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57자)

사잣밥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이 빨간 단추는 누르면 안 되오⁠. 이건 신고요⁠. 신고⁠.⁠”

연천 전곡 경로당 마루에 할머니 스무 명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휴대전화를 하나씩 올려놓고⁠. 오학주가 마루 한가운데 서서 달력 뒷면에 매직으로 크게 그린 화면 그림을 들고 있었다⁠. 그림 맨 아래에 빨간 동그라미가 있고 동그라미 위에 엑스 표가 세 번 그어져 있었다⁠.

“⁠신고 누르면 어찌 되는데⁠?⁠”

“⁠말희 씨 영상이 혼나오⁠.⁠”

“⁠아이고⁠, 나 아까 눌렀는데⁠.⁠”

할머니 하나가 휴대전화를 마루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앉았다⁠. 물린 손가락을 털듯이 손을 털었다⁠. 학주가 돋보기를 고쳐 쓰고 할머니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신고 화면에서 뒤로 가기만 하면 되는 자리였다⁠.

“⁠괜찮소⁠. 아직 안 혼났소⁠.⁠”

마루 끝에서 금말희는 식혜를 홀짝이며 이 수업을 지켜보았다⁠. 서른 해 동안 수많은 경로당에서 노래했지만 투표 강의가 먼저 열리는 무대는 처음이었다⁠. 옥배는 휴대용 오르간을 무릎에 얹고 졸고 있었다⁠. 리듬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려 둔 채였다⁠. 꾸벅할 때마다 손가락이 단추에 닿아 「⁠고고⁠」 리듬이 한 마디씩 튀어나왔다⁠.

학주는 일주일 사이 팬클럽 단톡방을 열었다⁠. 이름은 「⁠말희네 사랑방⁠」 첫날 마흔 명이던 방이 오늘 아침 천이백 명을 넘었다⁠. 학주는 공지를 독수리 타법으로 하루에 한 번씩 올렸다⁠. 오늘 아침 공지는 이랬다⁠.

「⁠본방사수⁠!⁠!⁠!⁠!⁠! 투표는 하루 한번 매일⁠!⁠!⁠!⁠!⁠! 신고는누르지마시오⁠!⁠!⁠!⁠!⁠」

느낌표가 다섯 개씩 붙는 것은 학주의 손가락이 무거워서였다⁠. 말희는 느낌표 다섯 개가 좋았다⁠.

수업이 끝나자 할머니들이 차례로 휴대전화 화면을 학주에게 보여 주었다⁠. 투표 완료 화면이 뜬 사람은 학주가 손뼉을 쳐 주었다⁠. 손뼉을 받은 할머니들이 어린애처럼 웃었다⁠. 말희는 마루 끝에서 일어나 은순이를 들었다⁠.

“⁠자⁠, 숙제 다 한 학생들한테 노래 한 곡 갑니다⁠!⁠”

옥배가 졸다 깨서 「⁠트로트 2⁠」를 눌렀다⁠. 이번에는 제대로 눌렀다⁠.

*

돌아오는 길에 말희는 학주를 능곡 집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학주의 집은 문 닫은 이발소 뒤채였다⁠. 이발소 유리문에 아직 「⁠능곡 이발관⁠」 글씨가 남아 있었고⁠, 안쪽에 빨강 파랑 줄무늬 사인볼이 멈춰 있었다⁠.

“⁠이발소는 언제 닫았어요⁠?⁠”

“⁠할멈 가고 이듬해⁠. 혼자 가위질하니까 손이 심심하더이다⁠.⁠”

학주가 조수석에서 안전띠를 풀다 말고 이발소 유리문을 보았다⁠.

“⁠가수 양반 카세트가 저 안에 하나 있소⁠. 손님 없을 때 틀었소⁠. 할멈이 그 노래를 좋아했소⁠. 곱빼기는 짜장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인생도 곱빼기로 산다고⁠.⁠”

“⁠어르신⁠, 팬클럽 그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쓰러졌다 일어난 지 열흘도 안 됐어요⁠.⁠”

“⁠덤으로 사는 날이오⁠. 덤은 남 좋은 데 쓰는 거요⁠.⁠”

학주가 차에서 내려 이발소 유리문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먼지 위에 손자국이 났다⁠. 말희는 학주가 대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았다⁠.

*

이틀 뒤⁠, 새빛방송 일산 별관 앞마당에서 패자 부활전 홍보 영상 촬영이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트롯 왕관전 로고가 박힌 판넬이 세워져 있고 반사판 두 개가 햇볕을 튕겨 냈다⁠.

판넬 옆에 검은 갓을 쓴 청년이 서 있었다⁠. 플라스틱 갓⁠, 반짝이는 검은 비닐 도포⁠, 하얗게 분칠한 얼굴⁠. 청년이 말희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승사자 역 맡은 배우입니다⁠. 영상 백 번 봤어요⁠!⁠”

말희는 대답할 말을 고르는데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갓이 저리 얕으면 비가 새오⁠.⁠”

진짜 저승사자가 판넬 뒤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배우의 갓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눈이 매서웠다⁠.

“⁠도포 깃도 반대로 여몄소⁠. 저건 죽은 사람이 입는 법이오⁠.⁠”

“⁠당신이 죽은 사람이잖아⁠.⁠”

말희가 작게 말하자 배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저요⁠?⁠”

“⁠아니⁠, 혼잣말⁠.⁠”

염유준이 카메라 뒤에서 걸어 나왔다⁠. 오늘은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었다⁠. 유준이 말희에게 콘티를 내밀었다⁠.

“⁠콩트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선생님은 노래만 하시고⁠, 이 친구가 뒤에서 지나가기만 해요⁠. 딱 한 번⁠.⁠”

“⁠지나가기만⁠?⁠”

“⁠지나가다가 선생님 노래에 박수 치려다 멈춰요⁠.⁠”

말희는 콘티를 내려다보았다⁠. 그림 속의 가짜 저승사자가 정확히 예선장 기둥 옆의 진짜 저승사자와 같은 몸짓을 하고 있었다⁠. 판넬 뒤의 진짜가 헛기침을 했다⁠.

“⁠누가 그렸노⁠, 이거⁠?⁠”

“⁠제가요⁠. 선생님 예선 영상 보다가 떠올랐어요⁠. 뒷줄 기둥 옆을 자꾸 보시길래⁠.⁠”

말희는 유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숫자만 보는 줄 알았던 눈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촬영은 세 번 만에 끝났다⁠. 가짜 저승사자는 박수를 치려다 멈추는 연기를 꽤 잘했다⁠. 진짜는 판넬 뒤에서 세 번 다 혀를 찼다⁠.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유준이 말희를 마당 구석 그늘로 불렀다⁠.

“⁠선생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부활하시면 본선부터는 사연 영상이 들어가요⁠. 출연자마다 삼 분씩⁠.⁠”

“⁠사연 없다⁠.⁠”

“⁠있으세요⁠. 파주 솔미요양병원 4층⁠.⁠”

말희의 손이 은순이를 쥔 가방 끈을 꽉 잡았다⁠.

“⁠어떻게 알았노⁠?⁠”

“⁠예선 신청서 보호자 연락처가 남편분이셨어요⁠. 저희 작가가 전화드렸더니 남편분이 먼저 다 얘기해 주셨어요⁠. 병원 이름까지⁠.⁠”

“⁠우리 남편은 그림이 아이다⁠.⁠”

“⁠그림으로 보지 않을게요⁠. 그냥 남편분이 침대에서 선생님 노래 듣는 모습⁠, 그거 하나면 돼요⁠. 사람들이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는 데 삼 분이면 충분해요⁠.⁠”

“⁠사랑 안 해도 된다⁠. 노래나 들어라 캐라⁠.⁠”

“⁠노래만으로는 본선에서 떨어지세요⁠. 지난 시즌에 실력 좋은 사람들 많이 떨어졌어요⁠. 사연 없는 사람부터 떨어졌어요⁠.⁠”

유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말희는 유준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우리 남편 병원 근처에 카메라 한 대라도 오믄⁠, 나 무대에서 내려온다⁠.⁠”

유준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그늘 밖에서 옥배가 오르간 가방을 메고 걸어가다가 제작진 하나에게 붙잡혔다⁠. 제작진이 옥배 손에 명함을 쥐여 주었다⁠. 옥배는 명함을 한참 보다가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말희는 옥배의 손을 보았고⁠, 말희가 보았다는 것을 옥배는 몰랐다⁠.

*

연천 경로당 뒷방은 창고 겸 탈의실이었다⁠. 말희는 저녁 무대를 마치고 할머니들이 다 돌아간 뒤 뒷방에 상을 하나 폈다⁠. 쟁반 위에 밥 세 그릇⁠, 짚신 한 켤레⁠, 동전 세 닢을 올렸다⁠. 옛날 초상집에서 문 앞에 저승사자 몫으로 차리던 밥⁠, 사잣밥이었다⁠. 짚신은 파주 민속품 가게에서 이만 원을 주고 샀다⁠. 밥 옆에는 전곡 시장에서 사 온 순대국밥 한 그릇을 더 놓았다⁠.

“⁠나오소⁠. 밥 차렸다⁠.⁠”

방 안 공기가 서늘해졌다⁠. 저승사자가 상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은 자세가 반듯했다⁠. 저승사자는 상을 내려다보며 오래 말이 없었다⁠.

“⁠어디서 배웠소⁠?⁠”

“⁠우리 할매 초상 때⁠. 영천에서⁠. 내 열두 살 때⁠.⁠”

“⁠순대국밥은 옛 법에 없소⁠.⁠”

“⁠요새 법이다⁠. 안 먹을 기가⁠?⁠”

저승사자가 숟가락을 들었다⁠. 들고 나서야 들었다는 것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말희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저승사자는 국밥을 한 숟갈 떠서 냄새를 맡고⁠, 입에 넣고⁠, 아주 천천히 씹었다⁠.

“⁠쉰여섯 해 만에 처음 먹는 국밥이오⁠.⁠”

“⁠맛있나⁠?⁠”

“⁠새우젓이 모자라오⁠.⁠”

말희가 새우젓 통을 밀어 주었다⁠. 저승사자가 새우젓을 두 번 덜었다⁠.

“⁠사잣밥을 받으면 사자는 차린 사람의 청을 하나 들어주오⁠. 옛 법이오⁠. 그래서 사잣밥은 아무나 차리지 않소⁠.⁠”

“⁠알고 차렸다⁠.⁠”

“⁠무슨 청이오⁠? 생방송 날 아무도 부르지 말라는 청이면 소용이 없소⁠. 내가 안 불러도 당신 목소리가 덮소⁠.⁠”

말희는 고개를 저었다⁠. 쟁반 위의 동전 세 닢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밀어 저승사자 앞에 놓았다⁠.

“⁠내 노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라⁠. 손뼉 치다 말지 말고⁠.⁠”

저승사자의 숟가락이 국밥 그릇 위에서 멈췄다⁠. 김이 숟가락을 타고 올라갔다⁠.

“⁠그것이 청이오⁠?⁠”

“⁠그래⁠. 당신은 맨날 반만 듣고 가잖아⁠. 박자 지적하고 숨 지적하고⁠. 끝까지 들어 보지도 않고⁠.⁠”

저승사자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갓 끈을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무릎에 올렸다⁠.

“⁠들어주겠소⁠.⁠”

말희는 뒷방 창문을 닫았다⁠. 소리가 마을로 새어 나가지 않게⁠. 은순이를 켜지 않고 맨목소리로 불렀다⁠. 「⁠곱빼기 인생⁠」 반주는 없었다⁠. 박자는 말희가 무릎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맞췄다⁠.

1절에서 저승사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2절에서 저승사자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2박자를 짚었다⁠. 후렴에서 두 손이 마주 왔다⁠. 손바닥이 닿기 직전⁠, 저승사자가 숨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짝⁠.

뒷방 벽이 손뼉 소리를 받았다⁠. 짝⁠, 짝⁠. 저승사자는 마지막 소절까지 2박자를 놓치지 않고 손뼉을 쳤다⁠. 노래가 끝나고도 두 번 더 쳤다⁠. 그러고 나서 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붉었다⁠. 저승사자의 몸에서 처음 보는 색이었다⁠.

“⁠숨은 여전히 일찍 쉬오⁠.⁠”

“⁠알았다⁠.⁠”

“⁠그래도 좋소⁠.⁠”

말희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면 목소리가 젖을 판이라 국밥 그릇을 치우는 척했다⁠.

저승사자가 갓을 고쳐 쓰고 일어났다⁠.

“⁠이제 내 청이오⁠. 사잣밥 법에는 없는 청이오⁠. 그러니 들어주지 않아도 되오⁠.⁠”

“⁠말해 보소⁠.⁠”

“⁠생방송 날⁠, 한 곡만 녹음으로 하시오⁠.⁠”

말희는 쟁반을 든 채 멈췄다⁠.

“⁠립싱크를 하라꼬⁠?⁠”

“⁠입만 벌리면 되지 않소⁠. 노래는 당신 목소리 그대로 나가오⁠.⁠”

“⁠그건 가수가 할 짓이 아이다⁠.⁠”

“⁠그날 밤 당신이 생으로 부르면⁠, 내가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오⁠.⁠”

“⁠누군데⁠? 그때도 안 갈치 주더만⁠.⁠”

저승사자가 방문 쪽으로 걸었다⁠. 문고리를 잡기 전에 벽시계를 보았다⁠. 아홉 시 사십 분이었다⁠.

“⁠가 봐야 할 데가 있소⁠. 날마다 이 시각이면 가는 데요⁠.⁠”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저승사자는 없었다⁠. 동전 세 닢도 쟁반에서 사라져 있었다⁠.

*

밤 열 시⁠, 말희는 경로당 마당 평상에 앉아 우갑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석 달째 거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화면 속 우갑은 침대 머리를 세우고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얼굴이 낮보다 더 누랬다⁠.

“⁠오늘은 뭐 불러 줄까⁠?⁠”

“⁠「⁠곱빼기 인생⁠」 오늘 그거 불렀다며⁠.⁠”

“⁠누가 그라더노⁠?⁠”

우갑이 웃기만 했다⁠. 말희는 휴대전화를 평상 위 식혜 컵에 기대 세우고 불렀다⁠. 화면 속 우갑이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이불을 두드렸다⁠. 2박자였다⁠.

2절에 들어갈 때 말희는 화면 귀퉁이에 무언가 검은 것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우갑의 침대 머리맡 너머⁠, 창가 옷걸이 근처였다⁠. 검은 챙 같은 것이었다⁠. 말희는 노래를 이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옷걸이에 걸린 우갑의 낡은 중절모였다⁠. 사회자 시절 쓰던 모자였다⁠.

노래가 끝나자 우갑이 눈을 떴다⁠. 이어폰을 빼며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못 했네⁠.⁠”

“⁠뭘 못 해⁠?⁠”

“⁠아니⁠, 화투⁠. 옆 침대 할배가 일찍 자서⁠.⁠”

우갑이 엄지를 들어 보이고 통화를 끊었다⁠. 말희는 꺼진 화면에 비친 제 빨간 입술을 오래 보았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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