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29자)

석 달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패자 부활전 이튿날 아침⁠, 말희의 휴대전화는 충전기에 꽂혀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떨었다⁠. 기사 알림⁠, 단톡방⁠, 모르는 번호⁠. 「⁠예순두 살 금말희⁠, 패자 부활전 1위⁠」 「⁠1절만 부른 이유는⁠?⁠」 「⁠허공 할머니의 역습⁠」 마지막 기사 제목을 보고 말희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어젯밤 열 시 영상 통화는 짧았다⁠. 신호가 한참 가다가 우갑이 받았고⁠, 우갑은 숨이 차다며 오늘은 노래를 건너뛰자고 했다⁠. 석 달 만에 처음이었다⁠. 말희는 1위 기념으로 2절까지 부르겠다고 우겼고⁠, 우갑은 웃으면서 들었다⁠. 노래가 끝나자 우갑이 화면 밖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말희는 옆 침대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

말희는 누룽지 숭늉을 보온병에 담아 파주로 향했다⁠. 탑차는 집에 두고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할머니 둘이 말희를 알아보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하나는 장바구니 영수증 뒤에⁠, 하나는 손등에 받았다⁠.

*

솔미요양병원 1층 로비에서 말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염유준과 마주쳤다⁠. 유준 옆에 작가 하나가 작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었다⁠. 셋 다 서로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니가 여기 와 있노⁠?⁠”

유준은 피하지 않았다⁠. 작가에게 먼저 차로 가 있으라고 손짓하고 말희 앞으로 왔다⁠.

“⁠사연 영상 찍었습니다⁠. 남편분 동의 받았어요⁠. 서면으로요⁠.⁠”

말희는 보온병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숭늉이 안에서 출렁였다⁠.

“⁠내가 분명히 말했다⁠. 우리 남편 근처에 카메라 한 대라도 오믄 무대에서 내려온다고⁠.⁠”

“⁠남편분이 먼저 연락하셨어요⁠. 어젯밤에 작가한테요⁠. 내일 오라고⁠, 자기가 직접 말하겠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전화 기록 보여 드릴까요⁠?⁠”

유준이 휴대전화를 꺼내려 했다⁠. 말희가 손을 들어 막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보는 순간 사실이 되었다⁠.

“⁠그 영상 지워라⁠.⁠”

“⁠못 지워요⁠. 남편분 동의서가 있어요⁠. 선생님 동의서는 필요 없어요⁠. 출연자 가족 인터뷰는 가족 본인의 동의로 충분해요⁠.⁠”

“⁠니는 사람을 그래 찍나⁠? 죽어 가는 사람을⁠?⁠”

로비를 지나던 보호자 몇이 고개를 돌렸다⁠. 유준은 목소리를 낮췄다⁠. 말은 낮아졌는데 단어는 더 단단해졌다⁠.

“⁠선생님⁠, 남편분이 뭐라셨는지 아세요⁠? 자기 마지막 소원이 선생님 결승 무대 보는 거래요⁠. 결승 가려면 본선 세 라운드랑 준결승을 넘어야 해요⁠. 어제 1위는 시청자 투표 덕이었어요⁠. 심사위원 점수는 꼴찌였고요⁠. 본선은 심사위원 점수 비중이 더 커요⁠. 선생님 노래만으로는 못 올라가요⁠. 이 삼 분이 있어야 올라가요⁠.⁠”

“⁠그래서 남편 팔아서 올라가라꼬⁠?⁠”

“⁠남편분이 파신 거예요⁠. 선생님 대신에⁠.⁠”

말희는 말문이 막혔다⁠. 막혔다가 터졌다⁠. 영천 말이 쏟아졌다⁠.

“⁠니 같은 놈이 PD라꼬 앉아 있으니까 방송이 이 모양이다⁠! 노래는 노래로 듣고 사람은 사람으로 봐야지⁠, 니는 다 숫자로 보이제⁠? 우리 남편 얼굴도 숫자로 보이제⁠?⁠”

유준이 한참 말희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보여요⁠. 숫자로도 보이고 얼굴로도 보여요⁠. 둘 다 보이니까 찍은 거예요⁠. 저 그만두실 거면 지금 말씀하세요⁠. 본선 대진표에서 빼 드릴게요⁠.⁠”

말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준이 고개를 숙이고 로비 밖으로 나갔다⁠.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7월 열기가 한 번 훅 들어왔다 나갔다⁠.

“⁠남편분이 그러시던데요⁠.⁠”

자동문 밖에서 유준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 사람 절대 안 그만둔다고⁠.⁠”

*

4층 병실의 우갑은 침대 머리를 세우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말희가 들어오자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자⁠, 패자 부활전 1위⁠! 금⁠! 말⁠! 희⁠!⁠”

“⁠시끄럽다⁠.⁠”

말희는 보온병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우갑이 손을 내렸다⁠. 사회자 목소리를 접고 남편 목소리로 말했다⁠.

“⁠PD 만났구나⁠.⁠”

“⁠와 그랬노⁠?⁠”

“⁠당신이 안 할 거니까⁠. 당신은 나 팔아서 올라가느니 떨어지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판 거야⁠. 내 거니까 내가 팔지⁠.⁠”

“⁠당신 몸이 당신 거가⁠? 반은 내 거다⁠.⁠”

“⁠그럼 반만 판 거야⁠.⁠”

우갑이 웃었다⁠. 말희는 웃지 않으려고 숭늉을 따랐다⁠. 따르다가 손이 떨려 컵 밖으로 흘렸다⁠. 우갑이 휴지를 뽑아 탁자를 닦았다⁠. 손등의 핏줄이 지난주보다 더 도드라져 있었다⁠.

“⁠나 결승 보고 싶어⁠, 말희야⁠. 큰 무대에서 당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거⁠. 1절 말고 끝까지⁠.⁠”

말희는 어제 1절로 자른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말하면 저승사자 이야기를 해야 했고⁠, 저승사자 이야기를 하면 아픈 사람 앞에서 죽음 이야기를 해야 했다⁠.

“⁠생각해 볼게⁠.⁠”

“⁠생각하지 마⁠. 그냥 해⁠.⁠”

*

오후에 말희는 파주 금촌 경로당 팬 사인회에 갔다⁠. 오학주가 잡아 둔 자리였다⁠. 할머니 예순 명이 줄을 섰고⁠, 줄 끝은 경로당 대문 밖 골목까지 이어졌다⁠. 학주는 줄 맨 앞에서 번호표를 나눠 주었다⁠. 번호표는 이발소에서 쓰던 것이었다⁠. 「⁠능곡 이발관 대기 번호⁠」라고 찍혀 있었다⁠.

“⁠이발 기다리는 줄 알겠소⁠.⁠”

“⁠어르신들은 다 알아보오⁠. 번호표 보면 다들 줄을 잘 서오⁠.⁠”

할머니들은 사인을 받으면서 한마디씩 했다⁠. 남편은 좀 어떠냐⁠, 영감 아프면 노래가 더 잘 나온다⁠, 우리 영감은 노래를 못 들어서 일찍 갔다⁠. 말희는 사인을 하면서 웃었다⁠. 웃는 동안은 아침의 로비를 잊었다⁠.

마흔일곱 번째 할머니는 사인 대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 「⁠금말희 TV⁠」 채널이 떠 있었다⁠.

“⁠이거 구독 눌렀는데 왜 영상이 안 나와⁠?⁠”

말희가 돋보기를 쓰고 들여다보았다⁠. 할머니가 누른 것은 구독이 아니라 화면 밝기였다⁠. 화면이 새카맸다⁠. 말희가 밝기를 올려 주자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아이고⁠, 가수가 휴대전화도 고치네⁠.⁠”

“⁠삼십 년 행사 다니믄 앰프도 고치고 발전기도 고칩니더⁠.⁠”

“⁠우리 영감도 좀 고쳐 주지⁠.⁠”

할머니가 웃었다⁠. 줄 선 할머니들이 다 웃었다⁠. 말희도 웃다가 잠깐 웃음이 늦어졌다⁠. 고칠 수 없는 것이 하나 떠올라서였다⁠.

사인회가 끝날 무렵 학주가 말희 옆에 앉아 물었다⁠.

“⁠갓 선생 요새 어디 다니오⁠? 밤마다 아홉 시 반이면 사라지오⁠.⁠”

“⁠어르신한테도 그래요⁠?⁠”

“⁠어젯밤에 휴게소 호두과자 사 놓고 기다렸는데 안 왔소⁠. 열한 시 넘어 와서 냄새만 맡고 갔소⁠. 표정이 안 좋았소⁠.⁠”

말희는 사인펜 뚜껑을 닫았다⁠. 날마다 이 시각이면 가는 데⁠. 아홉 시 사십 분⁠, 경로당 뒷방에서 저승사자가 벽시계를 보던 얼굴이 떠올랐다⁠.

*

밤 아홉 시 오십 분⁠, 말희는 솔미요양병원 4층 복도에 서 있었다⁠. 오늘은 영상 통화 대신 얼굴을 보고 노래하려고 왔다⁠. 낮에 큰소리친 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손에는 우갑이 좋아하는 찹쌀 도넛 봉지가 들려 있었다⁠.

병실 문 앞에서 말희는 손잡이를 잡다가 멈췄다⁠. 문틈으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짝⁠, 짝⁠. 화투패를 바닥에 내려치는 소리였다⁠.

“⁠청단이오⁠.⁠”

낮은 목소리였다⁠. 종을 덮고 칠 때 같은 목소리⁠.

“⁠아이고⁠, 또 청단이야⁠? 당신 저승에서 화투만 쳤어⁠?⁠”

우갑의 목소리였다⁠.

“⁠쉰여섯 해를 기다리는 일만 했소⁠.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화투밖에 없소⁠.⁠”

“⁠자⁠, 똥 먹었다⁠! 피 두 장 내놔⁠.⁠”

말희는 문을 열었다⁠.

침대 위 식판 받침대에 군용 담요가 깔려 있고⁠, 담요 위에 화투패가 흩어져 있었다⁠. 우갑은 침대에 앉아 패를 쥐고 있었다⁠. 침대 맞은편 보호자 의자에 검은 갓이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화투패 다섯 장을 부채처럼 펴 든 채로⁠.

둘이 동시에 말희를 보았다⁠. 둘이 동시에 화투패를 내렸다⁠.

“⁠…⁠…당신⁠, 저 양반이 보여⁠?⁠”

우갑이 패를 담요 위에 엎었다⁠.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사회자는 늘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었다⁠. 우갑이 말을 고르는 것을 말희는 서른 해 동안 몇 번 보지 못했다⁠.

“⁠석 달 됐어⁠.⁠”

말희의 손에서 도넛 봉지가 떨어졌다⁠. 찹쌀 도넛 두 개가 병실 바닥을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저승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투패를 담요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갓을 고쳐 썼다⁠. 말희를 보지 않고 우갑을 보며 말했다⁠.

“⁠말씀드리리까⁠?⁠”

“⁠해⁠. 내가 하면 농담이 될 거 같아⁠.⁠”

저승사자가 말희를 향해 몸을 돌렸다⁠.

“⁠4월 초에 종이 울렸소⁠. 권우갑⁠. 첫날 밤 열 시에 한 번 불렀소⁠. 이튿날 밤 열 시에 두 번째로 불렀소⁠. 사흗날 밤 열 시에 세 번째를 부르려 했소⁠.⁠”

말희는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4월 초⁠, 우갑이 이 병원에 들어온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사흗날 밤 말희는 처음으로 영상 통화를 걸어 노래를 불러 주었다⁠. 우갑이 잠이 안 온다고 해서였다⁠.

“⁠당신 노래가 들렸소⁠. 두 번 부른 넋의 종은 첫 부름을 한 시각에만 울리오⁠. 이 사람은 밤 열 시였소⁠. 밤마다 열 시면 종이 울렸고⁠, 밤마다 열 시면 당신이 노래했소⁠. 석 달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았소⁠.⁠”

“⁠내가⁠…⁠…⁠.⁠”

“⁠당신 탓이 아니오⁠. 당신은 몰랐소⁠.⁠”

“⁠와 말 안 했노⁠? 처음 만난 날부터 노래 그만두라 카기만 하고⁠!⁠”

“⁠그래서 그만두라 했소⁠. 까닭은 이 사람이 말하지 말라 했소⁠.⁠”

말희가 우갑을 보았다⁠. 우갑은 화투패를 만지작거렸다⁠.

“⁠말하면 당신이 노래를 끊을 거잖아⁠. 그럼 나는 그날로 가는 거고⁠. 나는 당신 텔레비전 나오는 거 보고 가고 싶었어⁠. 그래서 이 양반한테 빌었지⁠. 화투 쳐 주면 말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

“⁠화투 때문이 아니오⁠.⁠”

저승사자가 낮게 말했다⁠. 우갑이 킥킥 웃었다⁠.

“⁠화투 때문이야⁠. 이 양반 화투 엄청 좋아해⁠. 지면 갓 끈을 막 잡아당겨⁠.⁠”

“⁠두 번 불린 넋은 그해 백중 자정 전에 세 번째 부름을 들어야 하오⁠. 백중은 음력 칠월 보름⁠, 죽은 이들에게 밥을 차리는 날이오⁠. 그날 밤 자정에 저승 문이 한 번 닫히오⁠. 그 전에 세 번째를 듣지 못하면 넋이 몸을 잃고 떠도오⁠.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병실 창밖으로 자유로의 차 소리가 지나갔다⁠. 말희는 의사가 처음에 말한 한 달을 떠올렸다⁠. 간호사가 말한 석 달을 떠올렸다⁠. 열 시만 되면 다른 방 어르신들도 귀를 세운다던 말을 떠올렸다⁠.

“⁠결승이 언젠지 아오⁠?⁠”

저승사자가 물었다⁠. 말희는 알았다⁠. 유준이 대진표와 함께 보낸 일정표에 적혀 있었다⁠. 8월 중순⁠, 결승 생방송⁠. 날짜 옆에 작은 글씨로 누군가 「⁠음력 7/15⁠」라고 적어 두었다⁠.

“⁠백중이다⁠.⁠”

우갑이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댔다⁠. 배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아까부터 아팠던 것을 화투로 참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당신 노래 들으면서 안 가려고 버틴 거야⁠.⁠”

우갑이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

“⁠결승까지만⁠.⁠”

복도 끝에서 시계가 열 시를 쳤다⁠. 저승사자의 허리춤에서 종이 맑게 울렸다⁠. 말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노래가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석 달 동안 이 시각이면 저절로 올라오던 노래였다⁠.

저승사자가 종을 쥐고 우갑의 머리맡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입을 열었다⁠. 첫 소리가 종소리를 타고 나오려는 찰나였다⁠.

말희의 입에서 노래가 먼저 나왔다⁠. 은순이도 반주도 없이⁠, 낮고 갈라진 소리로⁠. 「⁠곱빼기 인생⁠」 첫 소절이었다⁠.

저승사자의 입이 닫혔다⁠. 저승사자는 종을 놓고 한참 말희를 보다가 보호자 의자에 도로 앉았다⁠. 담요 위의 화투패 다섯 장을 다시 부채처럼 펴 들었다⁠. 우갑이 눈을 감고 이불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2박자였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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