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17자) · 02:44
두 개의 키
격자 오류 · 문가온
스무 날은 빨리 갔다. 날마다 누가 무언가를 셌다.
강 팀장은 처마를 셌다. 331-208 골목 양쪽 집 스물세 채 가운데 처마가 이 미터 선을 넘는 집이 열네 채였다. 강 팀장은 도로과 공구함에서 톱과 각도기를 꺼내 들고 와서, 주민들과 같이 처마를 잘랐다. 허가는 없었다. 지번이 없는 땅이라 허가를 내줄 부서가 없었다. 첫 번째가 옥순 반장 집이었다. 반장이 사다리를 잡았고 강 팀장이 톱질을 했다. 톱날이 낡은 슬레이트를 가를 때마다 먼지가 폴폴 날렸다. 이십 센티미터가 잘려 나가 골목 바닥에 떨어졌을 때 반장은 그 조각을 주워서 수도 옆에 세워 두었다. 「기념이에요.」 강 팀장은 열네 채를 나흘 만에 끝냈다. 끝나고 줄자를 골목에 댔다. 가장 좁은 데가 이 미터 이십이 센티미터. 강 팀장은 줄자를 감으며 말했다. 「이 센티 남네. 구급차 사이드미러 접으면 들어와요.」
민 선배는 사람을 셌다. 402-017에서 나간 여섯. 할머니들이 기억하는 이름과 옛 공장 이름을 들고, 주말마다 산업단지와 옆 시 인력 사무소를 돌았다. 스무 날 동안 넷을 찾았다. 둘은 옆 시 원룸에, 하나는 요양병원에, 하나는 108-441 쪽방에 있었다. 주소 없는 사람은 주소 없는 데로 간다. 한설의 말이 맞았다. 민 선배는 찾을 때마다 한설 공책 물음표 하나 위에 이름을 덮어 적었다. 물음표 여섯 가운데 넷이 이름이 됐다.
권혜린 부장은 전화를 셌다. 재정렬이 되면 주소가 바뀌는 오만 천사백육십 세대. 그 세대에 보낼 안내문 초안을 부장이 직접 썼다. 한 장짜리. 첫 줄은 사과였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 불편은 이 도시가 그동안 세지 않았던 이웃 백육십여 명을 다시 세기 위한 것입니다.」 부장은 그 한 줄을 스무 번 고쳤다고 했다.
한설은 서류를 셌다. 백육십 명의 이름, 생년, 출생 장소, 증인. 주소가 생기는 순간 주민센터에 낼 등록 신청서. 스물여덟 명과 108-441 아기 둘의 출생 신고서. 신고서 증인란에는 옥순 반장이 이름을 적었다. 그 아이들을 받은 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세지 못했다. 정직 중이었다. 출입증도, 권한도 없었다. 나는 계산만 했다. 집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재정렬 시뮬레이션을 여섯 번 더 돌렸다. 세 블록. 영향 블록 삼천이백십. 주소 변경 오만 천사백육십. 연동 시스템 열아홉. 정합성 충돌 스물여섯, 그리고 열이레 먼저 돌아간 402-017 정렬에서 생긴 충돌 아홉. 모두 서른다섯. 여섯 번 돌려 여섯 번 같았다. 사십칠 분이 오십이 분이 되었다.
집행일 전날 밤 한 시 사십 분, 나는 시청 별관 뒷문 앞에 있었다. 한설이 먼저 와 있었다. 흰 블라우스 위에 회색 점퍼. 목에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십일 년 전 발급, 만료일 칸 공란.
“이 카드로 칠층까지는 가요.”
“알고 있습니다.”
한설이 카드를 대자 뒷문이 열렸다. 딸깍. 인사 시스템이 한설을 못 찾아서, 한설은 아직 여기 직원이었다.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으로 칠층까지 올라갔다. 계단참마다 초록 비상등이 켜져 있었다. 한설의 운동화 앞코에 331-208 흙이 묻어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 흙이 조금씩 떨어져 계단참에 작은 점을 남겼다. 칠층에 닿았을 때 한설은 숨이 조금 찼고, 나는 숨이 많이 찼다. 한설이 웃었다. 「정직하면 체력이 떨어지나 봐요.」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이 계단에서 웃을 줄은 몰랐다.
감사실에 권혜린 부장이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고양이 슬리퍼였다. 책상 위에 금속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긴급 정합 조치 제1키. 설계부장 보관용. 부장은 모니터에 조치 화면을 띄워 두었다. 키 입력란이 둘이었다. 설계부장. 그리고 담당 설계자.
“담당 설계자 칸이 문제예요.”
부장이 말했다.
“규정상 담당 설계자는 그 좌표를 마지막으로 작업한 계정이에요. 331-208을 마지막으로 만진 계정.”
부장은 한설을 봤다. 한설은 목에 건 출입증을 벗어 손에 쥐었다.
“T-0417.”
“네. 인사 기록이 없어서 퇴직 처리도 안 됐고, 그래서 권한도 회수가 안 됐어요. 십일 년 동안 살아 있었어요. 지운 계정이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계정이에요.”
한설은 한참 화면을 봤다. 그리고 부장 옆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였다. 첫날 밤 커서가 정렬 단추 위에 있던 자리.
“비밀번호 기억나요?”
부장이 물었다.
“잊어버린 적 없어요. 할머니 생신이에요.”
나는 기안자 칸 앞에 섰다. 재정렬안 첫 장. 결재란 첫째 칸이 비어 있었다. 기안자. 정직 중인 직원이 기안하면 그건 또 하나의 징계 사유다. 나는 볼펜을 꺼냈다. 이름을 적었다. 유안. 날짜. 시각 02:10.
두 시 이십 분에 복도 끝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발소리가 여럿이었다. 감사실 유리문 밖에 남궁현 부시장이 섰다. 양복 대신 점퍼 차림이었다. 그 뒤로 청사 경비원 둘과 비서 하나. 부시장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출입증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권 부장. 정직 중인 직원하고, 퇴직자하고, 새벽에 뭐 하는 겁니까?”
“퇴직자 아닙니다. 인사 기록상 재직 중입니다. 부시장님이 주소를 지우셔서요.”
부시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거두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화면 끄세요. 경비원, 저 단말 전원 뽑으세요.”
경비원 둘이 서로를 봤다. 한 사람이 한 발 나섰다. 그때 복도 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서버실은 옆방인데요.”
강 팀장이었다. 작은 양복에 도로과 조끼를 겹쳐 입고, 서버실 문 앞에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아 있었다. 무릎에 컵라면을 올려놓고. 민 선배가 그 옆에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단말 전원 뽑아도 소용없어요. 서버에서 돌거든요. 서버실 들어가시려면 저 비켜야 되는데, 제가 무릎이 안 좋아서 한번 앉으면 오래 걸려요.”
경비원이 부시장을 봤다. 부시장은 경비원을 보지 않았다. 권혜린 부장을 봤다.
“권 부장. 이거 돌리면 부장 끝이에요. 저 직원도, 저 여자도.”
“압니다.”
“오만 세대가 아침에 주소가 바뀌어요. 그 전화 누가 받아요.”
“제가 받습니다.”
부장은 금속 열쇠를 집어 들었다. 모니터 옆 조치 단말의 열쇠 구멍에 꽂았다. 돌리지 않았다. 한설을 봤다.
두 시 사십사 분이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 시계가 그 숫자를 가리켰다. 십일 년 전 그 밤, 331-208이 지워진 분.
한설이 T-0417을 입력했다. 비밀번호를 쳤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부장이 열쇠를 돌렸다. 딸깍. 한설이 확인 단추를 눌렀다.
〈긴급 정합 조치 실행 — 대상 402-017 · 108-441 · 331-208 — 승인: 설계부장 권혜린 · 담당 설계자 T-0417 — 기안: 유안〉 〈재정렬 시작 — 예상 소요 52분 — 중단 불가(연동 19개 시스템 동기화 중)〉
부시장은 화면을 봤다. 진행 막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 그것을 보다가, 경비원에게 손짓을 했다. 나가자는 손짓이었다. 문간에서 부시장이 돌아봤다. 나를.
“유안 씨. 좌표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지우는 데 쓰셨으니까, 넣는 데 쓰는 겁니다.”
부시장은 권혜린 부장 쪽으로 눈을 옮겼다.
“권 부장. 이십이 년 전 그 열한 달 기억하죠. 그걸 당신 손으로 다시 여는 거예요.”
“기억합니다. 그래서 여는 겁니다. 그때 전화한 사람들은 목소리라도 있었어요. 이번에 주소 받는 사람들은 십일 년 동안 목소리가 없었고요.”
부시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비원 하나가 나가다 말고 돌아서서 강 팀장에게 목례를 했다. 강 팀장은 컵라면을 든 채로 목례를 받았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멀어졌다.
오십이 분 동안 아무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강 팀장은 서버실 앞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민 선배는 복도 창가에서 산업단지 쪽 불빛을 봤다. 부장은 안내문 초안을 한 번 더 고쳤다. 한설은 진행 막대를 봤다. 나는 한설을 봤다.
막대가 절반쯤 찼을 때 한설이 낮게 말했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첫날 밤에 여기 서 있었어요. 유리문 밖에. 커서가 단추 위에 있는 게 보였어요. 누르면 어쩌나 했어요.”
“누를 뻔했습니다.”
“알아요.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 있었어요.”
“왜 문을 두드리지 않았습니까. 유리에 손만 대고.”
“두드리면 누르기 전에 놀라서 누를 것 같았어요. 손만 대면, 고개를 들 것 같았고요.”
나는 그 밤 유리문 밖 손바닥을 떠올렸다. 소리 없이 유리에 닿아 있던 손. 나는 그 손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한설은 그걸 계산했었다. 한설의 셈은 늘 사람이 고개를 드는 쪽으로 짜여 있었다. 십일 년짜리 타이머도, 열이레와 열이틀도, 유리에 댄 손바닥도.
막대가 사분의 삼을 넘었을 때 한설이 가방에서 새 공책을 꺼냈다. 표지가 아직 비어 있었다.
“다 세고 나서 적는다고 했잖아요.”
“아직 다 안 셌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안 적어요.”
세 시 삼십육 분, 막대가 끝까지 찼다.
〈재정렬 완료 — 주소 변경 51,460세대 — 신규 등록 좌표 3〉 〈격자 합계: 419,430,400〉
보정값 없이 맞는 합계였다. 십일 년 만에. 괴어 둔 숫자 없이, 사람이 사는 칸이 사람이 사는 칸으로 들어가서 맞은 합계였다. 부장이 그 숫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 모니터 유리에 지문이 남았다. 부장은 닦지 않았다.
한설이 의자에서 일어나 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나는 앉았다. 구급 배차 시스템을 열었다. 좌표를 넣었다. 손으로.
331-208.
〈유효한 좌표입니다.〉
복도에서 민 선배가 휴대폰으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창가에서 돌아섰다. 「402-017 유효.」 한 줄만 말했다. 강 팀장은 컵라면 뚜껑을 덮고 일어나서 서버실 문에 등을 기댄 채 휴대폰 지도 앱을 열었다. 331-208 골목 안까지 경로 안내가 떴다. 이 미터 이십이 센티미터짜리 길이 처음으로 지도에 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강 팀장은 화면을 우리 쪽으로 돌려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조금 떨렸다.
감사실 전화가 울렸다. 네 시 이 분. 첫 민원이었다. 부장이 고양이 슬리퍼를 가지런히 모으고 수화기를 들었다.
“좌표설계부장 권혜린입니다. 네. 네, 주소가 바뀌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명드리겠습니다.”
부장은 안내문 첫 줄을 읽었다. 스무 번 고친 그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