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76자)

거래처 사람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이섭은 테왁 끈을 다시 잡는 데 세 번 헛손질을 했다⁠.

물이 가슴께에서 출렁였고⁠, 이섭이 허우적대는 동안 피경칠은 방파제 계단 위에서 흰 운동화 앞코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포구에 노을이 깔려 물빛이 붉었다⁠. 도담은 이섭이 끈을 손목에 감는 것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아는 사이우까⁠?⁠”

“⁠알다마다요⁠. 저희 회사 있던 친구입니다⁠. 사표는 제가 받았고요⁠.⁠”

피경칠이 이섭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사표를 받았다는 말을 할 때도 웃음의 크기가 같았다⁠.

“⁠주 대리⁠, 몸 좋아졌네⁠. 서울에서는 계단 세 층 오르면 숨이 찼잖아⁠.⁠”

“⁠이사님⁠, 저 이제 회사 사람 아닙니다⁠.⁠”

“⁠알지⁠. 그러니까 반갑다는 거지⁠.⁠”

도담은 겨레의 손에서 휴대폰을 받아 메모리 카드를 꽂았다⁠. 영상 마흔세 개가 떴다⁠. 이 가운데 불턱 위에서 찍은 것이 넷이었다⁠. 도담은 하나씩 열어 확인하고 하나씩 지웠다⁠. 마지막 영상에는 고옥녀가 팔을 뒤로 접는 장면이 찍혀 있었는데⁠, 소라가 날아와 화면이 하늘로 뒤집히는 데서 끝났다⁠. 겨레가 이걸 보고 웃음을 참다 코로 소리를 냈다⁠.

“⁠나머지는 가져가세요⁠.⁠”

“⁠감사합니다⁠, 강사님⁠.⁠”

피경칠은 카드를 받아 안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돌아서다가 한 번 더 이섭을 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한 번 까딱이고 갔다⁠.

*

“⁠전 회사가 그 회사랑 일을 했어요⁠. 저는 협력 업체 쪽이었고요⁠. 거래처 사람이에요⁠.⁠”

다음 날 아침 불턱에서 이섭이 말했다⁠. 도담이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꺼낸 말이었다⁠. 해녀학교에는 수강생의 지난 일을 묻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다⁠. 육지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를 두고 왔다⁠. 도담은 고개만 끄덕이고 장작을 불에 밀어 넣었다⁠.

이 말이 거짓인 것은 이섭의 손이 말해 주었다⁠. 거래처 사람이라고 할 때 이섭은 고무옷 지퍼 손잡이를 세 번 만지작거렸다⁠. 물에 들기 전 겁먹은 수강생들이 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이 고무옷이 거꾸로였다⁠.

남자 고무옷은 등에 지퍼가 있다⁠. 이섭의 지퍼는 가슴 한가운데에 있었다⁠. 앞뒤를 바꿔 입었으니 엉덩이 쪽이 배로 와 불룩했고⁠, 목둘레가 턱밑까지 올라와 고개를 숙일 수가 없었다⁠. 이섭은 이 꼴로 돌담에 등을 기대고 거래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해녀 삼춘들이 이섭을 가만두지 않았다⁠.

“⁠어디 보자⁠. 눈은 맑다⁠.⁠”

“⁠살은 없다⁠.⁠”

“⁠비늘이 하얘⁠. 햇볕 한 번 안 본 생선이여⁠.⁠”

“⁠등은 반듯허네⁠. 중품은 쳐 줘야 안 허크냐⁠?⁠”

“⁠배가 이추룩 튀어나왔는디 무슨 중품이라⁠.⁠”

“⁠배가 아니고 엉덩이여⁠, 거꾸로 입었잖아⁠.⁠”

불턱이 무너질 듯 웃음이 터졌다⁠. 위판장에서 생선 등급 매기듯 사람을 매기는 것은 불턱의 오래된 놀이였다⁠. 도담도 열아홉 살 처음 물에 들던 해 여기서 하품을 받았다⁠. 고옥녀가 마지막으로 이섭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국물용⁠.⁠”

이섭은 국물용이라는 판정을 받고도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목이 고무옷에 걸려 있었다⁠. 도담이 다가가 지퍼를 끝까지 내리고⁠, 이섭의 팔을 소매에서 빼 주었다⁠. 이섭의 맨어깨에 손이 닿았다⁠. 물에 들어가기도 전인데 살갗이 차가웠다⁠. 고무옷을 돌려 등을 이섭에게 대 주고 지퍼를 등줄기를 따라 올렸다⁠. 손등에 이섭의 등뼈가 하나씩 걸렸다⁠.

“⁠숨 쉬어 봐⁠.⁠”

이섭이 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어깨가 아니라 배가 부풀었다⁠.

“⁠이제 생선 같네⁠.⁠”

고옥녀가 말했다⁠. 이섭은 이 마을에 세 든 지 닷새째였고⁠, 이 집이 바로 고옥녀네 돌집 별채였다⁠. 세는 돈 대신 겨울에 귤을 따 주기로 했다고 했다⁠. 고옥녀가 귤밭 열한 그루를 하나하나 이름까지 대며 자랑하자 이섭이 정말로 받아 적을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포구 안 이 미터 바닥은 검은 모래와 둥근 돌이었다⁠. 도담은 연철을 이섭의 허리에 채워 주었다⁠. 납덩이를 꿴 허리띠로⁠, 몸이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게 해 준다⁠. 그리고 물에 드는 법을 보여 주었다⁠. 테왁을 놓고⁠, 허리를 접어 머리를 바닥으로 꽂고⁠, 다리를 하늘로 세워 이 무게로 내려간다⁠.

“⁠머리부터 가⁠. 다리는 따라와⁠.⁠”

“⁠다리가 안 따라오면요⁠?⁠”

“⁠그럼 너 혼자 거꾸로 서 있는 거지⁠. 그것도 볼만해⁠.⁠”

이섭의 첫 번째 시도는 다리가 따라오지 않았다⁠. 엉덩이가 물 위에 뜬 채 머리만 잠겼다가 버둥거리며 올라왔다⁠. 두 번째는 반쯤 내려가다 귀가 아프다며 돌아왔다⁠. 도담은 코를 막고 숨을 귀로 밀어 넣는 법을 가르쳤다⁠. 수압이 귀를 누를 때 그렇게 해서 안쪽 압력을 맞춘다⁠.

세 번째에 이섭은 바닥에 닿았다⁠.

도담은 물안경 너머로 이것을 보았다⁠. 이섭의 하얀 손바닥이 검은 모래에 닿아 모래가 조그맣게 피어올랐다⁠. 이섭은 둥근 돌 하나를 집었다⁠. 수강생은 바다에서 아무것도 따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지만 돌은 따는 게 아니었다⁠. 이섭이 돌을 쥐고 고개를 들어 수면을 보았다⁠. 빛이 그물처럼 흔들리는 수면이었다⁠. 도담은 이섭이 이 빛에 정신을 놓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섭은 다음 순간 다리를 차고 올라갔다⁠.

수면 위에서 숨비소리가 났다⁠. 물에서 올라온 해녀가 참았던 숨을 휘파람처럼 내뱉는 소리였다⁠. 이섭의 숨비소리는 휘파람이라기보다 주전자 끓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십육 초⁠.⁠”

이섭은 돌을 테왁 그물에 넣었다⁠. 버리라고 할까 하다가 도담은 말았다⁠.

“⁠바닥이 이렇게 생긴 줄 몰랐어요⁠. 늘 위에서만 봐서⁠.⁠”

“⁠위에서 언제 봤는데⁠?⁠”

이섭이 입을 다물었다⁠. 물방울이 이섭의 속눈썹 끝에 맺혀 있다가 떨어졌다⁠. 배 위에서 봤다고⁠, 관광 유람선 같은 거라고 말했다⁠. 숨비개 앞바다에는 유람선이 다니지 않았다⁠.

*

이 오후 도담은 문겨레가 제 집 대문을 나서는 것을 보았다⁠.

겨레는 파랑도개발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고⁠, 옆구리에 누런 봉투를 한 묶음 끼고 있었다⁠. 도담을 보자 봉투 묶음을 등 뒤로 돌렸다가⁠,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도로 앞으로 내놓았다⁠.

“⁠선금이에요⁠, 누나⁠. 오백만 원⁠. 총회 때 동의하시면 보상금에서 빼고⁠, 동의 안 하셔도 안 돌려받는 돈이에요⁠.⁠”

“⁠안 돌려받는 돈을 왜 줘⁠?⁠”

“⁠회사에서 마음이라고⁠.⁠”

“⁠마음을 봉투에 넣어⁠?⁠”

겨레는 대답 대신 다음 집으로 걸어갔다⁠. 이 등이 작년 봄에 처음 마을로 돌아왔을 때보다 훨씬 반듯했다⁠. 일자리가 생긴 사람의 등이었다⁠.

다음 집이 고옥녀네였다⁠. 도담은 담 너머로 따라가 보았다⁠. 고옥녀는 마당 평상에 앉아 오전에 딴 소라를 크기대로 고르고 있었다⁠. 겨레가 봉투를 내밀자 소라 묻은 손을 몸빼 바지에 닦고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지폐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한 장⁠, 두 장⁠. 열몇 장째에서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셌다⁠. 세 번째로 다시 세기 시작했을 때 겨레가 백 장이라고 말해 주었다⁠.

“⁠오만 원짜리가 백 장이믄⁠, 소라가 몇 관이냐⁠?⁠”

“⁠네⁠?⁠”

“⁠소라 한 관에 이만 원 받으믄⁠, 이거 소라 이백오십 관이여⁠. 내가 열 해 따야 허는 소라다⁠.⁠”

고옥녀는 지폐를 가지런히 모아 겨레의 손에 쥐여 주고⁠, 빈 봉투만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봉투는 귤 싸게 좋다⁠.⁠”

“⁠삼춘⁠, 이건 그냥 드리는 거예요⁠.⁠”

“⁠그냥 주는 건 바당이나 허는 일이여⁠. 니가 바당이냐⁠?⁠”

겨레가 지폐를 든 채 서 있자 고옥녀가 소라 하나를 집어 겨레의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었다⁠.

“⁠가서 니 아방 갖다줘라⁠. 배 빚이 몇 천이라더라⁠. 소라 하나로는 안 되켜마는⁠.⁠”

겨레의 얼굴이 굳었다⁠. 이장이 어선 빚을 졌다는 말은 도담도 처음 들었다⁠. 겨레는 대꾸하지 않고 대문을 나갔고⁠, 주머니 속 소라가 걸을 때마다 이장의 허벅지를 쳤다⁠.

밥상에는 자리돔 조림과 톳무침과 이 봉투가 함께 올라와 있었다⁠.

현숙자는 봉투를 치우지 않고 밥을 펐다⁠. 도담이 신발을 벗고 들어와 상 앞에 앉을 때까지 숙자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도담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받았수까⁠?⁠”

“⁠받았다⁠.⁠”

“⁠돌려줍서⁠.⁠”

“⁠안 돌려도 된다더라⁠.⁠”

“⁠그러니까 돌려줍서⁠. 안 돌려도 되는 돈이 제일 비싼 돈이우다⁠.⁠”

숙자가 자리돔 하나의 가시를 발라 도담의 밥 위에 얹었다⁠. 손끝이 거칠었다⁠. 마흔 해 동안 빗창을 쥔 손이었다⁠. 빗창은 바위에 붙은 전복을 떼어 내는 납작한 쇠막대인데⁠, 숙자의 빗창은 손잡이가 닳아 손가락 자국대로 패어 있었다⁠.

“⁠해녀가 스물아홉이다⁠. 그중에 일흔 넘은 게 열아홉이고⁠. 오 년 지나면 할망바당에 누가 드느니⁠? 십 년 지나면 니 혼자 남는다⁠. 니 혼자 큰여 들 거냐⁠?⁠”

“⁠짝 구허쿠다⁠.⁠”

“⁠누구⁠? 그 육지 멸치⁠?⁠”

불턱에서 오간 말은 이날 저녁이면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도담은 대답하지 못했다⁠. 숙자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딸을 보았다⁠. 오른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는 버릇 때문에 숙자는 늘 사람을 비스듬히 보았다⁠.

“⁠오백이믄 니 고무옷 새로 맞추고도 남는다⁠.⁠”

“⁠고무옷 안 맞추쿠다⁠.⁠”

도담은 일어서서 어머니의 왼쪽으로 갔다⁠. 그쪽에 대고 말했다⁠. 이 말은 숙자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었고⁠, 도담은 이걸 알고 그쪽으로 갔다⁠.

“⁠큰여 팔믄 할망이 어디로 갑니까⁠?⁠”

숙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얼굴로 숟가락을 들었다⁠.

*

저녁 바람이 방파제에 부딪혀 물보라를 올렸다⁠. 도담은 드론 프로펠러 조각을 겨레에게 돌려주려고 방파제를 따라 걷다가⁠, 끝의 빨간 등대 밑에서 두 사람을 보았다⁠.

피경칠과 이섭이었다⁠.

바람 때문에 말은 들리지 않았다⁠. 피경칠이 검은 원통 하나를 내밀었다⁠. 도면을 말아 넣어 다니는 통이었다⁠. 이섭은 받지 않았다⁠.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고개를 저었다⁠. 피경칠은 통을 이섭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주고⁠,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 흰 운동화로 젖은 방파제를 조심조심 밟으며 돌아왔다⁠. 도담 옆을 지나칠 때 홍삼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도담은 받지 않았다⁠.

이섭은 통을 겨드랑이에 낀 채 한참 바다를 보고 서 있었다⁠. 이 방향에 큰여가 있었다⁠. 물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

고옥녀네 돌집 별채는 방 한 칸에 부엌 반 칸이었다⁠. 도담이 문을 두드렸을 때 이섭은 문을 반만 열었다⁠. 이 틈으로 방바닥이 보였다⁠. 원통 뚜껑이 열려 있었고⁠, 종이가 반쯤 말린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수경 두고 갔더라⁠.⁠”

도담은 불턱에서 주워 온 물안경을 내밀었다⁠. 이섭이 받으려고 문을 더 열었고⁠, 이 틈에 도담은 방으로 들어섰다⁠. 막기 전에 종이 끝을 밟아 펼쳤다⁠.

마을 앞바다였다⁠. 포구와 할망바당의 등고선이 있었고⁠, 이 너머로 갈라진 바위 밭이 그려져 있었다⁠. 동쪽으로 갈라진 바위⁠, 큰여였다⁠. 이 위에 네모 마흔 개가 줄 맞춰 떠 있었다⁠. 네모마다 가는 선이 바닥으로 내려가 바위에 박혀 있었고⁠, 이 선이 바위와 만나는 자리마다 연필로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큰여 암반 발파⁠.

종이 오른쪽 아래에 설계 담당자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도담은 이 이름을 읽었지만 다시 읽었다⁠. 연필 글씨의 획이 이섭이 불턱에서 거래처라고 말할 때 만지던 지퍼 손잡이처럼 끝이 조금씩 떨려 있었다⁠.

“⁠이거 누가 그렸어⁠?⁠”

이섭은 문고리를 잡은 채 서 있었다⁠. 바깥에서 파도가 돌담을 치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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