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15자)

된장 담글 줄 아는 사람

화성 이주 추첨에 우리 할머니가 뽑혔다 · 진해솔

“37번, 니 와 거서 서 있노? 신호 바뀌었다 아이가. 가라. 가라고.”

김태수는 평상에 노트북을 펴 놓고 화면 속 택시 한 대를 달래고 있었다. 새벽 네 시, 솔티마을은 개 한 마리 짖지 않았고, 부산 해운대의 자율주행 택시 서른일곱 번은 아무도 없는 사거리에서 이 분째 서 있었다. 태수는 부산 원격 관제센터 야간조였다. 차들이 스스로 판단을 못 내리고 멈추면, 사람이 화면으로 들어가 등을 떠밀어 주는 일이었다. 순천에 내려와 있어도 노트북만 있으면 일은 됐다.

“비닐봉지네. 니 비닐봉지 보고 섰나? 그거 사람 아이다. 바람이다.”

태수가 화면의 「진행 승인」을 누르자 37번이 슬금슬금 출발했다. 태수는 만족해서 식은 보리차를 마셨다. 택시를 이십 년 몰았다. 이제는 택시가 태수 대신 길을 달리고, 태수는 택시가 겁먹을 때만 불려 나온다. 처음엔 그게 서러웠는데, 요즘은 그냥 웃겼다. 기계도 비닐봉지를 무서워했다.

“사위.”

장독대 쪽에서 장모 목소리가 났다. 태수는 깜짝 놀라 노트북을 닫을 뻔했다. 장모가 어둠 속에서 독 뚜껑을 하나씩 열어 보고 있었다. 새벽 공기에 장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짜고 구수하고, 어딘가 쿰쿰한 냄새였다.

“장모님, 안 주무십니까?”

“늙으믄 잠이 없어. 니는 왜 기계한테 욕을 허냐?”

“욕 아입니다. 응원입니다.”

“응원을 그라고 허냐? 부산은 별스럽다잉.”

장모가 뚜껑을 닫았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오늘 아침 묵고 회의 헌다. 니도 앉어.”

“예.”

“영희도 앉으라 혀라.”

“영희는 동반에서 뺀다 안 하셨습니까?”

“빼도 앉는 건 앉어.”

*

회의는 마루에서 했다. 장모가 상석에 앉았고, 정민과 새별이 한쪽, 영희와 태수가 다른 쪽에 앉았다. 새별이 짐벌을 마루 기둥에 묶으려 하자 장모가 손바닥으로 기둥을 쳤다. 새별이 짐벌을 내렸다.

“동반 한 사람. 누가 갈 것이냐?”

장모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정민이 손을 들었다. 손이 너무 빨리 올라가서 새별이 웃었다. 정민은 귀가 빨개졌지만 손을 내리지 않았다.

“제가 갈게요. 제가 제일 젊고, 우주 쪽 공부도 했고, 거기 기지 장비 다룰 줄 알아요.”

“그라제. 또.”

태수도 손을 들었다. 마루가 조용해졌다. 영희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봤다. 정민도 봤다. 새별은 입을 벌렸다.

“아빠가?”

“와. 안 되나?”

“아빠 무릎이 부산 사람이라며. 오르막 싫어한다며.”

“화성은 중력이 삼분의 일이다. 무릎이 좋아한다.”

“그건 핑계고.”

태수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웃자고 든 손이 아니었다는 걸 자기도 그제야 알았다.

“내는 여기 있어도 아무도 안 찾는다. 택시는 내 없어도 잘 다니고, 관제센터는 내 자리에 기계 하나 더 넣으믄 되고. 부산 집에 들어가믄 냉장고 소리밖에 안 난다. 내가 화성 가믄, 장모님 옆에 사람 하나는 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영희가 상 밑으로 손을 꽉 쥐었다. 장모는 태수를 오래 봤다.

“그라믄 내가 조건을 하나 걸겄다.”

장모가 무릎 위의 행주를 접었다.

“나랑 가는 사람은 된장 담글 줄 알아야 혀. 메주 띄우는 거, 소금물 맞추는 거, 장 가르는 거. 그라고 하나 더.”

“뭔데요?”

“나 거기서 죽으믄, 니가 묻어 줘야 혀.”

정민이 숨을 들이켰다. 화성 기지에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민은 알았다. 흙이 아니라 재처리 설비로 간다. 정민은 그 말을 할머니한테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말 안 허믄 안 죽냐?”

“엄마.”

영희였다. 영희는 장모를 보지 않고 정민을 봤다.

“정민이는 안 돼.”

“엄마가 무슨 상관인데?”

“정민이 가면, 나는 엄마도 아들도 한 번에 못 봐. 둘이 같이 가면 둘 다 안 돌아와. 나는 그건 못 해.”

“엄마가 언제 날 봤는데?”

정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손에 쥔 숟가락을 상에 내려놓는데 소리가 컸다.

“엄마가 언제 할머니를 봤는데? 십 년 동안 전화 한 통 안 했잖아. 근데 이제 와서 둘 다 못 본다고? 엄마 그날 평상에서 뭐 했어? 브로커한테 할머니 값 불렀잖아. 45억. 할머니 팔아서 45억 받겠다고.”

“정민아.”

태수가 말렸다. 정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할머니 팔진 않았어.”

“너는 안 팔았어?”

영희가 일어섰다. 눈가가 빨갰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콜센터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 남자가 너 갈 수 있다고 했을 때, 너는 할머니가 정신 나간 노인네라는 서류 한 장이면 화성 간다고 계산했잖아. 새별이가 다 들었어. 너는 값을 안 불렀을 뿐이야. 셈은 했어.”

정민이 새별을 봤다. 새별은 고개를 숙였다. 정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씨발, 그래. 계산했어. 했다고. 세 번 떨어지면 너도 해. 엄마도 해 봐.”

“말 조심해.”

“엄마나 조심해.”

정민이 마루에서 내려가 신발도 제대로 꿰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문 밖에서 캠핑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마이클 정이 뭔가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고, 정민이 소리를 질렀다. “꺼져요!” 캠핑카 문이 닫혔다. 정민의 발소리가 비탈길 아래로 멀어졌다.

장모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주를 접었다 폈다 했다. 그러다 행주를 상 위에 놓고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

오후에 태수는 뒤꼍 텃밭에서 영희를 찾았다. 영희는 쪽파 밭 고랑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쪽파를 뽑는 것도 아니고 그냥 흙을 손가락으로 긁고 있었다. 손톱 밑이 까맸다. 태수는 고랑 끝에 섰다. 발밑 흙이 물러서 운동화가 반쯤 빠졌다.

“니 아까 정민이한테 한 말, 쪼매 셌다.”

“알아.”

“점마도 셌다.”

“알아.”

“그라고 니가 45억 부른 거, 그거 내 빚 때문 아이가. 아직 남은 거.”

영희는 흙을 긁던 손을 멈췄다.

“당신 진짜 가려고?”

“모르겠다.”

“당신까지 가면, 나는 진짜 혼자네.”

“니는 원래 혼자 잘했다. 내보다 잘했다.”

영희가 쪽파 한 뿌리를 뽑아 태수 발 앞에 던졌다. 흙덩이가 운동화 위에 떨어졌다.

“그런 말 하라고 손 든 거면, 내려.”

태수는 쪽파를 주워 들었다. 뿌리에 붙은 흙에서 비 온 뒤 같은 냄새가 났다. 태수는 그걸 들고 한참 서 있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부엌 쪽으로 갔다. 장모가 그 쪽파로 저녁에 파전을 부쳤다. 태수는 그 파전을 먹지 않고 읍내로 나갔다.

*

읍내 포장마차는 순천에서 낙안 가는 국도 옆, 버스 정류장 뒤에 있었다. 비닐 천막에 습기가 맺혀 있었고, 연탄 화덕 위에서 꼼장어가 오그라들었다. 태수는 소주 한 병을 혼자 시켜 놓고 두 잔째를 따랐다. 정민은 저녁이 되도록 안 들어왔고, 영희는 방문을 닫았고, 새별은 장모 옆에서 누워 있었다. 태수가 갈 데는 여기뿐이었다.

천막이 들리고 회색 정장이 들어왔다. 등산 조끼는 벗었고, 손에 소주 한 병을 더 들고 있었다.

“아버님, 합석해도 될까요?”

“내가 니 아부지가?”

“말이 그렇게 나와요. 습관이에요. 사장님이라고 할까요?”

“사장 아이다. 망했다.”

“그럼 형님.”

태수는 웃고 말았다. 마이클 정이 앉아 태수 잔에 술을 따랐다. 태수는 받았다. 받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배 속에서 화끈하게 퍼졌다.

“아까 마루에서 손 드셨다면서요. 정민 씨가 나오면서 다 소리 질러서 들었어요.”

“니는 뭐든 다 듣네.”

“그게 일이라서요. 형님, 진짜 가시려고요?”

“모르겠다. 갈 데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들었다.”

“형님 같은 분이 가셔야 하는데요. 화성은 저런 꼬장꼬장한 데가 아니라 형님처럼 아무 데서나 버티는 분이 필요해요.”

“꼬장꼬장한 게 누군데.”

“아, 이주청이요. 이주청.”

마이클 정은 꼼장어를 하나 집어 태수 앞접시에 놓았다. 태수는 그걸 먹었다. 맛있었다. 세 번째 병이 반쯤 비었을 때, 태수는 자기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혀가 멈추지 않았다. 부산 택시 회사 얘기를 했고, 자율주행이 들어오던 해 얘기를 했고, 빚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반쯤 했다.

“장모님은 정정하시죠? 러닝머신 이십이 분이면.”

“다리는 쇠다. 쇠.”

“정신도요?”

“정신은……”

태수는 잔을 비웠다. 엊그제 새벽이었다. 태수가 관제 일을 하다가 탄내를 맡고 부엌에 들어갔을 때, 가스레인지 위에서 빈 냄비가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장모는 장독대에 있었다. 태수가 불을 끄고 냄비를 찬물에 담그자 치익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부엌을 채웠다. 장모는 그 소리를 듣고 들어와, 냄비를 한 번 보고,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장독대로 나갔다.

“가스불을 한 번 켜 놓고 나가시긴 하더라. 냄비가 새빨개가. 근데 그건 내도 한다. 내도 라면 올려놓고 잔다.”

“그럼요. 누구나 그래요.”

마이클 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면서 술을 따랐다. 태수는 그가 그 말을 듣는 동안 한 번도 잔을 들지 않았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계산은 마이클 정이 했다. 천막을 나서며 그가 명함을 태수 셔츠 주머니에 꽂았다.

“형님, 마음 바뀌시면요. 형님이 가시든 안 가시든, 집안에 돈이 좀 들어가면 다들 숨통이 트이실 거예요.”

태수는 명함을 빼서 버리려다가,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

이튿날 아침, 태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채로 마당에 나왔다. 장모가 장독대 맨 앞, 제일 작고 제일 검은 단지를 두 팔로 안고 서 있었다. 높이가 장모 무릎쯤 되는 갈색 단지였다. 어깨께에 금이 한 줄 가 있었고, 그 금을 따라 철사가 두 번 감겨 있었다. 장모는 그 단지를 마루 앞에 내려놓은 체중계 위에 올렸다.

화면에 숫자가 떴다. 14.2.

“정민아, 짐이 몇 킬로까지라고 혔냐?”

밤새 어디 있다 왔는지 정민이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눈이 부어 있었다.

“한 사람당 20킬로요.”

“그라믄 옷은 5킬로하고 쪼끔만 가져가믄 되겄네.”

“할머니, 그거 반입 심사 안 돼요. 미생물 덩어리잖아요.”

“이게 내 친정 엄마가 시집올 때 들려 준 단지여. 씨된장이 육십 년이 됐어. 이게 안 가믄 나도 안 가.”

정민이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마당 저편에서 새별이 짐벌을 들고 뛰어왔고, 영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태수는 체중계 위의 단지를 보다가 문득 셔츠 주머니를 만졌다. 금속 명함이 손끝에 차갑게 닿았다. 그리고 어젯밤 자기가 한 말이 머릿속에 하나씩 돌아왔다. 냄비가 새빨개가.

태수는 대문 쪽을 봤다. 캠핑카 지붕의 안테나가 아침 햇빛을 받으며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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