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41자)

패자 부활전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노란 티셔츠 쉰 장이 별관 방청석 셋째 줄부터 일곱째 줄까지를 채웠다⁠. 가슴팍에 「⁠말희네 사랑방⁠」이라고 찍혀 있었다⁠. 오학주가 동대문 시장에서 맞춘 것이었다⁠. 등판 글씨는 「⁠본방사수⁠」여야 했는데 인쇄소에서 받침 하나를 빼먹어 「⁠본방사스⁠」가 되었다⁠. 학주는 고치지 않았다⁠. 사스든 수든 할머니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어르신⁠, 플래카드도 틀렸어요⁠.⁠”

말희가 대기실 문틈으로 방청석을 내다보며 말했다⁠. 일곱째 줄 할머니 둘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 「⁠금말희 결승가자 부활하라 영원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영원하라가 뭐 어떻소⁠?⁠”

“⁠사람한테 영원하라 카믄 무섭습니더⁠.⁠”

학주가 플래카드를 다시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문간에 서 있던 저승사자가 헛기침을 했다⁠. 영원이라는 말이 사자의 귀에는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셋째 줄 할머니 하나가 일어나 대기실 쪽으로 손짓했다⁠.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학주가 봉지를 받아 와 말희에게 내밀었다⁠. 콩떡이었다⁠. 봉지에 매직으로 「⁠목에 좋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콩떡이 목에 좋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예⁠.⁠”

“⁠할멈들 말로는 뭐든 목에 좋소⁠. 어제는 도라지⁠, 그제는 배즙⁠, 오늘은 콩떡이오⁠.⁠”

말희는 콩떡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목이 메었다⁠. 떡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는 따지지 않았다⁠.

대기실은 지난 예선 때보다 조용했다⁠.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들만 모여 있어서 다들 목을 아꼈다⁠. 말희는 금색 스팽글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앉아 립스틱을 덧발랐다⁠. 립스틱을 바르는 사이 차온이 대기실에 들어와 꾸벅 인사했다⁠. 본선 진출자라 오늘은 응원석에 앉는다고 했다⁠.

“⁠선생님⁠, 오늘 꼭 올라오세요⁠. 본선에서 제대로 붙어야죠⁠.⁠”

“⁠니는 와 남 걱정이고⁠. 니 숨이나 길게 쉬라⁠.⁠”

“⁠그거 옥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죠⁠?⁠”

말희가 거울 속 차온을 보았다⁠. 차온은 웃으며 나갔다⁠. 옥배가 차온에게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말희는 알지 못했다⁠.

*

생방송 한 시간 전⁠, 염유준이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헤드셋을 목에 걸고 있었다⁠. 말이 빨랐다⁠.

“⁠선생님⁠, 음향 쪽에서 요청이 왔어요⁠. 생방송이라 사고 대비로 음원을 깔아 두려고요⁠. 선생님 목소리 녹음한 거로요⁠. 마이크는 켜 두고⁠, 혹시 목이 안 나오거나 하울링이 나면 바로 음원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립싱크 하라는 기가⁠?⁠”

“⁠보험이에요⁠. 다들 그렇게 해요⁠. 지난 시즌에도 생방송 무대 절반은 음원 깔았어요⁠.⁠”

말희는 립스틱 뚜껑을 닫았다⁠. 딸깍 소리가 대기실에 크게 났다⁠.

“⁠다들 하믄 니도 해라⁠. 내는 안 한다⁠.⁠”

“⁠선생님⁠, 예선 때 사람 쓰러지신 거 기억하시죠⁠? 생방송에서 그런 일 생기면 저희는 화면을 돌릴 데가 없어요⁠. 음원이라도 깔려 있어야 노래가 안 끊겨요⁠.⁠”

“⁠노래는 안 끊긴다⁠. 내가 안 끊는다⁠.⁠”

“⁠선생님 목이 쉬면요⁠?⁠”

“⁠쉰 목으로 부른다⁠. 쉰 목도 내 목이다⁠.⁠”

유준이 헤드셋을 귀에 댔다가 뗐다⁠. 조정실에서 누가 유준을 찾고 있었다⁠. 유준은 말희를 한 번 더 보았다⁠. 설득을 포기한 얼굴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는 얼굴이었다⁠.

“⁠그럼 음원은 깔아만 두고 안 쓸게요⁠. 선생님 목이 멀쩡하면⁠.⁠”

“⁠멀쩡할 끼다⁠.⁠”

유준이 나가자 문간의 저승사자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얀 얼굴이 형광등 아래에서 더 하얬다⁠.

*

“⁠저 사람 말을 들으시오⁠.⁠”

“⁠당신까지 와 이라노⁠.⁠”

말희는 저승사자를 돌아보지 않고 거울만 보았다⁠. 거울 속에는 말희만 있었다⁠. 저승사자는 거울에 비치지 않았다⁠.

“⁠생방송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소⁠. 지금 부르는 노래가 지금 전국 텔레비전에 나간다는 것이오⁠.⁠”

“⁠그래⁠, 그기 생방송이다⁠.⁠”

“⁠당신 목소리가 살아서 나가는 동안은 그 소리가 닿는 데마다 내 부름이 묻히오⁠. 오늘 밤 이 방송을 켜 둔 집이 몇이오⁠? 병원 휴게실⁠, 요양원 거실⁠, 혼자 사는 노인의 안방⁠. 거기 누운 사람 가운데 오늘 밤 때가 된 사람이 있소⁠. 나 말고도 사자가 여럿 나와 있소⁠. 당신이 부르는 동안 우리는 아무도 못 부르오⁠.⁠”

말희의 손이 멈췄다⁠.

“⁠녹음은⁠?⁠”

“⁠녹음은 못 덮소⁠. 녹음된 소리에는 숨이 없소⁠. 숨 없는 소리는 종소리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오⁠. 재방송도 마찬가지요⁠. 그래서 저 PD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오⁠. 입만 벌리고 녹음을 틀면 당신 노래는 그대로 나가고 우리는 일을 하오⁠.⁠”

“⁠사잣밥 먹은 사자가 할 소리가⁠?⁠”

“⁠사잣밥 청은 들어주었소⁠. 이건 내 청이오⁠. 지난번에도 말했소⁠.⁠”

말희는 의자를 돌려 저승사자를 보았다⁠. 저승사자는 갓 끈을 만지지 않았다⁠. 손을 도포 안에 넣고 똑바로 서 있었다⁠. 진지할 때의 자세였다⁠.

“⁠때 지난 사람이 아프다 캤제⁠. 내 노래 부르는 동안 아픈 거⁠, 몇 분이나 아프노⁠?⁠”

“⁠노래 길이만큼이오⁠. 삼 분 사십 초⁠.⁠”

“⁠그라믄 짧게 부르믄⁠?⁠”

저승사자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 물음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짧을수록 덜 아프오⁠.⁠”

말희는 휴대전화를 들어 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준이 첫 신호에 받았다⁠.

“⁠PD님⁠, 내 노래 1절만 할게⁠. 2절이랑 후렴 반복 빼고⁠. 일 분 오십 초⁠.⁠”

“⁠네⁠? 선생님 무대 시간 삼 분 받으셨어요⁠. 다른 분들보다 길게 드린 거예요⁠.⁠”

“⁠알고 있다⁠. 1절만 한다⁠.⁠”

“⁠왜요⁠? 목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음원을⁠…⁠…⁠.⁠”

“⁠목은 멀쩡하다⁠. 짧게 부를 이유가 있다⁠. 니한테는 말 못 할 이유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조정실의 웅성거림만 들렸다⁠. 유준이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짧게 하시면 점수에서 손해 보실 수도 있어요⁠. 심사위원들은 2절 고음을 기다려요⁠.⁠”

“⁠손해 봐도 된다⁠.⁠”

“⁠…⁠…일 분 십 초 남는 건 광고 하나 더 넣을게요⁠. 국장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유준이 끊었다⁠. 말희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저승사자를 보았다⁠. 저승사자는 아까보다 반 걸음 떨어져 서 있었다⁠.

“⁠반은 덮이지 않소⁠. 그래도 반은 덮이오⁠.⁠”

“⁠반이믄 됐다⁠. 나머지 반은 내 몫이다⁠.⁠”

*

무대 조명이 켜지자 노란 티셔츠 쉰 장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본방사스⁠」 등판이 객석을 노랗게 물들였다⁠. 학주가 맨 앞에서 두 팔을 흔들었다⁠. 응원석의 차온도 박수를 쳤다⁠.

옥배는 이번 무대에 없었다⁠. 생방송 반주는 방송국 밴드가 맡았다⁠. 말희는 밴드 키보드 연주자의 손을 오래 보았다⁠. 옥배보다 젊고 빠른 손이었다⁠. 옥배의 손처럼 반 박자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전주가 들어왔다⁠. 말희는 은순이를 입가에 댔다⁠.

조정실 유리 너머에서 유준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음향 감독이 음원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려 두었다⁠. 말희는 첫 소절을 냈다⁠. 살아 있는 소리가 스튜디오를 채웠다⁠. 음향 감독의 손가락이 단추에서 내려왔다⁠.

1절은 일 분 오십 초였다⁠. 짧았다⁠. 짧아서 한 소절도 버릴 데가 없었다⁠. 말희는 서른 해 동안 3절까지 불러 온 노래를 1절에 다 담았다⁠. 꺾기를 아끼지 않았다⁠. 숨은 일찍 쉬었다⁠. 객석 맨 뒤 기둥 옆에서 저승사자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이 나라 어딘가의 병실 몇 곳에서 사자들이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마지막 소절에서 말희는 소리를 끝까지 밀었다가 툭 놓았다⁠. 2절로 넘어갈 줄 알았던 밴드가 반 박자 늦게 끝맺었다⁠. 심사위원 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청석이 한 박자 늦게 터졌다⁠. 노란 티셔츠들이 일어나 「⁠영원하라⁠」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기둥 옆의 저승사자가 눈을 떴다⁠. 이번에도 손뼉을 쳤다⁠.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었다⁠. 두 번⁠, 아주 작게⁠.

*

파주 솔미요양병원 4층 휴게실 텔레비전 앞에 휠체어 일곱 대가 반원으로 모여 있었다⁠. 가운데 휠체어에 권우갑이 앉아 있었다⁠. 링거 걸이를 옆에 끼고⁠,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손에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었다⁠. 리모컨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았다⁠.

“⁠볼륨 올려⁠, 볼륨⁠!⁠”

맞은편 침대 할아버지가 외쳤다⁠. 우갑은 볼륨을 끝까지 올렸다⁠. 간호사가 복도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화면 속 금색 드레스를 보고는 그냥 문간에 몸을 기댔다⁠.

말희가 첫 소절을 내자 휴게실이 조용해졌다⁠. 링거 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우갑은 눈을 감았다⁠. 누런 얼굴의 주름이 노래를 따라 펴졌다 접혔다⁠. 1절이 끝나고 밴드가 반 박자 늦게 끝맺자 우갑이 눈을 떴다⁠.

“⁠1절이네⁠.⁠”

“⁠왜 1절만 해⁠? 목 쉬었나⁠?⁠”

옆 휠체어 할머니가 물었다⁠. 우갑은 대답 대신 창밖을 보았다⁠. 창에는 휴게실 형광등과 휠체어들만 비쳤다⁠. 우갑의 눈길은 창에 비친 것들 너머 어딘가에 오래 머물렀다⁠.

“⁠우리 마누라는 이유 없이 짧게 안 불러⁠. 삼십 년 동안 앙코르 달라면 세 곡씩 불렀어⁠.⁠”

“⁠그럼 무슨 이유인데⁠?⁠”

“⁠그건 나도 몰라⁠. 근데 저 사람이 짧게 불렀으면 짧게 불러야 될 이유가 있는 거야⁠.⁠”

우갑이 리모컨을 무릎에 내려놓고 손뼉을 쳤다⁠. 손바닥에 힘이 없어서 소리가 작았다⁠. 휴게실의 휠체어 일곱 대에서 작은 손뼉 소리가 차례로 났다⁠. 간호사가 문간에서 따라 쳤다⁠.

우갑의 손뼉이 멈췄다⁠. 우갑은 배를 감싸 쥐고 한동안 숨을 고르게 쉬려 애썼다⁠. 간호사가 다가오자 우갑은 손을 저었다⁠.

“⁠괜찮아⁠. 열 시에 우리 마누라가 또 불러 줄 거야⁠. 그거 들으면 괜찮아⁠.⁠”

*

결과 발표는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사회자가 봉투를 열기 전에 화면 가득 숫자가 올라갔다⁠. 조회수와 시청자 투표⁠, 심사위원 점수를 합친 숫자였다⁠. 심사위원 점수는 말희가 셋 가운데 가장 낮았다⁠. 짧게 부른 대가였다⁠. 시청자 투표는 둘째보다 세 배 많았다⁠.

“⁠패자 부활전 1위⁠, 금말희⁠!⁠”

노란 티셔츠들이 비명을 질렀다⁠. 학주가 일어나다 휘청했고⁠, 옆자리 할머니가 학주의 허리띠를 붙잡았다⁠. 말희는 무대 한가운데서 은순이를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드니 조정실 유리 너머 유준이 보였다⁠. 유준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태블릿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고 있었다⁠. 시청자 투표 그래프였다⁠. 쉰 넘은 시청자의 투표가 그래프 맨 위까지 솟아 있었다⁠.

방송이 끝나고 무대 뒤 복도에서 말희는 휴대전화를 켰다⁠. 단톡방에 알림이 백 개 넘게 쌓여 있었다⁠.

「⁠엄마⁠!⁠!⁠!⁠!⁠!⁠!⁠!⁠!⁠」 「⁠1위⁠!⁠!⁠!⁠!⁠!⁠!⁠!⁠!⁠」 「⁠팀장님이 회식 쏜대 엄마 덕에⁠」

우갑의 문자는 하나였다⁠.

「⁠잘했어⁠. 1절만 부른 거⁠, 나는 알아⁠」

말희는 문자를 오래 보았다⁠. 1절만 부른 이유를 우갑은 알 리가 없었다⁠. 우갑은 늘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사람이었다⁠.

복도 시계가 열 시를 가리켰다⁠.

저승사자의 허리춤에서 종이 울렸다⁠. 손바닥으로 덮지 않은 맑은 소리였다⁠. 말희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저승사자가 복도 끝 창문 너머 어둠을 보았다⁠. 북쪽이었다⁠. 파주가 있는 하늘이었다⁠.

“⁠어디 가노⁠?⁠”

말희는 이렇게 물으면서 습관처럼 휴대전화 화면의 영상 통화 단추에 엄지를 올렸다⁠. 석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열 시의 노래였다⁠. 오늘은 1위 기념으로 「⁠곱빼기 인생⁠」 2절까지 부를 생각이었다⁠.

저승사자가 말희의 엄지를 보았다⁠.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저승사자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무언가 말하려다 삼키는 얼굴이었다⁠.

“⁠가 봐야 하오⁠. 날마다 이 시각이면 가는 데요⁠.⁠”

검은 도포 자락이 복도 모퉁이를 돌았다⁠. 말희의 엄지가 영상 통화 단추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복도 끝 창문에서 서늘한 바람이 한 번 불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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