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43자)

영천 장날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중앙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오학주가 호두과자 봉지를 두 개 들고 탑차로 돌아왔다⁠. 하나는 말희와 옥배 몫⁠, 하나는 짐칸 몫이었다⁠. 학주는 짐칸과 운전석 사이 작은 창을 열고 봉지를 밀어 넣었다⁠.

“⁠드시오⁠. 따뜻할 때⁠.⁠”

창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냄새만 맡소⁠.⁠”

“⁠냄새도 따뜻할 때 맡아야 맛있소⁠.⁠”

말희는 운전석에서 웃음을 삼켰다⁠. 열흘 사이 학주와 저승사자는 이상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학주는 저승사자를 ‘⁠갓 선생⁠’이라 불렀고⁠, 저승사자는 학주를 ‘⁠이발사 어른⁠’이라 불렀다⁠. 둘이서 1960년대 악극단 이야기를 하면 영천까지 가는 세 시간이 짧았다⁠.

조수석의 주옥배는 호두과자를 하나씩 까먹으며 창밖을 보았다⁠. 옥배는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두 노인을 옥배는 한 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가끔 리듬 단추를 누르듯 무릎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옥배 씨⁠, 영천 가는 거 몇 년 만이지⁠?⁠”

“⁠우갑이 형님이 사회 본 그해 이후로 처음이쥬⁠.⁠”

“⁠그기 언제고⁠?⁠”

“⁠구십삼 년⁠. 장날 무대에서 형님이 누님 소개하다 이름 틀렸잖유⁠. 금말자라고⁠.⁠”

학주가 창 너머에서 껄껄 웃었다⁠. 말희는 핸들을 탁 쳤다⁠.

“⁠그 얘기는 와 하노⁠.⁠”

“⁠형님이 그날 무대 내려와서 누님한테 사과한다고 장터 국밥을 세 그릇 샀쥬⁠. 누님이 세 그릇 다 먹고 사귀자고 했잖유⁠.⁠”

“⁠내가 언제⁠!⁠”

“⁠제가 옆에 있었슈⁠.⁠”

옥배가 시치미를 떼고 호두과자를 하나 더 깠다⁠. 서른 해 동안 무대 뒤에서만 지낸 사람이라 무대 뒤 일은 다 알았다⁠.

*

영천 휴게소를 지나며 학주가 작은 창에 대고 물었다⁠.

“⁠갓 선생⁠. 하나만 물읍시다⁠. 내 차례는 어찌 되오⁠? 예선장에서 한 번 부르다 말았잖소⁠.⁠”

창 너머가 한참 조용했다⁠. 탑차가 오르막에 들어서며 엔진 소리가 커졌다⁠.

“⁠한 번 부르고 놓친 넋은 저승이 때를 새로 정하오⁠.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오⁠. 종이 울려야 아오⁠.⁠”

“⁠내일일 수도 있고 십 년 뒤일 수도 있다는 거요⁠?⁠”

“⁠그렇소⁠.⁠”

학주가 호두과자를 하나 꺼내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말희는 룸미러로 학주를 보았다⁠. 학주는 씹다가 웃었다⁠. 처음엔 작게⁠, 나중엔 어깨를 들썩이며⁠.

“⁠덤이구먼⁠! 이거 완전히 덤이오⁠. 사는 날마다 덤이오⁠.⁠”

“⁠어르신⁠, 그게 웃을 일이에요⁠?⁠”

“⁠가수 양반⁠, 내 나이 여든하나요⁠. 원래 다 덤이었소⁠. 이제 덤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오⁠.⁠”

창 너머에서 저승사자가 헛기침을 했다⁠.

“⁠덤을 너무 험하게 쓰지 마시오⁠. 예선장 일로 내가 감찰에 한 번 불려 갔소⁠.⁠”

“⁠감찰이 뭐요⁠?⁠”

“⁠사자를 살피는 윗사람이오⁠. 무서운 분이오⁠.⁠”

“⁠갓 선생보다 무섭소⁠?⁠”

“⁠나보다 백 배 무섭소⁠.⁠”

“⁠갓은 몇 배 크오⁠?⁠”

“⁠갓 크기로 따지는 데가 아니오⁠.⁠”

“⁠이발소에서는 머리 크기로 따졌소⁠. 머리 큰 손님이 제일 무서웠소⁠. 가위가 두 배로 들었으니까⁠.⁠”

학주는 또 웃었다⁠. 옥배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릎으로 2박자를 쳤다⁠.

*

영천 장날은 열기가 달랐다⁠. 금호강 바람이 시장 골목을 지나며 소머리국밥 냄새⁠, 참기름 냄새⁠, 복숭아 냄새를 차례로 실어 날랐다⁠. 말희는 탑차를 장터 공영 주차장에 대고 내리자마자 발바닥으로 땅을 눌렀다⁠. 쉰 해 전⁠, 열두 살 때 할매 손을 잡고 이 바닥을 걸었다⁠.

주차장 한쪽에 새빛방송 로고를 단 승합차 두 대가 서 있었다⁠. 카메라와 조명이 벌써 장터 공터를 둘러싸고 있었다⁠. 담당 작가가 뛰어와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국장님이 갑자기 세대 대결 홍보를 붙이자고 하셔서요⁠. 본선 진출자 한 분이 같이 무대에 서요⁠.⁠”

공터 무대 위에서 차온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예선 대기실에서 말희를 보호자로 알았던 청년이었다⁠. 하얀 셔츠에 금색 넥타이⁠, 머리는 반듯하게 넘겼다⁠. 차온이 첫 소절을 내자 장터 아줌마들이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말희는 귀를 세웠다⁠. 차온의 꺾기는 반 박자 늦게 들어가 아래로 한 번 더 감기는 꺾기였다⁠. 말희의 꺾기였다⁠. 서른 해 동안 제 목에서만 나던 소리가 남의 목에서 나왔다⁠.

“⁠어⁠?⁠”

학주가 말희의 팔을 붙잡았다⁠.

“⁠가수 양반 꺾기 아니오⁠, 저거⁠?⁠”

“⁠내 꺾기다⁠.⁠”

옥배가 오르간 가방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말 없는 사람의 팔짱은 무서웠다⁠.

*

방송국이 정한 순서는 번갈아 부르기였다⁠. 차온 한 곡⁠, 말희 한 곡⁠, 다시 차온⁠, 다시 말희⁠. 장터 사람들의 박수 소리로 이긴 사람을 정한다고 했다⁠. 카메라는 박수 소리를 재는 기계까지 달아 놓았다⁠.

첫 곡은 차온이 가져갔다⁠. 장터 아줌마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차온을 찍었다⁠. 차온은 무대에서 내려와 할머니들과 손을 잡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손등에 뽀뽀까지 했다⁠. 할머니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곡에서 말희는 은순이를 들고 무대에 올라 노래 대신 마이크에 대고 먼저 말했다⁠.

“⁠영천 사람들⁠, 내 기억하는교⁠?⁠”

장터가 조용해졌다⁠.

“⁠완산동 우물집 손녀⁠. 열두 살에 할매 초상 치르고⁠, 스무 살에 서울 간다꼬 이 장터에서 엿 사 묵고 버스 탄 가시나⁠. 금말희다⁠.⁠”

맨 앞줄 할아버지 하나가 손을 들었다⁠.

“⁠우물집⁠! 니 할매 내가 안다⁠! 니 할매 막걸리 외상 아직 안 갚았다⁠!⁠”

장터가 터졌다⁠. 말희는 마이크를 들고 할아버지에게 꾸벅 절을 했다⁠.

“⁠노래로 갚을게예⁠. 이자까지⁠.⁠”

옥배가 「⁠트로트 2⁠」를 눌렀다⁠. 말희는 「⁠곱빼기 인생⁠」을 불렀다⁠. 장터 사람들이 박자를 맞췄다⁠. 맞추다가 따라 불렀다⁠. 1996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만 팔린 노래를 영천 장터 사람 반이 알고 있었다⁠. 영천 출신 가수라고 누가 휴게소 카세트를 사다 돌렸던 모양이었다⁠.

박수 기계의 숫자가 차온의 첫 곡보다 높게 올라갔다⁠. 카메라 감독이 엄지를 들었다⁠.

세 번째 곡과 네 번째 곡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차온이 장터를 젊게 만들면 말희가 장터를 늙게 만들었다⁠. 늙게 만든 장터가 이상하게 더 시끄러웠다⁠. 마지막 박수 숫자는 말희가 아주 조금 높았다⁠. 촬영 감독이 숫자를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국장이 바란 그림은 아니었다⁠.

장터 끝 건어물 가게 차양 아래에서 저승사자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차온의 노래 때는 미동도 없었고⁠, 말희의 노래 때는 손가락이 도포 소매 안에서 2박자를 짚었다⁠. 이날 장터에서는 아무도 쓰러지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일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

장비를 걷는 동안 맨 앞줄의 할아버지가 막걸리 한 병과 종이컵 두 개를 들고 탑차로 왔다⁠. 외상 이야기를 꺼낸 할아버지였다⁠. 학주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둘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 서로 지팡이 길이부터 견주었다⁠.

“⁠우물집 손녀⁠. 니 할매가 장날마다 우물가에서 노래 불렀던 거 아나⁠?⁠”

말희는 막걸리 잔을 받다가 멈췄다⁠.

“⁠우리 할매가예⁠?⁠”

“⁠모르나⁠? 니 할매 목청이 장터 끝까지 갔다⁠. 막걸리 한 사발 걸치믄 우물 뚜껑을 장구 삼아 두드리고 불렀다⁠. 그 소리 들을라꼬 장사꾼들이 우물가로 모였다⁠. 외상은 그래서 생긴 기다⁠. 노래 들은 값을 막걸리로 줄라 캤는데 니 할매가 자꾸 안 받고 외상으로 달아 놓으라 캤다⁠.⁠”

“⁠그라믄 외상이 아이고 내가 받을 돈 아입니꺼⁠?⁠”

“⁠그렇게 되나⁠?⁠”

할아버지가 한참 생각하더니 껄껄 웃었다⁠. 학주도 따라 웃었다⁠. 두 노인의 웃음소리가 탑차 옆판에 부딪쳐 장터로 퍼졌다⁠.

“⁠니 목청이 할매 목청이다⁠. 아까 첫 소절 듣고 알았다⁠. 우물가에서 듣던 그 소리라⁠.⁠”

말희는 막걸리를 단숨에 비웠다⁠. 짐칸 그늘에 앉은 저승사자가 할아버지를 오래 보았다⁠. 말희가 눈길을 보내자 저승사자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이 무슨 뜻인지 말희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았다⁠. 할매 초상 날 영천 집 문 앞에 차린 사잣밥⁠, 열두 살 말희가 쭈그려 앉아 지켜보던 밥 세 그릇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빈 막걸리 병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결승 가거라⁠. 우물집 손녀가 텔레비전에 나오믄 내가 장터 사람들 다 불러 모아 보꾸마⁠.⁠”

*

촬영이 끝나고 탑차 뒤 그늘에서 말희가 생수를 마시고 있는데 차온이 왔다⁠. 넥타이를 풀어 손에 감고 있었다⁠.

“⁠선생님⁠, 잠깐 괜찮으세요⁠?⁠”

“⁠꺾기 값 받으러 왔다⁠.⁠”

차온이 웃다가 말희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거뒀다⁠. 말희는 농담이 아니었다⁠.

“⁠제 꺾기 들으셨죠⁠.⁠”

“⁠내 꺾기 들었다⁠.⁠”

차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탑차 바퀴 옆에 쪼그려 앉아 넥타이를 풀었다 감았다 했다⁠.

“⁠할머니가 국도 휴게소에서 매점을 하셨어요⁠. 충북 어디 산 밑에요⁠. 매점 계산대 옆에 카세트 판매대가 있었는데 안 팔리는 테이프가 몇 년씩 꽂혀 있었어요⁠. 그중에 「⁠곱빼기 인생⁠」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그것만 틀었어요⁠. 손님이 없어도 틀었어요⁠.⁠”

말희는 생수병 뚜껑을 닫았다⁠. 닫는 손이 느려졌다⁠.

“⁠저 아이돌 연습생 때 춤은 잘했는데 노래가 늘 밋밋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방학마다 할머니 매점에 가서 그 테이프를 따라 불렀어요⁠. 반 박자 늦게 들어가서 한 번 더 감는 거⁠. 그거 하나 배우는 데 삼 년 걸렸어요⁠.⁠”

“⁠삼 년이믄 빨리 배웠네⁠. 내는 십 년 걸렸다⁠.⁠”

차온이 고개를 들었다⁠. 말희는 웃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아까보다 부드러웠다⁠.

“⁠그라믄 와 미리 말 안 했노⁠? 대기실에서⁠.⁠”

“⁠말하면 제가 질 거 같아서요⁠.⁠”

차온이 솔직하게 말했다⁠. 말희는 이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만큼 더 상대가 버거웠다⁠.

“⁠저 그룹 해체하고 소속사 위약금이 삼억이에요⁠. 우승 상금이 일억이고⁠, 우승하면 행사가 들어와요⁠. 이번에 못 이기면 저는 노래를 그만둬야 해요⁠.⁠”

“⁠내는 이번이 마지막 무대다⁠. 이기든 지든⁠.⁠”

차온이 일어나 넥타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키가 말희보다 머리 하나 컸다⁠. 큰 키를 접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선생님 꺾기로 배웠으니까요⁠, 선생님한테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제가 이겨요⁠.⁠”

말희는 생수병을 차온 손에 쥐여 주었다⁠.

“⁠그래⁠, 이기 봐라⁠. 내 꺾기로 내를 이기믄⁠, 그것도 내 꺾기가 이긴 기다⁠.⁠”

차온이 생수병을 받아 들고 웃었다⁠. 이번에는 눈가까지 웃었다⁠. 승합차 앞에서 작가가 차온을 불렀다⁠. 차온이 뛰어갔다⁠.

옥배가 탑차 짐칸에서 오르간 덮개를 씌우다가 차온의 뒷모습을 오래 보았다⁠.

“⁠저 청년⁠, 목은 좋은데 숨이 짧어유⁠. 편곡을 바꾸면 훨씬 나을 텐디⁠.⁠”

말희는 옥배를 보았다⁠. 옥배는 덮개 끈을 묶는 데만 열중했다⁠. 셔츠 주머니에서 지난번 명함의 귀퉁이가 삐죽 나와 있었다⁠.

휴대전화가 떨었다⁠. 단톡방이었다⁠.

「⁠엄마 영천 장터 영상 벌써 올라왔어⁠」 「⁠근데 옆에 그 아이돌 누구야⁠? 잘생겼다⁠」

우갑이 곰을 보냈다⁠. 이번 곰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어서 우갑의 문자가 하나 더 올라왔다⁠.

「⁠그 총각 이겨⁠. 우리 마누라가 원조야⁠」

말희는 답을 치려다 돋보기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돋보기는 또 머리 위에 있었다⁠. 말희는 화면을 꺼서 은순이 옆에 내려놓았다⁠. 장터 국밥집에서 국밥 끓는 냄새가 넘어왔다⁠. 서른네 해 전 국밥 세 그릇의 냄새와 같았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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