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70자)

어느 길로 가세요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연채온

꽃무늬 몸뻬의 무릎 자리는 하도 닳아서 손끝으로 쓸면 보풀이 먼저 일어났다⁠. 봉해나는 바늘 끝으로 올 하나를 걸어 천천히 당겼다⁠. 분홍 바탕에 노란 국화가 박힌 천에서 실이 한 뼘 풀려 나왔고⁠, 풀려 나온 실에는 아직 사람의 체온 비슷한 것이 남아 있었다⁠. 오래 입은 옷은 다 그랬다⁠. 새 천은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헌 천은 손끝을 잡았다⁠.

“⁠사장님⁠, 그거 우리 엄마 십 년 입은 거예요⁠. 시장 바닥에서 십 년⁠.⁠”

작업대 맞은편의 낮은 의자에 공무탁이 앉아 있었다⁠. 키가 백구십에 어깨가 문틀만 한 남자가 어린이 의자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서⁠, 헬멧을 품에 안고 있었다⁠. 배달 가방은 문 앞에 내려 두었다⁠. 오후 햇빛이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와 무탁의 헬멧에 붙은 스티커들을 비췄다⁠. 「⁠초보 아님⁠」「⁠무서운 거 아님⁠」「⁠안전 운전⁠」

“⁠십 년이면 실이 말을 잘 들어요⁠.⁠”

“⁠실이 말을 들어요⁠?⁠”

“⁠제 말은 안 듣고요⁠. 어머님 말을 들어요⁠.⁠”

무탁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아듣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작업대 끝에서 토끼 귀를 오리던 구슬아가 가위를 멈추지 않고 말했다⁠.

“⁠무탁 씨⁠, 그냥 끄덕이지 말고 모르면 모른다고 해⁠. 해나 말은 원래 절반이 바느질이야⁠.⁠”

해나는 웃지 않고 턱 위로 짧게 자른 검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연한 분홍 머리핀이 귀 위에서 미끄러졌다⁠. 베이지 앞치마 주머니에서 나무 실패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실패였다⁠. 할머니가 망원시장에서 사십 년 수선집을 하면서 쥐던 것이라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고⁠, 실패에 감긴 금실이 햇빛을 받아 꿀 색으로 번졌다⁠. 해나는 금실 한 가닥을 뽑아 몸뻬에서 푼 실과 나란히 쥐었다⁠. 엄지와 검지로 두 가닥을 비비면서 꼬았다⁠. 꼬는 동안 손가락 사이가 데워졌다⁠. 분홍 실이 금실에 감겨 들어가 한 바퀴⁠, 두 바퀴 돌 때마다 색이 빠지고 금빛이 번졌다⁠. 다 꼬고 나자 한 가닥이 남았는데⁠, 처음 뽑은 금실보다 두 배는 길었다⁠.

해나는 남은 끝을 실패에 도로 감았다⁠. 실패는 지난봄 공방을 열 때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도톰해져 있었다⁠. 할머니는 이 실이 남의 헌 옷을 먹고 큰다고 했다⁠. 쓸수록 불었다⁠.

*

“⁠이제 어머님 이야기 해 주세요⁠.⁠”

해나가 바늘에 금실을 꿰며 말했다⁠. 크림색 토끼 몸통은 이미 다 지어 두었다⁠. 한쪽 귀는 몸뻬 천으로 달았고⁠, 단추 눈 두 개도 붙였다⁠. 남은 것은 가슴의 별 하나였다⁠.

“⁠밤에 어느 길로 가세요⁠?⁠”

“⁠엄마는 밤에 안 다녀요⁠. 새벽에 다녀요⁠. 네 시 반에 나가요⁠.⁠”

“⁠그럼 새벽에 어느 길로 가세요⁠?⁠”

무탁이 헬멧을 고쳐 안았다⁠.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집이 망원 유수지 옆 빌라예요⁠. 현관 나오면 왼쪽으로 돌아요⁠. 편의점 지나서 철물점 지나서⁠, 철물점 앞에 화분 엄청 많아요⁠. 엄마가 거기서 맨날 남의 화분 상추 잎 만져 보고 가요⁠. 그다음에 가로등 하나 나간 데가 있어요⁠. 거기 지날 때 엄마가 노래를 불러요⁠. 무서우니까⁠.⁠”

“⁠무슨 노래요⁠?⁠”

“⁠트로트요⁠. 제목은 몰라요⁠. 「⁠내 나이가 어때서⁠」 비슷한데 가사를 엄마가 다 바꿔 불러요⁠. 내 김밥이 어때서⁠.⁠”

슬아가 가위질을 멈추고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해나는 바늘을 천에 대고 첫 땀을 놓았다⁠. 무탁의 목소리를 따라 머릿속에서 새벽 네 시 반의 망원동을 걸었다⁠. 빌라 현관의 센서 등이 켜졌다⁠. 왼쪽으로 돌았다⁠. 편의점 유리문 안의 형광등⁠, 철물점 앞 화분들⁠, 상추 잎⁠. 손끝으로 상추 잎의 솜털을 만지는 것처럼 바늘이 천을 뚫었다⁠. 가로등 하나가 꺼진 자리에서는 바늘이 조금 느려졌다⁠. 해나는 거기서 가사를 바꾼 트로트를 들었다⁠. 내 김밥이 어때서⁠. 들은 적 없는 목소리가 귀 안쪽에서 흥얼거렸다⁠.

“⁠시장 뒷문으로 들어가요⁠. 김밥집 셔터 올리는 소리 나면 끝이에요⁠.⁠”

해나는 별의 다섯 번째 꼭짓점을 마무리했다⁠. 셔터가 드르륵 올라가는 소리를 머릿속으로 들으며 매듭을 지었다⁠. 사십 분이 지나 있었다⁠. 손끝이 따뜻했다⁠. 금실로 놓은 작은 별이 크림색 가슴 위에서 햇빛을 머금었다⁠.

“⁠어머님 가방 손잡이에 달아 드리세요⁠. 주머니 말고 손잡이요⁠. 남한테 주시면 안 되고요⁠.⁠”

“⁠사장님⁠, 이거 진짜 그거 해요⁠? 제 거처럼⁠?⁠”

해나는 대답하지 않고 토끼를 무탁의 손바닥에 올렸다⁠. 덩치 큰 손바닥 위에 토끼가 장난감처럼 작았다⁠. 무탁은 토끼를 들여다보다가 헬멧 옆에 매단 자기 토끼를 만졌다⁠. 무탁의 토끼는 한쪽 귀가 형광 주황이었다⁠. 배달 조끼에서 오려 낸 천이었다⁠.

“⁠지난주에요⁠, 제가 말씀 안 드렸죠⁠. 한강 둔치 길에서 신호 무시한 트럭이 들어왔거든요⁠. 제가 그냥 직진했으면 끝났어요⁠. 근데 얘가 뜨거워지더니⁠, 진짜 뜨거웠어요⁠, 핫팩처럼⁠. 그러고 뭐가 번쩍하더니 핸들이 혼자 꺾였어요⁠. 제가 꺾은 거 아니에요⁠. 저 그때 눈 감았어요⁠.⁠”

“⁠운전하면서 눈을 감으면 어떡해요⁠?⁠”

“⁠개무서웠으니까요⁠.⁠”

슬아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무탁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내밀었다⁠.

“⁠헬멧 카메라에 다 찍혔어요⁠. 금색 실 같은 게 튀어나와서 핸들을 감았다가 쏙 들어가요⁠. 이거 올리면 대박 날 거 같은데⁠.⁠”

“⁠올리지 마세요⁠.⁠”

해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빨랐다⁠. 무탁이 휴대전화를 거두었다⁠.

“⁠네⁠. 안 올려요⁠. 그냥 갖고만 있을게요⁠.⁠”

*

무탁이 나가고 나서 슬아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공방 계정에 들어온 후기를 소리 내어 읽었다⁠. 슬아는 남의 글을 읽을 때 늘 뉴스 앵커 목소리를 냈다⁠.

「⁠솔기 토끼 달고 다닌 지 일주일⁠. 어제 골목에서 누가 따라오는데 그 사람 신발 끈이 혼자 묶였어요⁠. 진짜예요⁠. 넘어지는 거 봤어요⁠」

「⁠토끼가 뜨거워서 꺼내 봤더니 귀가 서 있었어요⁠. 그 순간 위에서 화분이 떨어짐⁠. 한 걸음 뒤에서 깨짐⁠」

「⁠사장님 이거 무슨 원리예요⁠? 우리 엄마 것도 하나 더 사고 싶어요 ㅠㅠ⁠」

“⁠이달에만 후기가 아홉 개야⁠. 너 이러다 망원동 무당 소리 듣는다⁠.⁠”

“⁠무당은 부적을 써⁠. 나는 바느질을 하고⁠.⁠”

“⁠무당도 요즘 바느질해⁠. 부적 키링 팔아⁠.⁠”

슬아는 휴대전화를 내리고 다른 화면을 띄웠다⁠. 뉴스 앱이었다⁠. 「⁠귀갓길 안심 서비스 신청⁠, 올해 들어 두 배로⁠」 기사 사진 속 경찰이 밤의 골목에서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슬아는 화면을 해나 앞에 밀어 놓았다⁠.

“⁠다들 무서운 거야⁠. 우리 토끼는 하루에 열 개고⁠.⁠”

해나는 대답 대신 귀 조각을 하나 집어 시접을 접었다⁠. 하루 열 개는 해나가 정한 숫자가 아니었다⁠. 손이 정한 숫자였다⁠. 열 번째 별을 놓고 나면 남의 길이 머릿속에서 흐려졌다⁠. 열한 번째 별은 땀이 비뚤어졌고⁠, 비뚤어진 별은 아무도 지키지 않았다⁠. 할머니도 하루 열 개를 넘기지 않았다⁠.

창밖 골목 맞은편에서 떡볶이집 문이 열렸다⁠. 상인회장 길말선이 앞치마 바람으로 평상에 어묵 꼬치를 늘어놓다가 공방 창을 향해 소리쳤다⁠.

“⁠해나야⁠! 오늘 별 몇 개 놨어⁠?⁠”

“⁠일곱 개요⁠!⁠”

“⁠나는 떡 칠백 개 썰었다⁠! 너는 손이 느려서 돈을 못 벌어⁠!⁠”

“⁠이모는 손이 빨라서 떡이 다 퍼져요⁠!⁠”

말선은 깔깔 웃으며 어묵 국물에 파를 한 줌 던졌다⁠.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말선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소리를 했다⁠. 할머니는 말선이 소리칠 때마다 「⁠떡은 퍼져도 먹지⁠, 별은 퍼지면 못 써⁠」라고 받아쳤다⁠. 해나는 할머니의 대꾸를 아직 입 밖에 내지 못했다⁠.

*

다섯 시 오십 분⁠, 문에 단 방울이 울렸다⁠. 해나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남자는 이미 문턱을 넘어와 있었다⁠. 회색 정장에 넥타이 없이 흰 셔츠⁠, 서른 후반쯤 된 얼굴이었다⁠. 왼손에 가죽 명함 지갑을 들었고⁠, 들어오자마자 공방을 한 바퀴 훑었다⁠. 벽의 실 선반⁠, 창가의 천 조각 무더기⁠, 할머니의 발틀 재봉틀⁠. 눈이 물건마다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값을 매기는 눈이었다⁠.

“⁠봉해나 사장님이시죠⁠. 폭신컴퍼니 캐릭터 사업부장 피승진입니다⁠.⁠”

명함이 작업대 위에 놓였다⁠. 분홍 바탕에 동그란 곰 얼굴이 박혀 있었다⁠. 슬아가 명함을 보더니 가위를 내려놓았다⁠. 폭신컴퍼니는 슬아가 공채에 세 번 떨어진 회사였다⁠.

“⁠저희 오늘 영업 끝났는데요⁠.⁠”

“⁠압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손님 줄 때는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

승진은 창가의 견본 토끼를 가리켰다⁠. 한쪽 귀만 파란 토끼였다⁠. 할머니의 파란 작업복을 잘라 단 귀였다⁠.

“⁠후기 다 봤습니다⁠. 아홉 개요⁠. 저희 팀이 지난 한 달 동안 망원동 일대에서 들어온 신고도 살펴봤고요⁠. 솔기 토끼를 단 분들이 이상하게 다치질 않으세요⁠.⁠”

“⁠귀여워서 조심히 다니시나 봐요⁠.⁠”

“⁠그럴 수도 있죠⁠.⁠” 승진은 웃지 않았다⁠. “⁠사장님⁠, 공방을 사고 싶습니다⁠. 토끼 도안하고 만드는 방법까지요⁠. 삼억 드리겠습니다⁠. 사장님은 고문으로 모시고요⁠. 저희 김포 공장에서 같은 토끼를 하루 만 개씩 찍겠습니다⁠.⁠”

슬아의 손에서 귀 조각이 떨어졌다⁠. 해나는 바늘을 바늘꽂이에 꽂았다⁠. 손목에 찬 바늘꽂이가 바늘 하나만큼 무거워졌다⁠.

“⁠안 팔아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토끼는 공장에서 못 만들어요⁠.⁠”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가 작년에 만든 키링이 사백만 개예요⁠. 일본하고 미국에서 지금 키링 시장이 해마다 두 배로 커집니다⁠. 귀여운 건 국경이 없어요⁠.⁠” 승진은 견본 토끼를 집어 들지 않고 손끝으로 귀만 건드렸다⁠. “⁠근데 저는 귀여워서 온 게 아닙니다⁠.⁠”

“⁠그럼요⁠?⁠”

“⁠사장님 손으로는 하루 열 개죠⁠. 열 명이요⁠. 오늘 밤 서울에서 어두운 길로 집에 가는 사람이 몇인지 아세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수십만이겠죠⁠. 사장님이 열 명을 지키는 동안 나머지는 줄도 못 섭니다⁠. 다치는 사람은 줄을 안 서요⁠.⁠”

해나는 대꾸할 말을 찾았다⁠. 찾은 말이 없었다⁠. 승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공방 문을 닫을 때마다 해나가 혼자 되씹던 말을 승진이 그대로 꺼냈을 뿐이었다⁠.

“⁠공장에서 찍으면 안 지켜요⁠.⁠”

“⁠해 보지도 않고요⁠?⁠”

“⁠할머니가 해 봤어요⁠.⁠”

입에서 나온 말을 해나는 주워 담지 못했다⁠. 할머니가 해 봤는지 해나는 몰랐다⁠. 다만 할머니는 평생 하루 열 개를 넘기지 않았고⁠, 이유를 묻는 해나에게 「⁠별이 퍼진다⁠」고만 했다⁠. 퍼진다는 말을 어린 해나는 떡볶이 이야기로 들었다⁠.

승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생각 바뀌시면 연락 주세요⁠. 저는 다음 주에 또 오겠습니다⁠. 바뀌지 않으셔도 옵니다⁠.⁠”

승진은 돌아서다가 작업대 위에 놓인 나무 실패를 보았다⁠. 해나가 미처 앞치마에 넣지 못한 실패였다⁠. 승진이 실패를 집어 들었다⁠. 해나가 일어나기도 전에 승진은 엄지로 실패의 둥근 모서리를 한 번 쓸었다⁠. 닳은 자리를 정확히 아는 손놀림이었다⁠.

“⁠봉차옥 여사님 실패네요⁠.⁠”

해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할머니 이름은 공방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간판에도⁠, 계정에도⁠, 명함에도⁠.

승진은 실패를 작업대에 도로 내려놓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문을 열고 나갔다⁠. 방울이 한 번 울렸다⁠. 골목 맞은편 평상에서 말선이 어묵 꼬치를 든 채 승진의 뒷모습을 오래 쳐다보았다⁠.

해나는 실패를 집어 앞치마 깊숙이 넣었다⁠. 나무가 손바닥에 닿자 승진의 엄지가 쓸고 간 자리가 아직 미지근했다⁠. 할머니가 쥐던 자리를 남의 손이 알고 있었다⁠. 해나는 손바닥의 미지근함을 떨치려고 바늘꽂이의 바늘을 하나씩 뽑아 다시 꽂았다⁠.

“⁠해나야⁠.⁠”

슬아가 작업대 위의 분홍 명함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명함이 해나 앞까지 미끄러져 왔다가⁠, 슬아의 손가락에 다시 끌려갔다⁠.

“⁠이거 버린다⁠?⁠”

“⁠버려⁠.⁠”

슬아는 명함을 반으로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쓰레기통은 작업대 바로 옆에 있었다⁠. 해나는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골목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다⁠. 오늘 놓은 별 일곱 개의 주인들이⁠, 저마다 들려준 길로 집에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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