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52자)
손자의 진술
화성 이주 추첨에 우리 할머니가 뽑혔다 · 진해솔
윤채린은 순천역 이 번 출구 앞에서 우산도 없이 서 있었다. 서울에서 첫 기차를 탔다고 했다. 간호사 근무를 마치고 바로 왔는지 패딩 안에 아직 하늘색 근무복 바지가 보였다. 김정민이 다가가자 채린은 반가운 얼굴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정민의 휴대폰을 낚아채 화면을 켰다. 부재중 전화 열한 통이 떠 있었다. 전부 채린이었다.
“살아 있네.”
“미안.”
“나흘 동안 문자 하나 없다가, 할머니가 화성 가신대서 순천 왔다는 걸 뉴스로 알았어. 「솔티마을 여든둘 할머니, 화성 간다」. 네 동생 채널에 너 러닝머신에서 헐떡이는 거 나오더라.”
“그거 십칠 분 이십 초야. 나쁜 기록 아니야.”
“할머니는 이십이 분이던데.”
정민은 웃었다. 웃음이 나자 그제야 몸에 힘이 빠졌다. 채린이 정민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봄비가 역 앞 보도블록 틈에 고여 있었고, 택시 승강장에는 운전석 없는 택시들이 줄지어 서서 지붕 불빛을 깜박였다.
“어디 가서 얘기해. 집은 사람 많잖아.”
*
시내 모텔 방의 창문은 빗물에 흐려져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침대 시트 위에 회색 줄을 하나 그었다. 채린은 젖은 패딩을 의자에 걸고 근무복 바지를 벗었다. 정민은 문 앞에 선 채로 그걸 봤다. 두 해를 만났는데도, 채린이 옷을 벗는 동안 정민은 늘 어디에 손을 둬야 할지 몰랐다.
“거기 계속 서 있을 거야?”
채린이 정민의 셔츠 앞섶을 잡아당겼다. 정민은 끌려갔다. 채린의 입술에서 기차 안 커피 맛이 났고, 머리카락에서는 병원 손 소독제 냄새와 빗물 냄새가 같이 났다. 정민이 채린을 침대에 눕히자 시트가 서늘했다. 채린이 정민의 등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차가웠던 손이 등을 따라 내려가며 데워졌다. 둘은 서두르지 않았다. 나흘 동안 정민 안에 굳어 있던 것이 채린의 숨이 귀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풀렸다. 창밖 빗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정민은 채린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채린이 그 머리를 끌어안았다.
한참 뒤 채린이 정민의 가슴에 턱을 괴고 물었다.
“이제 말해. 뭐야?”
정민은 휴대폰을 집어 어젯밤 엄마가 거꾸로 읽고 간 그 화면을 보여 줬다. 채린은 그걸 오래 읽었다. 간호사들은 서류를 읽을 때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인다. 채린도 그랬다.
“이거 할머니가 부적격이어야 되는 거지?”
“응.”
“할머니 정신 멀쩡하잖아. 영상 보니까 나보다 멀쩡하던데.”
“가스불 한 번 켜 놓으셨어. 호미 어디 뒀는지 찾으신 적도 있고.”
“정민아, 우리 병동에 일흔 넘은 분들 매일 와. 그 정도로 인지 장애 진단 나가면 대한민국 노인 절반이 장애야.”
“알아.”
“그리고 이 소견서, 원격으로 썼다며. 진찰도 안 하고. 그거 의사 면허 걸린 거야.”
“알아.”
“알면서 왜 지우지도 않고 갖고 있어?”
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채린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시트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채린은 그걸 끌어올리지 않았다.
“너 가면 우리는 끝이지?”
“……”
“화성은 편지도 이십 분 걸려서 간다며. 한 번 가면 안 오고. 나는 그래도 괜찮아. 진짜야. 네가 가고 싶은 데 가서 사는 거면, 나는 울고 말아. 근데 이건 아니야. 할머니를 미친 사람 만들어서 가는 거면, 거기 가서도 너는 매일 그 생각 할 거야. 그거 너 아니야.”
정민은 천장을 봤다. 모텔 천장에는 얼룩이 없었다. 고시원 천장의 화성 지도 같은 얼룩이 거기 없다는 게, 이상하게 서운했다.
“오후 두 시에 진술이야.”
“가.”
“같이 갈래?”
“로비에서 기다릴게. 들어가는 건 너 혼자야.”
*
칠 층 복도 의자에 앉아 있는데 엄마 전화가 왔다. 정민은 받지 않으려다가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아무 소리가 안 났다. 엄마가 숨 쉬는 소리만 났다.
“정민아.”
“왜?”
“……밥 먹었어?”
정민은 웃음이 날 뻔했다. 오늘 들어서 처음 묻는 거였는데도, 다섯 번째처럼 들렸다.
“먹었어.”
“뭐 먹었는데?”
“김밥.”
“그건 밥이 아니라고 할머니가 그러더라.”
“알아.”
엄마가 또 한참 말이 없었다. 복도 끝 창문으로 광주 시내 빌딩 유리창들이 빗물에 번쩍였다.
“엄마는 아무 말 안 할게. 네 맘대로 해. 어제 그거, 네 화면 본 거, 할머니한테도 말 안 했어.”
“왜?”
“엄마도 값 불렀던 사람이잖아.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해.”
전화가 끊겼다. 정민은 휴대폰을 무릎에 올려놓고 화면을 봤다. 지명서가 아직 거기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구두 소리가 왔다. 마이클 정이 정민 옆자리에 앉았다. 왼뺨이 조금 부어 있었다. 손자국 모양이었다. 정민은 그게 누구 손인지 묻지 않았다.
“정민 씨,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요. 지명서에 서명하시면 계약금은 오늘 바로 들어가요. 할머님은 여기 남으셔서 밭 하시고, 정민 씨는 화성 가시고, 어머님 빚은 정리되고요. 다들 이기는 거예요. 누가 져요?”
“할머니요.”
“할머님이 왜 져요? 오래 사시는데.”
정민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진술실 문을 열었다.
*
진술실은 창문이 없었다. 하얀 책상 하나에 의자 넷이 마주 놓여 있었고, 천장 환풍기가 낮게 웅웅거리며 복사기 토너 냄새를 방 안에 돌렸다. 가운데 노성만 과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서지혜가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마이클 정은 정민을 따라 들어와 책상 끝에 앉았다. 앉으면서 부은 왼뺨을 손등으로 한 번 눌렀는데, 노성만이 그걸 보고 눈썹을 올리자 아무렇지 않게 손을 내렸다.
“제보인 대리인 자격으로 배석합니다. 규정상 가능하고요.”
노성만이 말했다. 서지혜가 기록판에서 눈을 들지 않은 채 덧붙였다.
“이주 규정 제40조 제2항. 가능합니다. 발언권은 없습니다.”
마이클 정이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발언 안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얇은 판 하나를 밀어 정민 앞에 놓았다. 지명서였다. 맨 아래 서명할 자리 옆에서 작은 불빛이 깜박였다.
“김정민 씨. 가족 진술을 시작하겠습니다. 편하게 답하시면 됩니다.”
노성만이 서류를 넘겼다.
“오분례 님이 최근 가스레인지 불을 켜 둔 채 자리를 비우신 적이 있습니까?”
“있어요.”
마이클 정의 눈이 반쯤 감겼다. 만족한 고양이 같았다.
“물건을 둔 자리를 잊으신 적은요?”
“있어요. 호미요. 밭에서요.”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경우는?”
“있어요. 밥 먹었냐고 하루에 다섯 번 물어보세요.”
노성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지혜를 봤다. 서지혜가 받아 적었다. 펜 소리가 진술실에 크게 났다. 정민은 지명서의 깜박이는 불빛을 봤다. 손가락 하나만 대면 됐다. 정민은 그 불빛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요, 과장님. 저도 그래요.”
노성만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저는 어제 휴대폰을 냉장고에 넣었어요. 아침에 찾느라 삼십 분 걸렸어요. 우리 아빠는 라면 올려놓고 자요. 엄마는 하루에 다섯 번 저한테 밥 먹었냐고 문자 보내요. 그건 엄마가 인지 장애라서가 아니라 저를 못 믿어서고요.”
마이클 정의 눈이 떠졌다.
“김정민 씨, 질문에만 답해 주세요.”
“답하는 거예요. 하나 더 있어요. 제보 서류에 붙은 늘봄의원 소견서요. 할머니는 그 의원에 가신 적이 없어요. 원격 진료라고 돼 있는데, 그 전화는 서울 번호에서 걸려 왔어요. 지역 번호 공이요. 그 시간에 할머니는 여기 광주에서 검사 마치고 저희 엄마 차 뒷자리에 앉아 계셨어요. 차 안 영상도 있어요. 동생이 찍었어요.”
진술실이 조용해졌다. 서지혜의 펜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아까보다 빨랐다.
“그리고 할머니가 처음 당첨 문자 받으셨을 때, 저한테 화성이 어디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영하 60도라서 장독을 밖에 못 둔다고 했더니, 안방에 두면 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우주공학을 칠 년 공부했는데, 그 대답이 틀렸다고 못 하겠어요.”
정민은 지명서를 끌어당겼다. 화면 귀퉁이의 휴지통 그림을 눌렀다. 「초안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정민은 「예」를 눌렀다. 깜박이던 불빛이 꺼졌다.
마이클 정이 처음으로 웃음을 잃었다. 그는 발언권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판을 도로 끌어갔다. 판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노성만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서류철 맨 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진술 감사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김정민 씨는 동반 후보로도 신청하셨죠. 우주항공청과 정보 공유 협약이 있어서 저희가 기록을 받았습니다. 장기 체류 우주인 선발 심리 평가, 「장기 고립 환경 부적합」. 화성은 장기 고립 환경입니다. 동반자 자격 심사에서 이 기록은 결격 사유로 검토될 겁니다.”
정민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탈락 메일에는 한 번도 적혀 있지 않던 사유였다. 세 번을 떨어지고 나서야, 정민은 그 사유를 이 창문 없는 방에서 처음 들었다.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사람. 그래서 고시원에서 밤일을 했다. 밤에는 관제실에 사람이 있었다.
“이제 정민 씨는 아무 데도 못 가시네요.”
마이클 정이 말했다.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서지혜가 고개를 들었다.
“대리인, 발언권 없습니다. 기록하겠습니다.”
마이클 정이 손을 들어 사과했다. 웃음이 돌아와 있었다.
*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남색 조끼가 끼어들었다. 서지혜였다. 엘리베이터 안에 둘뿐이었다. 칠 층에서 일 층까지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 서지혜는 정면만 봤다.
“아까 말씀하신 서울 번호. 그 기록, 저한테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주무관님한테요? 과장님한테가 아니라요?”
“저한테요.”
“왜요?”
서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 층을 지날 때 그가 말했다.
“인지 재검은 모레 오전 열 시입니다. 위원장은 노성만 과장님이고, 저는 검사관입니다.”
일 층에서 문이 열렸다. 로비 의자에 채린이 앉아 있었다. 채린이 일어서며 정민의 얼굴을 봤다. 정민은 휴대폰을 꺼내 엄마가 찍은 의원 현수막 사진과 대기실의 은색 로고 봉투 사진, 새별이가 찍은 차 안 영상의 시각 표시를 서지혜에게 보냈다. 서지혜의 조끼 주머니에서 진동이 한 번 울렸다.
정민은 채린에게 걸어가 그 앞에 섰다.
“나 못 간대.”
채린이 정민의 손을 잡았다. 차갑던 손이 이번에는 따뜻했다.
“그럼 나랑 있어.”
정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로비 유리문 밖으로 하얀 캠핑카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붕의 위성 안테나가 접혀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