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75자)

백이십만 회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연채온

화요일 아침 일곱 시⁠, 해나는 망원시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장 셔터가 아직 반쯤 내려와 있는 시간이었다⁠. 셔터 앞부터 사람들이 서 있었다⁠. 줄은 시장 담벼락을 따라 뒷골목으로 꺾였고⁠, 떡볶이집 평상을 지나⁠, 솔기의 닫힌 문 앞에서 끝났다⁠. 끝났다기보다 거기서 시작된 줄이었다⁠. 접이식 의자를 들고 온 사람⁠, 담요를 두른 사람⁠, 돗자리를 깔고 컵라면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해나가 줄을 따라 걸어가자 누군가 해나를 알아보았다⁠. 분홍 머리핀 때문이었다⁠. 영상 속 공방 창가에 해나의 뒷모습이 삼 초 나왔다⁠.

“⁠사장님이다⁠!⁠”

줄 전체가 고개를 돌렸다⁠. 삼백 개의 얼굴이 한꺼번에 해나를 보았다⁠. 해나는 앞치마 주머니 속 실패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뱄다⁠.

솔기 문 앞에는 슬아가 먼저 와 있었다⁠. 슬아는 휴대전화 화면을 해나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무탁의 영상이었다⁠. 「⁠배달하다 죽을 뻔했는데 토끼가 살림⁠」 조회수 백이십만⁠. 댓글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0⁠.5배속으로 봤는데 진짜 실이 나옴⁠」

「⁠합성이면 이 사람 영화판 가야 함⁠」

「⁠부산인데 망원동까지 몇 시간임⁠?⁠」

「⁠Where can I buy this rabbit⁠?⁠? Ship to LA⁠?⁠?⁠」

「⁠우리 딸 야간 근무하는데 하나만 제발⁠」

“⁠새벽 네 시부터 줄 섰대⁠. 수원에서 온 사람도 있어⁠.⁠” 슬아가 줄 끝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커플은 대전⁠.⁠”

*

골목 맞은편 떡볶이집은 벌써 문을 열었다⁠. 말선이 평상 위에 종이컵을 탑처럼 쌓아 두고 국자를 휘둘렀다⁠. 가게 유리문에 매직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줄 서시는 분 컵떡볶이 천 원 할인 · 토끼는 못 드림⁠」

“⁠해나야⁠! 일곱 시부터 컵이 백 개 나갔다⁠! 너는 몇 개 놨어⁠?⁠”

“⁠아직 문도 안 열었어요⁠!⁠”

“⁠그러니까 장사는 내가 잘하지⁠!⁠”

세탁소 사장이 셔터를 반쯤 올리다가 말고 소리를 질렀다⁠. 세탁소 문 앞에 돗자리 세 개가 깔려 있었다⁠.

“⁠여기 가게 문이에요⁠! 다리미 들고 나가야 된다고요⁠! 토끼 사장⁠, 이거 어쩔 거야⁠?⁠”

해나가 고개를 숙였다⁠. 슬아가 돗자리 주인들에게 가서 자리를 옮겨 달라고 했다⁠. 돗자리 하나를 걷자 돗자리 밑에 깔려 있던 골판지에 「⁠토끼 3개 구매 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슬아가 골판지를 집어 들었다⁠.

“⁠이거 누구 거예요⁠? 셋 사서 뭐 하시게요⁠?⁠”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눈을 피했다⁠. 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에 되팔기 앱이 떠 있었다⁠. 슬아는 골판지를 반으로 접어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한 사람에 하나예요⁠. 본인 거만요⁠. 아저씨 길 말씀하실 수 있어요⁠? 밤에 어느 길로 가세요⁠?⁠”

“⁠아니 그건 왜⁠.⁠”

“⁠모르면 못 사요⁠.⁠”

남자가 줄에서 빠져나갔다⁠. 슬아가 해나를 돌아보며 엄지를 들었다⁠.

*

여덟 시⁠, 무탁이 오토바이를 시장 입구에 세우고 걸어왔다⁠. 헬멧을 손에 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큰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려고 애쓰는 걸음이었다⁠. 줄 선 사람들이 무탁을 알아보고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들어 무탁을 찍었다⁠. 무탁은 손을 휘저으며 떡볶이집 평상까지 와서⁠, 해나 앞에 무릎을 꿇다시피 앉았다⁠.

“⁠누나⁠. 죄송해요⁠.⁠”

“⁠안 올린다고 했잖아요⁠.⁠”

“⁠했죠⁠. 했는데요⁠.⁠”

“⁠했는데 왜요⁠?⁠”

무탁이 헬멧을 무릎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문질렀다⁠. 스티커 「⁠무서운 거 아님⁠」이 엄지에 밀려 반쯤 떨어졌다⁠.

“⁠어제 엄마가 토끼 받고요⁠. 가방에 달고 거울 앞에서 한참 보더니 울었어요⁠. 자기 길을 누가 물어본 게 처음이래요⁠. 시장 바닥에서 사십 년 김밥 말았는데 새벽에 무섭다고 말해 본 적이 없대요⁠.⁠” 무탁은 줄을 돌아보았다⁠. “⁠누나⁠, 저 줄에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삼백 명이에요⁠.⁠”

“⁠알아요⁠.⁠”

“⁠그러니까요⁠.⁠”

“⁠나는 열 개밖에 못 해요⁠.⁠”

해나의 목소리가 평상 위에서 갈라졌다⁠. 무탁이 입을 다물었다⁠. 해나는 손목의 바늘꽂이를 매만졌다⁠. 바늘들이 손목 안쪽을 눌렀다⁠.

“⁠열한 번째 별은 아무도 못 지켜요⁠. 무탁 씨가 영상 올려서 삼백 명이 왔는데⁠, 이백구십 명은 집에 가야 돼요⁠. 오늘 밤에 다들 그 길로 그냥 가요⁠. 내가 그 사람들한테 뭐라고 해요⁠?⁠”

무탁은 대답하지 못했다⁠. 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개무서워요⁠. 누나 화난 거⁠.⁠”

슬아가 평상 끝에서 컵떡볶이를 내밀었다⁠. 무탁은 떡을 받아 들고 한입에 넣었다⁠. 매운 떡을 씹으면서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떡이 매워서인지 해나가 무서워서인지 알 수 없었다⁠.

*

여덟 시 반⁠, 골목 입구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분홍색 커피차였다⁠. 차 옆구리에 동그란 곰 얼굴과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망원동의 밤길을 응원합니다 — 폭신컴퍼니⁠」 커피차가 시장 입구에 멈추자 직원 둘이 내려 줄 선 사람들에게 따뜻한 라테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컵 홀더마다 곰 얼굴이 찍혀 있었다⁠.

승진이 커피차 조수석에서 내렸다⁠. 오늘은 회색 정장 위에 분홍 바람막이를 입었다⁠. 회사 이름이 등판에 크게 박힌 바람막이였다⁠. 승진은 줄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해나 앞에 도착했을 때 승진의 손에는 라테가 두 잔 들려 있었다⁠.

“⁠사장님 거 하나⁠, 슬아 씨 거 하나⁠.⁠”

슬아가 받으려다 해나를 보고 손을 거두었다⁠. 승진은 라테를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영상 봤습니다⁠. 저희 팀도 밤새 봤어요⁠. 조회수가 올라가는 속도를 보고 대표님이 새벽 세 시에 전화하셨습니다⁠.⁠”

“⁠커피 가져가세요⁠.⁠”

“⁠커피는 줄 서신 분들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네 시부터 서 계셨대요⁠.⁠”

승진은 몸을 돌려 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회의실에서 단련된 목소리였다⁠. 골목 끝까지 울렸다⁠.

“⁠여러분⁠, 폭신컴퍼니 피승진입니다⁠. 솔기 사장님은 하루에 열 분만 받으십니다⁠. 손으로 하시니까요⁠. 나머지 분들 그냥 돌아가시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같은 토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시 알림 받으실 분은 커피차 앞에서 연락처 남겨 주세요⁠.⁠”

줄이 술렁였다⁠. 몇 사람이 줄에서 나와 커피차로 걸어갔다⁠. 직원들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해나는 승진의 앞으로 걸어갔다⁠. 줄 한가운데였다⁠. 양옆에서 사람들이 둘을 보았다⁠.

“⁠같은 토끼 아니에요⁠.⁠”

“⁠아직은요⁠.⁠”

“⁠영원히요⁠.⁠”

승진은 해나를 내려다보았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계산이 끝난 얼굴이었다⁠.

“⁠사장님⁠. 이분들 집에 보내실 때 뭐라고 하실 겁니까⁠? 오늘 밤엔 조심히 가시라고요⁠? 저는 그 말이 제일 싫습니다⁠. 조심히 가라는 말은 아무도 안 지켜요⁠.⁠”

해나는 대답 대신 떡볶이집으로 갔다⁠. 말선의 가게 선반 위에 상인회 행사 때 쓰는 빨간 확성기가 있었다⁠. 해나는 말선의 허락도 받지 않고 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말선이 국자를 든 채 입을 벌렸다⁠.

해나는 평상 위로 올라갔다⁠. 확성기 단추를 눌렀다⁠. 삐 소리가 골목을 찢었다⁠.

“⁠솔기 봉해나입니다⁠. 오늘 열 명 받습니다⁠. 줄 선 순서대로 안 받아요⁠.⁠”

줄이 조용해졌다⁠. 해나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밤 열두 시 넘어서 혼자 걸어서 집에 가시는 분⁠, 손 들어 주세요⁠.⁠”

손들이 올라갔다⁠. 백 개쯤 되었다⁠.

“⁠그중에 가로등 없는 길을 지나시는 분⁠.⁠”

손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 길에서 무서웠던 적이 이번 달에 있으신 분⁠.⁠”

손이 스무 개쯤 남았다⁠. 해나는 손을 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았다⁠. 편의점 야간 조끼를 입은 청년⁠, 병원 이름이 박힌 가방을 멘 여자⁠, 새벽 택배 상하차 장갑을 낀 손⁠. 해나는 확성기를 내리고 맨목소리로 말했다⁠.

“⁠이분들 중에 열 명만 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수원에서 왔는데요⁠!⁠” 줄 끝에서 누군가 외쳤다⁠.

“⁠새벽 네 시에 나왔다고요⁠!⁠”

해나는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몇 사람은 이미 등을 돌려 시장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등을 돌린 사람 가운데 몇은 커피차 앞에 멈춰 태블릿에 번호를 눌렀다⁠.

*

오후 세 시⁠, 네 번째 손님은 편의점 야간 조끼를 입은 청년이었다⁠. 귀로 쓸 천을 가져오라고 하자 청년은 조끼를 벗어 내밀었다⁠. 입고 있던 그대로였다⁠. 해나가 조끼 밑단에서 올을 풀며 길을 물었다⁠.

“⁠편의점 뒷문으로 나와서요⁠, 폐기 삼각김밥 들고 공원 가로질러요⁠. 벤치 세 번째에 앉아서 하나 먹고요⁠. 거기서부터 오르막이에요⁠. 오르막 끝에 개 키우는 집이 있는데 걔가 저만 보면 짖어요⁠. 저 진짜 아무 짓도 안 했거든요⁠.⁠”

“⁠개 이름 알아요⁠?⁠”

“⁠몰라요⁠. 제가 속으로 부르는 이름은 있어요⁠. 사장님이라고요⁠. 저희 점장님이랑 똑같이 짖어서⁠.⁠”

슬아가 귀 조각을 오리다 말고 작업대에 엎드렸다⁠. 해나는 웃음을 삼키며 첫 땀을 놓았다⁠. 머릿속의 오르막 끝에서 개 한 마리가 점장님 목소리로 짖었다⁠. 별은 사십 분 만에 끝났다⁠.

청년이 나간 뒤⁠, 문 방울이 조심스럽게 울렸다⁠. 세탁소 사장이었다⁠. 아침에 고함을 지르던 사람이 문턱에서 모자를 벗어 들고 있었다⁠.

“⁠토끼 사장⁠. 아까는 내가 미안해⁠.⁠”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죠⁠. 문 앞을 막아서요⁠.⁠”

“⁠그게 아니고⁠.⁠” 세탁소 사장은 모자를 손에서 빙빙 돌렸다⁠. “⁠우리 딸이 성수동에서 야근을 해⁠. 밤 열두 시에 지하철 끊기면 걸어서 와⁠. 하나만⁠, 내일이라도 안 될까⁠?⁠”

해나는 작업대 위의 크림색 몸통들을 보았다⁠. 오늘 몫으로 남은 것은 여섯 개였다⁠. 내일 몫은 아침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정할 것이었다⁠. 해나는 세탁소 사장의 손에 들린 모자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님 헌 옷 하나 가져오세요⁠. 내일 첫 번째로 할게요⁠.⁠”

세탁소 사장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슬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열 개 중에 하나가 벌써 나갔다⁠.⁠”

“⁠알아⁠.⁠”

*

밤 열 시⁠, 해나는 열 번째 별의 매듭을 지었다⁠. 병원 가방을 멘 여자의 토끼였다⁠. 귀는 낡은 수술복 천이었다⁠. 여자가 말해 준 길은 병원 뒷문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이어지는 담벼락 길이었다⁠. 담쟁이가 무성하고⁠, 고양이 밥그릇이 놓여 있고⁠, 밤 열한 시면 담 너머 장례식장의 불이 꺼지는 길이었다⁠. 해나는 담벼락 길을 사십 분 동안 걸었다⁠. 다 걷고 나자 손끝이 저렸다⁠.

작업대 위에 크림색 몸통이 하나 더 있었다⁠. 해나는 바늘을 집어 들었다⁠. 슬아가 해나의 손목을 잡았다⁠.

“⁠열한 번째야⁠.⁠”

“⁠알아⁠.⁠”

“⁠알면 놔⁠.⁠”

해나는 바늘을 내려놓았다⁠. 슬아는 해나의 손을 놓지 않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폭신컴퍼니 계정이었다⁠. 한 시간 전에 올라온 게시물이었다⁠.

「⁠별토끼 가디언 · 사전 예약 오픈 · 당신의 밤길을 지켜 줄 토끼⁠」

사진 속 토끼는 크림색 몸에 귀 한쪽이 분홍이었다⁠. 가슴에 금빛 별이 있었다⁠. 예약 숫자가 사진 아래에서 돌아갔다⁠. 이만 삼천⁠. 이만 오천⁠.

해나는 사진을 두 손가락으로 벌려 별을 크게 키웠다⁠. 별의 다섯 꼭짓점 가운데 하나가 다른 넷보다 조금 짧았다⁠. 왼쪽 아래 꼭짓점이었다⁠. 할머니는 별을 놓을 때마다 왼쪽 아래를 짧게 끊었다⁠. 마지막 땀을 길게 빼면 별이 도망간다고 했다⁠. 해나도 그렇게 배웠다⁠. 망원동에서 그렇게 별을 놓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한 사람은 해나였고⁠, 한 사람은 이 년 전 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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