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17자) · 고양이 슬리퍼
108-441
격자 오류 · 문가온
108-441의 보정값이 만료되는 밤, 나는 열한 시에 감사실에 들어갔다. 근무는 두 시부터였다. 세 시간 먼저 온 것은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찾기 위해서였다. 부시장이 보정값 만료를 알고 있다면, 그 밤에 사람 손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찾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시스템 예약 작업 목록 맨 아래에 새 줄이 있었다. 사흘 전 등록. 등록자: 시스템 관리 계정. 요청 부서: 부시장실 스마트밸리 추진단.
〈예약 작업 — 격자 정합 자동 보정 — 대상 108-441 — 실행 02:30 — 방식: 지도 제외 확정 및 번호 재부여〉
자동 정렬이었다. 사람이 단추를 누르지 않아도 두 시 반에 108-441이 영영 없어지도록. 오류 처리. 십 분도 안 걸린다. 삼 분.
나는 예약 작업을 취소하려고 했다. 권한이 없었다. 월요일에 회수된 권한 목록 안에 예약 작업 관리도 들어 있었다. 회색 줄 하나가 나 모르게 둘을 막고 있었다.
열두 시 사십 분. 부장 메모가 지갑에 있었다. 몇 시든.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네 번 가고 받았다. 잠긴 목소리였다.
“유안 씨.”
“부장님. 두 시 반에 자동 정렬이 예약돼 있습니다. 108-441. 부시장실 요청입니다. 제 권한으로는 취소가 안 됩니다.”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이불 스치는 소리가 났다.
“누르기 전에 전화하랬더니, 누르는 사람이 없는 거네요.”
“예.”
“삼십 분.”
부장은 전화를 끊었다.
부장은 이십팔 분 만에 왔다. 잠옷 바지 위에 코트를 입었고, 머리를 대충 묶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슬리퍼 한 짝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부장은 내 시선을 알아채고 말했다.
“딸 거예요. 급해서. 아침에 딸이 자기 슬리퍼 없다고 온 집을 뒤질 거예요. 그 전에 돌아가야 되는데, 못 돌아가겠죠.”
부장은 내 자리에 앉았다. 부장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예약 작업 목록을 열고, 맨 아래 줄을 한참 봤다. 커서가 취소 단추 위에서 멈췄다.
“유안 씨. 이거 취소하면 부시장실 요청을 설계부장이 막은 게 돼요. 기록에 남아요. 내 이름으로.”
“압니다.”
“알아요?”
“제가 부장님께 전화한 것도 기록에 남습니다.”
부장은 나를 올려다봤다. 모니터 불빛이 부장 얼굴 아래쪽에서 올라와, 주름을 깊게 보이게 했다. 부장은 그 얼굴로 한참 있다가 말했다.
“2023년에 한 번 더 물어봤으면 됐다고, 그때 말했죠.”
“예.”
“이번엔 물어볼게요. 이거 취소하면 108-441에 몇 명이 남아요.”
“모릅니다. 가서 세야 합니다.”
부장은 취소 단추를 눌렀다. 딸깍. 목록에서 줄이 사라졌다. 부장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한 줄을 더 입력했다. 예약 작업 등록 제한. 대상: 402-017, 108-441, 331-208. 등록 권한: 설계부장.
“이제 이 셋은 제 결재 없이는 아무도 못 건드려요. 부시장도요. 그 대신 제가 다 건드려야 되고요.”
두 시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부장은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 개를 뽑아 와 하나를 내 책상에 놓았다. 그리고 옆자리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고양이 슬리퍼 한 짝이 발끝에서 까딱거렸다.
“이십이 년 전 그 열한 달 말이에요.”
“예.”
“전화 백 통 중에 절반은 욕이었어요. 나머지 절반은 우는 거였고. 택배가 안 와서, 약이 안 와서, 애 학교 배정이 바뀌어서. 그 사람들 목소리가 아직 기억나요. 그래서 사만 이천 건이라는 숫자를 보면 그 목소리가 먼저 들려요.”
부장은 캔을 땄다. 칙 소리가 났다.
“그런데 331-208 사람들은 전화를 할 데가 없었네요. 주소가 없으니까 민원 창구에도 안 잡히고. 그래서 목소리가 안 들렸던 거예요. 안 들리니까 없는 줄 알았고.”
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캔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캔 바닥의 물기가 책상에 동그란 자국을 냈다.
“유안 씨가 첫날 그랬죠. 단위가 다르다고. 불편하고 없는 거하고. 그 말이 사흘 동안 안 떨어지더라고요.”
두 시 정각, 합계가 떴다. 419,427,200. 1,600이 두 번 비었다. 331-208과 108-441. 나는 그 숫자를 정렬하지 않았다. 부장도 정렬하지 않았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틀린 합계를 봤다. 삼 년 동안 틀린 적이 없던 숫자가 보름 사이 두 번 틀려 있었다. 틀린 채로 두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가요.”
부장이 코트 단추를 잠갔다.
“어디로요.”
“세러요. 모른다면서요.”
새벽 네 시, 산업단지 끝 고물상 앞에 차 두 대가 섰다. 내 차와 부장 차. 한설은 먼저 와 있었다. 공책을 들고. 옥순 반장이 따라와 있었다. 보온병을 들고. 강 팀장까지 와 있었다. 도로과 조끼를 입고, 줄자를 들고. 누가 불렀느냐고 묻자 강 팀장은 「설계자님이 새벽에 전화하시는 거 보니까 도로 잴 일 생기겠다 싶어서」라고 했다. 부장이 강 팀장을 보고, 고양이 슬리퍼를 내려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업단지의 새벽은 냄새가 먼저 왔다. 기름과 쇳가루와 젖은 폐지 냄새. 굴뚝 두 개가 흰 김을 뿜고 있었고, 그 김이 가로등 불빛에 누렇게 물들어 낮게 깔렸다. 고물상 간판 불은 꺼져 있었다. 개가 한 번 짖고 그쳤다. 어디선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철판 담 끝 틈은 어깨 하나 너비였다. 한설이 먼저 들어갔고, 내가 들어갔고, 부장이 코트 자락을 여미고 옆으로 서서 들어갔다. 강 팀장은 들어가다가 배가 걸렸다.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들어왔다. 틈 안쪽은 폐지 더미 사이로 난 길이었다. 길 끝에 슬레이트 지붕이 낮게 이어져 있었다. 방문이 스무 개쯤. 문마다 신발이 두세 켤레씩 놓여 있었다. 공장 작업화가 많았다.
첫 번째 문을 두드리려는데 뒤에서 손전등 불빛이 비쳤다.
“누구야.”
오십 대 남자가 서 있었다. 러닝셔츠 차림에 고무 슬리퍼. 손전등을 우리 얼굴에 차례로 비췄다. 고물상 주인이었다. 한설이 조용히 말했다. 여기 방 스무 개, 저 사람이 세 받아요. 주소 없는 방이라 계약서도 없고 신고도 없어요.
“공무원이 새벽에 남의 땅에서 뭐 해.”
부장이 한 발 나섰다. 코트 안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고양이 슬리퍼가 폐지 더미 사이에서 빛을 받았다.
“좌표설계부장입니다. 여기가 남의 땅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지금 이 땅은 지도에 없어요. 지도에 없는 땅에 방 스무 개를 지어서 세를 받으시면, 그건 누구 땅입니까?”
고물상 주인이 손전등을 내렸다.
“십 년 넘게 아무도 안 왔는데.”
“이제 왔습니다. 그리고 계속 옵니다.”
고물상 주인은 한참 서 있다가, 욕을 한마디 뱉고 고물상 쪽으로 돌아갔다. 가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부시장실 김 비서」라는 말이 한 번 들렸다.
그 말을 부장도 들었다. 부장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첫 번째 문을 두드렸다. 두 번.
날이 밝을 때까지 스무 개의 문을 두드렸다. 한설이 이름을 적었고, 내가 셌고, 옥순 반장이 보온병 보리차를 종이컵에 따라 돌렸다. 강 팀장은 길 폭을 쟀다. 가장 좁은 데가 칠십 센티미터. 방마다 두 사람, 세 사람. 공장 야간조에서 막 돌아온 사람, 막 나가려는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는 휴대폰 번역기를 썼다. 번역기가 「주소」라는 말을 「어드레스」로 바꿔 읽어 줄 때마다 사람들 얼굴이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저었고, 어떤 사람은 자기 방문 번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에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고물상 주인이 매긴 번호였다. 월세 받을 때 쓰는.
마지막 방에서 나온 남자는 공장 작업복을 입은 채였다. 번역기 없이 한국말로 물었다. 「주소 생기면 월세 계약서 쓸 수 있어요?」 강 팀장이 줄자를 감다 말고 대답했다. 「쓸 수 있어요. 계약서 쓰면 고물상 사장이 세를 마음대로 못 올려요.」 남자는 그 말을 두 번 되풀이해 달라고 했다. 강 팀장은 두 번 했다. 세 번째는 남자가 따라 했다.
서른일곱 명이었다. 2015년에는 스물셋이었다. 열넷이 늘었다. 그중 둘은 아기였다. 한 방에서 한 달 된 아기가 자고 있었다. 엄마가 아기를 보여 주며 번역기에 대고 말했다. 번역기가 읽었다. 「이 아이는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서류가 없습니다.」
한설이 공책에 적었다. 108-441, 서른일곱. 그 아래 괄호 안에 작게. 이 년 사이 둘.
아기 엄마는 한설의 공책을 들여다보다가 번역기에 대고 한 번 더 말했다. 번역기가 읽었다. 「이름을 적어 주세요. 아기 이름은 아직 없습니다. 주소가 생기면 지을 겁니다.」 한설은 서른일곱째 줄 이름 칸을 비워 두었다. 빈칸 옆에 연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331-208 공책에서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 옆에 그리던 것과 같은 동그라미였다. 부장이 그 동그라미를 봤다. 부장은 코트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동그라미 옆에 자기 사번을 적었다. 한설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부장은 「이 칸 책임자」라고만 했다.
해가 뜬 뒤 우리는 고물상 앞 도로에 모였다. 부장이 한설의 공책을 받아 들고 셈을 읽었다. 331-208 백열둘. 402-017 열하나. 108-441 서른일곱. 217-104 아홉, 이미 없음. 402-017 옆 물음표 여섯. 찾을 사람.
“백육십.”
부장이 말했다. 지금 있는 사람만 더한 숫자였다.
“재정렬안 다시 짜 와요. 셋 다 넣어서. 영향 세대가 사만 이천이 아니게 될 거예요.”
“오만이 넘을 겁니다.”
“알아요. 이십이 년 전보다 커요.”
부장은 고양이 슬리퍼 앞코로 도로의 모래를 한 번 쓸었다.
“제가 그때 칠 년 차였다고 했죠. 하루에 전화 백 통씩 받았다고. 이번엔 제가 받을게요. 부장이니까.”
부장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부장은 화면을 봤다. 발신자 이름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부장이 전화를 받지 않고 화면을 엎어 주머니에 도로 넣는 것은 봤다. 진동이 한 번 더 울렸다가 멎었다. 부장은 주머니 위를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강 팀장이 줄자를 감으며 끼어들었다.
“도로과 전화도 제가 받을게요. 처마 이십 센티미터.”
옥순 반장이 빈 보온병을 흔들었다.
“우리 골목은 우리가 받고.”
한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책 맨 뒷장을 폈다. 거기 적혀 있던 한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나는 그걸 어깨 너머로 봤다.
세는 사람이 여섯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