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554자)

일 분 사십 초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경찰서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반이었다⁠.

출석 요구 문자는 총회 사흘 뒤에 왔다⁠. 도담과 이섭이 같은 날 같은 시각이었다⁠. 두 사람은 마을 정류장에서 첫차를 탔다⁠. 이섭은 서울에서 입던 셔츠를 다려 입었고⁠, 도담은 하나뿐인 원피스를 입었다⁠. 고무옷을 벗은 도담을 이섭은 처음 보는 것처럼 보았다⁠. 버스가 해안 도로를 도는 동안 창밖으로 바다가 따라왔다⁠. 큰여 쪽은 보이지 않았다⁠.

조사실은 좁았고⁠, 형광등이 한쪽만 들어왔다⁠. 도담의 사건을 맡은 형사는 마흔쯤 된 남자였는데⁠, 진술서를 펴기 전에 도담의 손을 먼저 보았다⁠.

“⁠어머님이 해녀세요⁠?⁠”

“⁠예⁠. 해녀회장이우다⁠.⁠”

“⁠저희 어머니도 해녀셨어요⁠. 서쪽 마을에서⁠.⁠”

형사는 헛기침을 하고 진술서로 눈을 돌렸다⁠. 드론 손괴⁠, 메모리 카드 탈취⁠, 조사선 앞 고성⁠. 형사가 하나씩 읽었다⁠.

“⁠드론은 어떻게 떨어뜨리셨어요⁠?⁠”

“⁠저는 안 떨어뜨렸수다⁠. 옥녀 삼춘이 소라 던졌수다⁠.⁠”

“⁠옥녀 삼춘이 누구신데요⁠?⁠”

“⁠여든 살 해녀우다⁠.⁠”

형사의 펜이 멈췄다⁠.

“⁠여든 살 할머니가 소라를 던져서 드론을 떨어뜨렸다고요⁠?⁠”

“⁠육십 년 소라 던진 팔이랜 헙디다⁠.⁠”

형사가 웃음을 참느라 펜 끝으로 이마를 긁었다⁠. 형사는 진술서에 무언가를 오래 적고 나서⁠, 메모리 카드는 왜 가져가셨냐고 물었다⁠. 도담은 불턱에서 옷을 벗고 있던 삼춘들 이야기를 했다⁠. 형사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형사는 카드 속 영상을 피경칠 눈앞에서 지웠다는 대목에서 펜을 내려놓았다⁠.

“⁠그 영상⁠, 회사가 지운 걸 확인했답니까⁠?⁠”

“⁠제가 지웠수다⁠. 지울 때 이사님이 보고 있었고요⁠.⁠”

옆 조사실에서 이섭이 한 시간 넘게 나오지 않았다⁠. 도담은 복도 의자에서 기다렸다⁠. 나왔을 때 셔츠 등판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도면 어디서 났냐고 물어서요⁠. 방파제에서 이사님이 주셨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증인이 있냐고⁠.⁠”

“⁠있어⁠.⁠”

도담은 일어서서 이섭이 나온 조사실 문을 두드렸다⁠. 이날 저녁 방파제 끝 빨간 등대 밑에서 피경칠이 검은 원통을 이섭의 겨드랑이에 끼워 주는 것을 보았다고⁠, 바람 때문에 말은 못 들었지만 이섭이 받지 않으려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까지 보았다고 말했다⁠.

*

복도 끝에 흰 운동화가 서 있었다⁠.

피경칠은 고소인 진술을 하러 와 있었다⁠. 정장 차림이었고⁠,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한 잔을 이섭에게 내밀었다⁠. 이섭은 받지 않았다⁠. 피경칠은 이 잔을 복도 의자 위에 내려놓았다⁠.

“⁠주 대리⁠, 오늘 한 번만 더 묻겠네⁠. 마지막이야⁠.⁠”

“⁠말씀하세요⁠.⁠”

“⁠다음 주에 도청에서 거점지구 청문이 열려⁠. 설계자가 나와서 한마디만 하면 돼⁠. 큰여는 설계 당시부터 생태 가치가 낮았다⁠. 그거 하나⁠. 그럼 고소 둘 다 거두지⁠. 주 대리 것도⁠, 도담 씨 것도⁠. 그리고 팀장으로 복직이야⁠. 성과급은 전에 받은 거 두 배⁠.⁠”

이섭은 의자 위의 커피를 보았다⁠. 김이 오르고 있었다⁠.

“⁠이사님⁠, 그 설계 할 때 저는 바닥을 한 번도 안 봤어요⁠. 위에서 찍은 사진만 봤어요⁠. 파란색 위에 네모를 그렸어요⁠.⁠”

“⁠그래서⁠?⁠”

“⁠이제 봤어요⁠. 십 미터까지요⁠. 가장자리는 하얬어요⁠. 그 너머는 아직 못 봤어요⁠. 못 본 걸 죽었다고는 못 해요⁠.⁠”

“⁠주 대리⁠, 지금 그 말 한마디로 버리는 게 뭔지 알지⁠? 일억이야⁠. 고소 둘에⁠, 복직에⁠, 성과급에⁠.⁠”

“⁠알아요⁠. 근데 이사님⁠, 제가 그린 건 네모였어요⁠. 바다는 안 그렸어요⁠.⁠”

피경칠이 이 사람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도담에게로 눈을 돌렸다⁠.

“⁠방파제 얘기 하셨다면서요⁠? 그건 주 대리가 회사에 두고 간 짐을 돌려준 겁니다⁠. 짐 돌려준 걸로 영업비밀이 안 되는 건 아니죠⁠.⁠”

“⁠그럼 그 짐에 왜 마무리는 자네가 하라고 허셨수까⁠?⁠”

도담이 말했다⁠. 이날 방파제에서 바람 때문에 못 들은 말이었다⁠. 이섭이 별채에서 털어놓을 때 들은 말이었다⁠. 피경칠의 웃음이 반 박자 늦게 돌아왔다⁠.

“⁠형사님께 그것도 말씀하시죠⁠.⁠”

피경칠은 커피를 들고 조사실로 들어갔다⁠. 의자 위의 다른 한 잔은 그대로 남아 식어 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섭은 세 정류장을 못 가 잠들었다⁠. 고개가 창 쪽으로 기울었다가⁠, 버스가 커브를 돌 때 도담의 어깨로 넘어왔다⁠. 도담은 어깨를 빼지 않았다⁠. 셔츠 깃에서 경찰서 복도의 소독약 냄새가 났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할머니 하나가 이 꼴을 한참 보다가 말을 걸었다⁠. 망사리를 무릎에 얹은 걸 보니 다른 마을 해녀였다⁠.

“⁠새신랑이냐⁠?⁠”

“⁠아니우다⁠. 짝이우다⁠.⁠”

“⁠짝이믄 새신랑이주⁠.⁠”

“⁠바당 짝이우다⁠.⁠”

“⁠바당 짝이 더 무섭다⁠. 물속에서 목숨을 서로 쥐는 건디⁠. 새신랑은 이혼이라도 하주⁠.⁠”

할머니가 혀를 차며 귤 하나를 건넸다⁠. 도담은 이 귤을 받아 잠든 남자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버스가 다시 커브를 돌았고⁠, 귤이 굴러떨어지지 않게 이섭의 손을 이 위에 얹어 주었다⁠. 이섭은 깨지 않고 귤을 쥐었다⁠.

*

이틀 뒤 숙자는 포구에 해녀들을 불러 모았다⁠.

중군 바당 끝⁠, 큰여로 이어지는 비탈 위에 해녀 배가 떴다⁠. 배 위에 숙자와 선장⁠, 고옥녀가 탔고⁠, 해녀들은 각자 테왁을 띄우고 배 둘레에 동그랗게 떠 있었다⁠. 다들 구경하러 왔다⁠. 귤 내기는 이번에도 붙었다⁠. 이번에는 넘긴다는 편이 열여섯이었다⁠.

“⁠상군은 십 미터 넘는 바닥까지 드는 사람이다⁠.⁠”

숙자가 뱃전에 앉아 말했다⁠. 오른쪽 귀를 바다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일 분 사십 초⁠. 십이 미터 하얀 계단에서 돌 하나 쥐고 올라와라⁠. 넘기믄 상군이다⁠. 상군이믄 큰여 짝 설 수 있다⁠. 하루 두 번⁠. 해녀회장이 배 위에서 보는 시험이니⁠, 오늘만 하얀 계단까지 허락헌다⁠.⁠”

고옥녀가 분홍 초시계를 들었다⁠. 이번에는 단추 셋 가운데 어느 것을 눌러야 하는지 알았다⁠. 손녀에게 전화로 사흘을 배웠다고 했다⁠. 단추를 한 번 눌러 보이고⁠, 이제 불은 안 켜진다며 해녀들에게 화면을 돌려 자랑했다⁠. 숫자가 이미 가고 있었다⁠. 숙자가 그거 멈추라고 하자 고옥녀는 어느 단추가 멈추는 건지는 안 배웠다고 했다⁠.

이섭이 박 테왁을 놓고 머리를 꽂았다⁠.

첫 번째에 이섭은 일 분 삼십오 초에 올라왔다⁠. 십일 미터에서 귀가 막혔다⁠. 코를 쥐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뚫리지 않았다⁠. 이섭은 하얀 계단을 손끝 한 뼘 앞에 두고 돌아섰다⁠. 올라와서 숨비소리를 내는데 코에서 피가 한 줄 흘렀다⁠.

“⁠욕심에 숨 안 넘겼다⁠. 잘했다⁠.⁠”

고옥녀가 말했다⁠. 칭찬인지 위로인지 아무도 몰랐다⁠. 숙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물 전에 도담은 이섭의 테왁 옆으로 헤엄쳐 갔다⁠. 짝이었다⁠.

“⁠귀는 내려가면서 미리 맞춰⁠. 아프기 전에⁠. 팔 미터에서 한 번⁠, 십 미터에서 한 번⁠.⁠”

“⁠네⁠.⁠”

“⁠그리고 하얀 계단 보면 오래 보지 마⁠. 니가 그린 거 생각하지 마⁠. 돌만 쥐고 와⁠.⁠”

이섭이 도담을 보았다⁠.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첫날 포구에서 십 초 만에 솟아오르던 얼굴과 같은 얼굴이었는데⁠, 눈 밑이 이제 검지 않았다⁠.

이섭이 숨을 들이쉬자 고무옷 배 쪽이 둥글게 차올랐다⁠. 그리고 이섭은 꽂았다⁠.

도담은 물안경을 물에 담그고 눈으로만 이섭의 정수리를 따라 내려갔다⁠. 팔 미터에서 이섭이 코를 쥐었다⁠. 십 미터에서 또 쥐었다⁠. 남색 속에서 이섭의 몸이 점점 작아졌다⁠. 십이 미터⁠, 하얀 계단에 이섭의 손이 닿았다⁠. 석회 껍데기가 이섭의 손바닥 아래에서 부서져 하얀 가루가 물에 피어올랐다⁠. 이섭은 계단 모서리에서 하얀 돌 하나를 비틀어 뗐다⁠. 돌을 쥐고⁠, 계단을 한 번 보지도 않고⁠, 바닥을 찼다⁠.

올라오는 십이 미터가 길었다⁠. 이섭의 다리 차는 힘이 칠 미터에서 한 번 약해졌다⁠. 도담의 손가락이 테왁 끈을 감아쥐었다⁠. 내려가야 하나 싶은 순간에도 이섭의 공기 방울은 끊기지 않았다⁠. 이섭은 다시 찼다⁠.

물이 갈라지며 이섭의 머리가 솟았다⁠. 숨비소리가 길게 뻗는 휘파람이었다⁠. 배 위의 고옥녀가 초시계를 들어 올렸다⁠.

“⁠일 분 사십이 초⁠!⁠”

해녀 테왁 열여섯 개가 한꺼번에 물을 쳤다⁠. 귤 상자 열세 개를 내놓게 된 삼춘들도 같이 쳤다⁠. 이섭은 박 테왁에 매달려 숨을 몰아쉬며 하얀 돌을 뱃전 위로 들어 올렸다⁠.

숙자가 뱃전에서 손을 뻗어 이 돌을 받았다⁠. 손바닥 위에서 돌을 굴려 보았다⁠. 큰여의 하얀 계단 돌이었다⁠. 십 년 전에는 감태 숲으로 알던 바위였다⁠.

“⁠상군⁠.⁠”

숙자가 말했다⁠. 이번에는 두 글자로 끝내지 않았다⁠.

“⁠내 딸 짝이다⁠. 큰여 가서⁠, 같이 올라와라⁠.⁠”

*

이 밤 별채의 이불 위에서 도담은 이섭의 가슴에 귀를 대고 이섭의 숨을 셌다⁠. 이섭은 도담의 등에 손바닥을 대고 도담의 숨을 셌다⁠. 둘의 셈이 처음에는 달랐다가⁠, 서른쯤에서 맞았다⁠.

“⁠박 테왁⁠.⁠”

도담이 말했다⁠. 고옥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했다⁠. 마흔두 해 전 조금 날 큰여 감태 숲에서 할머니가 손바닥 두 개만 한 전복을 세 번 못 떼고 네 번째에 돌아오지 못한 일⁠, 주인 없이 떠 있던 박 테왁과 포구에 서 있던 스무 살 어머니⁠, 바위에 박혀 있던 빗창까지⁠.

이섭은 숨을 세다 말고 도담의 등을 쓸었다⁠. 이 손이 도담의 날개뼈에서 멈췄다⁠.

“⁠그 테왁 안고 다녔어요⁠. 한 달 넘게⁠.⁠”

“⁠알아⁠.⁠”

“⁠제가 큰여 위에서 그 테왁 잡고 짝 서는 거네요⁠. 내일⁠.⁠”

“⁠응⁠. 그리고 니가 바닥에 있을 땐 내가 잡고⁠.⁠”

이섭은 오래 말이 없었다⁠. 도담은 이섭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빨랐다가⁠, 도담의 숨에 맞춰 느려졌다⁠.

“⁠손에 쥔 거 놓으라고 하셨죠⁠. 첫날⁠.⁠”

“⁠응⁠.⁠”

“⁠내일 강사님 바닥에 있을 때 방울 끊기면⁠, 저 들어가요⁠. 그리고 강사님 손에 쥔 거⁠, 제가 떼서 놓게 할 거예요⁠.⁠”

도담은 고개를 들어 이섭을 보았다⁠. 그리고 입을 맞췄다⁠. 천천히⁠, 숨을 아끼지 않고⁠. 이섭의 입술에서 아직 소금 맛이 났다⁠. 이섭의 위로 몸을 올리자 이불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둘은 서로의 숨을 다시 세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끝까지 세지 못했다⁠.

*

해 질 무렵 포구에 배 두 척이 들어왔었다⁠.

하나는 조사선보다 두 배는 큰 측량선이었다⁠. 뱃전에 노란 부표 수십 개가 쌓여 있었고⁠, 배 꼬리에 긴 쇠팔이 접혀 있었다⁠. 다른 하나는 해경 경비정이었다⁠. 두 배는 포구에 들어오지 않고 방파제 바깥에 닻을 내렸다⁠. 날이 저물기 전에 측량선이 큰여로 나가 노란 부표를 하나씩 바다에 떨어뜨렸다⁠. 큰여의 하얀 계단부터 감태 숲이 있을 이 안쪽까지⁠, 노란 점이 동그랗게 큰여를 에워쌌다⁠. 이섭이 그렸던 하얀 선과 같은 모양이었다⁠. 방파제에 선 이섭이 이 노란 점들을 입속으로 하나씩 셌다⁠. 마흔이었다⁠. 도담은 세지 않았다⁠. 옆에서 세는 숨소리만 들었다⁠.

조금 첫날 새벽 다섯 시 반⁠, 포구에 해녀 스물여섯이 테왁을 들고 섰다⁠. 돈을 받은 셋은 오지 않았다⁠. 숙자가 맨 앞에 섰고⁠, 고옥녀가 박 테왁을 들고 이 옆에 섰다⁠. 도담은 할머니의 빗창을 고무옷 허리띠에 꽂았다⁠.

방파제 계단 위에 해경 제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내려섰다⁠. 경위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뒤에 흰 운동화가 서 있었다⁠.

“⁠오늘 오전 큰여 해역에서 도 공유수면 측량이 진행됩니다⁠. 안전을 위해 측량 구역 안에는 해녀분들 출입을 통제하겠습니다⁠.⁠”

해녀들이 술렁였다⁠. 경위는 이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측량이 끝나는 오후까지 큰여 쪽으로는 배를 띄우지 마십시오⁠.⁠”

도담이 테왁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경위의 반 발짝 앞에 섰다⁠. 고무옷 허리띠에서 빗창 손잡이가 경위의 눈높이 아래로 비쳤다⁠.

“⁠우리 물때우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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