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03자)
따뜻하기만 한 토끼
주인을 지키는 키링 인형 · 연채온
11월 4일 목요일 오후, 무탁은 공방 창가에 휴대전화를 세우고 휴대전화 앞에 의자 하나를 놓았다. 의자 뒤로 실 선반이 보이게 각도를 맞추고, 창으로 드는 햇빛이 해나의 얼굴 반쪽에 닿게 의자를 두 뼘 밀었다. 배달할 때와 다른 사람이었다.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해나를 들여다보았다.
“누나, 앉아 보세요. 아니, 조금 왼쪽. 아니, 오른쪽. 그 자리요. 머리핀 보이게요.”
“머리핀은 왜요?”
“사람들이 머리핀으로 누나 알아봐요. 머리핀이 누나 얼굴이에요.”
해나는 의자에 앉아 앞치마를 두 번 털었다.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화면에 무탁이 만든 표가 떠 있었다. 무탁이 녹화 단추를 눌렀다. 빨간 불이 켜졌다.
“안녕하세요. 망원동 솔기 봉해나입니다.”
해나는 거기서 멈췄다.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빨간 불이 해나를 보고 있었다. 무탁이 휴대전화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누나, 숨 쉬세요.”
“쉬고 있어요.”
“그게 쉬는 거면 저는 지금 죽은 거예요.”
해나는 웃음이 터졌다. 무탁이 녹화를 끊고 다시 눌렀다. 두 번째에도 해나는 첫 문장에서 멈췄다. 세 번째에 해나는 카메라를 보지 않고 작업대 위의 실패를 보았다. 실패를 보면서 말하자 말이 나왔다.
“공장 토끼는 따뜻해요. 만 마리가 다 똑같이 따뜻해요. 그래서 한 사람을 못 지켜요. 한 사람이 위험할 때 만 마리가 한꺼번에 귀를 세우고, 열이 만 군데로 흩어져요. 세 시 십사 분에 귀가 선 날, 대전에서 한 분이 다치셨어요. 그분도 가디언을 달고 있었어요.”
해나는 노트북을 카메라 앞으로 돌려 표를 보였다. 시각 세 줄, 사고 세 건.
“토끼를 믿고 어두운 길로 들어가지 마세요. 공장 토끼를 단 분도, 제 토끼를 단 분도요. 제 토끼도 열한 번째부터는 아무도 못 지켜요.”
녹화가 끝났다. 무탁은 휴대전화를 내리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해나를 보았다.
“누나, 이번엔 누나가 올리라고 하는 거죠?”
“네.”
“제가 올리면 또 저 때문이 되잖아요. 이번엔 누나 때문이에요.”
“네. 저 때문이에요.”
무탁은 올리기 단추를 눌렀다.
*
밤 열 시, 영상은 팔십만 회를 넘겼다. 댓글이 쉬지 않고 붙었다. 무탁은 공방 바닥에 엎드려 댓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슬아가 읽던 앵커 목소리를 흉내 내려다 실패했다.
「원조가 질투하는 거 아님? ㅋㅋㅋ」
「그럼 너네 토끼 줄 서서 사라는 거임? 하루 열 개라며」
「장사 방해 고소각」
「대전 친구입니다. 영상 고마워요. 친구가 이 영상 보고 울었어요」
「솔직히 따뜻하기만 해도 좋은데요. 혼자 사는데 손난로 하나 생긴 기분」
「표 만든 사람 엑셀 처음 써 본 거 티 남」
“누나, 마지막 거 저 욕하는 거예요?”
“칭찬이에요.”
“아닌 거 같은데.”
상인회 단톡방도 시끄러웠다. 무탁이 해나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읽었다.
「꽃집: 체험관 손님들이 저희 꽃을 많이 사 가요. 솔기 사장님 영상은 좀 무서운데요 ㅠ」
「철물점: 공장 토끼도 장사고 솔기 토끼도 장사지. 남의 장사 막는 건 아닌 듯」
「세탁소: 우리 딸은 솔기 거 달고 다님. 공장 거는 버리라고 했음」
「빌라 주민 대표: 골목이 조용해져서 좋았는데 또 시끄러워지겠네요」
「분식 길말선: 다들 조용히 해. 해나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떡볶이 먹으면서 보자. 내일 국물 공짜」
「철물점: 회장님은 맨날 공짜래」
“이모 편이에요, 누나.”
“이모는 떡볶이 편이에요.”
*
11월 8일 월요일 오전, 우체부가 등기 우편을 들고 왔다. 해나는 서명란에 이름을 쓰고 봉투를 받았다. 봉투 겉에 「내용증명」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보낸 곳은 폭신컴퍼니 법무팀이었다. 해나가 봉투를 열기도 전에 말선이 평상에서 건너와 봉투를 낚아챘다.
“내가 읽어 줄게. 나 이런 거 잘 읽어. 우리 가게 건물주가 삼 년마다 보내.”
말선은 돋보기를 꺼내 쓰고 종이를 펼쳤다. 상인회 회의 때 쓰는 목소리를 냈다.
“귀하가 게시한 영상은 당사 제품 별토끼 가디언에 대하여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당사의 명예와 업무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므로… 영상을 즉시 삭제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 오억 원을…” 말선이 돋보기를 내렸다. “오억? 떡볶이 몇 그릇이야?”
“이모.”
“오십만 그릇. 내가 지금 막 해 봤어.” 말선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해나의 앞치마 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겁먹지 마. 건물주도 맨날 이렇게 써. 쓰는 사람이 더 겁나서 쓰는 거야.”
해나는 앞치마 주머니의 종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실패 옆에 놓인 종이가 실패보다 무거웠다.
*
같은 날 오후 다섯 시, 승진이 공방 문간에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문턱에 선 채 방울이 울리지 않게 문을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회색 정장이었다. 얼굴이 지난주보다 야위어 있었다.
“들어오세요.”
“여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 안 걸려요.” 승진은 해나의 앞치마 주머니에 꽂힌 종이 끝을 보았다. “받으셨네요. 제가 막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업부장님이 보내신 거 아니에요?”
“법무팀이 보냈습니다. 대표님이 시키셨고요.” 승진은 문틀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안을 하나 드리러 왔습니다. 영상을 내려 주시면 2차 상자마다 경고 문구를 넣겠습니다. 「가디언은 보조 용품입니다. 밤길에서는 늘 주위를 살피세요」 대전 피해자분께는 회사가 치료비를 드립니다. 내용증명도 거두게 하겠습니다. 대표님 설득은 제가 하겠습니다.”
“상자 글씨는 아무도 안 읽어요.”
“영상도 아무도 안 믿습니다. 원조가 질투한다고들 하잖아요.” 승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이 오억 원짜리 소송에 끌려가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장님 손은 별 놓는 데 써야지 법원 서류에 이름 쓰는 데 쓰시면 안 돼요.”
“그럼 2차를 멈추세요.”
“그건 못 합니다.”
“그럼 저도 못 내려요.”
둘 사이에서 문틀이 삐걱거렸다. 골목 맞은편 체험관에서 직원이 토끼 귀 머리띠를 쓰고 셔터를 내렸다. 승진은 체험관을 돌아보지 않았다.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됩니까?”
“네.”
“사장님은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세요?”
해나는 대답하기 전에 오래 생각했다. 승진의 설문이 떠올랐다. 팔십칠 퍼센트. 덜 무섭게 집에 간 만 명.
“틀린 게 아니고요. 모자라요.”
승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고개가 무거웠다. 승진이 문에서 손을 떼자 방울이 한 번 울렸다.
*
11월 10일 수요일 오후, 대전에서 여자 하나가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영상 댓글에 「대전 친구입니다」라고 썼던 사람이었다. 스물두 살, 다친 친구와 같은 과 동기였다. 여자는 줄 맨 끝에 붙어 있다가, 해나가 길을 물으러 나오자 줄에서 한 걸음 나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 과 이름이 박힌 남색 점퍼가 들어 있었다.
“친구 거예요. 병원에서 빌려 왔어요. 친구는 아직 못 걸어요. 저 대신 친구 거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친구분이 직접 길을 말해 주셔야 돼요.”
여자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영상 통화 화면에 병원 침대에 누운 얼굴이 떴다. 목에 보호대를 하고 있었다. 화면 속 친구가 해나를 보고 힘없이 웃었다.
“사장님 영상 봤어요. 저 그날 이어폰 꼈어요. 가디언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고요. 바보 같죠?”
“안 바보 같아요.”
“퇴원하면요, 학교 후문에서 원룸까지 걸어요. 편의점 두 개 지나고, 횡단보도 하나 건너요. 거기서 다쳤어요. 이제 거기 건널 때 이어폰 뺄 거예요.”
해나는 점퍼 소매 끝에서 올을 풀었다. 영상 통화를 켜 둔 채 사십 분 동안 대전의 학교 후문에서 원룸까지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바늘을 멈추고, 화면 속 친구가 이어폰을 빼는 모습을 그렸다. 별을 다 놓고 토끼를 화면 앞에 들어 보이자 친구가 울었다. 친구를 따라 올라온 여자도 울었다. 줄 선 사람들 가운데 몇이 고개를 돌렸다.
해나는 토끼를 여자에게 건네며 한 가지를 부탁했다. 퇴원하는 날 친구 손에 직접 쥐여 주라고. 여자는 토끼를 품에 안고 막차를 타러 갔다. 해나는 수요일 아홉 번째 별에서 손을 놓았다. 열 번째 손님에게는 내일 첫 번째로 오라고 했다.
*
11월 12일 금요일 저녁 일곱 시, 공방 뒷문이 두 번 두드려졌다. 뒷문은 쓰레기를 내놓을 때만 여는 문이었다. 해나가 문을 열자 슬아가 서 있었다. 폭신 사원증을 목에서 빼서 손에 쥐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너 뭐 해?”
“변장.”
“누구한테서?”
“모르지. 회사 사람들 이 동네 많이 와.” 슬아는 들어오지 않고 주머니에서 손톱만 한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이거.”
해나가 카드를 받았다. 차가웠다.
“3번 창고 실험 영상. 개발팀이 지난주에 찍은 거. 공장 마당에 실험용 골목을 만들어 놓고, 직원 하나가 가디언 달고 넘어지는 척했어. 그 순간 창고에 있던 만 마리가 다 귀를 세웠어. 직원 가방의 토끼는 따뜻해지기만 했고. 측정값까지 다 있어. 회사에서 지우라고 했는데 개발팀 언니가 나한테 줬어. 너 보여 주라고.”
“이거 올리면 되겠다.”
“아직 안 돼.” 슬아가 해나의 손목을 잡았다. 바늘꽂이가 슬아의 손바닥을 찔렀다. 슬아는 손을 떼지 않았다. “이거 나가면 개발팀 언니 잘려. 나도 잘리고. 내가 정할게. 이번 주 안에.”
“사람이 또 다치면?”
“알아. 그러니까 이번 주 안에.”
슬아는 해나의 어깨 너머로 공방 안을 보았다. 창가에 견본 토끼와 노란 체크 귀 토끼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슬아의 눈이 노란 귀에서 오래 머물렀다. 해나는 비켜서지 않았다. 들어오라고 하면 슬아가 그냥 갈 것을 알았다.
“너 그거 왜 창가에 뒀어?”
“네 거라며. 네 거 아니고.”
“말장난하지 마.” 슬아가 마스크를 고쳐 썼다. “나 다시 들어가 봐야 돼. 2차 상자 도안 마감이 오늘 밤이야.”
“야근해?”
“응. 2차 상자에 경고 문구 넣는 자리 만들래. 피 부장님이 시켰어. 글씨가 작아서 아무도 안 읽을 거래. 부장님이 그렇게 말했어.”
슬아는 사원증을 다시 목에 걸고 골목으로 걸어 나갔다. 해나는 메모리 카드를 실패 옆, 앞치마 주머니 깊은 곳에 넣었다. 카드와 실패가 주머니 안에서 부딪쳤다.
*
밤 열한 시 반, 해나는 공방 바닥의 요 위에서 열 번째 별을 놓은 손가락을 주무르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떨렸다. 슬아였다.
「야근 끝. 지하철 끊김」
「택시 잡히면 타고 아니면 걸어감. 뚝섬까지 이십 분」
「공장 토끼 있으니까 괜찮아. 내가 그린 귀 달린 거」
해나는 화면을 보다가 일어나 앉았다. 창가를 보았다. 노란 체크 귀 토끼가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 슬아의 별이었다. 슬아의 길을 아는 별이었다. 슬아는 지금 노란 귀의 별 없이 성수동에서 뚝섬까지 걷고 있었다.
해나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걷지 마. 택시」 손가락이 떨려서 오타가 났다. 지우고 다시 쓰는 사이, 화면 위로 알림이 하나 겹쳐 떴다. 무탁이 걸어 둔 알림이었다. 「가디언 귀 세움 · 방금 · 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