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88자)

간담회

손주 돌봄 파업 선언 · 윤은류

순범은 아침 아홉 시부터 경로당 큰방에 의자를 깔았다⁠. 접이식 의자 마흔 개를 창고에서 꺼내 다섯 줄로 놓았다⁠. 줄과 줄 사이를 발걸음으로 쟀다⁠. 시내버스 좌석 간격과 같게⁠, 한 걸음 반⁠. 맨 앞에는 시청에서 보내온 현수막을 걸었다⁠. 「⁠화성시의회 주민 간담회 — 손주 돌봄과 연장보육⁠, 어르신 말씀을 듣습니다⁠」 현수막 끈을 창틀에 묶으면서 순범은 끈 끝을 두 번 감았다⁠. 한 번 감으면 풀렸다⁠.

의원이 앉을 자리에는 방석을 두 장 겹쳐 놓았다⁠. 경로당에서 가장 두꺼운 방석이었다⁠.

열한 시에 할머니들이 들어왔다⁠. 묘순이 맨 앞자리 의자를 보더니 방석 두 장을 집어 들었다⁠. 한 장은 보행기를 밀고 온 아흔한 살 할머니 의자에⁠, 한 장은 허리 보호대를 찬 계순의 의자에 깔았다⁠. 의원 의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거 의원님 거여⁠.⁠”

순범이 말했다⁠. 묘순이 손을 털었다⁠.

“⁠의원님 허리는 멀쩡하실 기다⁠.⁠”

계순은 방석 깔린 의자에 앉지 않았다⁠. 의자를 창가로 끌고 가서 등을 벽에 붙이고 앉았다⁠. 오늘 할 말을 아침부터 세 번 고쳐 썼다⁠. 돋보기를 끼고 메모지를 펴자 첫 줄이 보였다⁠. 「⁠의원님은 손주 봐 보셨어요⁠?⁠」 아래 줄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결국 지웠다⁠.

순범이 현수막 아래에서 아내를 건너다봤다⁠.

“⁠너무 세게 하지 마⁠. 시의원이여⁠.⁠”

“⁠당신은 누구 편이야⁠.⁠”

“⁠나는 총무여⁠. 총무는 편 없어⁠.⁠”

“⁠준회원이고⁠.⁠”

순범은 대답 대신 의자 줄을 한 번 더 발걸음으로 쟀다⁠.

*

오후 두 시 오 분⁠, 탁세란이 들어왔다⁠. 동영상에서 본 그대로였다⁠. 회색 재킷⁠, 반백의 단발⁠, 굽 낮은 구두⁠. 수행 비서 하나가 노트북과 서류 봉투를 들고 뒤따랐다⁠. 탁세란은 큰방 문턱에서 구두를 벗고⁠, 벗은 구두를 손수 신발장 맨 아래 칸에 넣었다⁠. 할머니들 몇이 그것을 보고 눈짓을 주고받았다⁠.

큰방은 꽉 찼다⁠. 노조원 스물셋⁠, 단지 할아버지 열⁠, 젊은 엄마 일곱⁠, 그리고 맨 뒷줄 구석에 작업복 점퍼를 입은 남자 하나⁠. 계순은 작업복 점퍼를 보고 숨을 멈췄다⁠. 사위 찬솔이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자야 할 시간이었다⁠. 찬솔은 장모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한 번 숙였다⁠.

탁세란은 방석 없는 의자에 앉지 않고 마이크를 든 채 서 있었다⁠.

“⁠어머님들⁠, 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들도요⁠. 오늘은 제가 말하러 온 게 아니라 들으러 왔습니다⁠.⁠”

목소리는 동영상보다 낮았다⁠. 첫 십 분 동안 탁세란은 정말로 들었다⁠. 할머니들의 말을 하나도 끊지 않았다⁠. 손주 셋 보는 할머니⁠, 쌍둥이 보는 할머니⁠, 무릎 수술한 할머니⁠. 비서가 노트북에 받아 쳤다⁠. 108동 할머니가 아들 이름을 「⁠큰놈⁠」으로 바꿔 저장한 이야기를 하자 탁세란이 처음으로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렸다가 내렸다⁠.

계순이 손을 들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 보호대 찍찍이가 벽지를 긁어 찌이익 소리가 났다⁠. 큰방이 조용해졌다⁠.

“⁠의원님은 손주 봐 보셨어요⁠?⁠”

탁세란은 계순을 오래 봤다⁠. 허리 보호대⁠, 연두 티셔츠⁠, 꽃무늬 몸뻬⁠. 동영상 속 화단 턱 맨 끝의 파마머리를 알아본 눈이었다⁠.

“⁠아니요⁠, 어머님⁠. 저는 봐 주신 분 덕을 본 사람입니다⁠. 아들 하나를 혼자 키웠고⁠, 친정어머니가 열 해를 봐 주셨습니다⁠.⁠”

“⁠그럼 아시겠네요⁠. 그 열 해가 공짜였던 거⁠.⁠”

“⁠압니다⁠. 그래서 반대합니다⁠.⁠”

탁세란은 비서에게 손짓했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 표 하나가 떴다⁠. 계순은 돋보기를 끼고 표를 봤다⁠. 숫자가 많았다⁠. 탁세란은 숫자를 다 읽지 않았다⁠. 두 개만 짚었다⁠.

“⁠시가 생각하는 수당은 한 달에 삼십만 원입니다⁠. 받으실 어머님들을 다 모으면 일 년에 수십억이 듭니다⁠. 같은 돈이면 국공립 어린이집 연장반을 동탄에만 열 곳 넘게 열 수 있습니다⁠. 저녁 아홉 시까지 아이를 봐 주는 반입니다⁠.⁠”

“⁠우리 손주는 할머니가 좋다는데요⁠.⁠”

108동 할머니가 말했다⁠. 탁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어머님들⁠,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수당 삼십만 원을 받으시면⁠, 그만두기가 쉬워지십니까⁠, 어려워지십니까⁠?⁠”

큰방이 조용했다⁠. 탁세란이 조금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따님이⁠, 아드님이 말할 겁니다⁠. 시에서도 돈 주는데⁠, 엄마 조금만 더 해 줘⁠. 그 삼십만 원이 어머님들을 다섯 해 더 그 거실에 앉혀 둘 겁니다⁠. 저는 그게 걱정입니다⁠.⁠”

“⁠맞다⁠. 우리 아들 그 말 할 기다⁠.⁠”

묘순이 중얼거렸다⁠. 아들이 오토바이 옆에서 말없이 서 있던 얼굴이 묘순의 이마에 다시 지나갔다⁠. 할머니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고개가 하나에서 둘⁠, 둘에서 다섯이 되었다⁠.

탁세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젊은 엄마들 자리에서 손이 하나 올라갔다⁠. 유치원 정문에서 식혜를 얻어 마신⁠, 은행 사원증의 엄마였다⁠.

“⁠의원님⁠, 연장반은 언제 생겨요⁠?⁠”

“⁠예산이 통과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차례로 엽니다⁠.⁠”

엄마가 손가락을 접어 보다가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우리 애 그때 초등학생이에요⁠.⁠”

큰방 여기저기서 한숨이 났다⁠. 할머니들의 한숨과 엄마들의 한숨은 소리가 같았다⁠. 탁세란은 사원증의 엄마를 보고 고개를 한 번 숙였다⁠. 변명하지 않았다⁠. 비서가 노트북에 무언가를 쳤다⁠. 계순은 짧은 고개 숙임을 보면서 이 의원이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쉬운 상대는 변명을 먼저 했다⁠.

탁세란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머님들께서 진짜 원하시는 게 돈입니까⁠, 쉬는 날입니까⁠?⁠”

“⁠쉬는 날⁠!⁠”

할머니 스물셋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계순도 대답했다⁠. 대답하고 나서야 자기가 대답했다는 것을 알았다⁠. 노조의 요구 넷 가운데 하나⁠, 손주 돌봄 수당이 할머니들 입으로 지워지는 소리였다⁠.

계순은 메모지를 다시 봤다⁠. 지운 줄 아래 볼펜 자국이 남아 있었다⁠. 계순은 볼펜 자국을 읽고 말했다⁠.

“⁠둘 다 주면 되잖아요⁠. 돈도⁠, 쉬는 날도⁠.⁠”

“⁠둘 다 드릴 예산은 없습니다⁠, 어머님⁠. 고르셔야 합니다⁠.⁠”

탁세란의 대답은 빨랐고⁠, 부드러웠고⁠, 웃지 않았다⁠. 이기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순은 졌다는 것을 알았다⁠.

*

간담회가 끝나고 탁세란은 할머니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아흔한 살 할머니의 손은 두 손으로 잡았다⁠. 계순 차례가 왔다⁠. 탁세란은 계순의 손을 잡고 낮게 말했다⁠.

“⁠4월 27일⁠, 시의회 공청회가 있습니다⁠. 발언 신청은 다음 주까지예요⁠. 어머님이 오시면 좋겠습니다⁠. 반대편이셔도요⁠.⁠”

“⁠반대편 맞아요⁠.⁠”

“⁠압니다⁠.⁠”

탁세란은 구두를 신발장에서 꺼내 신고 나갔다⁠. 비서가 따라 나가다가 뒷줄 구석에서 일어나는 찬솔과 부딪칠 뻔했다⁠. 찬솔은 비서에게 고개를 숙이고⁠, 텔레비전 화면에 남아 있는 연장반 표를 휴대전화로 찍었다⁠. 찍고 나서 장모를 봤다⁠. 계순이 다가가자 찬솔은 휴대전화를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자야 할 사람이 여기서 뭐 해⁠.⁠”

“⁠어머님 말씀하시는 거⁠, 한 번 듣고 싶어서예⁠.⁠”

찬솔의 대구 말은 끝이 늘 흐렸다⁠. 계순은 사위의 눈 밑을 봤다⁠. 목요일마다 한 겹씩 내려앉던 그늘이 수요일인데도 두 겹이었다⁠.

“⁠그 표는 왜 찍었어⁠?⁠”

“⁠연장반이 아홉 시까지라 캐서예⁠. 혜빈이한테 보여 줄라꼬⁠.⁠”

계순은 사위가 장모 편인지 아내 편인지 묻지 않았다⁠. 찬솔은 묻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찬솔은 꾸벅 인사하고 나갔다⁠. 나가는 뒷모습에서 작업복 점퍼의 어깨 솔기가 뜯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계순은 뜯어진 솔기를 기억해 두었다⁠.

*

할머니들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큰방 가운데 둥글게 모여 앉았는데⁠, 아까와 앉은 자리가 달랐다⁠. 창가에 열둘⁠, 문간에 열하나⁠. 묘순은 가운데 혼자 앉아 귤을 깠다⁠.

“⁠의원 말이 맞는 것 같다⁠. 돈 받으면 못 그만둔다⁠.⁠”

“⁠연장반이 생기면 우리 손주도 아홉 시까지 맡길 수 있다는 거 아이가⁠.⁠”

“⁠아홉 시까지 애를 남한테⁠? 나는 못 한다⁠.⁠”

“⁠못 하는 기 아니고 안 해 본 기다⁠.⁠”

“⁠그럼 우리 노조는 뭐 하는 기고⁠? 돈 얘기 빼면⁠.⁠”

“⁠쉬는 날 얘기 하지⁠.⁠”

“⁠쉬는 날은 누가 주는데⁠. 의원이⁠? 딸이⁠?⁠”

말이 엉켰다⁠. 계순은 창가에 서서 듣기만 했다⁠. 보호대 찍찍이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찌익⁠, 찌익⁠. 다섯 해 동안 계순은 이렇게 말이 엉키는 자리에서 실을 풀어 본 적이 없었다⁠. 수선집에서는 엉킨 실을 가위로 잘랐다⁠. 사람 말은 가위로 자를 수 없었다⁠.

*

다섯 시⁠, 할머니들이 다 가고 큰방에는 계순과 순범만 남았다⁠. 순범은 접이식 의자를 하나씩 접어 창고로 날랐다⁠. 계순은 현수막 끈을 풀었다⁠. 순범이 두 번 감아 묶은 매듭은 손톱으로 한참 파야 풀렸다⁠.

“⁠그 의원 말이 맞잖아⁠.⁠”

순범이 의자를 접으며 말했다⁠. 계순은 매듭을 파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맞지⁠.⁠”

“⁠맞으면 그만해⁠. 당신 노조 한다고 시의원이랑 싸우고⁠, 동네가 시끄럽고⁠, 혜빈이는 회의 빼먹고⁠. 할 만큼 했어⁠.⁠”

“⁠맞는 말이 이긴다고 내가 진 건 아니야⁠.⁠”

“⁠진 거여⁠, 그건⁠. 할머니들이 다 쉬는 날 하자는데⁠.⁠”

현수막 끈이 풀렸다⁠. 계순은 현수막을 접었다⁠. 접으면서 맨 앞 글자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주민 간담회⁠」가 사라지고 「⁠어르신 말씀을 듣습니다⁠」만 남았다가⁠, 그것도 접혀 들어갔다⁠.

“⁠공청회가 4월 27일이래⁠. 시의회에서⁠.⁠”

“⁠그래서⁠?⁠”

“⁠우리 다 같이 간다⁠. 버스 대절해서⁠. 말로는 졌어도 머릿수로는 안 질 거야⁠. 할머니 마흔 명이 의원 앞에 앉아 있으면⁠, 그것도 말이야⁠.⁠”

순범이 의자를 접다가 손을 멈췄다⁠.

“⁠버스는 공짜여⁠? 대절하면 사십오 인승 하루에 칠팔십은 들어⁠.⁠”

“⁠노조에 돈 없는 거 알아⁠.⁠”

“⁠그럼⁠?⁠”

“⁠우리 집에 모아 둔 돈 있잖아⁠. 당신 이름으로 된 적금⁠. 당신 퇴직하고 넣던 거⁠. 버스비는 거기서 낼 거야⁠.⁠”

순범이 들고 있던 의자 다섯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철제 다리가 마룻바닥에 부딪혀 큰방이 쩌렁 울렸다⁠. 창고 앞에 쌓아 둔 의자 더미까지 기울어 와르르 무너졌다⁠. 계순은 접은 현수막을 안고 남편을 봤다⁠. 서른아홉 해 동안 순범이 물건을 떨어뜨리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버스 기사는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았다⁠.

“⁠왜 그래⁠?⁠”

“⁠…손이 미끄러졌어⁠.⁠”

순범은 쪼그려 앉아 의자를 주웠다⁠. 등을 돌린 채였다⁠. 계순은 남편의 뒤통수를 봤다⁠. 반백의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배어 있었다⁠. 큰방에는 난방이 꺼져 있었다⁠.

*

3월 31일 밤 열한 시⁠, 103동 1204호 베란다⁠. 계순이 잠든 뒤 순범은 베란다 문을 닫고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바깥은 쌀쌀했고⁠, 놀이터 가로등 아래 그네 하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신호가 다섯 번 가고 산악회 회장이 받았다⁠.

“⁠회장님⁠, 늦게 죄송합니다⁠. 다른 게 아니고⁠… 혹시 한 팔백만 원⁠, 한 달만 돌려주실 수 있나 해서요⁠.⁠”

전화 너머에서 회장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순범은 대답을 고르다가 베란다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다⁠. 총무 조끼를 아직 벗지 않고 있었다⁠.

“⁠집사람 몰래 할 일이 좀 있어서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괜찮습니다⁠.⁠”

전화를 끊고 순범은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증권 앱을 열었다가⁠, 숫자를 보고 닫았다⁠. 다시 열었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순범은 휴대전화를 조끼 주머니에 넣고 베란다 난간에 팔을 얹었다⁠. 산악회 쌍안경이 난간 옆에 놓여 있었다⁠. 107동 802호 창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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