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40자)

발파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도담은 도면을 밟은 발을 치우지 않았다⁠.

이섭이 문을 닫았다⁠. 별채의 형광등이 한 번 깜박였다가 다시 들어왔다⁠. 방에는 개지 않은 이불과 라면 봉지 둘⁠, 그리고 바닷물에 젖었다 마른 고무옷 냄새가 있었다⁠. 이섭이 무릎을 꿇고 앉아 도면의 다른 쪽 끝을 손으로 눌렀다⁠. 종이가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하게 펴졌다⁠.

“⁠파랑도개발 설계팀에서 두 해 있었어요⁠. 대리였고요⁠. 큰여는 제가 골랐어요⁠.⁠”

“⁠니가 골라⁠?⁠”

“⁠바다에 집을 띄우려면 닻을 바닥에 박아야 하는데⁠, 모래 바닥은 닻이 끌려요⁠. 통바위가 있어야 해요⁠. 해도를 다 뒤져서 이 근처에서 제일 넓고 단단한 바위 밭을 찾았는데 그게 여기였어요⁠.⁠”

이섭은 연필 글씨가 적힌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마흔 군데였다⁠. 빌라 한 채에 닻 하나⁠, 닻 하나에 바위 구멍 하나⁠.

“⁠구멍을 뚫으려면 바위를 깨야 해요⁠. 화약으로요⁠.⁠”

도담은 숨을 쉬었다⁠. 바닷속에서 숨이 모자랄 때처럼 가슴 위쪽에서만 숨이 걸렸다⁠. 큰여의 갈라진 바위 틈마다 전복이 붙어 있었다⁠. 할머니가 이 틈을 알았고⁠, 어머니가 알았고⁠, 도담이 알았다⁠.

“⁠사진은⁠?⁠”

“⁠조사업체가 보낸 사진이에요⁠. 처음 받았을 때 이상했어요⁠. 해도에는 큰여 바위가 동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사진 속 바위는 통바위였거든요⁠. 강사님이 회관에서 하신 말이랑 같은 걸 저도 봤어요⁠.⁠”

“⁠그래서⁠?⁠”

“⁠이사님께 여쭤봤어요⁠. 이사님이 바위는 다 바위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서명했어요⁠.⁠”

이섭은 도면 오른쪽 아래 인쇄된 제 이름을 엄지로 덮었다⁠. 덮는다고 지워지는 이름이 아니었다⁠.

“⁠설계가 통과되고 성과급이 나왔어요⁠. 천이백만 원⁠. 그 돈 받은 다음 주부터 지하철에서 숨이 안 쉬어졌어요⁠. 이 호선 타고 가다가 역삼역에서 내려서 계단에 앉아 있었어요⁠. 숨을 쉬려고 하면 어깨만 올라가고 배는 안 부풀었어요⁠.⁠”

도담은 이 말을 듣다가 웃음이 나올 뻔했다⁠. 어깨만 올라가는 숨⁠. 첫날 포구에서 십 초 만에 솟아오른 사람의 숨이 거기서 온 것이었다⁠.

“⁠그래서 사표 쓰고 여기 왔어⁠?⁠”

“⁠제가 지운 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어요⁠. 위에서 보면 바다는 다 파란색이에요⁠. 저는 파란색 위에 네모를 그렸어요⁠. 바닥에 뭐가 있는지는 한 번도 안 봤어요⁠.⁠”

“⁠피경칠은 아까 뭐래⁠?⁠”

“⁠복직시켜 준대요⁠. 이 도면 마무리하고⁠, 마을 분위기만 알려 달래요⁠. 안 한다고 했어요⁠.⁠”

“⁠근데 도면은 받았네⁠.⁠”

이섭이 대답하지 못했다⁠. 도담은 그제야 발을 치웠다⁠. 도면이 다시 저절로 말려 이섭의 무릎 앞에서 둥글게 굴렀다⁠.

해녀회에 말해야 했다⁠. 지금 이 길로 탈의장 이층에 올라가 어머니 앞에 이 종이를 내려놓으면 그만이었다⁠. 이섭은 이날로 짐을 쌀 것이고⁠, 피경칠은 다른 설계자를 구할 것이다⁠. 그리고 큰여에 들어갈 짝은 여전히 없을 것이었다⁠.

도담은 이섭의 손을 보았다⁠. 이 미터 바닥에서 둥근 돌을 쥐던 하얀 손이었다⁠.

“⁠니가 내 짝 해라⁠.⁠”

“⁠네⁠?⁠”

“⁠큰여에 같이 들어가⁠. 니가 지운 데를 니 눈으로 봐⁠. 그리고 총회 전에 니 입으로 해녀회에 말해⁠. 이 도면 니가 그렸다고⁠. 그때까진 나도 입 다문다⁠.⁠”

“⁠저 숨 이십육 초예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하루도 안 빼고 해⁠.⁠”

이섭이 도면통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담은 문을 열고 나왔다⁠. 돌담 밖으로 나서자 바닷바람이 고무옷 냄새를 걷어 갔다⁠. 제가 방금 한 일을 알았다⁠. 어머니에게 숨기는 일이었고⁠, 마을에 숨기는 일이었다⁠. 상군 하나 얻자고⁠.

*

이튿날 마을회관에서 피경칠이 도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장 문명보가 이 옆에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고 있었다⁠. 탁자 위에 파랑도 해녀학교라는 글씨가 박힌 작은 현수막 시안이 놓여 있었다⁠. 파도 무늬 위로 리조트 빌라가 하얗게 떠 있는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해녀학교 사정 들었습니다⁠. 고무옷이 낡고 테왁이 모자라고⁠, 강사님 수당은 반년째 밀렸다고요⁠. 저희가 다 대겠습니다⁠. 이름만 이렇게 바꿔 주시면 됩니다⁠. 나중에 리조트가 서면 수료생들은 저희 해녀 체험 프로그램에 우선 채용하고요⁠.⁠”

“⁠하여튼 간에 좋은 얘기잖아⁠. 마을 발전기금이 바닥이라 내년엔 학교 지원도 어렵고⁠.⁠”

이장이 커피를 도담 앞에 밀어 놓았다⁠. 도담은 컵을 들지 않았다⁠.

“⁠학교 이름에 리조트가 붙으믄⁠, 그 학교 나온 사람은 리조트 해녀우다⁠.⁠”

“⁠해녀는 해녀죠⁠.⁠”

“⁠아니우다⁠. 바당에서 물질허는 사람이 해녀고⁠, 유리창 앞에서 손님한테 손 흔드는 사람은 직원이우다⁠.⁠”

피경칠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홍삼 사탕 하나를 까서 제 입에 넣고⁠, 사탕이 이에 부딪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강사님⁠, 저는 학교를 살려 드리겠다는 겁니다⁠. 거절하시면 학교 문 닫는 건 저 때문이 아니라 강사님 때문입니다⁠.⁠”

“⁠문 안 닫습니다⁠.⁠”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도담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이장 앞에 내밀었다⁠. 도담의 통장 화면이었다⁠. 지난 두 해 동안 소라와 성게를 팔아 모은 돈이 거기 있었다⁠. 새 고무옷을 맞추려고 모아 둔 돈이었다⁠. 지금 입는 고무옷은 무릎이 닳아 물이 샜다⁠.

“⁠강사 수당 안 받쿠다⁠. 테왁은 제가 사고⁠. 마을 지원금은 이장님 맘대로 허십서⁠.⁠”

이장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피경칠이 시안을 둘둘 말아 겨드랑이에 끼웠다⁠. 이섭이 어제 도면통을 끼던 바로 이 자리였다⁠.

“⁠주 대리는 잘 지내죠⁠?⁠”

도담은 돌아보지 않고 회관을 나왔다⁠. 등 뒤에서 이장이 마을 지원금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소리가 들렸고⁠, 피경칠이 그건 천천히 하자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

해녀회 모임은 탈의장 이층의 작은 방에서 열렸다⁠. 해녀 스물아홉 가운데 스물둘이 왔고⁠, 방석이 모자라 삼춘 몇은 고무옷 담는 바구니를 뒤집어 깔고 앉았다⁠. 안건은 하나였다⁠. 올해 해녀학교 수료생을 수습으로 받을 것인가⁠. 수습은 해녀회가 받아들인 신참으로⁠, 할망바당에서 시작해 차츰 깊은 바다로 나간다⁠.

“⁠체육 선생은 받읍주⁠. 숨도 오십 초 넘고⁠.⁠”

“⁠신혼부부는 둘이 붙어 다니니까 짝 걱정은 없고⁠.⁠”

“⁠그 멸치는⁠?⁠”

방이 조용해졌다⁠. 해녀회장 현숙자가 오른쪽 귀를 방 가운데로 돌렸다⁠.

“⁠이 마을에 남자 해녀는 없었다⁠.⁠”

숙자가 말했다⁠. 짧은 말이었는데 방 안의 누구도 바로 받지 못했다⁠. 바다에서 일하는 남자는 배를 탔지 물에 들지 않았다⁠. 다른 마을에 해남이라고 불리는 남자 해녀가 몇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숨비개 바다에는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없었으믄 이제 있으믄 되주⁠.⁠”

고옥녀였다⁠. 고옥녀는 바구니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멸치도 그물엔 든다⁠. 그물에 들믄 고기여⁠.⁠”

“⁠삼춘⁠, 숨이 이십 초짜리우다⁠.⁠”

“⁠나 처음 물에 든 날은 숨이 오 초였다⁠. 물 먹고 울멍 올라왔다⁠. 우리 어멍이 나 귓방망이를 쳤주⁠.⁠”

삼춘들이 웃었다⁠. 숙자만 웃지 않았다⁠. 숙자는 성한 오른쪽 귀를 앞세워 비스듬히 도담을 보았다⁠.

“⁠니가 데려왔으니 니가 말해 봐라⁠. 그 멸치⁠, 받아야 허느냐⁠?⁠”

도담은 일어섰다⁠. 어제 별채에서 한 거래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이 방에 있는 누구도 이 거래를 몰랐다⁠. 어머니도 몰랐다⁠.

“⁠받아 줍서⁠. 조건을 걸고⁠.⁠”

“⁠무슨 조건⁠?⁠”

“⁠다음 조금까지 할망바당에서 숨 사십 초⁠. 못 넘으면 제가 서울로 돌려보내쿠다⁠.⁠”

숙자는 한참 도담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조금은 보름 뒤였다⁠. 이십육 초가 사십 초가 되려면 보름은 짧았다⁠.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내기가 붙었다⁠. 못 넘긴다는 편이 열여섯⁠, 넘긴다는 편이 고옥녀 하나였다⁠. 걸린 것은 귤 한 상자씩이었다⁠. 고옥녀는 귤 열여섯 상자를 따 먹게 생겼다며 손뼉을 쳤다⁠. 이 귤을 딸 사람이 이섭이라는 걸 도담은 말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숙자가 뒤에서 불렀다⁠. 탈의장 일층에는 젖은 고무옷들이 옷걸이에 줄지어 걸려 물을 떨구고 있었고⁠, 이 사이로 시멘트 바닥에 물 고인 자리가 여기저기 번들거렸다⁠. 숙자는 고무옷 하나를 손으로 짜며 딸을 보지 않고 물었다⁠.

“⁠그 멸치⁠, 피 이사가 알아보더라⁠. 겨레가 다 봤댄 허더라⁠. 무슨 사이냐⁠?⁠”

도담은 젖은 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발끝에 힘을 주었다⁠.

“⁠거래처 사람이랍디다⁠. 전 회사가 그 회사랑 일을 했댄⁠.⁠”

어제 이섭이 불턱에서 지퍼를 만지며 한 말을⁠, 오늘 도담이 어머니 앞에서 그대로 했다⁠. 제 손이 어디에 있는지 내려다보았다⁠. 고무옷 소매 끝을 쥐고 비틀고 있었다⁠.

숙자는 고무옷을 다 짜서 옷걸이에 걸었다⁠. 물방울이 이 끝에서 하나씩 떨어져 바닥의 고인 물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거래처믄 됐다⁠.⁠”

숙자가 말했다⁠. 됐다는 말이 도담에게는 믿는다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들어 두겠다는 말로 들렸다⁠.

*

사흘째 이섭의 숨은 삼십일 초에 멈춰 있었다⁠.

포구 안 물은 아침마다 조금씩 더 차가워졌다⁠. 사리가 다가오면 물살이 세지고 먼바다의 찬물이 밀려 들어왔다⁠. 이섭은 이 물에 얼굴을 박고 삼십 초쯤에서 매번 솟아올랐다⁠. 솟아오를 때마다 테왁을 바로 잡았지만 숨은 늘지 않았다⁠.

“⁠가슴에 힘 들어갔어⁠.⁠”

“⁠힘 뺐어요⁠.⁠”

“⁠아니⁠. 다시 엎드려⁠.⁠”

도담은 이섭의 옆으로 헤엄쳐 가 테왁 아래로 손을 넣었다⁠. 손바닥을 이섭의 명치에 댔다⁠. 고무옷 너머로 심장이 손바닥을 쳤다⁠. 빨랐다⁠.

“⁠내 손 밀어 봐⁠. 배로⁠.⁠”

이섭이 숨을 들이쉬자 도담의 손바닥이 아래로 밀렸다⁠. 도담은 손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얼굴을 물에 박았다⁠. 도담은 손바닥으로 셌다⁠. 심장이 한 번 칠 때마다 하나⁠. 처음에는 빨랐던 박동이 열을 넘기면서 느려졌다⁠. 스물을 넘기자 이섭의 등이 판판해졌다⁠. 서른을 넘겼다⁠. 서른다섯에서 이섭의 배가 도담의 손바닥 아래에서 한 번 떨렸고⁠, 올라왔다⁠.

“⁠삼십육 초⁠.⁠”

이섭이 숨을 몰아쉬며 도담을 보았다⁠. 물방울이 이섭의 입술 끝에 맺혀 있었다⁠. 도담은 아직 이섭의 명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이걸 알고 나서도 바로 떼지 못했다⁠.

“⁠사십 초 못 넘으면 저 가야죠⁠.⁠”

“⁠가기 전에 귤은 따고 가⁠. 옥녀 삼춘이 열여섯 상자 걸었어⁠.⁠”

이섭이 웃다가 바닷물을 먹었다⁠.

*

이날 밤 도담은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방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크게 났다⁠. 왼쪽 귀를 잃은 뒤로 숙자는 소리를 늘 크게 틀었다⁠. 도담은 마당에 나와 섰다가 포구 쪽으로 걸었다⁠. 열한 시가 넘은 포구에는 가로등 두 개만 켜져 있었다⁠. 사리를 앞둔 물이 방파제 안쪽까지 밀려 들어와 계단 세 칸을 잠그고 있었다⁠.

물 위에 테왁 하나가 떠 있었다⁠.

주황색 공이 가로등 빛을 받아 둥글게 빛났다⁠. 끈이 물 아래로 늘어져 있었고⁠, 그물주머니가 물에 반쯤 잠겨 있었다⁠. 그물 안에 둥근 돌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 미터 바닥에서 하얀 손이 집어 올린 이 돌이었다⁠.

테왁 옆에 아무도 없었다⁠.

도담은 슬리퍼를 벗었다⁠. 계단을 두 칸 뛰어 내려가며 물속을 보았다⁠. 검었다⁠. 가로등 빛이 수면에서 부서져 아래로는 한 뼘도 들어가지 않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배가 부풀었다⁠.

그리고 머리부터 물에 꽂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느린독자2026.10.26· 3화

    3화 제목이 발파인데, 소개에 나온 빌라 공사 때문이에요?

    • 신가랑작가2026.10.27

      소개 문장의 빌라와 이어진다고 보시면 돼요. 바닷속에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