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31자)

러닝머신

화성 이주 추첨에 우리 할머니가 뽑혔다 · 진해솔

국가우주이주청 호남 심사센터는 광주 상무지구 유리 건물 칠 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벽 한 면을 차지한 화면이 김새별의 얼굴을 비췄고, 화면 아래로 글자가 흘렀다. 「촬영 금지 구역입니다. 개인 기기의 카메라를 꺼 주십시오.」 새별은 휴대폰 카메라를 껐다. 그리고 할머니 몸빼 바지 옆주머니에 넣어 둔 작은 보조 카메라는 끄지 않았다. 할머니 바지 주머니는 늘 깊었다. 거기에는 사탕, 휴지, 동전, 성냥, 그리고 지금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 주머니에 손 넣지 마. 렌즈 가려.”

“나가 내 주머니에 손도 못 넣냐?”

“오늘만.”

할머니는 투덜대면서 손을 뺐다. 그 대신 사탕 하나를 꺼내 새별 손에 쥐여 주었다. 박하 사탕이었다. 새별은 할머니한테서 박하 사탕을 받은 게 몇 번째인지 셀 수가 없었다. 매주 일요일 밤, 영상 통화 끝에 할머니는 화면에 대고 사탕을 내밀었다. 화면 너머로는 사탕이 건너오지 않는데도 그랬다.

대기실에는 노인이 셋 더 있었다. 전라도 당첨자는 할머니까지 넷이었고, 그중 일흔다섯이 넘은 사람은 할머니 하나였다. 벽에는 커다란 막대그래프가 걸려 있었다. 「호남권 고령 당첨자 안전 선별률」. 막대가 해마다 올라가 있었고, 맨 꼭대기 막대 옆에 웃는 남자 사진이 붙어 있었다. 「심사과장 노성만」.

“저 사람 웃는 거 봐. 무슨 상 받은 사람 같아.”

정민이 중얼거렸다. 아빠 태수가 그래프를 한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별률이믄 떨군 비율 아이가. 떨군 걸 자랑하는 기가.”

“아빠, 쉿.”

“와, 내 말이 틀렸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기실의 다른 노인 셋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신체검사는 주무관 서지혜가 맡았다. 서른 중반,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었고, 이주청 남색 조끼 가슴께에 볼펜 세 자루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서지혜는 사람을 보기 전에 서류를 먼저 봤고, 서류를 다 본 다음에 사람을 봤다.

“오분례 님. 이주 규정 제14조에 따라 심폐 지구력 검사를 진행합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걸으시면 되고, 삼 분마다 속도와 경사가 올라갑니다. 힘드시면 언제든 손잡이 옆 빨간 단추를 누르세요. 동반 후보자분들도 같은 검사를 받습니다. 김정민 님, 김태수 님.”

“규정을 외우시네요?”

새별이 물었다. 서지혜는 새별을 봤다.

“제14조 제2항까지 외웁니다. 제3항은 작년에 바뀌어서 아직 헷갈립니다.”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서지혜는 웃지 않았다.

검사실에는 러닝머신이 세 대 나란히 있었다. 할머니가 가운데, 왼쪽에 정민, 오른쪽에 태수. 셋의 가슴에 심박 측정 패치가 붙었다. 할머니는 패치를 붙이는 서지혜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가씨, 손이 차구마잉.”

“죄송합니다.”

“아니여. 장 담그는 손은 차야 혀. 손이 뜨거우믄 장이 시어.”

서지혜가 잠깐 손을 멈췄다. 처음으로 서류가 아닌 얼굴이 할머니를 봤다.

러닝머신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 삼 분은 산책이었다. 태수는 옆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내 택시 몰 때보다 느리다.” 다음 삼 분에 경사가 올라가자 태수가 말을 멈췄다. 그다음 삼 분에 태수는 빨간 단추를 눌렀다. 팔 분 사십 초였다.

“아빠, 벌써?”

“무릎이다. 무릎이 부산 사람이라 오르막을 싫어한다.”

정민은 오래 갔다. 우주인 시험을 세 번 본 몸이었다. 십이 분이 넘자 정민의 셔츠 등판이 땀으로 짙어졌고, 십오 분이 넘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러면서도 정민은 자꾸 가운데 러닝머신을 곁눈질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보폭이 작고 일정했다. 팔을 흔들지 않고 두 손을 등 뒤로 마주 잡았는데, 그 자세가 매실밭 비탈을 오를 때와 똑같았다. 숨은 코로만 쉬었다. 경사가 올라갈 때마다 할머니 발끝이 바닥을 한 번 꾹 눌렀다가 다시 걸었다. 비탈에서 흙이 무너지지 않게 딛는 버릇이었다.

“할머니, 괜찮아요?”

정민이 헐떡이며 물었다.

“니나 괜찮냐?”

십칠 분 이십 초에 정민이 빨간 단추를 눌렀다. 러닝머신이 멈추자 정민은 손잡이를 잡고 몸을 반으로 접었다. 서지혜가 기록판에 무언가를 적었다. 할머니는 계속 걸었다. 십구 분에 서지혜가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오분례 님, 심박이 목표치에 도달했습니다. 멈추셔도 됩니다.”

“아직 덜 올라왔는디.”

“어디까지 올라가셔야 하는데요?”

“우리 밭 꼭대기 감나무까지는 이것보다 가팔러.”

이십이 분에 서지혜가 직접 정지 단추를 눌렀다. 할머니가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면서 정민의 등을 툭 쳤다. 정민은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니는 밤에 일허지 말어. 사람이 밤에 일허믄 다리가 빠져.”

새별은 할머니 주머니 속 카메라가 그 장면을 다 찍었기를 빌었다.

*

복도 자판기 앞에서 정민은 이온 음료를 두 캔 연달아 뽑았다. 첫 캔은 따자마자 반을 쏟았다. 손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새별이 옆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우주인 지망생이 여든둘한테 졌네.”

“검사 기준이 달라. 나이별로 목표 심박이 다르다고.”

“그 얘기 할머니한테 해 봐.”

“안 해.”

정민은 두 번째 캔을 땄다. 이번에는 안 쏟았다. 새별이 다리를 멈췄다.

“오빠, 그날 왜 대답 안 했어?”

“무슨 날?”

“캠핑카 아저씨가 오빠도 갈 수 있다고 한 날. 할머니가 다 봤대. 할머니가 나한테 전화로 그랬어. 정민이가 그 양반 말을 끝까지 듣더라고.”

정민은 캔을 내려다봤다. 캔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차가웠다.

“너는 모르잖아. 세 번 떨어지는 게 뭔지.”

“모르지. 근데 오빠, 그거 할머니가 부적격 받아야 되는 거잖아. 할머니가 정신이 없다는 서류가 나와야 오빠가 가는 거잖아.”

“나도 알아.”

“알면서 왜 가만있었어?”

정민은 대답 대신 빈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캔이 테두리에 맞고 튕겨 나와 복도 바닥을 굴렀다. 정민은 그걸 주우러 가지 않았다. 새별이 일어나 캔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새별은 복도 끝 비상계단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봤고, 그 틈으로 회색 정장 어깨가 보였다. 새별은 그 어깨를 알았다. 캠핑카 앞 접이식 의자에서 이틀 동안 본 어깨였다. 새별은 발소리를 죽이고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촬영 금지 구역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을 한 번 지나갔다. 새별은 녹화 단추를 눌렀다.

틈 너머에서 마이클 정과 대기실 그래프 속 사진의 남자가 마주 서 있었다. 노성만 과장은 사진보다 배가 나왔고, 사진보다 덜 웃었다.

“과장님, 서류는 다음 주면 다 들어갑니다.”

“제보 형식으로 와야 해요. 가족 쪽에서 나온 걸로.”

“가족은 지금 반쯤 열렸어요. 따님이 값을 불렀고요.”

“나는 그런 얘기 몰라요. 나는 절차만 봐요.”

마이클 정이 손을 내밀었다. 노성만이 그 손을 잡았다. 잡은 손을 두 번 흔들었다. 새별은 십사 초를 찍고 녹화를 멈췄다. 손가락이 떨려서 정지 단추를 두 번 눌러야 했다. 새별은 뒤로 세 걸음 물러난 다음에야 돌아서서 뛰었다.

*

결과 면담은 과장실에서 했다. 노성만은 큰 책상 뒤에 앉아 있었고, 서지혜가 그 옆에 서서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와 영희와 정민이 의자에 앉았다. 새별과 태수는 문 옆에 섰다. 의자가 셋뿐이었다.

“오분례 님, 축하드립니다. 신체 기능은 적합입니다. 연세에 비해 놀라우세요.”

노성만이 웃었다. 그래프 옆 사진과 같은 웃음이었다.

“다만 내부 지침상 일흔다섯 세 이상 당첨자는 인지 기능 재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따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그리고 동반 1인은 출발 마흔 날 전까지 지정해 주셔야 하고요. 지정 즉시 동반자 심사를 진행합니다.”

“필요하다고 누가 판단하는데요?”

영희가 물었다. 노성만이 영희를 봤다. 웃음은 그대로였다.

“심사위원회가 합니다. 위원장은 제가 맡고 있고요.”

“그럼 과장님이 하신다는 거네요.”

“위원회가 합니다.”

“그 지침, 번호 대 보세요.”

노성만이 서지혜를 봤다. 서지혜가 기록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내부 지침 2049년 제7호입니다. 있습니다. 재검 여부는 위원장 재량입니다.”

정직한 대답이었다. 영희의 턱이 굳었다. 새별은 엄마 얼굴이 저렇게 되는 걸 콜센터 견학 갔을 때 한 번 봤다. 사과를 열한 번 받고도 화가 안 풀린 고객이, 결국 사람을 바꿔 달라고 했을 때였다.

“재량이요. 그 재량으로 저 그래프 올리셨어요? 저 막대 하나하나가 다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잖아요. 떨어진 노인네들. 그걸 벽에 걸어 놓고 웃어요?”

“보호자분, 목소리 낮춰 주세요.”

“낮출 거면 처음부터 안 올렸어요.”

“보호자분.”

노성만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서지혜에게 손짓했다. 서지혜가 기록판에 한 줄을 적었다. 새별은 문 옆에서 그 글자를 거꾸로 읽었다. 「보호자 언성 고조, 면담 중단 요청」.

할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영희의 팔을 잡았다. 잡는 손이 셌다. 영희가 할머니를 봤다. 십 년 만에 엄마가 딸의 팔을 잡았는데, 그게 말리는 손이었다.

“가자.”

“엄마, 저 사람이—”

“알어. 가자.”

할머니는 노성만에게 고개를 까딱 숙였다. 인사인지 아닌지 애매한 각도였다.

“과장 양반, 사진보다 실물이 낫소.”

노성만이 처음으로 웃음을 놓쳤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였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새별은 십사 초를 할머니에게 보여 줬다. 뒷자리에 할머니와 새별, 앞자리에 영희. 정민과 태수는 다른 차에 탔다. 할머니는 화면을 두 번 보았다. 손이 떨려서 화면이 흔들리는 대목에서 할머니는 새별 손을 덮었다.

“이거 올리믄 몇 명이 보냐?”

“지금 구독자가 사만 명이니까, 이건 백만도 갈 수 있어.”

“백만.”

“할머니, 이거 올리면 저 사람들 끝이야.”

“끝 안 나.”

할머니가 휴대폰을 새별 무릎에 내려놓았다.

“저 양반들이 악수 한 번 혔다고 끝나믄, 세상이 이 모양이겄냐? 아직 둬. 쓸 때가 온다.”

새별은 휴대폰을 꼭 쥐었다. 앞자리에서 영희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영희의 어깨가 아까 과장실에서보다 낮았다. 할머니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영희의 어깨를 한 번 짚었다. 짚기만 하고 말은 안 했다. 영희도 돌아보지 않았다.

차가 마을 어귀를 돌자 언덕 위 대문 앞 공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얀 캠핑카가 먼저 와 있었다. 광주에서 출발한 건 분명히 이쪽이 먼저였는데, 캠핑카 지붕의 위성 안테나는 벌써 다 펴진 채 천천히 돌고 있었다. 접이식 의자에 마이클 정이 다리를 꼬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손을 흔들었다.

“다녀오셨어요? 러닝머신 이십이 분, 대단하세요.”

그 숫자를 마이클 정은 벌써 알고 있었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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