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78자)

익명

손주 돌봄 파업 선언 · 윤은류

산악회 쌍안경은 생각보다 멀리까지 보였다⁠. 103동 1204호 베란다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렌즈를 맞추자 107동 현관 유리문이 손바닥만 하게 들어왔다⁠. 3월 4일 아침 일곱 시 사십 분이었다⁠. 순범이 거실에서 신문을 넘기다가 아내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럴 거면 그냥 가지⁠.⁠”

“⁠파업 중이야⁠.⁠”

“⁠파업하는 사람이 왜 망을 봐⁠.⁠”

쌍안경 속에서 107동 유리문이 열렸다⁠. 회색 점퍼를 입은 쉰 살쯤 된 여자가 쌍둥이 손을 하나씩 잡고 나왔다⁠. 앱에서 구했다는 도우미였다⁠. 라율은 순순히 걸었고⁠, 라겸은 세 걸음 걷고 주저앉았다⁠. 도우미가 라겸을 일으켰다⁠. 라겸이 다시 주저앉았다⁠. 계순은 렌즈 너머로 손자의 입 모양을 읽었다⁠. 할머니⁠. 할머니⁠.

난간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보호대가 갈비뼈를 밀었다⁠. 계순은 쌍안경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닫힌 문 너머에서 순범이 신문을 한 장 더 넘기는 소리가 났다⁠.

*

도우미는 이틀을 버텼다⁠.

첫날은 라겸이 도우미의 운동화를 신발장 맨 위 칸에 숨겼다⁠. 둘째 날은 라율이 화장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할머니가 올 때까지 안 나간다고 했다⁠. 금요일 저녁 여섯 시⁠, 도우미가 혜빈의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들이 너무 할머니만 찾아서 자기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하루 치 일당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혜빈은 회의실에서 나와 비상계단에 서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계단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는지 연기가 올라왔다⁠. 혜빈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밤 열한 시⁠, 쌍둥이가 잠든 107동 802호 거실⁠. 찬솔은 야간 근무였다⁠. 혜빈은 식탁에 노트북을 펴 놓고 회사 메일을 정리하다가⁠, 메일 창을 닫고 동탄 맘카페 「⁠동탄맘 놀이터⁠」를 열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닉네임을 확인했다⁠. 「⁠쌍둥이팀장⁠」 삼 년 전 만든 이름이었다⁠. 혜빈은 오 분 동안 커서만 깜박이게 두었다가 쓰기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파업했어요⁠. 다섯 해 동안 쌍둥이를 봐 주셨는데 허리 디스크 진단서를 들고 오셔서 그만두신대요⁠. 계약서도 만들고 월 칠십 드린다고 했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래요⁠. 화요일 목요일을 달래요⁠. 저 팀장 단 지 일 년이에요⁠. 도우미는 이틀 만에 그만뒀고요⁠. 엄마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그럼 저는 어떡하죠⁠?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요⁠?⁠」

혜빈은 사진을 한 장 붙였다⁠. 지난주 비 오는 날 찍은⁠, 노란 우비 입은 쌍둥이의 뒷모습이었다⁠. 얼굴은 안 나왔다⁠. 올리기를 누르고 노트북을 덮었다⁠. 덮은 뒤에도 한참을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

월요일 아침⁠, 글은 조회 수 만 이천을 넘겼다⁠. 댓글은 삼백 개였다⁠.

「⁠어머님 허리부터 챙기세요⁠. 칠십이면 우리 엄마도 파업함⁠」

「⁠다섯 해 무급이었는데 이제 와서 칠십이요⁠? 저라면 안 받아요⁠」

「⁠저희 시어머니도 손주 보시다가 무릎 수술하셨어요⁠. 그때 그만두게 해 드릴걸 하고 후회합니다⁠」

「⁠팀장님 마음도 알지만⁠, 어머님 화요일이 팀장님 회의보다 가벼운가요⁠?⁠」

「⁠작성자님 혹시 남편분은 뭐 하세요⁠?⁠」

몇 개는 혜빈 편이었다⁠. 「⁠회사가 문제예요⁠. 엄마도 작성자도 잘못 없어요⁠.⁠」 그런 댓글에는 좋아요가 몇 개 붙지 않았다⁠.

계순은 이 글을 놀이터 벤치에서 처음 봤다⁠. 정확하게는 변묘순의 휴대전화로 봤다⁠. 묘순은 손녀딸 같은 며느리에게 글을 받았다고 했다⁠. 며느리는 동탄맘 놀이터 회원이었고⁠, 「⁠어머님⁠, 이거 혹시 아세요⁠?⁠」 하고 링크를 보냈다고 했다⁠.

“⁠이거 니 딸 아이가⁠?⁠”

묘순이 화면을 계순 눈앞에 들이밀었다⁠. 계순은 정수리의 돋보기를 내렸다⁠. 글은 다 읽지 않았다⁠. 사진 한 장만 오래 봤다⁠. 노란 우비 두 벌⁠. 뒷모습⁠. 소매 끝이 손목 위로 두 번 접혀 있었고⁠, 접힌 단에 빨간 실로 박음질이 보였다⁠. 우비 소매가 길어서 아이들이 넘어지길래 작년 가을 계순이 재봉틀로 줄인 단이었다⁠. 남문 시장에서 바짓단 수천 벌을 줄인 손은 자기 박음질을 사진 한 장으로 알아봤다⁠.

“⁠우비는 내가 줄였어⁠.⁠”

“⁠그럼 맞네⁠. 아이고 마⁠, 니 딸 글 잘 쓰네⁠. 근데 댓글 좀 봐라⁠, 다 니 편이다⁠.⁠”

묘순은 화면을 아래로 내리며 댓글을 하나씩 소리 내어 읽었다⁠. 벤치 옆 그네를 밀던 다른 할머니 둘이 다가왔다⁠. 108동 할머니와 102동 할머니였다⁠. 둘 다 손주 그네를 밀면서도 귀는 벤치에 와 있었다⁠.

“⁠이거 107동 쌍둥이 할매 아이가⁠?⁠”

“⁠어머⁠, 나도 이 글 봤어⁠. 우리 며느리가 보여 줬어⁠. 나보고 ‘⁠어머님은 괜찮으시죠⁠?⁠’ 그러더라⁠.⁠”

“⁠그래서 뭐라 했는데⁠.⁠”

“⁠괜찮다 그랬지⁠. 안 괜찮다 하면 뭐 해 줄 거야⁠.⁠”

그네 위의 손녀가 할머니를 불렀다⁠. 102동 할머니는 그네를 다시 밀었다⁠. 미는 손이 아까보다 셌다⁠.

*

같은 월요일 오후⁠, 동탄 산업단지 세묘테크 삼 층 품질관리팀⁠. 혜빈은 점심을 거르고 다음 달 인증 심사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 칸막이 너머에서 신입 셋이 컵라면을 먹으며 휴대전화 하나를 돌려 보고 있었다⁠.

“⁠이거 봤어⁠? 동탄맘 놀이터에 올라온 거⁠. 친정엄마가 파업했대⁠.⁠”

“⁠봤어⁠. 근데 나는 할머니 편⁠. 칠십이 뭐야⁠, 칠십이⁠.⁠”

“⁠그래도 이 엄마 팀장이래⁠. 팀장이면 우리 팀장님 같은 사람이잖아⁠.⁠”

“⁠우리 팀장님은 이런 글 안 쓰시지⁠. 우리 팀장님은 엑셀로 해결하시잖아⁠.⁠”

신입들이 웃었다⁠. 혜빈은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 휠을 굴렸다⁠. 같은 줄을 세 번 내렸다 올렸다⁠. 마침 본부장이 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쉰여덟⁠, 이 본부에서 이십오 년을 일한 남자였다⁠.

“⁠육 팀장⁠, 잠깐⁠. 요새 반차가 좀 잦네⁠.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이번 주까지만입니다⁠.⁠”

“⁠그래⁠. 다음 달 심사는 육 팀장이 앞에 서야 돼⁠. 다른 팀장들 보는 눈도 있고⁠. 우리 본부 첫 여자 팀장이잖아⁠.⁠”

본부장은 웃으며 문을 닫았다⁠. 혜빈은 마지막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칸막이 너머 컵라면 냄새가 사무실에 오래 남았다⁠. 혜빈은 휴대전화를 꺼내 맘카페 앱을 지웠다⁠. 지우고 나서 다시 깔았다⁠.

*

혜빈은 화요일 오후 반차를 냈다⁠. 도우미가 그만둔 뒤로 사흘째 반차였다⁠. 세 시 오십 분⁠, 해님 유치원 하원 줄에 혜빈이 서 있었다⁠. 정장 위에 회사 출입증을 그대로 목에 건 채였다⁠. 쌍둥이를 받아 놀이터로 나오자 미끄럼틀 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허리 보호대⁠, 연두 티셔츠⁠, 꽃무늬 몸뻬⁠, 그리고 손에 든 휴대전화⁠.

쌍둥이가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계순은 안아 주지 않고 손을 하나씩 잡았다⁠. 그러고 나서 휴대전화를 딸에게 내밀었다⁠. 화면에는 「⁠쌍둥이팀장⁠」의 글이 떠 있었다⁠.

혜빈은 화면을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그 글 내가 썼어⁠.⁠”

“⁠알아⁠.⁠”

“⁠어떻게 알았는데⁠?⁠”

“⁠우비⁠. 소매 내가 줄였잖아⁠.⁠”

혜빈이 짧게 웃었다⁠. 웃음 끝이 갈라졌다⁠.

“⁠댓글 봤어⁠? 다 엄마 편이야⁠. 삼백 개 중에 이백구십 개가 엄마 편이야⁠. 나는 거기 쓰면 누가 한 명이라도 ‘⁠팀장님 힘드시죠⁠’ 해 줄 줄 알았어⁠.⁠”

“⁠힘들지⁠.⁠”

“⁠엄마는 몰라⁠. 엄마는 가게 했잖아⁠. 엄마가 엄마 가게 사장이었잖아⁠. 나는 아니야⁠. 나 빠지면 내 자리에 바로 사람 앉아⁠.⁠”

미끄럼틀 위에서 라겸이 내려오지 않고 둘을 내려다봤다⁠. 라율은 모래를 퍼서 할머니 운동화 위에 쌓았다⁠. 계순은 발을 빼지 않았다⁠.

“⁠엄마도 가게 닫았어⁠. 다섯 해 전에⁠. 니가 애들 낳고 석 달 됐을 때⁠.⁠”

“⁠내가 닫으라고 했어⁠?⁠”

“⁠아니⁠. 니가 울었지⁠. 어린이집 대기가 이백 번이라고⁠.⁠”

혜빈은 대답하지 않았다⁠. 출입증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계순은 딸의 손가락을 봤다⁠. 엄지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지난주 시침핀에 찔린 자리였다⁠.

“⁠니가 거기다 쓴 거⁠, 엄마는 화 안 나⁠.⁠”

“⁠그럼⁠?⁠”

“⁠근데 니가 엄마한테 직접 말을 안 하고 남한테 먼저 한 거⁠, 그게 걸려⁠.⁠”

계순은 낱말을 고르다가 그대로 두었다⁠. 혜빈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도 나한테 말 안 했잖아⁠. 허리⁠. 아빠한테 들었다고 했잖아⁠.⁠”

미끄럼틀 위의 라겸이 그제야 미끄러져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미끄럼틀 끝에서 엉덩이로 착지한 라겸이 엄마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더니 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다섯 살이 끼어들 수 있는 자리는 딱 한 아이 몸만큼이었다⁠.

*

금요일 밤 여덟 시⁠, 103동 1204호 초인종이 울렸다⁠. 순범이 문을 열자 변묘순이 서 있었다⁠. 묘순 뒤로 할머니들이 줄을 이어 엘리베이터 앞까지 서 있었다⁠. 순범이 세어 보려다 그만두었다⁠.

“⁠위원장 계시나⁠?⁠”

“⁠위원장⁠?⁠”

묘순은 대답 대신 순범 옆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들이 차례로 신발을 벗었다⁠. 신발장 앞에 운동화와 털신과 효도화가 겹겹이 쌓였다⁠. 102동⁠, 104동⁠, 108동⁠, 110동⁠. 손에는 귤 봉지⁠, 떡 한 접시⁠, 식혜 페트병이 들려 있었다⁠. 계순이 안방에서 나왔다가 거실을 보고 멈췄다⁠. 거실 바닥에 할머니 아홉이 둘러앉아 있었다⁠. 묘순과 계순까지 열하나였다⁠.

“⁠다들 무슨 일로⁠…⁠.⁠”

“⁠니 딸 글 다 읽었다⁠.⁠”

108동 할머니가 말했다⁠. 이 할머니는 손녀 둘을 일곱 해째 보고 있었다⁠.

“⁠우리도 파업할라 칸다⁠.⁠”

“⁠나는 파업까진 못 하고 화요일 하루만⁠.⁠”

“⁠나는 목요일⁠.⁠”

“⁠우리 아들은 내가 쉬면 뭐 하냐고 하더라⁠. 쉬는 걸 해야 뭘 하지⁠.⁠”

할머니들이 한꺼번에 말했다⁠. 순범은 귤 봉지를 받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접시 다섯 개를 꺼냈다가 다시 넣고 큰 쟁반 하나를 꺼냈다⁠. 다섯 해 만에 이 집 거실에 손님이 열 명 넘게 앉았다⁠.

켜 둔 텔레비전에서는 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부가 육아휴직 급여를 올린다는 소식 뒤로⁠, 아이를 안고 웃는 젊은 아빠의 자료 화면이 지나갔다⁠. 102동 할머니가 귤 껍질을 까다가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집은 할매가 없나 보네⁠. 아빠가 다 안고 있네⁠.⁠”

“⁠저거 다 찍는 날만 안는 기라⁠.⁠”

묘순의 말에 거실이 한 번 크게 웃었다⁠. 순범이 쟁반을 들고 나오다가 웃음소리에 멈칫했다⁠.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껐다⁠. 할머니 하나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순범은 리모컨을 도로 켜 놓고 부엌으로 숨었다⁠.

“⁠그래서 우리 이름을 뭐라 할끼고⁠.⁠”

“⁠할매 연대⁠.⁠”

“⁠연대는 좀 무섭다⁠.⁠”

“⁠손주 돌봄 노동조합⁠.⁠”

“⁠노조는 고용주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계순이 거실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앉지 않았다⁠. 보호대를 찬 허리로는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일이 하루 중 가장 큰일이었다⁠. 계순은 식탁 위에서 혜빈의 계약서 사본을 집어 들었다⁠. 갑⁠, 을⁠.

“⁠고용주 있어⁠. 우리 딸이 갑이래⁠.⁠”

할머니들이 웃었다⁠. 묘순이 제일 크게 웃었고⁠, 웃다가 허리를 짚었다⁠. 계순은 웃지 않고 계약서 사본을 거실 바닥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이음누리 할머니 돌봄 노조⁠. 위원장은 아무나 해도 돼요⁠. 나는 허리 때문에 앉았다 일어나질 못하니까⁠…⁠.⁠”

“⁠그래서 니가 해라⁠.⁠”

묘순이 손을 들었다⁠. 108동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손이 하나씩 올라갔다⁠. 아홉 개였다⁠. 안방 문틈으로 거실을 보던 순범은 손을 들지 않았다⁠. 계순은 올라간 손들을 하나씩 봤다⁠. 손등마다 주름이 있었고⁠, 손톱 밑에 고춧가루 물이 든 손도⁠, 반창고를 감은 손도 있었다⁠.

계순은 거실 바닥의 계약서 사본 위에 자기 손바닥을 얹었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 다 같이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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