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13자) · 빨간 락카

T-0417

격자 오류 · 문가온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 분, 내 자리에 보안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내 모니터 앞에, 한 사람은 내 의자 옆에 서서. 모니터 화면에 권한 설정 창이 떠 있었다.

“유안 씨죠. 감사 기록 열람 권한 회수 조치입니다.”

“사유가 뭡니까?”

“업무 범위를 벗어난 반복 조회. 부시장실 요청입니다.”

앉아 있던 사람이 마우스를 눌렀다. 딸깍. 권한 목록에서 한 줄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감사 기록 보관 시스템 — 열람〉. 서 있던 사람이 서류를 내밀었다. 확인 서명란이 있었다.

“서명 안 하겠습니다.”

“안 하셔도 적용됩니다. 거부했다고 적겠습니다.”

“그럼 거부했다고 적으십시오. 사유란에 하나 더 적어 주십시오. 331-208, 402-017, 108-441. 셋 다 2015년 구월 삼일 새벽, 한 계정, 한 승인. 그걸 확인하던 중이었다고.”

보안팀 직원은 볼펜을 든 채로 나를 봤다. 그러다 서류 여백에 뭔가를 적었다. 무엇을 적었는지는 보여 주지 않았다. 둘은 일어나서 나갔다. 사무실 사람들이 모니터 너머로 나를 봤다가, 얼른 제 화면으로 돌아갔다.

팔층 계단참에서 권혜린 부장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단 난간을 한 번 손바닥으로 쓸고, 부장실로 올라갔다. 오 분 뒤 사내 메신저로 한 줄이 왔다. 「권한은 막혔어도 근무표는 안 막혔습니다. 열흘 뒤 밤, 그대로입니다.」

감사 기록이 막혔으니 T-0417을 더 찾을 길이 없었다. 연결된 인사 기록이 없는 계정. 주소가 없어서 인사 시스템이 못 찾는 사람. 퇴직 처리도 안 된 사람.

나는 그 문장들을 한 줄씩 다시 읽었다. 첫날 밤 칠층 유리문 앞에서 들은 문장들과 같은 문장이었다. 주소가 없어서 인사 시스템이 저를 못 찾아요. 그래서 퇴직 처리가 안 돼요. 그래서 이 카드가 아직 살아 있어요.

십일 년 전 발급된 출입증. 좌표설계부. 일 년 근무. 신입.

오후 세 시에 나는 331-208에 갔다. 한설은 평상에 없었다. 옥순 반장이 골목 안쪽 끝 집을 가리켰다. 파란 대문이었다. 문이 열려 있었다.

방은 한 칸이었다. 장판이 누렇게 바랬고, 방구석에 접이식 매트리스가 세워져 있었다. 벽 한 면이 책장이었고, 책장에 공책이 꽂혀 있었다. 같은 모양의 회색 공책이 스무 권쯤. 등에 연도가 적혀 있었다. 2015부터. 창가 책상에 한설이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오래된 노트북 한 대. 전원선이 창밖 전깃줄로 이어졌다.

“T-0417이죠.”

한설은 노트북을 덮지 않았다. 화면을 나에게 돌렸다. 화면에 오래된 문서 파일이 떠 있었다. 2015년 9월 3일 자. 「야간 정렬 작업 지시 — 설계부장 구두 지시 기록(작성: T-0417)」.

“입사 넉 달째였어요. 임시 계정 쓰던 때. 새벽 두 시에 부장님이 감사실로 직접 오셨어요. 종이 한 장 주셨어요. 좌표 셋. 격자 오류니까 지도에서 빼고, 합계 안 틀리게 보정값 넣으라고.”

한설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좌표 셋. 402-017, 108-441, 331-208.

“셋째 좌표를 보고 손이 멈췄어요. 331-208은 우리 집이었어요. 할머니하고 둘이 살던. 부장님이 제 인사 기록 주소를 보고 저한테 시킨 거예요. 제가 모를 리 없으니까. 알고 누르면 입도 다물 테니까.”

“눌렀습니까?”

“눌렀어요.”

한설은 그 말을 하고 나를 봤다. 피하지 않았다.

“그 방 기억나요. 지금 유안 씨가 앉는 자리. 그때도 에어컨 송풍구가 똑같은 소리를 냈어요. 부장님은 제 뒤에 서 계셨어요.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고. 그 손 무게가 어깨까지 왔어요. 첫째 좌표를 넣고, 둘째 좌표를 넣고, 셋째에서 제가 멈추니까 부장님이 그러셨어요. 「한 선생 집이죠. 그러니까 한 선생이 하는 게 맞아요. 남이 하면 원망하잖아.」 저는 그 말을 이해했어요. 이해해서 눌렀어요.”

한설은 노트북 옆 식은 보리차 컵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컵 바닥이 책상에 닿는 소리가 작았다.

“부장님이 그랬어요. 이 구역은 개발 예정지라서 어차피 몇 년 안에 수용된다고. 그때 제대로 보상하려면 지금 지번을 정리해 둬야 한다고.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믿고 싶었어요. 신입이었고, 할머니 약값이 필요했고.”

“그런데.”

“그런데 보정값 유효 기간 칸이 비어 있었어요. 부장님이 안 불렀어요. 무한대로 넣으면 영영 안 틀려요. 저는 그 칸에 숫자를 넣었어요. 셋 다 다르게. 십일 년. 그때쯤이면 저도 경력이 생겨 있을 테고, 그때 합계가 틀리면 누군가는 알림을 받을 테니까.”

“사천삼십팔 일.”

“네. 그 숫자는 부장님 숫자가 아니에요. 제 숫자예요.”

나는 부시장실 소파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그거 내가 넣은 숫자예요. 착공 예정일에 맞춘 거지. 그 사람은 자기가 결재한 숫자를 자기가 넣었다고 믿고 있었다. 신입이 칸 하나에 몰래 심어 둔 타이머를, 자기 설계라고.

“그다음 날부터 인사 시스템이 저를 못 찾았어요. 주소가 무효가 됐으니까. 월급이 안 들어왔어요. 퇴직도 안 됐어요. 없는 사람이 됐어요. 할머니는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어요. 병원에서 주소를 물어봐서, 331-207이라고 했어요.”

한설은 책장에서 2015년 공책을 꺼냈다. 첫 장에 연필로 적힌 숫자 셋.

402-017 — 17명. 108-441 — 23명. 331-208 — 84명.

“그날 아침에 셌어요. 세 군데 다 가서. 제가 지운 사람들이니까 제가 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 첫날 말 안 했습니까?”

“말했으면 저 데리고 갔을 거예요? 그 새벽에? 아이한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답이었다.

“지운 사람이 구해 달라고 오면 아무도 안 믿어요. 저도 안 믿을 거예요. 그래서 먼저 보여 드린 거예요. 아이를, 골목을, 공책을. 그다음에 저를.”

나는 방 안에 선 채로 한참 있었다. 화가 났다. 속았다는 화였다. 그런데 그 화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다. 한설에게로 가려다가, 부시장실 소파로 가려다가, 삼 년 전 내 모니터로 돌아왔다. 217-104. 나는 신입도 아니었고, 약값도 없었고, 구두 지시도 없었다. 교범이 있었을 뿐이다.

“한설 씨.”

“네.”

“저도 하나 지웠습니다. 삼 년 전에. 217-104. 비닐하우스 아홉 동. 지금은 아파트 공사장입니다.”

한설은 그 말을 듣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공책 2015년 권을 덮고, 책장 맨 끝에서 빈 공책 한 권을 꺼냈다. 새것이었다.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럼 세러 가요. 같이.”

한설은 빈 공책 표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연도도, 좌표도. 표지는 다 세고 나서 적겠다고 했다.

그때 골목에서 소리가 났다. 사다리 펴는 소리, 줄자 감기는 소리. 창밖으로 작업복 등판이 보였다. 해은정비. 이번에는 다섯이었다. 도시계획국 공무원은 없었다. 줄자를 든 사람이 집집마다 벽에 빨간 락카로 숫자를 뿌리고 있었다. 1, 2, 3. 철거 순번이었다.

한설과 나는 동시에 방을 나섰다. 옥순 반장이 이미 골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락카 통을 든 남자가 옥순 반장네 벽에 손을 뻗었다. 반장이 그 손목을 잡았다.

“여기 첫 번째는 안 돼요. 여기 처마는 자르기로 했어요. 도로 넓히려고.”

“아주머니, 비키세요. 순번 매기는 겁니다.”

“누가 정한 순번인데.”

나는 반장 옆으로 갔다. 한설이 반대편 옆에 섰다. 골목 안쪽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준호가 목발을 짚고 나왔다. 깁스에는 이제 숫자가 너무 많아서 흰 데가 거의 없었다.

“계고 기간 구십 일 가운데 이제 칠 일 지났습니다.”

내가 말했다.

“계고 기간 중에는 영장 통지 전에 현장 표시를 할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 없이 벽에 뿌린 건 재물 손괴고요.”

락카 든 남자가 반장을 봤다. 반장이 뒤를 돌아봤다. 전화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걸었다. 짧은 통화였다. 통화를 마치고 락카 통 뚜껑을 닫았다.

“위에서 오늘은 철수하랍니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락카 통을 등 뒤로 감췄다. 감출 데가 없는 좁은 골목이었다.

그들이 갔다. 벽에는 이미 뿌린 숫자 셋이 남아 있었다. 빨간 1, 2, 3. 락카가 흘러내려 숫자 밑으로 가는 줄이 생겼다.

준호가 그 숫자 앞에 섰다. 한참 봤다. 흘러내린 락카 줄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고, 손끝에 묻은 빨간색을 바지에 닦았다. 닦이지 않았다. 그러다 옥순 반장에게 매직을 달라고 했다. 반장이 앞치마에서 매직을 꺼내 줬다. 준호는 빨간 1 옆에 까맣게 적었다. 331-208-1.

“이게 우리 집 주소예요. 이제.”

준호가 말했다. 빨간 순번은 철거 순서였고, 까만 번호는 준호가 새로 매긴 번지였다. 한설이 새 공책을 펴고 첫 장에 적었다. 331-208-1. 우리 집.

그 옆 집 벽에서도 준호가 적었다. 331-208-2. 331-208-3. 락카 숫자가 있는 벽마다. 아이들이 매직을 들고 뒤따랐다. 골목 끝까지 스물세 개의 벽에 번호가 붙었다. 빨간 것은 순번이고 까만 것은 번지였다. 한설은 그 까만 번호를 하나씩 공책에 받아 적었다. 나는 그 옆에서 셌다. 스물셋. 사람은 백열둘.

해가 지고 나서 민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토요일이 아니라 오늘 갔다고 했다. 402-017. 산 밑 컨테이너 여섯 동.

“열한 명이더라. 할머니 둘, 공장 다니는 사람 넷, 애 둘, 그리고 나머지. 2015년엔 열일곱이었대. 여섯은 나갔고. 나간 데를 아무도 몰라.”

민 선배의 목소리 뒤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아직 거기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그날 정렬 돌린 거. 거기 할머니한테 말했어. 내가 했다고. 할머니가 뭐라는 줄 아냐. 밥은 먹었냐고.”

민 선배는 그 말을 하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렸다.

“숫자 적어 둬. 402-017, 열한 명.”

나는 한설의 새 공책 둘째 장에 그 숫자를 적었다. 한설이 옆에서 봤다. 한설 공책 2015년 권에 적힌 숫자는 열일곱이었다. 열일곱에서 열하나. 줄어든 여섯은 셈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새로 세는 것은 늘어나는 쪽이어야 했다. 한설은 그 여섯 옆에 물음표를 여섯 개 그렸다. 찾을 사람.

그날 밤 감사실에서 나는 감사 기록 대신 위성 사진을 열었다. 108-441. 열흘 남았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2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달밤에책2026.05.26· 5화

    이 장면 묘사가 오래 남습니다. 특히 마지막 두 줄이요.

    • 종이배2026.05.27

      완전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