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09자)
십 초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양도담은 일곱 개의 테왁 가운데 하나가 뒤집혀 있는 것을 보았다.
사월 첫 조금, 숨비개 포구 안의 물은 허리까지 왔다. 물살이 가장 순한 날이라 방파제 안쪽은 거울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바닥의 검은 현무암 사이로 미역 줄기가 느리게 누웠다 일어났다. 주황색 스티로폼 공에 그물주머니를 단 테왁 일곱 개가 동그랗게 떠 있었다. 수강생 일곱이 이 테왁 끈을 하나씩 쥐고 얼굴을 물에 박고 있었는데, 맨 끝의 테왁만 그물주머니가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도담은 소리 내어 세지 않았다. 입 속으로 셌다. 해녀학교 첫날의 숨 참기는 기록을 재려는 게 아니라 누가 물을 무서워하는지 보려는 시험이었다. 은퇴한 체육 교사는 등이 판판했고, 신혼부부는 물속에서도 손을 잡고 있었다. 맨 끝의 남자만 어깨가 귀까지 올라붙어 있었다.
열을 세었을 때 이 남자가 솟아올랐다.
솟아오르면서 테왁을 끌어안았는데, 거꾸로 뒤집힌 테왁이라 그물주머니가 이섭의 얼굴을 덮었다. 남자는 그물에 코가 낀 채로 숨을 들이켰고, 들이켠 숨에 바닷물 반 모금이 섞였고, 다음은 기침이었다. 체육 교사가 고개를 들었다가 웃음을 참느라 다시 물에 얼굴을 박았다.
“주이섭 씨.”
“네, 네, 강사님.”
“십 초.”
도담은 이섭의 손에서 테왁을 빼앗아 바로 돌려 놓았다. 그물주머니가 물 아래로, 둥근 공이 물 위로. 그리고 이섭의 손을 끈에 다시 감아 주었다. 손가락이 차가웠고 떨렸다. 서울 사람 손이었다. 굳은살 하나 없이 하얗고, 손톱 끝이 반듯하게 깎여 있었다.
“올라오면 제 테왁부터 잡는다. 거꾸로든 바로든 일단 잡는 건 잘했어. 근데 바로 잡아.”
“그게, 물속에서는 위아래가…….”
“위아래 몰라도 돼. 숨 쉬는 쪽이 위야.”
체육 교사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신혼부부가 따라 웃었다. 이섭은 같이 웃지 않았다. 테왁을 두 팔로 안고 있었는데, 테왁을 안은 품이 꼭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붙든 꼴이었다. 도담은 이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서른이라는데 눈 밑이 검었다. 잠을 못 잔 지 오래된 얼굴이었다.
도담은 일곱 사람을 둘러보고 말했다. 오늘 배울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다만 하나도 어기면 안 된다고.
“물에는 혼자 안 들어가. 바다에 들 때는 짝이 있어야 돼. 올라오면 제 테왁부터 잡고. 물질은 해녀회가 물때 보고 정한 날만 해. 정하지 않은 날엔 할망도 손녀도 아무도 바다에 안 들어.”
“물때가 정확히 뭡니까?”
체육 교사가 물었다.
“달 따라 물이 들고 나는 때요. 물살이 제일 센 날을 사리, 제일 순한 날을 조금이라 해요. 오늘이 조금이고요. 깊은 데는 조금 무렵에만 들어요.”
도담은 테왁 하나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덧붙였다.
“남의 테왁엔 손대지 마. 테왁은 그 사람 숨이야. 테왁에 손대는 사람은 바당 사람 아니라고, 할망들은 그렇게 말해. 바당은 바다야.”
이섭이 제 테왁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거꾸로 안고 올라온 테왁이었다. 마지막 규칙은 도담이 이섭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욕심에 숨 넘기지 마. 바닥에서 숨이 모자라면 손에 쥔 거 놓고 올라와. 물속에서 숨을 들이켜는 걸 우리는 물숨이라고 해. 물숨 먹으면 안 올라와.”
이섭이 테왁을 더 꽉 안았다.
*
불턱은 포구에서 백 걸음 떨어진 바위 언덕 밑에 있었다. 현무암을 어른 키만큼 둥글게 쌓아 바람을 막고, 가운데 장작불을 피워 물에서 나온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몸을 녹이던 옛 탈의장이다. 지금은 마을에 보일러 돌아가는 새 탈의장이 따로 있지만, 해녀학교 수업은 여기서 시작하고 여기서 끝났다. 장작 연기에 젖은 고무옷 냄새와 활석 가루 냄새가 섞여 돌담 안에 고여 있었다.
할망바당에서 소라를 따고 올라온 해녀 삼춘들이 불가에 둘러앉아 있었다. 삼춘은 이 섬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윗사람을 남녀 가리지 않고 부르는 말이다. 이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쭈글쭈글한 사람이 고옥녀였다. 여든이었고, 아직 할망바당에 들었고, 고무옷 지퍼를 혼자 올리지 못하면서 남이 올려 주려 하면 손등을 때렸다.
수강생들이 줄지어 불턱에 들어서자 고옥녀가 맨 끝의 이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봐라. 육지 멸치 올라왐신게.”
삼춘들이 한꺼번에 웃었다. 이섭은 웃음이 무슨 뜻인지 몰라 도담을 보았다.
“육지에서 온 멸치가 올라온다는 말이야.”
“아, 제가 좀 말라서…….”
“아니. 멸치는 십 초면 죽어.”
고옥녀가 말하고는 귤 하나를 까서 반을 이섭에게 내밀었다. 이섭은 이 귤을 받으려고 손을 뻗다가 고무옷 소매가 팔꿈치에 걸려 팔이 안 펴지는 것을 알았다. 고옥녀가 귤을 이섭의 입에 그대로 밀어 넣었다.
이때 머리 위에서 벌 떼 같은 소리가 났다.
검은 드론 한 대가 불턱 돌담 바로 위에 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렌즈가 불가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불가에는 고무옷 윗도리를 허리까지 벗어 내린 삼춘 셋이 등을 말리고 있었다. 삼춘 하나가 수건으로 가슴을 덮으며 소리를 질렀다.
도담이 돌담 위로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드론은 약을 올리듯 한 뼘쯤 더 올라갔다.
고옥녀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망사리에 손을 넣어 주먹만 한 소라 하나를 꺼냈고, 팔꿈치를 한 번 뒤로 접었다가 던졌다. 소라가 날개 하나를 쳤다. 드론이 기우뚱하더니 돌담 너머 얕은 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육십 년 소라 던진 팔이여.”
고옥녀가 말했다. 삼춘들이 박수를 쳤다.
도담은 돌담을 돌아 나가 무릎까지 오는 물에서 드론을 건졌다. 프로펠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몸통 옆의 작은 덮개를 엄지로 밀어 열고 메모리 카드를 뺐다. 카드는 손톱보다 작았고, 물에 젖어 미끈거렸다.
언덕 위에서 젊은 남자 하나가 조종기를 들고 뛰어 내려왔다. 이장 아들 문겨레였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 작년에 내려왔다는 말만 들었는데, 지금 겨레는 파랑도개발이라는 글자가 박힌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누나, 그거 회사 거라서요. 홍보 영상 찍는 건데.”
“불턱을 홍보해?”
“아니, 바다 전경을 찍다가 좀 내려온 거지.”
“불턱에는 물질하는 사람만 들어와. 하늘로도 안 돼.”
도담은 드론 몸통을 겨레의 가슴에 안기고 카드는 제 고무옷 손목 안쪽에 밀어 넣었다. 겨레가 손을 내밀다가, 돌담 안에서 고옥녀가 두 번째 소라를 꺼내 드는 것을 보고 손을 거두었다.
*
마을회관 바닥에는 방석이 마흔 개 깔려 있었고, 앞쪽 벽에 흰 천이 걸려 있었다. 이장 문명보가 이 앞에서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오후 세 시였고, 해녀들은 물에서 나온 몸이라 누가 묻지 않아도 졸렸다.
“하여튼 간에, 오늘은 들어만 보시라는 거고. 결정은 나중에 다 같이 하는 거고.”
흰 천에 빛이 들어왔다. 마을 앞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이었다. 포구가 있고, 할망바당의 얕은 물빛이 있고, 이 너머로 짙어지는 바다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하얀 선이 그려져 있었다. 큰여였다. 물에 잠긴 큰 바위 밭을 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여는 물 밑에 숨은 바위를 이르는 말이다.
하얀 선 안쪽에 작은 사각형 마흔 개가 떠 있었다.
“파랑도개발에서 온 피경칠입니다.”
연단에 선 남자는 마흔다섯쯤 되어 보였다. 회색 정장 아래 흰 운동화를 신었는데, 포구 흙길을 걸어왔을 텐데도 운동화 코가 새것처럼 하얬다. 이섭은 말을 시작하기 전에 주머니에서 홍삼 사탕을 한 줌 꺼내 앞줄 할머니들에게 돌렸다.
“파랑도 해상리조트입니다. 큰여 위에 바다에 뜨는 빌라 마흔 채를 짓고, 그 아래 바닷속에 식당을 둡니다. 손님은 식당 유리창으로 바닷속을 보며 밥을 먹게 됩니다.”
사진이 바뀌었다. 하얀 바다 밑이었다. 바위마다 흰 석회 껍데기가 눌어붙어 있었고, 해초 한 가닥 없이 성게 껍데기만 굴러다녔다. 바다가 사막처럼 하얗게 굳는 것을 갯녹음이라 한다고 피경칠이 말했다. 바닷물이 더워지면서 해초가 죽고 이 자리를 석회가 덮는다고.
“보시다시피 큰여는 이미 죽은 바다입니다. 죽은 바다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바다를 해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살리는 일이죠. 어촌계원 한 분에 보상금 일억을 드리겠습니다. 어촌계 총회는 팔월 그믐으로 이장님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동의는 삼분의 이, 계원 마흔두 명 가운데 스물여덟 명이면 됩니다.”
일억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방석 위에서 숨소리가 바뀌었다. 도담은 이것을 귀로 들었다. 누군가 침을 삼켰고 누군가 무릎을 고쳐 앉았다. 맨 앞줄의 어머니 현숙자는 오른쪽 귀를 연단 쪽으로 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왼쪽 귀는 십 년 전 큰여에서 바다에 내주고 왔다.
도담이 일어섰다.
“그 사진, 큰여 아니우다.”
피경칠이 고개를 돌렸다. 웃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아십니까?”
“큰여 바위는 동쪽으로 갈라져 있수다. 사진 속 바위는 통바위고.”
“사진은 전문 조사업체가 찍었습니다. 양도담 씨라고 하셨죠? 해녀학교 강사님. 그럼 이렇게 하시죠. 큰여가 살아 있다면 큰여 전복을 하나 보여 주십시오. 지난 세 해 동안 위판장에 큰여 전복이 한 개라도 올라왔습니까?”
회관이 조용해졌다.
큰여는 바닥이 십오 미터였다. 해녀 중에서도 가장 깊이 드는 상군만 들 수 있었고, 이것도 상군 둘이 짝을 지어 조금 무렵에만 들었다. 한 사람이 바닥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물 위 테왁에 매달려 숨을 고르며 지켜봐야 했다. 숨비개에 상군은 둘 남아 있었다. 도담, 그리고 왼쪽 귀를 잃은 뒤로 큰여에 들지 않는 현숙자.
세 해 동안 도담에게는 짝이 없었다.
“총회 전에 따 오쿠다.”
도담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야 혀끝에 쇠 맛이 돌았다. 피경칠은 웃음을 거두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강사님. 아까 불턱에서 가져가신 저희 메모리 카드는 돌려주셔야 합니다. 회사 재산이라.”
“불턱 찍은 거 지우면 돌려드릴게요. 삼춘들 옷 벗은 거 찍혀 있수다.”
“지우겠습니다.”
“제 눈앞에서.”
피경칠이 잠깐 웃음을 멈췄다가, 다시 웃었다. 앞줄에서 어머니가 오른쪽으로만 고개를 돌려 도담을 보았다. 이 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도담은 이 눈이 무엇을 묻는지 알았다. 짝도 없이 누구랑 들어가려고.
*
해 질 무렵 도담은 포구 안 얕은 물에 이섭을 다시 세워 두었다. 보충 수업이었다. 해녀회가 정한 물때 안이었고, 도담이 물 밖 방파제 계단에 앉아 짝으로 지켜보았으니 규칙도 어기지 않았다.
“숨 들이쉴 때 어깨 올리지 마. 배로 쉬어.”
“배로요?”
“배가 부풀어야 돼. 어깨가 올라가면 숨이 목에서 멈춰.”
이섭이 배를 부풀리려다 어깨를 올렸고, 어깨를 내리려다 숨을 내쉬어 버렸다. 테왁 위에 엎드린 채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지친 얼굴에 웃음이 붙으니 나이가 서른보다 어려 보였다.
“강사님은 몇 초 참으세요?”
“일 분 오십 초.”
“그럼 저는 아직 일 분 사십 초 남았네요.”
“일 분 사십 초 남은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멸치야.”
이섭이 얼굴을 물에 박았다. 도담은 입 속으로 세었다. 열하나, 열둘, 열셋. 이섭의 등이 처음으로 판판해졌다. 열여섯에서 솟아올랐고, 이번에는 테왁을 바로 잡았다.
“십육 초.”
이섭이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쥐었다. 도담이 뭐라고 하려는데 방파제 위로 발소리가 내려왔다. 흰 운동화였다. 피경칠이 겨레를 데리고 와 있었다. 겨레의 품에는 프로펠러가 부러진 드론이 안겨 있었다.
“강사님, 카드 받으러 왔습니다. 눈앞에서 지우라고 하셔서요.”
도담이 고무옷 손목에서 카드를 꺼내려는 순간, 피경칠의 눈이 이 사람을 지나 물속의 남자에게 멎었다. 웃음이 그대로 얼굴에 붙은 채 굳었다.
“주이섭 대리?”
물속에서 이섭이 테왁 끈을 놓쳤다.
“자네가 왜 여기서 고무옷을 입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