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87자)

사십삼 초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물은 검었고⁠, 차가웠고⁠, 도담의 귀를 두 손으로 누르듯 조여 왔다⁠.

도담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었다⁠. 손끝에 테왁 끈이 걸렸다⁠. 끈은 물 위의 테왁에서 곧장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팽팽했다⁠. 무언가가 아래에서 끈을 당기고 있었다⁠. 도담은 끈을 손바닥에 감으며 내려갔다⁠. 삼 미터쯤에서 손등에 머리카락이 닿았다⁠.

이섭이었다⁠. 이섭은 바닥 바위 옆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한쪽 발목에 테왁 끈이 두 바퀴 감겨 바위 모서리에 걸려 있었다⁠. 이섭이 발을 차면 찰수록 끈은 바위 틈으로 더 깊이 물려 들어갔다⁠. 이섭의 손이 도담의 팔을 붙잡았다⁠. 손톱이 살에 박혔다⁠.

도담은 이 손을 떼어 내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이섭의 발목을 더듬어 끈을 바위 반대쪽으로 한 바퀴 돌렸다⁠. 끈이 풀리는 감촉이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이섭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바닥을 찼다⁠.

수면 위로 머리가 나오자 이섭은 기침부터 했다⁠. 물을 토하고⁠, 숨을 들이켜고⁠, 또 토했다⁠. 도담은 이섭의 손을 테왁에 끌어다 붙였다⁠. 테왁을 안은 것을 보고 나서야 도담도 숨을 쉬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이섭의 뺨을 쳤다⁠. 젖은 살이 철썩 소리를 냈다⁠.

“⁠혼자 들어가지 말랜 했지⁠!⁠”

“⁠보름밖에⁠…⁠… 없어서⁠…⁠…⁠.⁠”

“⁠보름 있으믄 뭐 해⁠. 오늘 죽으믄 보름이 무슨 소용이야⁠.⁠”

이섭은 테왁을 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가로등 빛에 이섭의 입술이 파랬다⁠. 도담은 이섭의 고무옷 목덜미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단까지 끌고 갔다⁠. 계단에 이섭을 앉히고⁠, 제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사흘 물 금지⁠.⁠”

“⁠사흘이요⁠?⁠”

“⁠규칙 어긴 사람은 강사가 물에서 뺀다⁠. 사흘이야⁠. 보름에서 사흘 빼면 열이틀⁠.⁠”

이섭이 뭐라고 하려다 말았다⁠. 이섭의 발목에 끈이 감겼던 자리가 붉게 부어 있었다⁠. 도담은 이 자리를 손으로 감쌌다⁠. 뜨거웠다⁠. 물속에서는 그렇게 차가웠던 사람의 몸이었다⁠.

*

물에 못 드는 사흘 동안 이섭은 불턱에서 숨을 참았다⁠.

물 밖에서 참는 숨은 물속 숨과 다르다⁠. 물이 얼굴을 누르지 않으니 몸이 덜 놀라고⁠, 그래서 더 오래 참는다⁠. 해녀들은 이걸 다 알면서도 구경을 왔다⁠. 저마다 귤 한 상자씩이 걸려 있었다⁠.

고옥녀가 초시계를 들었다⁠. 손녀가 육지에서 사 보냈다는 분홍색 초시계였는데⁠, 단추가 세 개라는 것부터 못마땅해했다⁠.

“⁠이건 뭐냐⁠?⁠”

“⁠불 켜는 거예요⁠, 삼춘⁠.⁠”

“⁠낮에 불은 왜 켜⁠.⁠”

이섭이 숨을 들이쉬고 입을 닫았다⁠. 고옥녀가 단추를 눌렀다⁠.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시간은 가지 않았다⁠. 삼춘들이 이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고⁠, 이섭은 웃음을 참다가 숨을 뱉었다⁠.

두 번째에는 도담이 초시계를 가져가려 했지만 고옥녀가 놓지 않았다⁠. 초시계를 치마 주머니에 넣어 버리고 입으로 세기 시작했다⁠. 제주 옛말로 셌다⁠.

“⁠호나⁠, 둘⁠, 싯⁠, 늿⁠, 다섯⁠…⁠…⁠.⁠”

하나를 호나⁠, 셋을 싯⁠, 넷을 늿이라 했다⁠. 그런데 고옥녀의 셈은 열을 넘기자 느려졌다⁠. 열다섯에서 고옥녀는 귤을 하나 깠고⁠, 스물에서 귤 한 쪽을 입에 넣었고⁠, 스물다섯에서 씨를 뱉었다⁠. 이섭의 얼굴이 붉어지다가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서른⁠.⁠”

“⁠삼춘⁠, 지금 일 분 넘었수다⁠.⁠”

“⁠나 셈으로는 서른이여⁠.⁠”

이섭이 숨을 터뜨리며 돌담에 기대 쓰러졌다⁠. 해녀들이 박수를 쳤다⁠. 도담은 휴대폰을 보았다⁠. 일 분 이 초였다⁠. 물 밖 기록은 시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섭은 돌담에 기댄 채 한참 웃었다⁠. 고옥녀가 이섭의 이마에 귤껍질을 붙여 주었다⁠.

*

시험 날은 조금이었다⁠.

할망바당은 포구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얕은 바다였다⁠. 늙은 해녀들이 깊이 들지 않고도 소라를 딸 수 있게⁠, 젊은 해녀들은 들지 않고 남겨 두는 바다다⁠. 바닥까지 삼 미터⁠, 바위마다 감태가 짧게 자라 있었고 이 그늘에 소라가 붙어 있었다⁠.

해녀 스물둘이 바위에 앉아 지켜보았다⁠. 숙자가 초시계를 쥐고 맨 앞에 앉았다⁠. 고옥녀는 이 옆에서 귤 상자 열여섯 개를 어디에 쌓을지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도담은 물 위 테왁에서 이섭의 짝을 섰다⁠. 이섭이 바닥에 있는 동안 물 위에서 이섭의 공기 방울을 본다⁠. 방울이 끊기면 내려간다⁠. 이게 짝의 일이었다⁠.

이섭이 도담을 보았다⁠. 물안경 너머의 눈이 떨렸다⁠.

“⁠배로⁠.⁠”

도담이 말했다⁠. 이섭은 숨을 들이쉬었다⁠. 배가 부풀었다⁠. 테왁을 놓고 허리를 접어 머리부터 물에 꽂았다⁠. 이번에는 다리가 따라왔다⁠.

도담은 얼굴을 물에 대고 이섭을 보았다⁠. 이섭은 바닥에 닿아 바위 하나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감태가 이섭의 어깨를 쓸었다⁠. 십 초가 지나자 이섭의 등이 판판해졌고⁠, 이십 초쯤에 작은 공기 방울이 이섭의 입가에서 하나 올라왔다⁠. 삼십 초에 쥐치 한 마리가 이섭의 물안경 앞에 멈춰 섰다⁠. 납작한 몸에 입이 뾰족한 물고기였다⁠. 쥐치가 이섭의 물안경 유리를 입으로 쪼았다⁠.

이섭이 움찔했다⁠. 도담은 테왁 끈을 쥐었다⁠. 올라오면 끝이었다⁠.

이섭은 올라오지 않았다⁠. 손을 바위에서 떼지 않고⁠, 쥐치를 노려보았다⁠. 쥐치가 먼저 돌아섰다⁠.

삼십팔 초⁠, 사십 초를 넘기고 나서야 이섭이 바닥을 찼다⁠.

수면을 뚫고 나온 숨비소리는 여전히 주전자 끓는 소리였다⁠. 그래도 길었다⁠. 바위 위에서 숙자가 초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해녀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사십삼 초⁠.⁠”

고옥녀가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흔들었다⁠. 열여섯 명이 동시에 신음했다⁠. 이섭은 테왁에 매달린 채 도담을 보았다⁠.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입꼬리가 제 마음대로 올라갔다⁠.

숙자가 바위에서 내려와 망사리와 골갱이를 이섭에게 건넸다⁠. 골갱이는 바위틈의 소라를 긁어내는 갈고리다⁠. 해녀회가 수습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였다⁠. 숨비개에 남자 해녀가 생겼다⁠.

“⁠해남⁠.⁠”

숙자가 말했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렇게만 불렀다⁠. 그리고 돌아서며 덧붙였다⁠.

“⁠거래처 사람이믄⁠, 거래는 끝났지⁠?⁠”

이섭이 대답하기 전에 숙자는 바위를 넘어갔다⁠.

*

이날 오후 이섭은 소라 일곱 개를 땄다⁠. 수습의 첫 망사리였다⁠.

불턱에 다른 사람이 다 돌아간 뒤에도 두 사람은 불가에 남았다⁠. 장작이 거의 다 타서 불씨만 붉었다⁠. 도담은 이섭의 고무옷 모자를 벗겨 주었다⁠. 처음 입는 사람은 머리를 감싼 고무가 귀에 들러붙어 혼자 못 벗는다⁠. 모자가 벗겨지면서 이섭의 젖은 머리칼이 일어섰다⁠.

“⁠발목은⁠?⁠”

“⁠괜찮아요⁠.⁠”

이섭이 바지를 걷어 보였다⁠. 붓기가 빠지고 붉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 도담이 이 자국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었다⁠. 이섭이 숨을 멈췄다⁠. 물에 들 때처럼⁠, 배로 들이쉬고 멈췄다⁠.

불씨에서 연기가 한 줄 올라왔다⁠. 이섭의 얼굴이 가까웠다⁠. 소금 냄새와 활석 가루 냄새 사이로 귤껍질 냄새가 났다⁠. 아까 고옥녀가 붙여 준 껍질 자국이 이마에 아직 남아 있었다⁠. 도담은 이 자국을 보다가⁠, 이 아래 눈을 보다가⁠, 입술을 보았다⁠. 이섭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멸치가 불 쬐믄 마른 멸치 된다⁠.⁠”

고옥녀가 돌담 입구에 서 있었다⁠. 귤 상자 하나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고옥녀가 들어오는 속도가 빨랐다⁠. 귤 상자를 불가에 내려놓고⁠, 귤 하나를 꺼내 이섭의 무릎에 던졌다⁠.

“⁠첫 상자다⁠. 니가 벌어 준 거니 니가 먼저 먹어라⁠.⁠”

*

해 지기 전에 도담은 이섭을 위판장에 데려갔다⁠. 해녀가 딴 소라와 성게를 수협 직원이 저울에 달아 값을 매기는 곳이다⁠. 시멘트 바닥에 바닷물이 흥건했고⁠, 플라스틱 바구니마다 해녀들 이름표 대신 고무줄로 묶은 색 끈이 매여 있었다⁠. 이섭의 망사리에는 아직 색 끈이 없었다⁠. 도담이 제 노란 끈 한 토막을 잘라 묶어 주었다⁠.

수협 직원이 소라 일곱 개를 저울에 쏟았다⁠.

“⁠천백 그램⁠. 오천오백 원⁠.⁠”

이섭은 이 숫자를 두 번 따라 말했다⁠. 서울에서 천이백만 원짜리 성과급을 받았다는 남자가 오천오백 원에 귀까지 빨개졌다⁠. 직원이 건넨 영수증을 접지도 않고 손바닥에 펴 들고 있었다⁠.

“⁠주 대리⁠, 첫 월급이네⁠.⁠”

위판장 입구에 피경칠이 서 있었다⁠. 흰 운동화가 바닷물 고인 자리를 피해 시멘트 턱 위에만 올라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사님⁠, 오늘 밤 해녀회장님께 다 말씀드릴 겁니다⁠. 제가 그린 거⁠.⁠”

이섭이 먼저 말했다⁠. 도담은 이섭의 옆얼굴을 보았다⁠. 지퍼를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그래⁠? 그거 좋지⁠. 다만 주 대리⁠, 말이란 건 순서가 중요해⁠. 먼저 하는 사람 말이 사실이 되고⁠, 나중에 하는 사람 말은 변명이 되거든⁠.⁠”

“⁠무슨 말씀입니까⁠?⁠”

“⁠잔치에서 보자고⁠. 이장님 환갑인데 빠지면 섭섭하지⁠.⁠”

피경칠은 도담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돌아섰다⁠. 도담은 피경칠을 쫓아가 팔을 잡으려다 바닥의 물에 슬리퍼가 미끄러졌다⁠. 몸을 바로 세웠을 때 흰 운동화는 이미 위판장 앞 주차장을 건너가고 있었다⁠.

“⁠지금 가자⁠. 잔치 전에⁠. 어머니한테⁠.⁠”

도담이 말했다⁠. 그러나 탈의장 이층 해녀회 사무실은 잠겨 있었고⁠, 숙자는 이미 회관에 가서 몸국 솥 앞에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 백 명이 국그릇을 들고 줄을 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

이장 문명보의 환갑잔치는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마당에 돼지 한 마리가 삶아졌고⁠, 큰 솥에는 몸국이 끓었다⁠. 돼지 뼈 우린 국물에 모자반이라는 바닷말을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이는 제주 잔치 국이었다⁠. 상마다 파랑도개발이라고 찍힌 작은 생수병이 올라와 있었다⁠. 돼지도 국도 생수도 다 시행사가 냈다는 소문이 국보다 먼저 돌았다⁠.

이섭은 오지 않으려 했다⁠. 도담이 데려왔다⁠. 수습 해남이 된 날이었고⁠, 마을 사람들 앞에 얼굴을 보이는 게 맞았다⁠. 그리고 이섭은 잔치가 끝나면 총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해녀회장에게 도면 이야기를 따로 하겠다고 했다⁠.

피경칠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장님 환갑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건배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는 이 마을에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관 앞쪽 흰 천에 빛이 들어왔다⁠. 별채 바닥에 펼쳐졌던 이 도면이었다⁠. 큰여 위의 네모 마흔 개⁠, 연필 글씨⁠, 그리고 오른쪽 아래가 크게 확대되었다⁠. 설계 담당 주이섭⁠.

“⁠이 바다에 저희 리조트를 그린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숨비개 해녀학교 수강생 주이섭 씨⁠, 오늘 수습 해녀가 되셨다고요⁠. 축하드립니다⁠. 이분은 이 설계로 저희 회사에서 성과급 천이백만 원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와 연락하고⁠, 지난주엔 방파제에서 이 도면을 직접 받아 가셨습니다⁠.⁠”

몸국 숟가락들이 멈췄다⁠. 이섭이 일어섰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

“⁠그리고 양도담 강사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날 밤 별채에 들어가시는 걸 저희 직원이 봤습니다⁠.⁠”

피경칠이 겨레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겨레는 생수병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회관 맨 앞줄에서 현숙자가 일어섰다⁠. 이섭을 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딸을 보았다⁠. 회관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해녀회장의 입을 보았다⁠.

“⁠도담아⁠. 알았나⁠?⁠”

도담은 일어섰다⁠. 다리가 물속에서처럼 무거웠다⁠. 이섭이 도담을 보았다⁠. 피경칠도 보았다⁠. 어머니의 오른쪽 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알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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