냥을 대지 않았다⁠. 다들 해녀회장의 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섭은 돌담 입구에 서 있었다⁠. 고무옷을 입고 왔지만⁠, 들어오라는 사람이 없었다⁠.

현숙자가 입을 열었다⁠.

“⁠해남은 오늘부터 해남 아니다⁠. 수습 거둔다⁠. 바당에도 못 든다⁠.⁠”

삼춘 몇이 고개를 끄덕였고 몇은 바닥만 보았다⁠. 숙자는 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도담이는 보름 물질 못 헌다⁠. 해녀학교 강사도 내려놓는다⁠. 올해 학교는 여기서 닫는다⁠.⁠”

보름이면 한 물때가 다 지나갔다⁠. 사월 끝 물때는 소라 값이 가장 좋을 때였다⁠. 도담은 무릎 위에 올려 둔 제 손을 보았다⁠. 손톱 밑에 어제 딴 성게 가시가 하나 박혀 있었다⁠.

“⁠규칙대로 허십서⁠.⁠”

도담이 말했다⁠. 숙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딸이 맞설 줄 알았던 사람의 어깨였다⁠.

이섭이 돌담 입구에서 한 걸음 들어섰다⁠.

“⁠회장님⁠, 제 말씀을 좀⁠…⁠…⁠”

“⁠불턱엔 물질허는 사람만 든다⁠.⁠”

숙자가 말했다⁠. 이섭의 발이 돌담 안쪽 첫 돌 위에서 멈췄다⁠. 이섭은 이 발을 거두었다⁠. 고옥녀가 이섭을 보다가 성냥을 그어 장작에 댔다⁠. 불이 붙자 연기가 돌담 위로 올라가 입구에 선 남자의 얼굴을 지나갔다⁠.

해녀들이 고무옷 지퍼를 올리고 하나둘 물로 내려간 뒤에야 도담은 불턱을 나왔다⁠. 이섭은 돌담 바깥 바위에 앉아 있었다⁠. 고무옷을 입은 채였다⁠. 입고 올 때는 물에 들 줄 알았을 것이다⁠.

“⁠서울 가⁠.⁠”

도담이 말했다⁠. 이섭의 옆에 앉지 않고 섰다⁠.

“⁠큰여 아직 안 봤어요⁠.⁠”

“⁠짝이 없으믄 못 들어가⁠. 나는 보름 금지고⁠, 너는 해녀회가 뺐어⁠. 이 바당에 너랑 같이 들어갈 사람 이제 없어⁠.⁠”

“⁠그럼 보름 기다릴게요⁠.⁠”

“⁠보름 뒤에도 너는 수습이 아니야⁠.⁠”

이섭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 하나를 손톱으로 긁었다⁠. 따개비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왜 숨겨 주셨어요⁠? 별채에서⁠. 그냥 해녀회에 말하셨으면 강사님은 아무것도 안 잃으셨잖아요⁠.⁠”

도담은 바다를 보았다⁠. 할망바당 쪽에서 첫 숨비소리가 올라왔다⁠. 누군가의 짧고 높은 휘파람이었다⁠.

“⁠상군 하나 얻으려고⁠. 큰여 들어갈 짝⁠.⁠”

도담이 말했다⁠. 이섭이 고개를 들어 도담을 보았다⁠. 도담은 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듣기 좋은 말을 지어낼 수도 있었지만⁠, 이날 밤 도담이 셈한 것은 정말로 그거였다⁠. 어머니 대신⁠, 세 해 비어 있던 자리 대신⁠.

“⁠그럼 저도 숨긴 거 하나 말할게요⁠. 제가 여기 온 거⁠, 저 좋자고 온 거예요⁠. 큰여 보면 숨이 다시 쉬어질까 해서⁠.⁠”

“⁠쉬어지든⁠?⁠”

“⁠사십삼 초까지는요⁠.⁠”

도담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고무옷 무릎이 닳은 자리로 아침 바람이 들어와 살갗이 오그라들었다⁠.

*

이날 아침 포구에 현수막 세 장이 걸렸다⁠.

현수막에는 숨비개 상생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해녀 은퇴⁠, 이제는 보상으로라는 말과 위원장 문명보⁠, 간사 문겨레가 박혀 있었다⁠. 파란 바탕에 흰 글씨였고⁠, 글씨 아래에 바다 위에 뜬 하얀 빌라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해녀학교 현수막이 걸려 있던 바로 이 쇠기둥이었다⁠. 학교 현수막은 둘둘 말려 기둥 밑에 놓여 있었다⁠.

도담은 물에 들지 못하는 날이라 위판장에서 어머니 바구니를 날랐다⁠. 해녀회장의 바구니는 늘 가장 무거웠다⁠. 숙자는 딸이 들고 온 바구니를 받아 저울에 올리면서 한 번도 딸을 보지 않았다⁠. 소라가 저울에 쏟아지는 소리만 위판장 천장에 울렸다⁠.

피경칠이 시멘트 턱 위에 서 있었다⁠. 어제처럼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강사님⁠, 아니 이제 강사님은 아니시죠⁠. 도담 씨⁠. 잠깐 말씀 좀⁠.⁠”

도담은 빈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피경칠이 봉투를 내밀지 않고 손바닥만 한 안내지를 내밀었다⁠. 리조트 바닷속 식당 그림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해녀복을 입은 여자 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리조트에 해녀 공연을 넣습니다⁠. 하루 네 번⁠, 손님들이 밥 먹는 동안 유리창 밖에서 물질을 보여 주는 거죠⁠. 그 공연 감독 자리를 드리겠습니다⁠. 연봉 오천⁠. 물에는 하루 한 시간만 드시면 됩니다⁠.⁠”

“⁠물질을 보여 줘요⁠? 뭘 따는데요⁠?⁠”

“⁠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가 소라를 바닥에 놔 드립니다⁠.⁠”

도담은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피경칠도 같이 웃었다⁠. 둘이 웃는 이유가 달랐다⁠.

“⁠이사님⁠, 그거 소라한테도 실례우다⁠.⁠”

“⁠도담 씨⁠, 냉정하게 보시죠⁠. 해녀는 십 년 뒤 박물관에 있을 겁니다⁠. 평균 나이가 일흔하나예요⁠. 저는 도담 씨한테 그 박물관 관장이 되시라는 겁니다⁠. 박물관이 바다 위에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고⁠.⁠”

“⁠박물관엔 바당이 없수다⁠. 유리 한 장 사이에 두고 있어도 없는 거우다⁠.⁠”

도담은 안내지를 피경칠의 정장 가슴 주머니에 도로 꽂았다⁠.

“⁠그 사진⁠, 어디서 찍었수까⁠?⁠”

피경칠의 웃음이 아주 잠깐 늦었다⁠.

“⁠조사업체에 물어보시죠⁠.⁠”

“⁠그 업체 이름 대 줍서⁠.⁠”

“⁠고객 정보라서요⁠.⁠”

피경칠은 홍삼 사탕 하나를 도담의 빈 바구니에 떨어뜨리고 갔다⁠. 사탕 껍질이 바구니 그물 사이에 걸려 바람에 바스락거렸다⁠.

*

오후부터 비가 왔다⁠.

이섭은 탈의장 앞 처마 밑이 아니라 처마 밖에 서 있었다⁠. 해녀회 모임이 저녁에 열린다는 말을 듣고 점심때부터 거기 서 있었다고 고옥녀가 전했다⁠. 해녀회에 할 말이 있다고 했고⁠, 들여보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고⁠.

“⁠처마 밑에 서믄 되는디⁠.⁠”

“⁠처마 밑은 탈의장 거라고⁠, 탈의장은 해녀 거라고⁠. 지가 안 서켄 허더라⁠.⁠”

고옥녀가 혀를 찼다⁠. 그리고 우산 하나를 들고 나가 이섭의 머리 위에 펴 주며 말했다⁠.

“⁠비 맞은 멸치는 썩는다⁠. 들어와라⁠.⁠”

“⁠회장님이 허락하셔야⁠…⁠…⁠”

“⁠할망 우산 밑에 선 건 할망 거여⁠. 따라와⁠.⁠”

이섭은 고옥녀의 우산 밑에 몸을 반으로 접고 탈의장 계단을 올라갔다⁠. 우산이 이섭의 정수리에도 닿지 않아서 계단 끝까지 어깨를 다 적셨다⁠.

사무실 문턱에서 이섭이 머리를 털자 물방울이 앞줄 삼춘들 얼굴로 튀었다⁠.

“⁠국물용이 국물이 되어 왔네⁠.⁠”

“⁠육수 냄새 난다⁠.⁠”

“⁠냄새는 무슨⁠, 비 냄새지⁠.⁠”

삼춘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수건을 던져 주었다⁠. 수건 세 장이 동시에 이섭의 머리에 떨어졌다⁠.

해녀회 사무실에 들어서자 숙자가 이섭을 보았다⁠. 내보내지는 않았다⁠. 고옥녀가 이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도담은 문 옆 벽에 등을 붙이고 서 있었다⁠. 금지를 받은 사람은 앉지 않는 것이 해녀회의 버릇이었다⁠.

이섭은 젖은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그린 도면의 한 부분이었고⁠, 하나는 설명회에서 나눠 준 안내지였다⁠. 하얗게 죽은 바다 사진이 실린 이 안내지였다⁠.

“⁠큰여에 빌라 마흔 채를 띄우려면 바위에 구멍을 마흔 개 뚫어야 합니다⁠. 화약으로 깹니다⁠. 큰여 바위 틈은 다 부서집니다⁠. 그리고 보상금 일억은 확정이 아닙니다⁠. 총회에서 동의를 받은 다음에 감정을 다시 합니다⁠. 그때 회사는 죽은 바다라는 사진을 근거로 값을 낮춥니다⁠. 그걸 설계한 회의에 제가 있었습니다⁠.⁠”

방이 조용했다⁠. 빗소리가 창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 사진⁠.⁠”

이섭은 안내지를 바닥에 펼치고 사진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하얀 바위 너머 흐린 물속에 붉은 공 하나가 떠 있었다⁠. 공에는 흰 띠가 둘러져 있었다⁠.

“⁠이 부표⁠, 숨비개 것입니까⁠?⁠”

삼춘들이 무릎으로 기어 와 사진 위로 머리를 모았다⁠. 숨비개 어촌계는 마을어장 경계에 주황 부표를 띄웠다⁠. 흰 띠를 두른 붉은 부표는 북쪽 이웃 마을 어촌계가 전복 양식장 경계에 띄우는 부표였다⁠.

“⁠이거 윗마을 부표여⁠.⁠”

“⁠맞다⁠. 윗마을 양식장 앞이 작년부터 하얘졌댄 허더라⁠.⁠”

“⁠그럼 이 사진이 큰여가 아니라는 거라⁠?⁠”

사무실 문이 열렸다⁠. 이장 문명보가 먼저 들어오고 피경칠이 뒤따랐다⁠. 피경칠의 흰 운동화가 젖어 있었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상생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왔습니다⁠. 해녀회에서 회사 얘기가 나온다길래⁠.⁠”

이장이 손수건으로 빗물인지 땀인지를 닦았다⁠.

피경칠은 바닥에 펼쳐진 안내지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부표 위에 이섭의 손가락이 아직 놓여 있었다⁠.

“⁠부표는 물살 따라 떠다닙니다⁠. 끈 끊어진 부표가 큰여까지 흘러오는 일⁠, 해녀분들이 더 잘 아시죠⁠?⁠”

“⁠끈 끊어진 부표는 누워 떠요⁠. 이건 서 있습니다⁠. 바닥에 묶여 있는 부표예요⁠.⁠”

이섭이 말했다⁠. 피경칠이 이섭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주 대리⁠. 회사 도면을 퇴사하면서 들고 나간 거⁠, 그거 영업비밀 누설이야⁠. 오늘 여기서 그걸 펼쳤으니 증인도 스물네 명이고⁠. 고소하겠네⁠.⁠”

“⁠하세요⁠.⁠”

이섭이 말했다⁠. 도담은 벽에 붙인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라고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숙자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한 번 쳤다⁠. 방 안의 눈이 모두 숙자에게 갔다⁠.

“⁠해남은 그래도 바당엔 못 든다⁠. 해녀회 결정은 결정이다⁠.⁠”

“⁠할망바당은 할망이 정허는 거 아니우꽈⁠?⁠”

고옥녀였다⁠. 고옥녀는 아직 우산을 접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다⁠. 우산 끝에서 물이 떨어져 고옥녀 발밑에 작은 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할망바당은 늙은 해녀 자리여⁠. 거기 누가 드는지는 할망들이 정허주⁠. 회장도 할망바당엔 말 못 한다⁠. 그게 이 마을 법 아니냐⁠?⁠”

숙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마을 법이 맞았다⁠.

“⁠이 멸치⁠, 내 짝으로 할망바당에 데려가켜⁠. 여든 먹은 할망 짝이믄 깊은 데는 꿈도 못 꾸고⁠. 회장은 상관 말라⁠.⁠”

삼춘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을 막았다⁠. 피경칠이 고옥녀를 보았다⁠. 고옥녀가 피경칠을 보았다⁠. 그리고 우산을 탁 접어 피경칠의 젖은 운동화 앞에 물을 털었다⁠.

*

보름 금지의 첫 밤⁠, 도담은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네 시에 도담은 탈의장 뒤 창고로 갔다⁠. 해녀학교 테왁 열네 개가 거기 있었다⁠. 학교가 닫혔으니 정리해 두어야 했고⁠, 제 돈으로 산 새 테왁 다섯 개는 끈을 갈아 두고 싶었다⁠. 손을 움직이고 있으면 금지의 시간이 덜 길 것 같았다⁠.

창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천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테왁은 스티로폼 공을 두꺼운 천으로 싸고 이 위에 그물주머니를 엮어 만든다⁠. 이 천을 칼로 그으면 바로 이 소리가 났다⁠. 북⁠, 하고⁠. 한 번 더⁠. 북⁠.

도담은 문을 밀었다⁠.

창고 백열등 아래에 문겨레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겨레의 앞에 테왁 여섯 개가 배를 갈린 생선처럼 천이 벌어져 있었고⁠, 끈은 하나같이 매듭 바로 위에서 잘려 있었다⁠. 겨레의 손에 접이식 칼이 들려 있었다⁠. 이섭의 테왁이 이 칼 바로 앞에 있었다⁠. 그물 속에 둥근 돌 하나가 든 테왁이었다⁠.

겨레가 고개를 들었다⁠. 칼끝이 도담 쪽을 향해 있었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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