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44자)

감찰

저승사자도 반한 트로트 가수 · 지백솔

고양의 한 장례식장 3호실 입구에 노란 티셔츠가 줄을 이었다⁠. 검은 상복 위에 노란 티셔츠를 겹쳐 입은 할머니도 있었다⁠. 「⁠말희네 사랑방⁠」 글씨가 검은 천 위에서 유난히 밝았다⁠. 등판의 「⁠본방사스⁠」도 그대로였다⁠. 아무도 벗으라고 하지 않았다⁠.

영정 사진은 이발소 거울 앞에서 찍은 것이었다⁠. 흰 가운을 입고 가위를 든 학주가 정면을 보며 웃고 있었다⁠. 학주의 손자가 할아버지 휴대전화에서 찾았다고 했다⁠. 사진 아래에 하얀 국화가 쌓였고⁠, 국화 사이에 이발소 빗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말희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왔다⁠. 립스틱은 바르지 않으려 했다⁠. 장례식장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발랐다⁠. 진한 빨간색으로⁠. 학주가 립스틱 없는 말희를 보면 어디 아프냐고 물을 것이었다⁠.

하모니카 동아리 여덟 명이 영정 앞에 나란히 앉았다⁠. 회장 할머니가 상주에게 물었다⁠. 하모니카를 불어도 되느냐고⁠. 학주의 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덟 개의 하모니카가 숨을 들이켰다⁠. 「⁠곱빼기 인생⁠」이었다⁠. 한 박자를 기다리지 않고 반 박자만 기다렸다⁠. 학주가 빗을 흔들며 가르친 대로였다⁠.

영천에서 버스를 대절해 왔던 막걸리 할아버지가 빈소 구석에서 막걸리를 따랐다⁠. 처음 만난 날 서로 지팡이 길이를 견주던 사이였다⁠. 할아버지가 잔을 영정 앞에 올리며 중얼거렸다⁠.

“⁠지팡이 내가 더 길었다⁠. 가서 우기지 마래이⁠.⁠”

빈소에 웃음이 번졌다⁠. 울던 할머니들이 웃었다⁠. 웃다가 다시 울었다⁠.

*

조문객이 뜸해진 저녁 여덟 시⁠, 염유준이 3호실 입구에 나타났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카메라도 작가도 없었다⁠. 유준은 영정 앞에 국화를 놓고 두 번 절했다⁠. 절하는 자세가 서툴렀다⁠. 상주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 유준은 말희를 찾았다⁠.

둘은 장례식장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마주 보았다⁠. 유준이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 개를 뽑아 하나를 내밀었다⁠. 예선장 복도에서 캔 떨어지던 소리가 났다⁠.

“⁠준결승 날 맨 앞줄 빈자리⁠, 그 어르신 자리였죠⁠.⁠”

“⁠그래⁠.⁠”

“⁠선생님 노래 중간에 나가신 거⁠, 화면에 잡혔어요⁠. 편집에서 뺐어요⁠.⁠”

말희가 유준을 보았다⁠. 유준은 캔을 따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다⁠.

“⁠빼라고 한 사람 없는데요⁠. 제가 뺐어요⁠. 어머니가 시키신 것도 아니에요⁠.⁠”

“⁠고맙다⁠.⁠”

“⁠고마워하지 마세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 온 거예요⁠.⁠”

유준이 숨을 한 번 쉬었다⁠. 장례식장에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얼굴이었다⁠. 알면서 하는 얼굴이었다⁠.

“⁠결승 날⁠, 국장님이 남편분 병실을 생중계로 연결하자고 하세요⁠. 선생님 노래하실 때 화면 한쪽에 남편분 얼굴을 띄우는 거요⁠. 남편분은 벌써 동의하셨어요⁠.⁠”

말희는 캔커피를 자판기 위에 내려놓았다⁠. 학주의 빈소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여기서 그 말을 하나⁠?⁠”

“⁠여기서 말씀드려야 거절하실 걸 알아서요⁠.⁠”

“⁠알믄 와 하노⁠?⁠”

“⁠거절하셨다고 국장님께 말씀드리려고요⁠. 제가 직접 들었다고⁠. 그래야 국장님이 더 안 밀어요⁠.⁠”

말희는 유준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숫자를 보는 눈이 오늘은 빈소를 보고 있었다⁠.

“⁠거절한다⁠.⁠”

“⁠네⁠. 들었습니다⁠.⁠”

“⁠니 국장한테 혼나겠네⁠.⁠”

“⁠혼나는 건 제 일이에요⁠. 선생님 일은 노래하시는 거고요⁠.⁠”

유준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복도 끝에서 한 번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어머니가 그 어르신 단톡방 공지 다 캡처해 두셨대요⁠. 느낌표 다섯 개짜리요⁠.⁠”

*

장례식장 뒷마당은 주차장과 이어져 있었다⁠. 말희는 바람을 쐬러 나와 화단 턱에 앉았다⁠. 담배 피우는 조문객 둘이 저만치에서 연기를 뿜었다⁠. 연기 냄새 사이로 서늘한 기운이 지나갔다⁠. 8월 초의 밤에 어울리지 않는 기운이었다⁠.

화단 반대편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하나는 검은 갓⁠, 저승사자였다⁠. 오늘은 갓 끈을 꽉 조여 매고 두 손을 도포 안에 넣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흰머리를 단정하게 쪽 찐 여자였다⁠. 검은 도포에 갓 대신 검은 남바위를 썼다⁠. 남바위는 옛날 겨울에 머리와 귀를 덮어 쓰던 방한모였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이었다⁠. 쉰으로도 아흔으로도 보였다⁠.

여자가 말희를 보았다⁠. 담배 피우던 조문객들은 여자를 보지 못했다⁠. 말희는 저승사자가 손뼉을 치지 않았는데도 여자가 보였다⁠.

“⁠나는 보이고 싶을 때 보이오⁠.⁠”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종을 덮고 치는 소리라면⁠, 여자의 목소리는 큰 범종을 멀리서 친 소리였다⁠. 땅으로 울렸다⁠.

“⁠사자들을 살피는 감찰이오⁠. 이 사람이 일을 자꾸 놓친다 하여 내려왔소⁠.⁠”

저승사자가 고개를 숙였다⁠. 쉰여섯 해를 일한 사자가 신참처럼 고개를 숙였다⁠. 말희는 저승사자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감찰 앞에서는 사자가 규례대로만 하오⁠.⁠”

감찰이 저승사자를 보지 않고 말했다⁠.

“⁠지금부터 이 사람은 당신 사정을 봐주지 않소⁠. 봐주면 내가 갓을 거두오⁠.⁠”

말희가 화단 턱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시큰했다⁠.

“⁠우리 남편 얘기 하러 왔지예⁠?⁠”

“⁠그렇소⁠. 권우갑⁠. 4월에 두 번 불렸고⁠, 석 달 넘게 세 번째를 듣지 못했소⁠. 당신 노래 때문에⁠.⁠”

“⁠알고 있습니더⁠.⁠”

“⁠백중 밤 열 시⁠, 이 사람의 마지막 종이 울리오⁠. 저승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 종이오⁠. 그 종에 세 번째를 듣지 못하면 권우갑은 몸을 잃고 떠도오⁠. 맡은 사자도 갓을 벗고 함께 떠도오⁠.⁠”

감찰의 눈이 말희를 똑바로 보았다⁠.

“⁠그 밤 열 시에 당신이 결승 무대에서 생으로 노래하고⁠, 권우갑이 병실 텔레비전으로 그 노래를 들으면⁠.⁠”

감찰은 문장을 끝맺지 않았다⁠. 끝맺지 않아도 되었다⁠.

“⁠텔레비전을 끄면 되잖아예⁠.⁠”

“⁠권우갑이 끄겠소⁠?⁠”

말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갑은 끄지 않을 것이었다⁠. 결승을 보려고 석 달을 버틴 사람이었다⁠.

“⁠그러면 내가 노래를 안 하면⁠…⁠…⁠.⁠”

“⁠그러면 권우갑은 당신 결승 노래를 듣지 못하고 가오⁠. 이 사람이 부르고⁠, 권우갑은 일어나 따라오오⁠. 그것이 규례요⁠.⁠”

감찰이 저승사자를 한 번 보았다⁠. 저승사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떠도는 기 그래 나쁩니꺼⁠? 내 노래 곁에 있으믄 되잖아예⁠.⁠”

“⁠떠도는 넋을 본 적 있소⁠?⁠”

말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보았소⁠.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 곁을 맴도오⁠. 그 소리가 다시 나기만을 기다리며⁠. 백 년이 지나도 같은 자리를 맴돌다 찾아낸 넋이 있었소⁠. 넋은 내게 처음 한 말이 노래가 언제 다시 나오느냐는 물음이었소⁠.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아흔 해 전에 죽었소⁠.⁠”

장례식장 뒷마당의 화단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말희는 팔을 감싸 쥐었다⁠.

“⁠나는 그 밤 무대를 직접 보러 가겠소⁠. 저승도 이번 결승은 보오⁠.⁠”

뒷마당의 서늘한 기운이 걷혔다⁠. 감찰도 저승사자도 없었다⁠. 담배 피우던 조문객 하나가 몸을 떨며 말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춥냐고⁠.

*

빈소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채란이 말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정장에 노란 티셔츠를 걸치지 않은 사람은 3호실에서 채란 하나였다⁠. 채란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있었다⁠.

“⁠엄마⁠, 아빠가 준결승 날 문간 보고 학주 할아버지 왔다고 했어⁠. 갓 선생이랑 같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학주 할아버지 돌아가신 거 알았어⁠. 시간이 똑같았어⁠. 엄마도 알았지⁠? 엄마 그날 전화로 노래하다가 끊었잖아⁠.⁠”

말희는 채란의 얼굴을 보았다⁠. 아빠를 닮은 한쪽 눈썹이 올라가 있지 않았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겁먹은 얼굴이었다⁠.

“⁠아빠가 그러더라⁠. 엄마 노래가 아빠를 붙잡고 있대⁠.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나한테도 말해 줘⁠. 나도 아빠 딸이야⁠.⁠”

말희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댔다⁠. 채란 옆에 나란히⁠. 그리고 처음부터 말했다⁠. 예선장 기둥 옆의 검은 갓⁠, 세 번의 부름⁠, 저승 종과 같은 목소리⁠, 4월의 두 번⁠, 밤 열 시의 노래⁠, 백중 자정⁠, 방금 뒷마당의 감찰⁠. 채란은 한 번도 끊지 않고 들었다⁠. 다 듣고 나서 채란이 물었다⁠.

“⁠그럼 결승 날 엄마가 노래하면 아빠가 떠돈다는 거야⁠?⁠”

“⁠열 시에 하믄⁠.⁠”

“⁠결승은 몇 시에 하는데⁠?⁠”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그럼 나가지 마⁠.⁠”

채란의 목소리가 단단했다⁠. 우갑이 사회자 마이크를 쥘 때의 목소리였다⁠.

“⁠엄마⁠, 아빠 옆에 있어⁠. 그날 밤 아빠 손잡고⁠, 노래 안 하고⁠. 아빠 편하게 가게⁠. 나도 옆에 있을게⁠. 그게 맞잖아⁠.⁠”

“⁠아빠는 결승 보고 싶다 캤다⁠.⁠”

“⁠아빠는 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삼십 년 내내 그랬잖아⁠. 이번엔 엄마가 아빠 하고 싶은 거 말고⁠, 아빠한테 필요한 거 해 줘⁠.⁠”

말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빈소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끝나고 할머니들의 박수 소리가 났다⁠. 학주의 영정 앞에서 치는 박수였다⁠.

*

학주의 손자가 빈소를 나서는 말희를 붙잡았다⁠. 손에 신발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상자 뚜껑에 학주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독수리 타법이 아닌 손 글씨는 반듯했다⁠. 「⁠금말희 씨께⁠」

“⁠할아버지 이발소 서랍에서 나왔어요⁠. 이름이 적혀 있어서요⁠.⁠”

말희는 복도 의자에 앉아 상자를 열었다⁠. 안에 카세트테이프 하나가 들어 있었다⁠. 「⁠곱빼기 인생⁠」 1996년⁠.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이었다⁠. 포장 위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세 개 샀소⁠. 하나는 늘어지고⁠, 하나는 이발소에 두고⁠, 하나는 가수 양반 결승 날 객석에서 사인받으려고 아껴 두었소⁠. 결승 날 내가 없으면 가수 양반이 스스로 사인해서 바깥양반 드리시오⁠.⁠」

예선장 비상계단에서 들것에 누운 학주가 대답하지 않고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하나는요⁠, 하고 물었을 때⁠. 말희는 테이프를 손바닥에 올렸다⁠. 스물아홉 해 동안 비닐을 뜯지 않은 테이프는 가벼웠다⁠. 가벼워서 무거웠다⁠.

손자가 말희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가 단톡방에 마지막으로 쓰다 만 글도 있어요⁠. 전송을 안 누르셨어요⁠.⁠”

손자가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 주었다⁠. 입력 칸에 글자가 남아 있었다⁠.

「⁠결승은백중날이오모두본방사수하시오나는앞자리잡아두겠⁠」

마지막 글자가 끊겨 있었다⁠. 말희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손자가 전송을 누를지 물었다⁠. 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두이소⁠. 어르신이 다 쓰실 때까지⁠.⁠”

*

밤 열한 시⁠, 장례식장 주차장의 탑차 운전석에서 말희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조수석에는 학주의 하얀 이어폰이 감겨 놓여 있었다⁠. 열 시에는 장례식장 화장실 칸 안에서 우갑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우갑은 학주 형님 잘 보내 드렸냐고 물었고⁠, 말희는 잘 보내 드렸다고 했다⁠.

말희는 유준의 번호를 눌렀다⁠. 유준이 첫 신호에 받았다⁠.

“⁠선생님⁠?⁠”

“⁠PD님⁠.⁠”

말희는 이어폰을 손바닥에 감아 쥐었다⁠. 감을수록 단단해졌다⁠.

“⁠내 결승 안 나간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장례식장 주차장 가로등이 깜빡였다⁠. 유준이 숨을 한 번 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니한테는 말 못 할 이유다⁠.⁠”

말희는 전화를 끊었다⁠. 운전석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짐칸과 운전석 사이 작은 창 너머가 비어 있었다⁠. 오늘 밤 저승사자는 감찰 곁에 있을 것이었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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