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78자)

붉은 별

화성 이주 추첨에 우리 할머니가 뽑혔다 · 진해솔

오분례는 닭이 없는 집에서 닭보다 먼저 일어났다. 눈을 뜨면 먼저 무릎이 말을 했다. 왼쪽은 날이 궂을 거라고 했고, 오른쪽은 아무 말이 없었다. 분례는 오른쪽 무릎 말을 믿기로 하고 이불을 갰다. 옆자리에서 새별이가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다. 휴대폰을 손에 쥔 채였다. 화면이 아직 켜져 있었고, 거기 분례 얼굴이 멈춰 있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얼굴이었다. 분례는 그 화면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껐다. 꺼지는 법은 새별이가 가르쳐 주었다.

부엌에 들어가 물을 올리려다가 분례는 찬장 앞에서 멈췄다. 맨 아래 칸에 냄비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바닥이 거멓게 그을렸는데, 누가 철 수세미로 밤새 문질렀는지 그을음 사이사이로 은색이 반짝였다. 분례는 그 냄비를 들어 바닥을 봤다. 사위가 닦았을 것이다. 영희는 냄비를 저렇게 문지르지 않는다. 영희는 그냥 버린다.

분례는 냄비를 내려놓고 서랍에서 볼펜을 꺼냈다. 왼손 등에 꾹꾹 눌러 한 글자를 적었다. 「불」. 볼펜이 살갗에서 잘 안 나와서 두 번 덧썼다. 손등의 주름을 따라 잉크가 번졌다. 그러고 나서야 가스 밸브를 돌렸다. 파란 불꽃이 올라왔다. 분례는 불 앞을 떠나지 않고, 물이 끓을 때까지 서 있었다.

*

매실밭은 꽃이 한창이었다. 산자락 삼천 평이 하얗게 덮였고,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꽃잎이 비탈 아래로 쏟아졌다. 냄새는 달지 않았다. 꿀 냄새보다는 맑은 물 냄새에 가까웠고, 흙에서 올라오는 축축한 기운과 섞여 코끝이 시원했다. 분례는 두 손을 등 뒤로 마주 잡고 비탈을 올랐다. 발끝으로 흙을 한 번 누르고 딛었다. 시집와서부터 오른 비탈이었다. 분례는 이 밭에서 매실을 따서 영희 등록금을 냈고, 영감이 죽은 뒤에는 그 아래 논을 팔아 영희 손에 쥐여 주었다.

꼭대기 감나무 아래에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영감이 앉던 바위였다. 분례가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비탈 아래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이클 정이었다. 새것으로 보이는 주황색 등산화에 등산 지팡이 두 개를 짚고 올라오다가, 꽃잎 깔린 비탈에서 한 번 미끄러지고 지팡이 하나를 놓쳤다. 지팡이가 매실나무 사이로 혼자 굴러 내려갔다.

“아, 이거, 그립이 안 좋네요.”

“서울 신발은 땅을 몰라.”

“이거 독일 거예요.”

“독일 땅도 모르겄네.”

마이클 정이 웃으며 남은 지팡이 하나로 마저 올라왔다. 바위 앞에 이르자 숨이 차서 한동안 말을 못 했다. 분례는 그동안 감나무 가지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잎이 안 나서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이장님이 부르셔서 왔어요. 여사님이 보자고 하셨다고.”

“앉어.”

마이클 정은 바위 아래 흙에 앉았다. 정장 바지는 아니었다. 등산 바지였는데 그것도 새것이었다. 흙에 앉자마자 바지 엉덩이가 젖었다. 그는 그걸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양반, 나가 하나 묻을라고 불렀어.”

“네.”

“니는 왜 이 일을 허냐? 노인네 서류 꾸며서 부자한테 자리 파는 거.”

마이클 정의 얼굴에서 웃음이 먼저 빠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대답하기 전에 남은 지팡이를 옆에 눕혔다.

“저희 어머니가 2차 선단 때 뽑히셨어요. 일흔여덟이셨어요.”

분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말렸고요. 그때 저는 보험 회사 다녔어요. 사람이 몇 년 살지 계산하는 일이요. 어머니 나이, 병력, 화성 기지 의료 수준. 계산해 보니까 거기 가시면 일 년, 길어야 이 년이었어요. 여기 계시면 오 년은 됐고요.”

“그래서?”

“그래서 제가 부적격 서류를 만들었어요. 처음이었어요. 의사 하나 알았고, 어머니 깜빡하시는 거 제가 직접 진술했어요. 어머니는 부적격 받으셨고, 이주권은 어머니가 지명한 사람한테 넘어갔어요. 제가 고른 사람이요. 그 사람이 돈을 냈고요. 그게 제 첫 거래였어요.”

“니 엄마는?”

“삼 년 더 사셨어요. 그 돈으로 좋은 요양원에 계셨어요. 계산보다 이 년 짧았지만, 화성보다는 길었어요.”

마이클 정은 분례를 똑바로 봤다.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분례는 그래서 더 오래 그 얼굴을 봤다.

“여사님, 저는 노인을 화성에 보내는 게 잔인하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그러니까 이건 장사이기도 하지만, 제 입장에선 사람을 살리는 일이에요. 여사님도 거기 가시면 일 년이에요. 여기 계시면 이 밭에서 매실 다섯 번은 더 따세요. 그리고 가족분들은 빚이 없어지고요.”

“니 엄마가 가고 싶다 혔냐?”

마이클 정의 입이 닫혔다.

“가고 싶다 혔냐고?”

“……네.”

“그라믄 니가 니 엄마를 살린 거여, 니 엄마 대신 니가 살아 준 거여?”

바람이 불었다. 감나무 가지가 서로 부딪쳐 마른 소리를 냈다. 꽃잎이 둘 사이로 지나갔다. 마이클 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분례는 바위에서 손을 들어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낮이라 별은 보이지 않았다. 산 너머로 흐릿한 바다 빛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우리 영감은 레미콘 기사였어. 레미콘이 뭔지 아냐? 시멘트 섞어서 빙빙 돌리는 차. 고흥 바닷가에 로켓 쏘는 데 지을 때, 우리 영감이 거그 시멘트를 날랐어. 이 년을 날랐어. 집에 오믄 머리카락에 시멘트 가루가 하얗게 앉아 있었어. 나가 그걸 털어 줬어.”

분례는 손을 내렸다. 손등의 「불」 자가 햇빛에 번들거렸다.

“나로호라고 혔제. 그게 올라가던 날, 영감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우는 거여. 저 밑에 내가 부은 시멘트가 있다고. 그라고 그날 밤 이 바위에 앉아서 저쪽 하늘에 빨간 점을 가리켰어. 분례야, 저것이 화성이란다. 우리 손주 대에는 사람이 저기 가서 산단다. 나는 못 가도 니는 가 봐라. 가서 거그 흙이 무슨 색인가 보고, 거그다가 장 한번 담가 봐라.”

분례가 웃었다. 이가 하나 빠진 자리가 보였다.

“나는 그 소리가 미친 소린 줄 알았어. 근디 영감이 죽고 나서 십 년을 혼자 살아 봉께, 미친 소리가 아니더라. 그건 영감이 나한테 한 약속이었어. 영감은 못 지켰응께, 나가 지킬란다.”

마이클 정은 오랫동안 흙만 내려다보았다. 바지가 다 젖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에 웃음이 다시 붙어 있었다. 아까와 같은 웃음이었는데, 분례에게는 그게 덧댄 천처럼 보였다.

“좋은 얘기네요. 진짜로요.”

“그려.”

“그래도 저는 서류로 하겠습니다.”

분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이주청에 제보가 들어가요. 의사 소견서하고, 가족분 진술하고, 이웃 두 분 진술이요. 인지 재검 받으시게 될 거예요. 그 재검은 노 과장님 위원회가 하고요.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는 뒤에서 하는 걸 안 좋아해서요.”

“뒤에서 다 혀 놓고 앞에서 말허는 거구만.”

“네. 그렇게 보셔도 돼요.”

“해 봐.”

분례는 바위를 짚고 일어났다. 일어나는 데 두 번이 걸렸다. 첫 번째는 무릎이 안 펴졌다. 마이클 정이 손을 내밀었다가, 분례가 안 잡자 도로 거두었다.

분례는 바위 옆을 둘러봤다. 호미가 없었다. 분명히 들고 올라왔다. 감나무 밑동을 봤고, 바위 뒤를 봤다. 없었다. 분례의 손이 몸빼 주머니를 두 번 뒤졌다. 사탕과 휴지와 동전만 나왔다.

“이거요.”

마이클 정이 바위 아래 꽃잎 더미에서 호미를 집어 내밀었다. 분례가 앉을 때 내려놓은 자리였다. 분례는 호미를 받았다. 마이클 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그 얼굴이 분례에게는 기록판에 무엇을 적는 소리처럼 들렸다.

“고맙소.”

“천만에요.”

분례는 호미를 쥐고 비탈을 내려갔다. 등 뒤에서 마이클 정이 굴러 내려간 지팡이를 찾느라 매실나무 사이를 헤매는 소리가 들렸다. 독일 신발이 꽃잎을 밟고 또 미끄러졌다. 분례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갔다.

*

한낮에 분례는 정민을 불러 메주를 옮기게 했다. 정민은 마루에서 싸운 뒤로 사흘째 분례 눈을 피하고 있었다. 밥상에서도 고개를 숙였고, 마당에서 마주치면 휴대폰을 봤다. 분례는 그걸 다 알았다. 그래서 일을 시켰다. 사람은 손에 뭘 들고 있을 때 말이 나온다.

볏짚에 묶인 메주가 처마 밑에 열여섯 덩이 매달려 있었다. 정민이 그걸 하나씩 내려 볕 드는 평상에 늘어놓았다. 메주에서 꼬리꼬리한 냄새가 올라오자 정민이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이거 상한 거 아니에요?”

“상헌 거랑 뜬 거랑 다르다. 이건 뜬 거여.”

“뭐가 달라요?”

“상헌 건 버리고, 뜬 건 묵어.”

정민이 웃을 뻔하다가 참았다. 분례는 메주 하나를 뒤집으며 물었다.

“니 화성 가믄 뭐 헐라고 그라냐?”

정민의 손이 멈췄다. 한참 있다가 대답이 나왔다.

“모르겠어요. 그냥 가고 싶었어요. 여기선 내가 할 게 없으니까. 거기 가면 다들 처음이잖아요. 다들 처음이면, 나도 못하는 게 아니라 처음인 거잖아요.”

“그라믄 여기서도 처음 해 봐.”

“뭘요?”

“메주 뒤집는 거. 니 처음이제?”

정민이 메주를 내려다봤다. 분례가 손을 뻗어 정민의 손을 메주 위에 얹었다. 표면은 딱딱하고 거칠었고, 볕을 먹어서 따뜻했다. 정민은 그 메주를 뒤집었다. 하얗게 핀 곰팡이 꽃이 햇빛 쪽으로 돌아앉았다.

*

저녁에 분례는 마루에 새별이를 앉혀 놓고 휴대폰을 내밀었다.

“새별아, 여기다가 글씨 써 놓는 거 가르쳐 줘라.”

“메모? 할머니가 메모를 왜?”

“손등에 쓰믄 씻으믄 지워져.”

새별이가 분례의 왼손을 봤다. 번진 「불」 자가 아직 남아 있었다. 새별이는 한참 그걸 보다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화면 아래 마이크 그림을 가리켰다.

“이거 누르고 말하면 글씨로 바뀌어. 할머니는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빠르잖아.”

분례가 마이크를 눌렀다. 화면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가스불 끄고 나가기.”

화면에 글자가 떴다. 「가스불 끄고 나가기」. 분례가 신기해서 한 번 더 눌렀다.

“영희 김치 더 묵이기.”

「영희 김치 더 묵이기」.

“정민이 밤일 그만두게 허기.”

「정민이 밤일 그만두게 하기」. 기계가 사투리를 반쯤 고쳐 적었다. 분례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허기라고 혔는디 하기라고 썼네. 이 기계도 서울 것이냐?”

새별이가 마루에 드러누워 웃었다. 웃다가 휴대폰이 울려 일어났다. 분례의 휴대폰도 같이 울렸다.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영희의 휴대폰도,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던 태수의 휴대폰도 울렸다. 정민은 휴대폰을 들고 대문 쪽에서 들어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국가우주이주청 호남 심사센터. 「이주 당첨자 오분례 님 인지 기능 재검 요청 안내. 사유: 관계인 제보 접수. 첨부 서류: 의료 소견서 1부, 관계인 진술서 3부.」

다음 주라던 제보는 그날 저녁에 와 있었다. 진술서는 셋이었다. 이웃이 둘이면, 나머지 하나는 가족이었다. 마당에서 태수의 담뱃불이 떨어졌다. 분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메모장 맨 아래에 마이크를 눌러 한 줄을 더 말했다.

“사위 밥 차려 주기.”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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