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20자)

풀린 별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연채온

목요일 오후 한 시⁠, 무탁의 오토바이는 김포로 가는 국도 위에서 바람을 갈랐다⁠. 해나는 빌린 헬멧 안에서 고개를 움츠렸다⁠. 망원동을 벗어나자 아파트가 줄고 논이 나왔다⁠. 논이 끝나자 회색 공장 지붕들이 줄지어 나왔다⁠. 길가에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었고⁠, 가로등 사이마다 컨테이너 트럭이 멈춰 있었다⁠.

“⁠누나⁠, 저 김포 처음 와요⁠. 개멀어요⁠.⁠”

“⁠배달은 안 와요⁠?⁠”

“⁠김포까지 시키는 사람이 없어요⁠. 시키면 제가 안 받아요⁠.⁠”

신호에 멈췄을 때 무탁이 헬멧을 돌렸다⁠. 헬멧 옆에서 형광 주황 귀 토끼가 흔들렸다⁠.

“⁠근데 누나⁠, 여기 밤에 걸어 다니는 사람 있어요⁠?⁠”

“⁠공장 다니는 사람들이요⁠.⁠”

해나가 길가를 가리켰다⁠. 공장 담벼락을 따라 좁은 인도가 이어졌다⁠. 인도 끝에 버스 정류장 하나가 있었다⁠. 정류장 지붕은 반쯤 부서져 있었고⁠, 정류장 의자에 작업복 차림의 여자 둘이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오후 한 시에도 정류장 주변은 컨테이너 그림자에 덮여 어둑했다⁠. 밤이면 얼마나 어두울지 해나는 머릿속으로 걸어 보았다⁠.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

폭신 김포 공장 정문 앞에서 승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정장 위에 회색 작업 조끼를 입었다⁠. 조끼 가슴에 「⁠사업부장 피승진⁠」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승진은 해나에게 방문증을 건네고⁠, 무탁을 보더니 방문증을 하나 더 꺼냈다⁠.

“⁠같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무탁이 손을 내저었다⁠. “⁠공장 무서워요⁠. 기계가 막 돌아가잖아요⁠.⁠”

“⁠기계는 안 무섭습니다⁠. 사람이 무섭죠⁠.⁠”

“⁠그 말이 더 무서운데요⁠.⁠”

무탁은 결국 정문 경비실 옆 의자에 앉아 경비 아저씨와 믹스커피를 나눠 마시기로 했다⁠. 해나는 방문증을 목에 걸고 승진을 따라 들어갔다⁠.

1동 문을 열자 소리가 먼저 덮쳤다⁠. 기계 수십 대가 한꺼번에 돌았다⁠. 천장까지 닿는 철제 선반에 실타래가 층층이 쌓여 있었고⁠, 벽을 따라 늘어선 기계들이 실을 빨아들였다가 뱉었다⁠. 승진이 해나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꼬는 기계입니다⁠! 원사를 두 가닥⁠, 세 가닥씩 꼬아서 자수실을 만들어요⁠!⁠”

해나는 맨 앞 기계로 다가갔다⁠. 기계 위쪽 굴대에 하얀 폴리에스터 원사가 감겨 있었고⁠, 옆 굴대에 금빛 실이 감겨 있었다⁠. 두 가닥이 기계 안으로 들어가 빠르게 비틀리며 한 가닥이 되었다⁠. 나오는 실은 금빛이었다⁠. 꿀 색이었다⁠. 해나는 손을 뻗어 나오는 실을 손끝으로 받았다⁠.

실은 미지근했다⁠. 해나의 손끝이 실의 결을 따라갔다⁠. 할머니의 금실이었다⁠. 틀림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빠져 있었다⁠. 헌 옷에서 푼 올을 꼬면 손가락 사이에서 실이 해나의 손을 잡았다⁠. 이 실은 해나의 손끝을 그냥 지나갔다⁠. 새 원사였다⁠. 아무도 입어 본 적 없는 실이었다⁠.

“⁠하루에 사십 킬로미터 나옵니다⁠.⁠” 승진이 말했다⁠. “⁠헌 옷이 아니어도 금빛이 돼요⁠. 조금 옅을 뿐이죠⁠.⁠”

해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계에서 나오는 실을 손끝에서 놓았다⁠. 실은 아무렇지 않게 굴대로 감겨 들어갔다⁠.

*

2동은 자수실이었다⁠. 자수 기계 스무 대가 일렬로 돌았다⁠. 기계마다 바늘 머리가 열둘씩 달려 있었고⁠, 바늘 머리 밑에 크림색 토끼 몸통이 열두 개씩 끼워져 있었다⁠. 바늘이 동시에 내려왔다가 동시에 올라갔다⁠. 사십 초가 지나자 토끼 이백사십 마리의 가슴에 금빛 별이 하나씩 생겼다⁠.

별은 다섯 꼭짓점 중 왼쪽 아래가 짧았다⁠. 승진이 기계에 넣은 도안이었다⁠.

해나는 기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바늘 머리들이 또 내려왔다⁠. 또 올라갔다⁠. 이백사십 개의 별이 또 생겼다⁠. 해나가 별 하나에 사십 분을 쓰는 동안⁠, 기계는 별 만 이천 개를 놓았다⁠.

자수 기계 끝에서 작업복을 입은 중년 여자가 토끼를 상자에 담고 있었다⁠. 명찰에 「⁠생산 2반 반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반장은 해나를 보더니 승진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부장님⁠, 이분이 그 망원동 사장님⁠?⁠”

“⁠네⁠. 오늘 견학 오셨습니다⁠.⁠”

“⁠사장님 토끼 영상 봤어요⁠. 우리 딸이 보여 줬어요⁠.⁠” 반장이 토끼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근데 이거랑 그거랑 똑같아요⁠? 우리 딸이 그러는데⁠, 망원동 거는 진짜고 여기 거는 귀엽기만 하대요⁠.⁠”

“⁠반장님⁠.⁠” 승진이 낮게 불렀다⁠.

“⁠아니⁠, 궁금해서요⁠. 저도 밤 열두 시에 공단 길로 걸어서 퇴근하거든요⁠. 하나 달고 다닐까 하고⁠.⁠”

해나는 반장의 손에 들린 토끼를 보았다⁠. 별이 반짝였다⁠. 반장이 말한 공단 길은 아까 무탁의 오토바이에서 본 길일 것이었다⁠. 컨테이너 그림자가 덮인 인도⁠, 지붕이 부서진 정류장⁠.

“⁠반장님⁠, 밤에 어느 길로 가세요⁠?⁠”

반장이 눈을 깜빡였다⁠. 승진이 해나를 보았다⁠. 해나는 반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반장은 토끼를 상자에 넣으며 웃었다⁠.

“⁠그건 왜 물어요⁠? 사장님이 토끼 하나 만들어 주시게⁠?⁠”

해나는 대답을 삼켰다⁠. 오늘 별은 이미 다섯 개를 놓고 왔다⁠. 반장의 길을 들으면 해나의 손은 오늘 밤에 여섯 번째 별을 놓을 것이었다⁠. 승진이 해나의 팔꿈치를 가볍게 건드렸다⁠.

“⁠다음 동으로 가시죠⁠.⁠”

*

2동과 3동 사이의 마당은 바람이 셌다⁠. 지게차 두 대가 상자를 싣고 오갔다⁠. 승진은 지게차가 지나갈 때마다 해나 앞으로 반 걸음 나왔다가 물러났다⁠. 지게차와 해나 사이를 몸으로 막는 걸음이었다⁠. 해나는 승진의 몸짓을 모르는 척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슬아한테 제안하셨죠⁠.⁠”

“⁠네⁠.⁠”

“⁠슬아는 건드리지 마세요⁠.⁠”

“⁠건드린 적 없습니다⁠. 도안을 봤을 뿐이에요⁠.⁠” 승진이 걸음을 늦췄다⁠. “⁠슬아 씨가 대학 3학년 때 공모전에 낸 도안 보셨어요⁠? 헌 옷으로 만든 동물 시리즈요⁠. 저희 회사 심사에서 떨어졌죠⁠. 제 전임자가 심사했어요⁠. 제가 심사 자리에 있었으면 바로 뽑았을 겁니다⁠.⁠”

“⁠그럼 왜 지금이에요⁠? 토끼 때문이잖아요⁠.⁠”

“⁠토끼 때문이기도 하고요⁠.⁠” 승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슬아 씨는 사장님 공방에서 귀를 오립니다⁠. 하루 열 개요⁠. 저희 회사에서는 슬아 씨 도안이 하루 만 개 찍혀요⁠. 사장님이라면 어느 자리를 고르시겠어요⁠?⁠”

해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게차가 둘 사이를 지나갔다⁠. 경적이 짧게 울렸다⁠. 승진이 또 반 걸음 앞으로 나왔다가 물러났다⁠.

“⁠슬아 씨가 오면 사장님한테 미안해서 오는 게 아닐 겁니다⁠. 자기 일을 하러 오는 거예요⁠. 그건 사장님도 막으시면 안 됩니다⁠.⁠”

*

3번 창고는 공장 맨 끝에 있었다⁠. 철문이 높았다⁠. 승진이 카드를 대자 철문이 천천히 올라갔다⁠. 안은 어두웠다⁠. 승진이 스위치를 올리자 천장의 등이 한 줄씩 켜졌다⁠.

토끼였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는 선반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선반마다 토끼가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크림색 몸⁠, 분홍 귀⁠, 가슴의 금빛 별⁠.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등이 한 줄 켜질 때마다 별 수천 개가 한꺼번에 반짝였다⁠. 마지막 줄까지 켜지자 창고 전체가 꿀 색으로 번졌다⁠.

“⁠만 마리입니다⁠.⁠” 승진이 말했다⁠. “⁠11월 1일 출시분이에요⁠. 사전 예약은 이십만 건을 넘었고요⁠.⁠”

해나는 가장 가까운 선반으로 걸어가 토끼 하나를 손바닥에 올렸다⁠. 따뜻했다⁠. 처음으로 손끝이 공장 토끼에게서 열을 받았다⁠. 해나는 다른 토끼를 집었다⁠. 똑같이 따뜻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해나는 손바닥을 선반 위에 펼쳐 대 보았다⁠. 선반 전체가 따뜻했다⁠. 겨울날 데운 방바닥처럼 고르게 따뜻했다⁠.

해나의 손끝이 고르게 퍼진 열 앞에서 머뭇거렸다⁠. 솔기의 별은 열이 한 점에 모여 있었다⁠. 주인의 가방 손잡이에 달린 별은⁠, 주인의 길을 향해 바늘 끝처럼 뾰족하게 따뜻했다⁠. 창고의 열은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다⁠. 만 마리가 한 덩어리로 따뜻했다⁠.

“⁠따뜻하죠⁠.⁠” 승진이 해나 옆으로 다가왔다⁠. “⁠지난달까지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체험관 견본은 차가웠어요⁠. 사장님도 만져 보셨고요⁠.⁠”

“⁠이 실 어디서 났어요⁠?⁠”

해나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서 울렸다⁠. 승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작업 조끼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꺼낸 것은 작은 토끼였다⁠.

*

크림색이었던 몸은 누렇게 바래 있었다⁠. 오래 쥐고 다녀서 손때가 배어 반들거렸다⁠. 한쪽 귀는 초록이었다⁠. 학교 체육복의 초록이었다⁠. 단추 눈 하나는 떨어지고 실로 꿰맨 자국만 남아 있었다⁠.

가슴에는 별이 없었다⁠.

별이 있던 자리에 바늘구멍들이 별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다섯 꼭짓점을 따라 구멍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왼쪽 아래 꼭짓점의 구멍이 다른 넷보다 짧았다⁠.

해나는 토끼를 받아 들지 못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2003년 10월이었습니다⁠.⁠” 승진이 토끼를 손바닥에 올린 채 말했다⁠. 숫자를 말하는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열다섯 살이었고요⁠. 학원이 밤 열한 시에 끝났어요⁠. 엄마는 새벽 생선 가게 때문에 일찍 잤고요⁠. 망원동 큰길을 혼자 걸어서 집에 갔습니다⁠. 바지 단을 줄이러 차옥 수선에 갔더니 할머니가 저를 구석 의자에 앉히고 물으셨어요⁠. 밤에 어느 길로 가냐고⁠.⁠”

해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같은 말이었다⁠. 해나가 매일 하는 말이었다⁠.

“⁠다음 날 밤에 트럭이 인도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토끼가 뜨거워졌고⁠, 뭔가 번쩍했고⁠, 누가 제 가방을 뒤에서 잡아당겼어요⁠.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고 트럭이 제가 서 있던 자리의 가로수를 들이받았습니다⁠.⁠”

승진은 토끼의 초록 귀를 엄지로 쓸었다⁠. 실패 모서리를 쓸던 엄지였다⁠.

“⁠스물네 해 동안 이 토끼를 갖고 다녔습니다⁠. 대학 갈 때도⁠, 군대 갈 때도⁠, 회사 들어갈 때도요⁠. 올해 여름에 솔기 후기를 봤어요⁠. 사진 속 별의 왼쪽 아래가 짧더군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할머니 손자가⁠, 아니⁠, 손녀가 같은 별을 놓는다는 걸요⁠.⁠”

“⁠그래서 풀었어요⁠?⁠”

해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끝이 차가웠다⁠.

“⁠8월에요⁠. 제 손으로요⁠. 한 땀씩 뽑았습니다⁠. 사흘 걸렸어요⁠. 손이 떨려서요⁠.⁠” 승진은 별이 없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실이 한 뼘 나왔습니다⁠. 그 한 뼘을 꼬는 기계에 넣었어요⁠. 새 원사랑 같이요⁠. 처음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사흘째에 금빛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사십 킬로미터가 나와요⁠.⁠”

“⁠할머니 별을요⁠. 사업부장님을 지켜 준 별을요⁠.⁠”

“⁠네⁠.⁠”

“⁠그럼 사업부장님은요⁠? 지금은 누가 지켜요⁠?⁠”

승진은 조끼 주머니에서 다른 토끼를 꺼내 보였다⁠. 분홍 귀⁠, 금빛 별⁠. 3번 창고의 만 마리 중 하나였다⁠.

“⁠이 아이가요⁠.⁠”

해나는 승진을 보았다⁠. 승진은 웃지 않았다⁠. 늘 숫자를 말하던 입이 한참 다물려 있다가 열렸다⁠.

“⁠사장님⁠. 저는 별 하나에 한 사람이 산 걸 압니다⁠. 제가 그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한 사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별이 저 하나를 지키는 것보다 만 명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창고의 등이 웅웅거렸다⁠. 만 마리의 별이 고르게 빛났다⁠. 어느 별도 누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11월 1일에 만 마리가 나갑니다⁠. 사장님이 아니어도 됩니다⁠.⁠” 승진은 바늘구멍만 남은 초록 귀 토끼를 안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이제 실은 우리한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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