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60자)

수요일

손주 돌봄 파업 선언 · 윤은류

묘순의 휴대전화는 스피커로 켜 놓으면 경로당 큰방 끝까지 들렸다⁠. 3월 22일 월요일 저녁 여섯 시⁠, 할머니 스물셋이 큰방에 둘러앉아 묘순의 통화를 들었다⁠. 묘순은 이 통화를 혼자 하기 싫다고 했다⁠.

“⁠엄마⁠, 수요일에 애들 안 데리러 간다고⁠? 왜⁠?⁠”

“⁠노조에서 정했다⁠. 수요일 하루 하원 안 한다⁠. 니가 반차 쓰든지 며느리가 당겨 오든지⁠.⁠”

“⁠엄마 노조가 뭐야⁠, 노조가⁠. 동네 창피하게⁠.⁠”

“⁠창피는 니가 하고 허리는 내가 아프고⁠. 공평하제⁠?⁠”

전화 너머에서 한숨이 길게 났다⁠. 묘순의 아들은 마흔한 살 택배 기사였다⁠. 수요일은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이라고 했다⁠. 묘순은 물량 말을 듣고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스피커에 대고 말했다⁠.

“⁠알았다⁠. 끊는다⁠. 수요일 네 시다⁠.⁠”

통화가 끊기자 큰방이 조용해졌다⁠. 108동 할머니가 박수를 쳤고⁠, 다른 할머니들이 따라 쳤다⁠. 묘순은 박수를 받으면서 휴대전화 화면을 엎었다⁠. 엎은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다음 차례는 102동 할머니였고⁠, 그다음은 110동 할머니였다⁠. 스물세 통의 전화가 이어졌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한 사위는 고맙게도 「⁠네⁠, 어머님⁠. 쉬세요⁠.⁠」라고 했고⁠, 큰방의 할머니들은 사위 이름을 물어 두었다⁠. 사윗감 고르는 손녀가 있는 할머니가 둘이었다⁠. 한 딸은 울었다⁠. 한 아들은 끊어 버렸다⁠. 끊긴 휴대전화를 든 할머니는 한참 화면을 보다가 「⁠아들⁠」이라고 저장된 이름을 「⁠큰놈⁠」으로 바꿨다⁠.

모든 통화가 끝났을 때 묘순의 며느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간호사인 며느리는 오늘 밤 근무였다⁠. 묘순은 돋보기를 쓰고 메시지에 붙은 기사를 소리 내어 읽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 내 손자녀 돌봄 현황⁠’ —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의 53⁠.3%가 원하지 않지만 자녀 사정 때문에 돌본다⁠. 46⁠.8%는 그만두고 싶다고 답했다⁠. 평일 하루 평균 여섯 시간을 돌보며⁠, 기대하는 보상은 한 달 107만 원⁠.⁠」

“⁠여섯 시간⁠.⁠”

계순이 따라 말했다⁠. 큰방의 할머니들이 저마다 손가락을 접었다⁠. 접다가 모자라 다른 손을 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열두 시간⁠.⁠”

“⁠나는 열 시간에 밤에 한 번 더⁠.⁠”

“⁠평균이 여섯이면⁠, 어디서 두 시간만 보는 할매가 있다는 기네⁠. 그 할매 찾아가서 비결 좀 묻자⁠.⁠”

묘순의 말에 큰방이 웃었다⁠. 메시지 맨 끝에 며느리가 한 줄을 붙여 놓았다⁠. 「⁠어머님 수요일 저 근무 바꿨어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쉬세요⁠.⁠」 묘순은 마지막 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몸뻬 주머니에 넣고 귤을 하나 깠다⁠.

*

3월 24일 수요일⁠. 계순은 오후 세 시 반에 107동 802호 현관을 나왔다⁠. 빨간 펜으로 고친 계약서는 혜빈이 서명하지 않은 채 신발장 위에 그대로 있었지만⁠, 계순은 고친 계약서대로 지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107동⁠, 화요일 목요일은 경로당⁠. 화요일과 목요일의 쌍둥이는 혜빈의 반차와 야간 근무를 마친 찬솔이 나눠 맡았다⁠. 찬솔은 목요일마다 눈 밑이 한 겹씩 내려앉았다⁠.

오늘은 수요일⁠, 계순이 일하는 날이었다⁠. 등원은 했다⁠. 하원은 하지 않았다⁠. 노조가 정한 것이었다⁠.

나가기 전에 계순은 107동 냉장고 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냉장고 문에는 혜빈이 자석으로 붙여 둔 이번 달 일정표가 있었다⁠. 혜빈의 글씨는 작고 반듯했다⁠. 3월 24일 칸에 「⁠본부 회의 4시⁠. 심사 준비 보고⁠. 필참⁠」이라고 적혀 있었고⁠, 「⁠필참⁠」 밑에 볼펜으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계순은 볼펜 두 줄을 손톱으로 한 번 긁었다⁠. 종이가 조금 일어났다⁠. 딸은 오늘 회의를 버리고 정문에 나올 것이었다⁠. 계순은 그것을 알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계순은 현관을 나서기 전에 혜빈에게 메시지를 한 번 더 보냈다⁠. 「⁠오늘 네 시 하원 안 한다⁠. 월요일에 말했다⁠.⁠」 숫자 1이 바로 사라졌다⁠. 답은 오지 않았다⁠.

해님 유치원 정문 맞은편⁠, 경로당 앞 벤치와 화단 턱에 할머니 스물셋이 앉아 있었다⁠. 등받이 없는 화단 턱에 앉은 할머니들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꼿꼿이 펴야 덜 아팠다⁠. 묘순이 식혜 페트병을 돌렸다⁠. 「⁠돌봄도 노동이다⁠」 달력 뒷장은 화단 나무에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바람이 불면 ‘⁠노⁠’ 자가 펄럭였다⁠.

“⁠우리 지금 뭐 하는 기고⁠.⁠”

“⁠앉아 있는 거지⁠.⁠”

“⁠앉아만 있어도 되나⁠?⁠”

“⁠다섯 해 동안 못 앉아 봤잖아⁠. 앉아 봐⁠.⁠”

계순의 말에 할머니들이 그제야 엉덩이를 뒤로 뺐다⁠. 화단 턱이 차가웠다⁠. 3월 하순의 햇빛이 할머니들의 정수리를 데웠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가 스물셋⁠, 저마다 다른 높이로 솟아 있었다⁠.

*

세 시 오십 분⁠, 정문 앞에 젊은 엄마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정장 차림⁠, 사원증⁠, 노트북 가방⁠, 한 손에 들린 휴대전화⁠. 아빠도 셋 있었다⁠. 한 아빠는 작업복 바지에 운동화를 신었고⁠, 정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로 회의에 들어갔다⁠. 「⁠네⁠, 들립니다⁠. 네⁠, 화면 공유하겠습니다⁠.⁠」

혜빈은 엄마 일곱을 이끌고 왔다⁠. 입주민 단톡방 「⁠이음누리7 소통방⁠」에 어젯밤 올린 공지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노조 때문에 반차 쓴 엄마들⁠, 내일 네 시 유치원 정문에서 만나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공지 아래 좋아요가 마흔둘이었다⁠.

혜빈이 길을 건너와 계순 앞에 멈췄다⁠. 엄마들 일곱이 혜빈 뒤에 반원으로 섰고⁠, 할머니 스물셋이 벤치와 화단 턱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데 시간이 들었다⁠. 혜빈 뒤의 엄마들은 할머니들이 다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 여기 계신 분들 오늘 다 반차 썼어⁠.⁠”

“⁠알아⁠.⁠”

“⁠반차가 뭔지 알아⁠? 반차는 평가에 들어가⁠. 분기마다 근태 점수가 매겨져⁠. 할머니들이 쉬는 하루가 엄마들한테는 감점 하루야⁠.⁠”

혜빈 뒤의 엄마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원증 줄에 은행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머님들 이러시면 애들이 무슨 죄예요⁠. 애들은 할머니 오는 줄 알고 기다렸을 텐데⁠.⁠”

계순은 말한 엄마를 봤다⁠. 서른 줄 초반이었다⁠. 눈 밑에 그늘이 있었다⁠. 계순은 저 그늘을 알았다⁠. 다섯 해 동안 아침마다 혜빈의 눈 밑에서 본 그늘이었다⁠.

“⁠애들은 죄가 없지⁠. 엄마들도 죄가 없고⁠. 감점은 회사가 주는 거지 할머니가 주는 거 아니잖아요⁠.⁠”

“⁠그럼 회사 가서 따지세요⁠. 왜 애들 앞에서 이러세요⁠.⁠”

“⁠회사는 우리가 못 가요⁠. 할머니는 회사 정문에 못 들어가요⁠. 우리가 설 데가 여기밖에 없어요⁠.⁠”

혜빈이 엄마의 말을 잘랐다⁠.

“⁠엄마⁠, 그럼 이건 누구한테 하는 시위야⁠? 우리한테잖아⁠. 결국 우리한테 하는 거잖아⁠.⁠”

계순은 대답하지 못했다⁠. 딸의 말이 맞았다⁠. 반은 맞았다⁠. 계순은 나머지 반을 찾으려고 입을 열었는데⁠, 그보다 먼저 길 저쪽에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렸다⁠.

*

택배 오토바이가 경로당 앞에 멈췄다⁠. 형광 조끼를 입은 사내가 헬멧을 벗고 걸어왔다⁠. 묘순의 아들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엄마⁠!⁠”

묘순이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들은 할머니들 사이로 들어와 어머니 앞을 막았다⁠. 키가 묘순보다 머리 둘이 컸다⁠.

“⁠엄마 진짜 왜 이래⁠. 나 지금 배송 육십 개 남았어⁠. 며느리가 근무 바꿔서 데리러 온다는데 엄마는 여기 앉아서 뭐 하는 거야⁠. 동네 사람들 다 보는데⁠.⁠”

“⁠니 며느리가 데리러 온다 캤으면 됐다 아이가⁠.⁠”

“⁠그 사람 밤 근무 끝나고 잠도 못 잤어⁠!⁠”

묘순의 입이 다물렸다⁠. 계순은 묘순의 손이 몸뻬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쥐는 것을 봤다⁠. 며느리의 메시지가 들어 있는 휴대전화였다⁠. 아들은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유치원 정문으로 걸어갔다⁠. 아이 셋을 데리고 나와 오토바이 옆에 세워 두고 다시 어머니를 돌아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침묵이 고함보다 컸다⁠.

할머니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묘순은 화단 나무에 묶인 달력 뒷장을 올려다봤다⁠. 노끈 매듭을 풀려고 손을 뻗었다⁠. 계순이 묘순의 손목을 잡았다⁠.

“⁠두세요⁠.⁠”

“⁠아이고 마⁠, 내가 묶었으니 내가 풀어야지⁠.⁠”

“⁠수요일 끝나면 같이 풀어요⁠.⁠”

묘순은 손을 내렸다⁠.

*

정문 옆 담벼락 아래⁠, 혜빈이 데려온 엄마 하나가 할머니들 쪽으로 슬그머니 건너왔다⁠. 은행 사원증을 건 엄마였다⁠. 엄마는 계순 앞이 아니라 묘순 앞에 멈췄다가⁠, 식혜 페트병을 가리켰다⁠.

“⁠저⁠, 한 모금만 얻어 마셔도 될까요⁠? 점심을 못 먹어서요⁠.⁠”

묘순이 종이컵에 식혜를 따라 주었다⁠. 엄마는 그것을 단번에 비우고 빈 컵을 한참 손에 쥐고 있었다⁠.

“⁠저희 엄마도 광주에서 올라와서 제 딸 봐 주세요⁠. 오늘은 제가 쉬시라고 했어요⁠. 여기 계신 분들 보니까⁠… 저희 엄마도 여기 앉아 계셨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라믄 다음 수요일에 모시고 와라⁠.⁠”

묘순이 말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웃는 얼굴로 길을 건너 혜빈 뒤 반원 안으로 돌아갔다⁠. 혜빈이 돌아온 엄마를 쳐다봤고⁠, 엄마는 시선을 피해 휴대전화를 꺼냈다⁠. 할머니들 사이에서 누가 작게 말했다⁠. 반은 우리 편이네⁠. 계순은 손가락을 입에 대 보였다⁠.

*

네 시 정각⁠, 유치원 정문이 열렸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란 원복이 쉰 개쯤 되었다⁠. 아이들은 정문 앞의 엄마 아빠를 보고 놀라서 멈췄다가 달려갔다⁠. 몇은 엄마를 지나쳐 길 건너 할머니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라율과 라겸이 정문을 나왔다⁠. 라겸은 엄마에게 갔다⁠. 라율은 엄마를 지나 길을 건너려 했고⁠, 혜빈이 라율의 원복 뒷덜미를 잡았다⁠. 라율은 엄마 손에 매달린 채 길 건너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할머니⁠! 오늘 파업 날이야⁠?⁠”

할머니 스물셋이 동시에 웃었다⁠. 젊은 엄마들 몇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은행 사원증을 건 엄마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삼켰다⁠. 계순은 손녀에게 손을 흔들지 않았다⁠. 길을 건너가 안아 주지도 않았다⁠. 허리를 굽힐 수 없었고⁠, 굽힐 수 있었다 해도 오늘은 굽히지 않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 파업 날이야⁠. 엄마랑 가⁠.⁠”

라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혜빈은 라율을 안아 올렸다⁠. 서른다섯 딸의 허리가 열여덟 킬로 무게에 휘청 꺾였다가 펴졌다⁠. 계순은 딸의 허리를 봤다⁠. 다섯 해 전 계순의 허리도 저렇게 펴졌었다⁠.

혜빈은 라율을 안은 채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을 몇 번 눌러 엄마 눈앞에 들이댔다⁠. 화면에는 탁세란 의원의 SNS 게시물이 떠 있었다⁠. 사진 한 장⁠. 조금 전⁠, 해님 유치원 정문 앞이었다⁠. 정장 입은 엄마들과 길 건너 화단 턱에 앉은 할머니들⁠, 그리고 나무에 묶인 달력 뒷장⁠. 「⁠돌봄도 노동이다⁠」 누가 찍어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게시물이 올라온 지 이십 분이었다⁠.

「⁠오늘 동탄의 한 유치원 앞입니다⁠. 할머니들은 쉬고 싶어서⁠, 엄마들은 일해야 해서 서로 맞서 있습니다⁠. 할머니를 파업으로 내몬 것은 누구입니까⁠. 수당으로는 이 거리를 메울 수 없습니다⁠. 국공립 연장보육이 답입니다⁠. — 화성시의원 탁세란⁠」

좋아요가 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계순은 돋보기를 내려 사진 속 자기 얼굴을 찾았다⁠. 화단 턱 맨 끝⁠, 허리를 꼿꼿이 편 파마머리였다⁠.

“⁠이제 시청 일이 됐어⁠, 엄마⁠. 엄마가 거실에서 한 말이 시청까지 갔어⁠.⁠”

혜빈의 목소리는 화가 났는지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품에 안긴 라율이 엄마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사진 속 할머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할머니 여기 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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