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26자) · 331-208-1

번지 판

격자 오류 · 문가온

첫날 민원은 삼천이백 건이었다. 둘째 날 천팔백. 셋째 날 구백. 권혜린 부장은 사흘 동안 부장실에 간이침대를 펴 놓고 전화를 받았다. 설계부 직원 스무 명이 돌아가며 받았고, 도로과에서 강 팀장이 전화 받는 사람 셋을 보내 줬다. 욕은 생각보다 적었다. 이십이 년 전의 절반도 안 됐다. 부장은 그게 안내문 첫 줄 때문이라고 했다. 민원인 가운데 몇몇은 욕을 하려고 전화했다가, 첫 줄을 듣고 나서 한참 말이 없다가, 「그 백육십 명은 어디 살아요」 하고 물었다고 했다. 부장은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좌표를 불러 줬다. 331-208, 402-017, 108-441. 넷째 날 오후에는 어느 할아버지가 전화해서, 욕은 안 하고 331-208에 김치를 보내고 싶은데 주소가 맞느냐고 물었다. 부장은 맞다고 했다. 이제 맞다고.

나흘째 되는 날 감사원 감사관들이 시청 본관 십이층에 들어갔다. 인사위원회 속기록과 시의회 속기록이 나란히 제출되어 있었다. 같은 사람이 두 번, 자기가 정하지 않은 숫자를 자기가 정했다고 말한 기록. 그 옆에 T-0417의 2015년 파일 생성 기록. 두 시 이십육 분 작성, 두 시 오십 분 저장. 그리고 스마트밸리 이단계 시행사의 내부 문서 한 장. 퇴임 후 대표이사 내정자 명단. 첫 줄에 남궁현.

그 문서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민 선배가 요구르트 뚜껑 같은 얼굴로 모른 척했을 뿐이다.

일주일 뒤 남궁현은 직위해제됐다. 스마트밸리 이단계는 보류됐다. 331구역 대집행은 취소됐다. 사유는 한 줄이었다. 「대상 구조물 지번 확인 — 보상 절차 재산정 필요.」 지번이 생기면 구조물은 무허가 구조물이 아니라 집이 된다. 집은 보상 대상이다. 삼백이십억은 절감되지 않았다.

직위해제 통보가 나간 날 저녁, 나는 본관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궁현과 마주쳤다. 그는 종이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상자 위에 명패가 비스듬히 얹혀 있었다. 부시장은 나를 보고 웃었다. 이가 보였다. 끝까지.

“유안 씨. 오만 집 주소가 바뀌었다며. 다음 부시장이 또 뭘 빼려고 하면, 그땐 누가 새벽 두 시에 앉아 있을까.”

“제가 앉아 있을 겁니다.”

“혼자?”

“아니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는 상자를 고쳐 들고 탔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마디를 더 했다. 「땅은 남아요. 사람은 가고.」 문이 닫혔다. 층수 표시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는 끝까지 자기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흔들 데가 없는 사람은 넘어질 때도 그 모양 그대로 넘어진다.

값은 따로 치렀다. 나는 정직이 끝나는 날 감봉 삼 개월을 한 번 더 받았다. 정직 중 기안. 권혜린 부장은 견책을 받았다. 부장은 견책 통지서를 부장실 격자 필름 유리창에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창밖 도시가 통지서 뒤로 줄 사이에 갇혀 있었다. 한설은 공전자기록 위작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가, 한 달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처분서에 이유가 적혀 있었다. 「상급자 지시에 따른 행위이며, 스스로 기록을 남겨 사실 확인에 결정적으로 기여함.」 한설은 그 처분서를 새 공책 표지 안쪽에 붙였다. 표지 바깥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인사 시스템은 한설을 찾았다. 331-208에 주소가 생긴 날 아침, 인사과 화면에 한설의 기록이 다시 떴다. 십일 년 만에. 시스템이 자동으로 경고를 띄웠다. 〈장기 무단결근 4,038일 — 조치 필요〉. 인사과 주무관이 그 경고를 보고 한참 웃다가, 웃다가, 부장실로 전화했다. 권혜린 부장은 한설을 휴직에서 복직으로 처리하는 서류를 직접 썼다. 휴직 사유란에 「주소 상실로 인한 행정상 소재 불명」이라고 적었다. 그런 사유는 규정에 없었다. 부장은 규정에 없는 칸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한설은 복직했다. 좌표설계부 야간 감사. 새벽 두 시. 출입증은 새로 받지 않았다. 옛날 것에 만료일만 새로 찍었다.

331-208 주민 등록은 토요일에 했다. 주민센터 직원 둘이 331-208 골목으로 나왔다. 처음으로 지도 경로를 따라서. 골목 입구에 접이식 책상을 펴고 줄을 섰다. 백열두 명. 옥순 반장이 제일 앞이었고 한설이 제일 끝이었다. 줄은 골목 끝 평상까지 이어졌다.

스물여덟 명의 출생 신고가 그날 들어갔다. 신고서 증인란마다 옥순 반장의 이름이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이 스물여덟 장을 넘기다가 반장을 올려다봤다. 「이거 다 받으셨어요?」 반장은 대답하지 않고 소매를 걷었다. 팔뚝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물을 끓이다 데었다고 나중에 한설이 말해 줬다. 아이 받을 때 쓸 물.

108-441은 그다음 주에 등록했다. 서른일곱 명. 고물상 주인은 등록 날 쪽방 입구에 나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강 팀장이 그 옆에 서서 표준 월세 계약서 서른일곱 장을 한 장씩 나눠 줬다. 계약서 임대인 칸에 고물상 주인 이름을 먼저 적어 두었다. 주인은 계약서를 받아 들고 한참 서 있다가, 세 번째 장부터 서명을 했다. 한 달 된 아기에게는 이름이 생겼다. 엄마가 번역기에 대고 불렀고, 번역기가 한국어로 따라 읽었다. 「해은.」 이 도시 이름이었다. 402-017은 민 선배가 맡았다. 찾은 넷까지 열다섯 명. 민 선배는 등록 서류를 다 내고 나서 할머니 둘에게 밥을 샀다. 할머니가 먼저 물었다고 했다. 밥은 먹었냐고.

일주일 뒤 취학 통지서가 왔다. 열아홉 장. 우편집배원이 골목 안까지 들어와서 집집마다 넣었다. 처음으로. 집배원은 철문 옆 쪽지를 보고 한참 서 있다가, 우편물을 들고 들어갔다. 아이들이 통지서를 들고 골목을 뛰어다녔다. 한 장은 준호 것이었다. 준호는 그 주에 깁스를 풀었다.

깁스 푸는 날 준호는 병원에서 깁스 조각을 하나 챙겨 왔다. 숫자가 빼곡히 적힌 조각이었다. 331-208이 거꾸로 된 3과 동그라미 두 개짜리 8로. 준호는 그 조각을 들고 철문 옆 계고장 자리로 갔다. 계고장은 대집행 취소 날 도시계획국 직원이 와서 떼어 갔다. 뗀 자리에 테이프 자국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거꾸로 된 3을 적어 두었던 그 테이프.

준호는 매직을 꺼내 테이프 옆 벽에 적었다. 삐뚤게. 유안 아저씨. 약속 지킴.

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 웃다가 고개를 돌렸다. 골목에 사람이 많았다. 준호는 매직 뚜껑을 닫으면서 거꾸로 된 3 하나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일요일 오후, 옥순 반장이 철문 옆 쪽지 앞에 섰다. 코팅한 종이. 택배 여기 두고 가세요. 주소가 없어서 못 찾으십니다. 죄송합니다. 삼 년 동안 햇빛에 바래 누렇게 된 종이. 반장은 쪽지 네 귀퉁이 테이프를 손톱으로 하나씩 들었다. 오래돼서 잘 안 떨어졌다. 마지막 귀퉁이가 떨어질 때 종이가 반장 손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강 팀장은 번지 판을 두 개 짜 왔다. 하나는 이 철문 것이고, 하나는 박말순 할머니 것이었다. 할머니 것을 먼저 건넸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 217-104. 이제 그 좌표는 아파트 공사장이라 주소로는 못 쓴다. 할머니는 그 판을 방 안 벽에 걸었다. 비닐하우스 대문 옆에 할아버지가 손으로 써 붙였던 그 번지. 할머니는 판을 걸고 나서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반장은 쪽지를 한설에게 줬다. 한설은 그 쪽지를 새 공책 맨 뒷장에 끼웠다. 거기에는 이미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이번엔 적는 사람이 바뀌지 않게. 그 아래 한 줄. 세는 사람이 여섯이 됐다.

강 팀장이 남은 번지 판을 들고 철문 앞에 섰다. 도로과 공방에서 직접 짠 나무 판이었다. 흰 페인트 바탕에 검은 글씨. 해은시 동남구 매화로 331-208-1. 강 팀장은 전동 드릴로 철문 옆 벽에 구멍을 두 개 뚫었다. 드릴 소리에 골목 아이들이 몰려왔다. 강 팀장은 나사를 박다가 한 번 멈추고, 나를 봤다.

“설계자님이 박으세요. 마지막 나사.”

나는 드릴을 받았다. 무거웠다. 나사가 벽으로 들어가는 동안 드릴이 손에서 떨렸다. 떨림이 멎었을 때 번지 판이 벽에 붙어 있었다. 철문 옆, 쪽지가 있던 자리.

331-208-1.

그 순간 골목 입구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택배였다. 기사가 오토바이를 331-207 도로에 세우지 않고, 지도 경로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폭 이 미터 이십이 센티미터. 오토바이 짐칸에 상자 하나. 기사는 번지 판을 한 번 보고, 송장을 한 번 보고, 옥순 반장을 봤다.

“여기 맞죠? 331-208-1.”

“맞아요.”

반장이 상자를 받았다. 발송인 칸에 모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해은시 북구의 어느 주소. 상자 안에 김치통이 들어 있었다. 뚜껑 위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전화로 들었습니다. 이웃이 백육십 명 늘었다고요. 맛은 장담 못 합니다.」

반장은 그 쪽지를 읽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택배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 여기 처음 오셨죠.”

“네. 지도에 없던 데라.”

“그동안 죄송했어요.”

기사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로 헬멧을 고쳐 썼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돌려 나갔다. 이 센티미터를 남기고.

그날 밤 두 시, 나는 감사실에 있었다. 정직이 끝나고 돌아온 첫날. 옆자리에 한설이 앉아 있었다. 복직 첫날. 우리는 합계를 돌렸다.

419,430,400.

한설이 새 공책을 펴고 첫 장을 넘겼다. 셈이 적혀 있었다. 331-208, 백열둘. 402-017, 열하나, 그리고 찾은 넷. 108-441, 서른일곱. 217-104, 다섯은 331-208에. 나머지 칸에는 아직 물음표가 둘 남아 있었다. 찾을 사람.

“다 세면 표지 적는다고 했잖아요.”

“아직 다 못 셌어요.”

한설은 표지를 덮었다. 비어 있는 채로.

“그리고 오늘 합계 돌리다가 하나 더 봤어요. 보정값 목록에. 만료일이 이 년 뒤인 거. 2015년 것 말고, 2013년 거. 결재자는 같은 사람이고, 작업자는 또 다른 임시 계정이에요.”

한설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좌표 하나. 055-390. 유효 기간 칠백삼십 일 남음.

또 다른 신입. 누군가 그 밤에도 칸 하나에 숫자를 심어 두었다. 칠백삼십 일 뒤 새벽에 누가 고개를 들도록.

나는 그 좌표를 위성 화면으로 열었다. 강가 둔치에 낮은 지붕 몇 개가 보였다. 열화상으로 바꾸자, 그 네모가 주변보다 한 톤 따뜻했다.

“이 년 남았네요.”

“이번엔 이 년 기다리지 말죠.”

한설이 연필을 들었다. 공책 물음표 두 개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055-390.

셈이 하나 늘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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