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77자)

되판 토끼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연채온

월요일 오후 두 시⁠, 승진은 종이 상자를 안고 왔다⁠. 상자를 작업대에 내려놓자 안에서 무언가 우르르 몰렸다⁠. 승진이 뚜껑을 열었다⁠. 토끼들이 서로 엉켜 누워 있었다⁠. 크림색 몸에 귀 색깔이 제각각이었다⁠. 체크무늬 귀⁠, 청바지 귀⁠, 땡땡이 귀⁠, 군복 무늬 귀⁠. 가슴마다 금실 별이 있었다⁠.

해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손끝이 먼저 알았다⁠. 상자 안의 별들은 하나도 따뜻하지 않았다⁠.

“⁠열두 마리입니다⁠. 되팔기 앱에서 샀어요⁠.⁠”

승진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중고 거래 앱 화면이었다⁠. 「⁠솔기 별토끼 정품 / 300⁠,000원 / 망원역 직거래만 / 진짜 지켜 줌⁠」 아래로 비슷한 글이 줄줄이 이어졌다⁠. 삼십만⁠, 삼십오만⁠, 사십만⁠. 맨 아래 글에는 「⁠경매 시작가 오십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님이 삼만 원에 파시죠⁠. 시장에서는 열 배입니다⁠. 제가 제일 비싸게 산 건 사십이만 원이고요⁠.⁠”

작업대 끝에서 슬아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승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자 안의 토끼들을 손가락으로 세어 보였다⁠.

“⁠지난 금요일부터 사흘 밤⁠, 열두 마리를 전부 가방에 달고 다녔습니다⁠. 망원 유수지 공원을 새벽 두 시에 세 바퀴 돌았어요⁠. 불 꺼진 골목만 골라서 걸었고요⁠. 공사장 옆길도 걸었습니다⁠. 일부러 맨홀 뚜껑도 밟았어요⁠.⁠”

“⁠맨홀은 왜 밟으셨어요⁠?⁠”

“⁠위험하잖아요⁠.⁠”

“⁠안 위험한데요⁠.⁠”

“⁠그러니까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개한테 한 번 쫓겼는데⁠, 토끼는 조용했어요⁠. 가방에 열두 마리를 달고 개한테 쫓기는 서른아홉 살 남자를 상상해 보세요⁠.⁠”

슬아가 이번에는 기침이 아닌 소리로 웃었다⁠. 승진이 슬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어도 된다는 허락 같았다⁠.

“⁠사장님 토끼가 진짜라면⁠, 진짜가 시장에서 이렇게 돌아다닙니다⁠. 지켜 준다는 소문이 붙은 물건은 팔려요⁠. 사장님이 안 팔아도 누군가는 팝니다⁠. 저는 차라리 제가 만 개를 만들어서 삼만 원에 팔고 싶어요⁠. 사십이만 원 주고 산 사람이 아무것도 못 지키는 것보다 낫잖아요⁠.⁠”

“⁠그 토끼들은 원래 주인이 있어요⁠.⁠”

“⁠압니다⁠. 주인이 팔았죠⁠.⁠”

“⁠주인이 아니면 안 지켜요⁠.⁠”

승진이 잠깐 말을 멈췄다⁠. 바로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 얼굴이었다⁠. 처음이었다⁠.

“⁠그럼 저 하나 만들어 주세요⁠. 제 거로요⁠.⁠”

해나는 바늘꽂이에서 바늘 하나를 뽑았다⁠.

“⁠밤에 어느 길로 가세요⁠?⁠”

승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작업대 위의 상자를 내려다보더니⁠, 넥타이도 없는 목을 손으로 한 번 쓸었다⁠.

“⁠그건 말 못 합니다⁠.⁠”

“⁠그럼 못 만들어요⁠.⁠”

“⁠길이 왜 필요한데요⁠?⁠”

“⁠별은 길을 알아야 놓아요⁠.⁠”

승진은 해나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지 않았다⁠. 대신 오래 해나를 보았다⁠. 이윽고 상자를 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 열두 마리는 사장님 드릴게요⁠. 주인한테 돌려주시든⁠, 공방에 앉혀 두시든요⁠. 저는 사장님 토끼가 사십이만 원에 팔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산 겁니다⁠.⁠”

문 방울이 울렸다⁠. 해나는 승진이 나간 문을 보다가⁠, 상자 안으로 손을 넣었다⁠.

*

열두 마리를 작업대 위에 나란히 앉혔다⁠. 해나는 귀를 하나씩 만졌다⁠. 손끝에 닿는 천마다 기억나는 목소리가 있었다⁠. 체크무늬 귀는 택배 상하차를 하던 대학원생의 셔츠였다⁠. 군복 무늬 귀는 전역한 지 일주일 된 청년의 전투복이었다⁠. 청바지 귀는 미용실 막내의 작업 바지였다⁠.

해나의 손이 열 번째 토끼에서 멈췄다⁠. 귀가 남색 체육복 천이었다⁠. 고등학교 이름 자수의 끄트머리가 귀 아래에 반쯤 남아 있었다⁠.

“⁠이거⁠.⁠”

슬아가 다가와 들여다보았다⁠.

“⁠간호학과 새내기네⁠. 홍대 술집에서 알바한다던 애⁠.⁠”

해나도 기억했다⁠. 지난달 말⁠, 스무 살 여자애가 체육복 바지를 들고 왔었다⁠. 엄마가 고등학교 삼 년 내내 빨아 준 바지라고 했다⁠. 밤 한 시에 알바를 마치고 합정의 고시원까지 걸어간다고 했다⁠. 길을 말해 달라고 하자 술집 뒷문부터 고시원 계단 몇 칸까지 다 말했다⁠. 토끼를 받아 들고 울었다⁠. 절대 안 판다고 했다⁠.

“⁠팔았네⁠.⁠”

슬아의 목소리가 낮았다⁠. 해나는 체육복 귀를 엄지로 문질렀다⁠. 별은 차가웠다⁠. 주인 손을 떠난 별이었다⁠.

“⁠오늘 밤에 가 볼래⁠.⁠”

“⁠한 시에⁠? 홍대를⁠?⁠”

“⁠한 시에⁠. 홍대를⁠.⁠”

“⁠너 별 없잖아⁠.⁠”

슬아의 말에 해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별을 놓는 사람은 자기 별을 달지 못했다⁠. 해나가 아무리 정성껏 꿰매도 자기 가슴에 놓은 별은 실밥일 뿐이었다⁠. 할머니가 처음 가르쳐 준 규칙이었다⁠.

“⁠그럼 나도 가⁠.⁠”

“⁠너도 별 없잖아⁠.⁠”

“⁠나는 키가 크잖아⁠.⁠”

슬아는 해나보다 두 뼘 컸다⁠. 별이 없는 사람 둘이 밤 한 시의 홍대에 가기로 했다⁠.

*

저녁 여섯 시⁠, 해나는 남은 열한 마리의 원래 주인들에게 공방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토끼가 돌아왔으니 찾아가라고만 적었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사장님 죄송해요ㅠ 카드값이 밀려서요⁠. 돈 다시 모으면 새로 살게요⁠」

「⁠제가 판 거 아니에요⁠. 동생이 팔았어요⁠. 지금 동생이랑 싸우는 중⁠」

「⁠저는 이제 밤에 안 다녀서요⁠. 대신 엄마 거 하나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사십만 원에 팔렸다고요⁠?⁠?⁠? 저는 이십오만 원에 팔았는데⁠?⁠?⁠? 중간에 누가 먹은 거예요⁠?⁠?⁠?⁠」

슬아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작업대에 이마를 박았다⁠. 골목 맞은편에서 말선이 떡볶이 한 접시를 들고 건너왔다⁠. 떡볶이 위에 삶은 달걀이 두 개 얹혀 있었다⁠. 말선은 접시를 작업대에 내려놓으며 상자 안의 토끼들을 넘겨다보았다⁠.

“⁠오늘 온 정장 말이야⁠. 상인회 방에 벌써 소문났다⁠.⁠”

말선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골목 가게 주인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

「⁠세탁소⁠: 솔기에 웬 대기업 양복이 상자 들고 들어감⁠」

「⁠꽃집⁠: 혹시 재개발 아님⁠?⁠」

「⁠분식 길말선⁠: 재개발이면 내 떡볶이 국물부터 챙긴다⁠」

「⁠철물점⁠: 회장님 국물 말고 보증금을 챙기세요⁠」

“⁠재개발 아니에요⁠, 이모⁠. 토끼 사러 온 거예요⁠.⁠”

“⁠토끼를 상자째로⁠?⁠” 말선이 혀를 찼다⁠. “⁠근데 해나야⁠, 저 양반 어디서 봤는데⁠. 얼굴이 낯이 익어⁠. 우리 시장 사람 얼굴이야⁠.⁠”

“⁠폭신컴퍼니래요⁠. 성수동⁠.⁠”

“⁠성수동 사람 얼굴이 아니던데⁠.⁠”

말선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갔다⁠. 슬아는 떡볶이를 집어 먹으며 휴대전화로 다른 화면을 띄웠다⁠. 해외 중고 사이트였다⁠. 영어로 쓴 글 아래에 솔기 토끼 사진이 붙어 있었다⁠. 「⁠Korean guardian rabbit / handmade / $380⁠」

“⁠바다 건너서도 팔린다⁠. 너 이제 수출 기업이야⁠.⁠”

“⁠주인 없는 토끼가 수출되는 거지⁠.⁠”

“⁠월세는 우리가 내는데 돈은 남이 번다⁠.⁠” 슬아가 떡을 하나 더 집었다⁠. “⁠공방 월세 다음 달부터 이백이야⁠. 건물주가 문자 보냈어⁠. 하루 열 개에 삼만 원이면 한 달에 얼마인지 알지⁠?⁠”

해나는 알았다⁠. 재료비와 월세를 빼면 슬아에게 주는 돈이 겨우 남았다⁠. 해나 몫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해나는 떡볶이 접시를 슬아 앞으로 밀었다⁠.

“⁠다 먹어⁠. 오늘 밤에 걸어야 하니까⁠.⁠”

*

밤 열두 시 오십 분⁠, 홍대 뒷골목의 술집 뒷문 앞은 맥주 상자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해나와 슬아는 맞은편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삼각김밥을 하나씩 먹었다⁠. 해나의 손끝이 김에 닿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골목 위로 간판 불빛이 번졌고⁠, 취한 대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슬아가 김밥을 씹다 말고 해나의 팔을 쳤다⁠.

뒷문이 열리고 새내기가 나왔다⁠. 앞치마를 벗어 가방에 쑤셔 넣으며 휴대전화를 보았다⁠. 해나가 일어나 길을 건넜다⁠. 새내기는 해나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얼굴이 먼저 빨개졌다⁠.

“⁠사장님⁠.⁠”

해나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체육복 귀 토끼를 꺼냈다⁠. 새내기의 눈이 토끼에 닿았다가 바닥으로 내려갔다⁠.

“⁠고시원 월세가 삼십팔만 원인데요⁠. 이번 달에 알바비가 밀렸어요⁠. 엄마한테는 말 못 하고⁠. 앱에 올렸더니 십 분 만에 팔렸어요⁠. 삼십만 원에요⁠.⁠”

“⁠그래서 팔았어요⁠?⁠”

“⁠그럼 어떡해요⁠? 쫓겨난다고요⁠.⁠”

새내기의 목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해나는 토끼를 내밀었다⁠. 새내기는 손을 뻗지 않았다⁠.

“⁠저 그 돈 다 썼어요⁠. 못 갚아요⁠.⁠”

“⁠안 갚아도 돼요⁠. 산 사람이 저 주고 갔어요⁠.⁠”

“⁠왜요⁠?⁠”

“⁠사십이만 원 주고 산 걸 개한테 쫓기면서 확인했대요⁠.⁠”

새내기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슬아를 보았다⁠. 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새내기는 비로소 토끼를 받았다⁠. 손에 닿는 순간 별이 아주 작게 반짝였다⁠. 해나의 손끝에도 별의 열이 옮겨 왔다⁠. 주인 손으로 돌아온 별이었다⁠.

“⁠가방 손잡이에요⁠. 주머니 말고⁠.⁠”

새내기가 토끼를 가방 손잡이에 달았다⁠. 셋은 같이 걸었다⁠. 해나는 새내기가 지난달에 말해 준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술집 뒷문에서 오른쪽⁠, 코인 빨래방 앞을 지나 굴다리 밑으로⁠. 굴다리를 지나면 합정까지 가로등이 띄엄띄엄했다⁠.

굴다리 입구에서 슬아가 걸음을 늦췄다⁠.

“⁠해나야⁠. 뒤에⁠.⁠”

해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발소리를 들었다⁠. 셋의 발소리 뒤에 하나가 더 있었다⁠. 무겁고 질질 끌리는 걸음이었다⁠. 술집에서부터 따라온 걸음이었다⁠.

“⁠가게 단골이에요⁠.⁠” 새내기가 속삭였다⁠. “⁠매일 제 퇴근 시간에 와요⁠. 번호 달라고 하고⁠.⁠”

굴다리 안은 형광등이 하나 깜빡거렸다⁠. 발소리가 빨라졌다⁠. 남자의 목소리가 굴다리 벽에 부딪혀 울렸다⁠.

“⁠야⁠, 학생⁠. 같이 가자니까⁠. 오늘은 친구들도 데려왔네⁠?⁠”

새내기의 가방 손잡이에서 토끼가 흔들렸다⁠. 해나의 손끝이 먼저 뜨거워졌다⁠. 토끼의 체육복 귀가 쫑긋 일어났다⁠. 가슴의 별에서 금빛 실 한 가닥이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실은 새내기의 어깨를 넘어 뒤로 날아가 남자의 발목을 두 바퀴 감고⁠, 남자의 신발 끈을 서로 묶은 뒤⁠, 순식간에 별로 돌아왔다⁠. 눈 깜빡할 사이였다⁠.

남자가 한 발을 내딛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굴다리 벽에 기대 쌓아 둔 쓰레기 봉투 더미로 정확히 머리부터 들어갔다⁠. 봉투 하나가 터지면서 치킨 뼈가 쏟아졌다⁠.

“⁠아⁠, 씨⁠, 뭐야⁠!⁠”

남자가 봉투 더미에서 허우적거렸다⁠. 신발 끈이 묶여 일어나지 못했다⁠. 해나는 손목의 바늘꽂이를 앞으로 내밀고 남자 앞을 막았다⁠. 바늘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였다⁠. 무기라고 하기엔 우스운 물건이었지만 해나의 목소리는 우습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따라오시면 경찰이 와요⁠.⁠”

“⁠벌써 불렀어⁠.⁠” 슬아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말했다⁠. “⁠네⁠, 합정 굴다리요⁠. 쓰레기 더미에 남자 하나 있어요⁠. 네⁠, 치킨 뼈요⁠.⁠”

남자는 끈을 풀려고 낑낑대다가 욕을 하며 굴다리 반대편으로 기어갔다⁠. 새내기는 가방 손잡이의 토끼를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토끼는 아직 따뜻했다⁠. 귀가 천천히 내려갔다⁠.

*

새내기를 고시원 계단 아래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해나의 휴대전화가 떨렸다⁠. 새벽 한 시 사십 분이었다⁠. 무탁의 메시지였다⁠.

「⁠누나 죄송해요 저 영상 올렸어요⁠」

「⁠안 올린다고 했는데 오늘 엄마가 토끼 받고 울어서 그만⁠」

「⁠근데 누나 조회수가 좀 이상해요⁠」

해나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메시지 아래로 링크가 하나 붙어 있었다⁠. 미리 보기 사진에서 헬멧 카메라 화면 한가운데로 금빛 실 한 가닥이 번쩍였다⁠. 숫자는 해나가 보는 사이에도 바뀌고 있었다⁠. 사십만⁠. 사십이만⁠. 사십오만⁠.

슬아가 해나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고⁠,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망했다⁠. 아니⁠, 떴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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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예담2026.10.31· 2화

    귀 색깔이 다 다른 토끼들이 상자 안에서 엉켜 있는 장면, 손으로 만든 인형이라 더 짠했어요.

    • 연채온작가2026.11.01

      해나 씨가 남은 천으로 귀를 하나씩 달았어요. 그래서 되팔린 토끼를 보면 어느 집 천인지 다 압니다.

되판 토끼 ·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