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512자)
큰여
제주 해녀학교에 들어온 서울 남자, 숨 참기 꼴찌 · 신가랑
해경 경위는 도담을 내려다보았다가, 도담의 허리띠에 꽂힌 쇠막대를 보았다.
“그게 뭡니까?”
“빗창이우다. 전복 떼는 거.”
경위는 이것이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들었다. 이 사이 숙자가 딸의 옆으로 나와 섰다. 붕대는 풀었고, 왼쪽 귀에 솜을 막고 있었다. 숙자는 해녀회장으로서 말했다. 큰여는 숨비개 어촌계의 마을어장이고, 오늘은 해녀회가 물때를 보고 정한 물질 날이며, 바다에 드는 것은 해녀들의 권리라고.
경위가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한참 확인했다. 해녀들은 그동안 테왁을 들고 서서 기다렸다. 아무도 앉지 않았다. 새벽 바람에 테왁 그물이 일제히 흔들렸다.
“맞습니다. 측량 허가가 어업권자의 조업을 막는 건 아닙니다. 통제가 아니라 협조 요청으로 바꾸겠습니다.”
경위가 피경칠을 돌아보았다.
“측량은 아홉 시부터 시작하시죠. 해녀분들은 아홉 시 전까지 측량 구역 안에서 나와 주시고요. 측량선은 테왁이 다 빠질 때까지 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이사님, 괜찮으시죠?”
피경칠은 웃었다. 해녀 스물여섯이 피경칠을 보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아홉 시. 저희는 약속 지킵니다.”
여섯 시였다. 세 시간이었다.
배에 오르려는 도담 옆으로 피경칠이 다가왔다. 경위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를 낮췄다.
“아홉 시까지 못 따 오시면, 그다음은 측량이 말합니다. 하얀 계단 사진이 다음 주 청문회 책상에 올라가겠죠.”
“안쪽도 찍으십서. 감태 숲까지.”
“안쪽에 뭐가 있으면요?”
“그럼 그것도 책상에 올리십서.”
피경칠은 대답하지 않고 측량선으로 가는 고무보트에 올랐다. 흰 운동화가 보트 바닥의 고인 물에 처음으로 잠겼다. 이것을 내려다보았지만 닦지 않았다.
*
해녀 배의 엔진이 세 번 기침을 하는 사이, 포구 반대편에서 다른 엔진 소리가 났다.
이장네 어선이었다. 빚에 넘어갈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이 배의 키를 겨레가 잡고 있었다. 이장은 뱃머리에 서서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있었다. 배가 해녀 배 옆에 나란히 섰다.
“배 하나로는 다 못 태운다. 짝 서는 삼춘들은 이쪽에 타라.”
이장이 말했다. 아무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옥녀가 박 테왁을 안고 먼저 이장네 배에 올랐다. 올라타면서 이장의 등을 손바닥으로 한 대 쳤다.
“빚진 배로 바당 지키러 가냐? 잘했다.”
“하여튼 간에 오늘만이우다, 삼춘.”
“그래, 오늘만.”
해녀들이 두 배에 나눠 탔다. 겨레가 키를 돌리며 이섭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이섭이 마주 고개를 까딱했다. 둘 사이에 다른 말은 없었다.
큰여까지 가는 십 분 동안 해녀 배 위에서는 마지막 품평이 열렸다.
“오늘부터 상군이믄 등급 다시 매겨야지.”
“국물용에서 구이용, 구이용에서 뭐냐?”
“옥돔.”
배 위가 뒤집어졌다. 옥돔은 이 섬에서 제사상에 올리는, 가장 귀한 생선이었다. 이섭은 뱃전을 잡고 멀미를 참느라 대꾸도 못 했다. 지난번처럼 귤을 바다에 돌려주지는 않았다. 삼춘 하나가 그건 아니라고, 옥돔은 등이 붉은데 저건 아직 하얗다고 했고, 또 하나가 오늘 볕에 그을리면 붉어진다고 했다.
숙자는 이 소리를 오른쪽 귀로 다 들었다. 그리고 이섭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번만 말헌다. 도담이 바닥에 있을 땐 니가 위다. 니가 바닥에 있을 땐 도담이 위다. 둘이 같이 바닥에 있으믄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네, 회장님.”
“그리고 올라와라.”
숙자는 이 말 뒤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전복을 따 오라는 말도, 잘하라는 말도. 이섭은 이 말을 받아 고개를 깊이 숙였다.
*
큰여 위에 노란 부표들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이 둘레 바깥에 하얀 측량선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갑판에 흰 운동화가 서 있었다. 측량선 꼬리의 긴 쇠팔이 아직 접힌 채였다. 바다 밑을 훑는 장비가 이 끝에 달려 있었다.
두 배가 부표 안쪽으로 들어가 멈췄다. 해녀들이 테왁을 바다에 던졌다. 주황 공 스무 개가 물 위에 흩어졌다. 짝 서는 삼춘들이었다. 이들은 큰여 바닥에 들 수 없었다. 대신 오늘 바닥에 드는 두 사람의 테왁을 둘러싸고 물 위에 떠 있기로 했다. 측량선이 테왁이 다 빠질 때까지 들어오지 않기로 했으니, 테왁이 많을수록 바다가 넓었다.
규칙대로 했다. 도담이 먼저 들고, 이섭이 박 테왁을 잡고 물 위에서 짝을 섰다.
도담은 배로 숨을 들이쉬고 머리를 꽂았다.
팔 미터, 하얀 계단. 십 미터, 십이 미터. 석회 껍데기와 보라색 성게가 계단마다 엎드려 있었다. 도담은 이 위를 미끄러져 지나갔다. 귀를 맞추고, 또 맞추고. 십삼 미터에서 계단이 끝났다. 바위가 동쪽으로 갈라지며 아래로 꺾였다.
빛이 바뀌었다.
갈라진 바위 너머로 갈색과 초록이 섞인 그림자가 흔들렸다. 감태였다. 어른 키만큼 자란 감태 줄기들이 물살을 따라 한쪽으로 눕고, 다시 일어섰다. 숲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어머니의 망사리 속에서 듣던 그대로였다. 감태 사이로 자리돔 떼가 한꺼번에 몸을 틀었다. 은빛이 일제히 번쩍였다.
도담은 십오 미터 바닥에 손을 짚었다. 미끈했다. 살아 있는 바위였다.
이 바위틈에 전복이 붙어 있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갈라진 틈마다, 감태 뿌리 그늘마다. 도담은 손바닥을 펴서 가장 가까운 것에 대 보았다. 손바닥보다 컸다.
도담은 떼지 않았다. 오늘 이 바닥의 첫 전복은 도담의 것이 아니었다. 바닥을 찼다.
수면 위로 숨비소리를 냈을 때 도담은 제 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알았다. 이섭이 박 테왁을 도담 쪽으로 밀었다. 도담은 테왁을 잡고, 숨을 고르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서 하늘로 뒤집었다. 살아 있다는 손짓이었다. 도담이 지어낸 손짓이었는데 이섭은 알아들었다.
주변의 테왁 스무 개에서 삼춘들이 이 손짓을 보았다. 누군가 먼저 물을 쳤다.
*
도담은 할머니의 빗창을 허리띠에서 뽑아 이섭의 손에 쥐여 주었다. 손잡이의 패인 자국이 이섭의 손가락에는 맞지 않았다. 이섭은 이것을 꽉 쥐었다.
“틈 오른쪽. 감태 뿌리 밑. 빗창은 껍데기 밑으로 한 번에 밀어 넣고 들어 올려. 두 번 하면 전복이 바위를 더 꽉 문다.”
“네.”
“숨 모자라면.”
“놓고 올라와요.”
이섭이 꽂았다. 도담은 테왁에 가슴을 얹고 수면 아래로 이섭의 등을 좇았다. 하얀 계단을 지나는 이섭의 몸이 계단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십삼 미터, 갈라진 바위. 감태 숲으로 들어갔다. 초록 그림자 사이로 이섭의 하얀 손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
이섭이 바위틈에 빗창을 밀어 넣었다. 들어 올렸다. 전복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섭이 다시 밀어 넣었다. 도담의 주먹 안에서 테왁 끈이 조여들었다. 두 번 하면 바위를 더 꽉 문다고 했는데. 공기 방울이 이섭의 입가에서 한 줄 올라왔다. 일 분이 지났다. 일 분 십 초.
도담의 손바닥에서 끈이 미끄러질 듯 젖었다. 마흔두 해 전 이 자리에서 고옥녀가 보았을 것을, 보고 있었다. 감태 숲, 바위틈, 전복에 붙은 손.
일 분 이십 초. 이섭의 손이 빗창에서 떨어졌다.
빗창을 바위틈에 꽂아 둔 채, 이섭이 바닥을 찼다. 손에 쥔 것을 놓고, 이섭은 올라왔다. 다리 차는 힘이 칠 미터에서 약해지지 않았다. 도담은 이섭이 올라오는 동안 숨을 쉬지 않았다.
물 위로 이섭의 머리가 솟았다. 숨비소리가 길었다. 이섭은 박 테왁을 붙들고 기침했다. 그리고 웃었다.
“못 뗐어요. 놓고 왔어요. 할머니 빗창도 거기 꽂아 두고 왔어요.”
도담은 이섭의 뒷덜미를 잡았다. 넉 달 전 포구의 검은 물속에서 처음 움켜쥐었던 이 자리였다. 이번에는 끌어올리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았다. 그냥 쥐고 있었다.
“잘했어.”
이장네 배 위에서 고옥녀가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박 테왁의 주인이 놓지 못했던 것을 이 테왁을 잡은 남자가 놓고 올라왔다. 고옥녀는 이걸 보았다. 숙자가 해녀 배 뱃전에서 고옥녀 쪽을 보았다. 숙자는 울지 않았다. 대신 오른쪽 귀를 바다 쪽으로 오래 기울이고 있었다.
*
이섭은 박 테왁에 매달려 숨을 다시 채웠다. 숨이 고르게 돌아오는 데 이 분이 걸렸다. 도담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여덟 시 이십 분이었다.
“한 번 더.”
이섭이 말했다.
“빗창 거기 있어요. 꽂아 둔 데 알아요. 이번엔 한 번에 들어요.”
도담은 이섭을 보았다. 이섭의 눈 밑이 검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물에서 이섭은 곧장 내려갔다. 하얀 계단을 지나, 갈라진 바위를 지나, 감태 숲으로. 이섭이 바위틈에 꽂힌 빗창을 쥐었다. 이번에는 밀어 넣지 않았다. 이미 들어가 있었다. 이섭은 빗창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무릎을 바위에 대고, 한 번에 들어 올렸다.
전복이 바위에서 떨어졌다. 이섭이 이것을 가슴에 안았다.
수면을 뚫고 올라온 이섭의 손에 전복이 들려 있었다. 이섭이 이것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물이 껍데기에서 쏟아졌다. 껍데기의 구멍 사이로 아침 해가 비쳤고, 가장자리로 연둣빛 살이 아직 꿈틀거렸다. 이섭의 손바닥 둘을 합친 만했다.
테왁 스무 개가 한꺼번에 물을 쳤다. 해녀 배와 이장네 배 위에서 삼춘들이 소리를 질렀다. 겨레가 뱃고동을 두 번 울렸다. 고옥녀가 울다 말고 뱃전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멸치가 전복 땄다!”
“일 분 사십 초.”
도담이 말했다. 입 속으로 센 숫자였다. 이섭은 전복을 든 채 웃다가 바닷물을 한 모금 먹었다. 첫날처럼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테왁을 바로 잡고 있었다.
*
엔진 소리가 들린 것은 이때였다.
측량선이 닻을 올리고 있었다. 꼬리의 쇠팔이 펴지고 있었다. 도담은 손목시계를 다시 보았다. 여덟 시 사십 분. 갑판 위에서 흰 운동화가 앞으로 나와 손나팔을 만들었다.
“해녀분들! 측량 시작합니다! 테왁 빼 주십시오!”
“아홉 시라 했수다!”
해녀 배에서 숙자가 소리쳤다. 피경칠은 들리지 않는 척했다. 측량선이 부표 안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쇠팔 끝의 장비가 물에 닿았다. 배가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테왁들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해경 경비정은 부표 바깥 먼 자리에서 아직 무전을 하고 있었다.
가장 바깥쪽 테왁의 삼춘이 물을 차며 물러났다. 측량선의 뱃머리가 숙자가 떠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물결이 테왁들을 흔들었다.
도담은 이섭의 손에서 전복을 받았다. 이섭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건넸다. 전복을 제 테왁 망사리에 넣었다. 그리고 테왁 끈을 손목에 감았다.
“짝 서.”
“네.”
이섭이 박 테왁을 잡고 이 자리에 떴다. 도담은 테왁을 끌고 헤엄쳤다. 물러나는 테왁들 사이를 거슬러, 밀려오는 물결을 가슴으로 받으며. 고무옷 안으로 찬물이 들어왔다. 측량선의 엔진 소리가 물속으로 울려 도담의 갈비뼈를 쳤다.
뱃머리가 커졌다. 하얀 쇠벽이 도담 앞에 섰다. 도담은 거기서 멈췄다. 뱃머리와 도담 사이에 테왁 하나 들어갈 만큼만 남았다. 엔진이 한 번 거칠게 울더니 낮아졌다.
갑판 끝에서 피경칠이 내려다보았다. 흰 운동화 앞코가 뱃전 너머로 반쯤 나와 있었다.
도담은 망사리에서 전복을 꺼내 물 위로 들어 올렸다. 바닷물이 도담의 팔꿈치로 흘러내렸다. 껍데기 구멍 사이로 해가 비쳤다.
“큰여 전복이우다.”
도담이 말했다. 피경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뒤에서 측량 기사 하나가 엔진을 다시 올려도 되겠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따 와 보랜 허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