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72자)
살아 있는 짐
화성 이주 추첨에 우리 할머니가 뽑혔다 · 진해솔
「아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 중.」
강봉식은 마을회관 방송실 의자에 앉아 마이크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 번 톡톡 쳤다. 스피커가 산을 타고 울렸다. 이장 일을 서른한 해 하는 동안 이 마이크를 두 번 갈았고, 의자는 세 번 갈았다. 목소리는 한 번도 안 갈았다.
「에, 솔티마을 주민 여러분. 오늘 오전 열 시에 마을회관에서 서울에서 오신 손님이 마을 발전에 관한 설명회를 한답니다. 다과가 있답니다. 다과는 제가 미리 먹어 봤는데, 카스텔라가 맛이 괜찮습니다. 이상.」
방송을 끄고 봉식은 창밖을 봤다. 회관 앞마당에 하얀 캠핑카가 와 있었다. 오분례 집 대문 앞에서 사흘을 버티더니 오늘은 회관까지 내려왔다. 봉식은 카스텔라를 하나 더 집었다. 남의 다과를 먹으면서 남의 속셈을 보는 것도 이장 일이었다.
*
회관 안방에 주민 열넷이 모였다. 솔티마을 사람 전부가 스물셋이었으니 많이 온 셈이었다. 마이클 정은 방 앞에 서서 벽에 작은 영사기를 비췄다. 화면에 매실밭 항공 사진이 떴다. 오분례 집 뒤 산자락, 삼천 평이었다.
“어르신들, 오 여사님이 화성에 가시면 이 밭은 누가 하시죠?”
방이 웅성거렸다. 박씨네 영감이 손을 들었다.
“우리가 하제. 매실 따는 날은 온 마을이 올라가.”
“지금은요. 오 여사님 가시고 오 년, 십 년 뒤에는요? 이 마을 버스 노선, 내년에 없어지는 거 아시죠? 군청 공문 나왔어요.”
방이 조용해졌다. 그건 다들 알았다. 군청이 자율주행 마을버스를 하루 두 번으로 줄이겠다고 했고, 그다음엔 없애겠다고 했다.
“저희 회사가 마을 발전기금으로 2억을 내겠습니다. 버스 노선 유지 비용으로 쓰셔도 되고요. 대신 하나만 부탁드리려고요. 오 여사님이 요즘 깜빡깜빡하시는 거, 다들 보셨잖아요. 그걸 진술서로 써 주시면 돼요. 여사님 건강을 걱정하는 이웃의 마음으로요. 화성 가시면 위험하시니까.”
“오 여사가 뭘 깜빡혀?”
봉식이 물었다. 마이클 정이 봉식을 보고 웃었다.
“이장님, 가스불 켜 놓고 나가신 적 있으시대요. 가족분이 직접 그러셨어요.”
방 뒤쪽에서 누군가 혀를 찼다.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가스불은 다들 한 번씩 켜 놓고 나갔다. 그래도 남의 입으로 들으면 다르게 들렸다.
봉식은 일어서지 않았다. 대신 조끼 주머니에서 무선 마이크 하나를 꺼냈다. 방송실 마이크와 짝이 되는 것이었다. 봉식이 단추를 누르자, 회관 지붕의 스피커가 낮게 지지직거렸다.
「에, 지금 마을회관에서 서울 손님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해 드립니다.」
마이클 정의 웃음이 멈췄다.
“이장님, 이거 지금 방송하시는 거예요?”
봉식의 목소리가 산 너머까지 퍼졌다. 「서울 손님이 물으십니다. 이거 지금 방송하시는 거냐고. 네, 방송합니다.」
방 안에 웃음이 터졌다. 박씨네 영감이 무릎을 쳤다.
“이장님, 이건 사적인 설명회예요.”
「손님이 사적인 설명회랍니다. 2억 주고 오 여사 정신 나갔다는 진술서 받는 게 사적인 설명회랍니다.」
“제가 그런 표현은 안 했잖아요.”
「손님이 그런 표현은 안 했답니다. 그라믄 무슨 표현을 혔소?」
마이클 정이 봉식 쪽으로 성큼 걸어왔다. 처음으로 구두 소리가 거칠었다. 그는 봉식 앞에 쪼그려 앉아 목소리를 낮췄다. 마이크가 그 낮은 목소리까지 주워 담았다.
「이장님, 버스 끊기면 이 마을 끝나요. 이장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여기 열넷 중에 운전하시는 분 몇 분이에요? 병원은 어떻게 가세요? 저는 지금 마을을 살리자는 거예요.」
봉식은 마이크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마을은 우리가 살리요. 사람 하나 팔아서 살리는 건 마을이 아니여. 이상, 이장 강봉식.」
봉식이 마이크를 껐다. 회관 안이 한동안 조용했다. 마이클 정은 일어나 영사기를 껐다. 벽의 매실밭이 사라졌다. 그는 책상 위에 진술서 양식 한 묶음을 그대로 두고 나갔다.
주민들이 하나둘 일어나 나갈 때, 봉식은 방 뒤쪽을 봤다. 박씨네 영감과 윗말 안씨 할머니가 양식 한 장씩을 접어 몸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박씨네 영감은 봉식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그 집 손자가 순천 시내 병원에 투석을 다녔다. 버스가 끊기면 그 손자는 어떻게 다니나. 봉식은 그 셈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다.
*
오분례 집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중간, 마른 도랑 옆에서 봉식은 김태수를 만났다. 태수는 읍내 약국 봉투를 들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숙취약이었다.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봉식은 지팡이를 길 한가운데 짚고 섰다. 길이 좁아서 태수는 비켜 갈 수가 없었다.
“사위 양반.”
“아, 이장님. 안녕하십니까.”
“가스불 얘기, 니가 혔냐?”
태수의 얼굴이 누런색에서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봉식은 그걸로 답을 들었다.
“아까 회관에서 그 양반이 가족이 직접 그랬다고 허더라. 정민이는 그런 소리 헐 놈이 아니고, 영희는 성질은 고약해도 입은 무거워. 새별이는 할머니 편이고. 그라믄 남는 사람이 하나여.”
“이장님, 그게, 술을 묵다가—”
“술은 나도 묵어. 묵고 나서 사람을 팔진 않어.”
“판 거 아입니다.”
“그라믄 뭐여? 준 거여?”
태수는 약국 봉투를 구겼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봉식은 지팡이를 들어 길을 비켜 주었다.
“나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혔어. 니가 혀. 니 입으로.”
태수는 대답하지 않고 봉식 옆을 지나 내려갔다. 몇 걸음 가다 돌아봤는데, 봉식은 벌써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일흔아홉 살의 등이 지팡이 하나에 기대 천천히 올라갔다.
*
오후 두 시, 이주청 남색 승합차가 오분례 집 대문 앞에 섰다. 서지혜 주무관이 내렸다. 은색 가방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봉식은 회관에서 곧장 올라와 평상 끝에 앉아 있었다. 구경꾼이 봉식만은 아니었다. 새별이는 짐벌을 들었고, 정민은 마루 기둥에 기댔고, 영희와 태수는 각자 다른 쪽 끝에 서 있었다. 둘 사이에 장독대가 있었다.
“반입물 현장 사전 심사를 하겠습니다. 오분례 님, 신고하신 반입 희망 물품이 된장 단지 하나, 맞습니까?”
“맞어.”
서지혜가 가방을 열었다. 긴 막대처럼 생긴 검출기를 꺼내 화면을 켰다.
“이주 규정 제31조. 살아 있는 미생물 군집이 포함된 식품은 기지 생명 유지 체계 보호를 위해 반입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살아 있응께 맛있는 거여. 죽은 장은 장이 아니여.”
“그래서 안 됩니다.”
“살아 있는 건 안 되믄, 사람은 어떻게 가냐? 사람도 살아 있는디.”
서지혜가 잠깐 멈췄다. 새별이 짐벌 뒤에서 킥킥 웃었다. 서지혜는 대답 대신 단지 뚜껑을 열어 달라고 했다. 분례가 뚜껑을 열었다. 마당 가득 냄새가 퍼졌다. 짜고, 깊고, 오래 묵은 콩과 소금과 볕의 냄새였다. 봉식은 그 냄새를 육십 년 가까이 맡았다. 오분례가 시집오던 해 이 단지가 소달구지에 실려 마을에 들어왔고, 봉식은 그 달구지를 밀었다.
서지혜가 검출기 끝을 단지 위에 댔다. 검출기가 삑 소리를 냈다. 삑, 삑, 삑. 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아예 이어진 소리가 됐다. 화면에 빨간 글씨가 떴다. 「측정 범위 초과」.
“워메, 기계가 놀랬네.”
“고장 아니에요?”
정민이 물었다. 서지혜가 검출기를 흔들었다.
“고장 아닙니다. 이 정도면 균이 아니라 균의 도시입니다.”
마당이 터졌다. 태수가 장독대를 잡고 웃었고, 영희도 입을 손으로 가렸다. 영희가 웃는 걸 봉식은 그날 처음 봤다. 서지혜만 웃지 않았다. 서지혜는 기록판에 적었다. 「불허」.
분례가 단지 뚜껑을 닫았다.
“그라믄 나 안 가.”
“할머니.”
정민이 마루에서 내려왔다. 분례는 정민을 보지 않았다. 서지혜를 봤다.
“아가씨, 거그 가서 사람들이 뭐 묵고 사요?”
“배양 단백질하고 수경 재배 채소입니다.”
“간은 뭘로 혀?”
“소금입니다.”
“소금만 묵고 살믄 사람이 짜져.”
서지혜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때 새별이 짐벌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서지혜 앞에 내밀었다.
“주무관님, 이거요. 이주 기구 누리집 화성 기지 식량 연구소 공지. 「발효 종균 연구 시료 수집」. 각국 전통 발효 식품의 종균을 밀봉 용기 1킬로그램 이내로 받는대요. 연구 시료로. 규정 제31조 예외 조항 제4항이라고 적혀 있어요.”
서지혜가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화면을 오래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규정집을 꺼내 직접 넘겼다. 제31조 제4항이 거기 있었다.
“……제4항은 작년에 생겨서 제가 못 외웠습니다.”
“그럼 돼요?”
“단지는 안 됩니다. 씨된장 1킬로그램, 밀봉 용기, 연구소 기탁. 이주자 본인 소유가 아니라 연구소 소유가 됩니다.”
분례가 단지를 내려다봤다. 철사 두 줄이 감긴 어깨 금을 손끝으로 쓸었다.
“단지는 못 가고 장만 간다.”
“네.”
“장이 가믄, 단지는 거그서 또 구하믄 되제.”
“화성에는 흙으로 구운 단지가 없습니다.”
“흙은 있다며.”
서지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판의 「불허」 옆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종균 시료 1킬로그램 조건부 허가」. 은색 가방을 닫으며 서지혜가 말했다.
“오분례 님, 장 담그는 손은 차야 한다고 하셨죠.”
“그랬제.”
“저희 어머니도 그 말을 하셨습니다.”
서지혜는 그 말만 하고 승합차에 올랐다.
*
밤이 깊어 다들 방에 들어간 뒤, 봉식은 평상에 남아 있었다. 분례가 부엌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와 김치 한 보시기를 들고 나왔다. 둘은 평상 양 끝에 앉았다. 대문 밖 캠핑카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서쪽 하늘에 붉은 점이 떠 있었다.
“박씨네하고 안씨네가 종이 가져갔어.”
봉식이 말했다.
“알어.”
“투석 다니는 손자 땜시.”
“알어. 나라도 가져가.”
분례가 막걸리를 따랐다. 봉식이 받았다. 둘이 잔을 부딪치지 않고 마셨다.
“분례야.”
“왜?”
“그 추첨, 니가 넣어 달라 혔다고 식구들한테 말 안 혔제?”
분례가 잔을 내려놨다. 작년 가을 경로당에서였다. 오분례가 봉식의 휴대폰을 빌려 달라고 했고, 봉식이 대신 신청서를 채워 주었다. 장난인 줄 알았다. 둘 다 장난인 줄 알았다.
“말 안 혀. 니도 허지 마.”
“왜?”
“식구들이 니를 미워할 거 아니여. 영감 친구가 나를 화성에 보냈다고.”
봉식은 막걸리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시큼하고 달았다. 분례가 서쪽 하늘을 보며 말했다.
“봉식아, 내일 밭에 그 양반 좀 불러 줘라.”
“캠핑카 양반?”
“그려. 둘이 얘기 좀 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