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10자) · 처마
이 미터 이십
격자 오류 · 문가온
좌표설계부장실은 팔층 모퉁이에 있다. 창 두 면이 도시를 내려다본다. 창유리에 격자 모양 필름이 붙어 있어서, 도시가 가로세로 줄 사이에 갇혀 보인다. 권혜린 부장은 그 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쉰셋. 짧은 흰머리를 귀 뒤로 넘겼고, 책상 위에는 서류가 딱 한 장 놓여 있었다. 내가 어젯밤 보낸 시뮬레이션 결과였다.
“사만 이천삼백여덟.”
“예.”
“유안 씨, 이 숫자가 뭔지 알아요?”
“주소가 바뀌는 세대 수입니다.”
“아니요.”
부장이 서류를 뒤집었다. 뒷면에 부장 글씨로 목록이 적혀 있었다. 등기부 사만 이천 건. 사업자등록 육천 건. 택배·배달 연동 열아홉 개. 내비게이션 갱신 석 달. 학교 배정 재산정. 선거구 경계 검토. 맨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추정 민원 이만 건.
“이게 그 숫자예요. 사만 이천 집이 한꺼번에 주소를 바꾸면 이런 일이 생겨요. 이십이 년 전에 안쪽 좌표를 밀었을 때 민원이 삼만 건 들어왔고, 처리하는 데 열한 달 걸렸어요. 그해 부장이 바뀌었고요. 저는 그때 칠 년 차였어요. 그 열한 달 동안 전화를 받았어요. 하루에 백 통씩.”
부장은 그 말을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창 필름의 격자 그림자가 부장 어깨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백열두 명이 주소가 없는 게 안타까운 거 알아요. 근데 사만 이천 집이 불편한 것도 사람이에요. 그 집에도 애들이 있고, 택배가 잘못 가면 약을 못 받는 노인도 있어요.”
“부장님. 그건 계산이 안 됩니다.”
“왜요.”
“단위가 다릅니다. 한쪽은 불편이고, 한쪽은 없는 겁니다.”
부장은 나를 한참 봤다.
“맞는 말이에요. 근데 그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못 정해요.”
부장은 서류 위에 다른 종이 한 장을 올려놓았다. 도시계획국 항의 공문이었다. 「좌표설계부 소속 직원의 행정대집행 계고 방해에 대한 조치 요청.」
“이건 경고로 끝낼게요. 331-208 건은 여기서 멈추세요. 부서 차원에서 검토할 사안이 아니에요.”
“그럼 어디서 검토합니까?”
“향후 전면 재설계 때요.”
“계획은 있습니까?”
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이틀 사이 세 번째로 떠올렸다.
일어서려는데 부장이 덧붙였다.
“2023년에 구급차 건 있었죠. 331-207 동측.”
“기록에 있습니다.”
“그거 제가 보고받았어요. 부임하고 두 달째에. 인접 도로 이용 안내로 처리됐다고.”
부장은 창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격자 필름 너머로 도시가 줄 사이에 갇혀 있었다.
“그때 제가 한 번 더 물어봤으면 됐어요. 인접 도로가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안 물어봤어요. 사만 이천 건이 먼저 떠올라서.”
부장실을 나오면서 나는 그 문장을 들고 나왔다. 사만 이천 건이 먼저 떠올라서. 그 말이 변명인지 고백인지 구분이 안 됐다. 둘 다였을 것이다.
점심때 구내식당에서 민 선배와 마주쳤다. 입사 첫해에 나에게 야간 감사를 가르친 사람이었다. 면적 합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을 때, 민 선배는 식판을 내려놓으며 「오류로 처리하고 정렬 돌려. 십 분이면 끝나」라고 했다. 오늘 민 선배는 돈가스를 썰고 있었다.
“부장님한테 불려 갔다며.”
“네.”
“331 그거지. 도시계획국이랑 붙었다며.”
“선배.”
“어.”
“217-104 기억나십니까. 삼 년 전에 제가 오류로 처리한 거.”
민 선배는 돈가스 한 조각을 소스에 찍다가 멈췄다.
“그게 왜.”
“비닐하우스 아홉 동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았습니다. 넉 달 뒤에 대집행됐고요.”
민 선배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소스가 식판에 한 방울 떨어졌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는 숫자 보는 사람이야. 합계 틀리면 맞추는 거고.”
“압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민 선배는 한참 나를 보다가, 다시 포크를 들었다. 돈가스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민 선배는 그 뒤로 말없이 밥을 먹었다. 다 먹고 일어서면서 내 식판 위에 자기 요구르트를 하나 놓고 갔다. 뚜껑에 볼펜으로 「217」이라고 적혀 있었다.
331-207 동측으로 검색하면 민원이 여섯 건 나온다. 331-208로는 아무것도 안 나온다. 지도에 없는 좌표는 문서 시스템에서도 색인이 없다. 좌표 하나에 문서 하나. 빠짐없고 겹침없다. 나는 그 구조를 삼 년 동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빠진 것 하나는 영원히 안 나온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2016년 담장 문의. 2018년 전력 인입. 2020년 도로 개설 요청. 2021년 우편 배달 불가. 2023년 구급차 진입 불가. 2025년 화재 신고. 여섯 건 중 네 건에 담당자 서명이 있었다. 넷이 확인하러 왔다가 안 왔다. 옥순 반장 말대로.
네 사람을 조회했다. 한 명은 퇴직했고, 한 명은 다른 시로 갔고,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아직 있었다. 도로과 강 팀장. 2020년 도로 개설 요청 담당.
도로과는 별관 삼층이다. 강 팀장 책상은 창가였고, 책상 위에 도로 모형이 있었다. 우드락으로 만든 교차로 모형. 신호등이 이쑤시개였다. 모니터 옆에 컵라면 용기가 세 개 포개져 있었다. 강 팀장은 오십 대 후반이었고, 넥타이 대신 도로과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고 있었다.
“331-207 동측이요.”
“네.”
강 팀장은 모니터를 봤다. 십 초쯤 봤다.
“아, 거기.”
“기억나십니까?”
“기억나죠. 그 담.”
강 팀장이 의자를 돌렸다. 바퀴 하나가 헛돌았다.
“대상 지번 없음, 그거 제가 쓴 거 맞습니다. 도로는 지번에서 지번으로 놓는 거예요. 출발지가 없으면 계산이 안 돌아요. 제 탓 아닙니다.”
“땅은 있는데요.”
“땅이 있어도 지번이 없으면 도로를 못 놔요. 그건 설계자님 부서 일이고요. 저 그때 설계부에 공문 보냈어요. 지번 좀 달라고.”
“회신은요.”
“왔죠.”
강 팀장은 서랍을 뒤졌다. 오 분쯤 걸렸다. 서랍에서 컵라면 스프 봉지가 두 개, 고무줄 뭉치가 하나, 오래된 교통 법규 소책자가 나왔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제목: 331-207 인접 미등록 구역 지번 부여 검토 결과 회신. 해당 구역에 지번을 부여할 경우 후속 블록 사만 이천여 건의 주소 변경이 수반되어 현 시점에서는 불가함. ※ 향후 도시 격자 전면 재설계 시 함께 검토 예정.
아래에 서명이 둘 있었다. 하나는 당시 좌표설계부장. 다른 하나는 협조란에. 당시 도시계획국장 남궁현.
“협조란은 왜 도시계획국입니까?”
“그 구역이 그때부터 개발 예정지였거든요. 개발 예정지에 뭘 하려면 도시계획국 협조가 필요해요. 협조가 안 오면 아무것도 못 해요.”
강 팀장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 말을 다시 들은 얼굴이 되었다. 컵라면 용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근데 협조를 거기서 거절한 거네. 지금 보니까.”
“팀장님.”
“네.”
“2023년 구급차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 팀장의 손가락이 컵라면 위에서 멈췄다.
“그건 제 건 아닙니다.”
“누구 겁니까?”
“돌아가신 분이요. 네 명 중에. 퇴직하시고 이 년 뒤에 병으로 가셨어요. 그 건하고는 상관없이.”
“그러면 구급차는요.”
강 팀장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공사장 굴착기 소리가 났다.
“처리 완료라고 되어 있잖아요.”
“인접 도로 이용 안내가 처리 완료입니까?”
“설계자님.”
강 팀장이 나를 봤다. 이번에는 조끼 로고 말고 사람 얼굴이었다.
“그 골목 폭이 이 미터예요. 구급차 폭이 이 미터 이십이고. 제가 이십 년 동안 도로를 재 왔어요. 이십 센티미터는 못 넓혀요. 지번이 없으면.”
강 팀장은 우드락 모형 교차로에서 이쑤시개 신호등 하나를 뽑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돌렸다가 도로 꽂았다.
“근데 지번이 생기면 넓힐 수 있어요. 양쪽 집 처마를 이십 센티씩만 잘라도 돼요. 제가 계산 이미 해 놨어요. 2020년에. 안 쓰고 서랍에 넣어 놨지.”
그는 서랍을 한 번 더 뒤졌다. 이번에는 금방 나왔다. 도면 한 장. 331-208 골목 확폭 설계안. 날짜가 2020년 삼월이었다. 결재란이 비어 있었다.
“가져가요. 복사본이에요. 원본은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이번에는 결재란 채워서 돌려주세요.”
저녁에 나는 331-208에 갔다. 계고장은 반으로 접힌 채 그대로 있었다. 누가 펴지 않았다. 접힌 자리에 먼지가 조금 앉아 있었다. 옥순 반장이 수도 앞 대야에서 상추를 씻고 있었다. 상추 잎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대야 물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2023년 구급차 말입니다.”
옥순 반장은 상추를 씻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한 장 씻고, 물을 털고, 소쿠리에 놓고, 다음 장.
“우리 집 양반이었어요.”
한 장 더. 상추 잎이 물 위에서 한 번 뒤집혔다.
“새벽에 가슴을 쥐고 쓰러졌어요. 구급차가 331-207에 왔어요. 들것이 들어오는 데 십이 분 걸렸어요. 한 사람이 들고 한 사람은 차 지켰어요. 딱지 떼인다고.”
옥순 반장은 마지막 상추 잎을 소쿠리에 놓고, 대야 물을 수챗구멍에 부었다. 물이 빠지는 소리가 길었다.
“병원 가서 주소를 물어봤어요. 사망 신고하려면 주소가 있어야 된대요. 없다고 했더니 331-207로 하래요. 그래서 우리 양반은 담 너머에서 죽은 걸로 돼 있어요.”
옥순 반장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았다. 그리고 철문 쪽을 봤다. 반쯤 접힌 계고장 아래로 코팅한 쪽지가 보였다.
“저 쪽지, 그다음 날 붙였어요. 택배 기사들한테. 우리 동네 못 찾는 게 기사님 탓 아니라고. 그 사람들까지 미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나는 강 팀장의 도면을 가방에서 꺼내지 못했다. 꺼내면 약속이 된다. 이 골목에서 나는 이미 약속을 하나 했다. 목발 짚은 아이에게.
도면을 꺼냈다. 옥순 반장에게 보여 줬다. 처마 이십 센티미터. 반장은 도면을 오래 봤다.
“우리 집 처마부터 자르세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골목 끝 평상에서 한설이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한설은 공책을 무릎에 편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공책 맨 뒷장을 펴서 무언가를 적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나중에 알았다. 옥순 언니네 처마, 이십 센티미터. 날짜.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 이번엔 적는 사람이 바뀌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