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00자)
십 년 만의 단톡방
화성 이주 추첨에 우리 할머니가 뽑혔다 · 진해솔
“사람 바꿔 달라고요. 기계 말고 사람.”
“고객님, 지금 사람입니다.”
“거짓말 마세요. 목소리가 너무 친절해요.”
이영희는 헤드셋 마이크를 손으로 막고 숨을 한 번 쉬었다. 대전 둔산동 콜센터 십이 층, 상담석 서른 개 가운데 사람이 앉은 자리는 넷이었다. 나머지 스물여섯 자리에서는 인공지능 상담원이 쉬지 않고 사과를 하고 있었고, 그 사과를 듣다 지친 사람들이 “사람”을 외치면 전화가 영희네 팀으로 넘어왔다. 영희는 이 일을 팔 년째 했다. 그동안 배운 것은 하나였다. 사람은 기계한테 화를 내다가, 막상 사람이 나오면 사람인 줄을 안 믿는다.
“고객님, 제가 지금 일부러 불친절하게 해 볼까요?”
“……해 보세요.”
“요금 연체 석 달이시고요, 감면은 안 됩니다. 끊을게요.”
“아, 사람 맞네.”
고객이 만족해서 전화를 끊었다. 옆자리 후배가 소리 없이 박수를 쳤다.
책상 위 휴대폰이 그때 울렸다. 한 번이 아니라 연달아 울렸고, 화면 맨 위에 십 년 동안 본 적 없는 방 이름이 올라왔다. 「솔티 오씨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새별이가 만들어 준 방이었다. 아버지가 이 방에 마지막으로 올린 것은 매화 사진 한 장이었고, 그 사진 아래로 십 년이 비어 있었다.
정민: 할머니 화성 이주 당첨됨. 진짜임. 확인함 정민: 75세 넘으면 동반 1명 데려가야 함. 할머니가 다 내려오래요 태수: ? 태수: ㅋㅋ 화성 ㅋㅋ 태수: 진짜가? 새별: 나 알고 있었음 정민: 니가 어떻게 알아 새별: 할머니랑 매주 통화하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ㅋ
영희는 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갔다. 나간 기록이 남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영희 님이 나갔습니다」 「이영희 님이 들어왔습니다」. 태수가 곧바로 「ㅋㅋㅋㅋ」를 쳤다. 별거 삼 년째인 남편이었다.
같은 화면 위로 은행 알림이 하나 더 떴다. 「대출 이자 납입일이 3일 경과했습니다」. 영희는 두 알림을 나란히 보다가 팀장 조퇴 신청서를 열었다. 사유 칸에는 「가족 행사」라고 적었다. 화성에 가는 것도 행사는 행사였다.
*
자율주행 렌터카는 호남고속도로에서 비가 오자 속도를 시속 80킬로미터로 줄였다. 영희는 운전석에 앉아서 할 일이 없었다. 핸들은 혼자 돌았고, 앞 유리 와이퍼도 혼자 움직였다. 손이 심심해서 영희는 핸들에 손을 얹어 보았다. 차가 즉시 말했다. 「수동 운전으로 전환할까요?」 영희는 손을 뗐다.
솔티마을 비탈길에 들어서자 대문 앞 공터에 하얀 캠핑카가 보였다. 정민이 보낸 사진 그대로였다. 차 지붕에서 위성 안테나가 천천히 돌고 있었고, 차 옆에는 접이식 의자와 커피 머신까지 나와 있었다. 영희는 차에서 내려 캠핑카를 한 바퀴 돌아봤다. 문에 붙은 회사 이름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콜센터에서 팔 년을 일하면 모르는 회사 이름은 일단 찍는다.
마당에는 사람이 벌써 다 와 있었다. 태수가 평상에 앉아 부산 어묵 상자를 뜯고 있었다. 머리가 더 빠졌고, 배가 더 나왔다. 영희를 보자 태수는 어묵 꼬치 하나를 들어 보였다.
“어, 왔나. 어묵 무라.”
“삼 년 만에 하는 말이 그거야?”
“삼 년 만에 하는 말이 어묵이믄 괜찮은 기다. 요새 어묵 비싸다.”
새별이는 장독대 위에 짐벌을 세워 놓고 마당 전체를 찍고 있었다. 스물한 살, 미대 휴학생. 새별이가 엄마를 보자 카메라를 영희 쪽으로 돌렸다.
“엄마 왔다. 구독자 여러분, 이분이 저희 엄마예요. 할머니랑 십 년 동안 말 안 한 분.”
“그거 꺼.”
“이거 라이브 아니야. 편집할 거야.”
“그래도 꺼.”
할머니는 부엌에 있었다. 영희는 부엌 문턱까지 갔다가 문턱을 넘지 않았다. 할머니도 돌아보지 않았다. 도마 위에서 칼이 무를 써는 소리만 일정하게 났다. 그 소리를 영희는 알았다. 열 살 때도, 스무 살 때도, 아버지 장례 날 새벽에도 저 소리가 났다.
*
저녁상은 마루에 차려졌다. 할머니가 끓인 시래깃국, 태수가 사 온 어묵볶음, 정민이 읍내 마트에서 사 온 돈가스, 그리고 김치 세 가지. 다섯이 둘러앉으니 상이 좁았다. 다섯이 한 상에 앉은 것은 아버지 장례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숟가락이 국그릇에 닿는 소리만 났다. 할머니가 먼저 입을 뗐는데, 영희를 보지 않고 새별이를 봤다.
“새별아, 느그 엄마한테 김치 더 묵으라고 혀라.”
“엄마, 할머니가 김치 더 먹으래.”
영희는 새별이를 봤다. “새별아, 할머니한테 됐다고 해.”
“할머니, 엄마가 됐대.”
“새별아, 느그 엄마한테 됐긴 뭐가 됐냐고 혀라. 얼굴이 반쪽이구만.”
“엄마, 할머니가 엄마 얼굴이 반쪽이래.”
“새별아, 할머니한테 나 다이어트 중이라고 해.”
새별이가 숟가락을 내려놨다. “나 통역 수수료 받는다. 한마디에 천 원.”
태수가 국을 뿜을 뻔했다. 정민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할머니는 웃지 않았지만 김치 그릇을 영희 쪽으로 밀었다. 영희는 그 그릇을 보고만 있다가, 한 젓가락 집었다. 묵은지였다. 시고, 짜고, 십 년 전 맛이 그대로였다. 영희는 그 맛에 목이 막혀 물을 마셨다.
“동반 얘기는 내일 허자.”
할머니가 말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통역하지 않았다.
*
영희의 방은 그대로였다. 장판은 누렇게 바랬고, 문설주에는 볼펜으로 그은 키 눈금이 아홉 개 남아 있었다. 맨 위 눈금 옆에 아버지 글씨로 「영희 열다섯」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불에서는 장롱 속 좀약 냄새와 햇볕에 말린 솜 냄새가 같이 났다. 영희는 그 이불을 덮고 누웠다가, 똑똑 소리에 일어났다.
태수가 문틈으로 얼굴만 들이밀고 있었다.
“니 그 얘기 할 끼가?”
“무슨 얘기?”
“논 판 돈. 내 빚 막은 거.”
“안 해.”
“장모님은 니가 그 돈으로 아파트 산 줄 안다.”
“알아.”
“내가 말할까?”
“당신이 말하면 엄마가 당신을 미워하지. 지금은 나만 미워해. 한 사람만 미움받는 게 싸.”
태수는 한참 서 있다가 문을 닫았다. 복도 마룻장이 그의 무게로 두 번 삐걱거렸다. 영희는 다시 누웠다. 키 눈금은 열다섯에서 멈춰 있었다. 그해 영희는 순천 시내 고등학교로 나가 하숙을 했고, 그 뒤로 이 집에서 키를 잰 사람은 없었다.
*
이튿날 아침 할머니는 해 뜨기 전에 매실밭으로 올라갔다. 영희는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대문 밖에서 들리는 구두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이었다. 마이클 정이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검은 서류 가방을 든 젊은 남자가 따라왔다.
“아, 따님 되시죠? 이영희 팀장님.”
“제가 팀장인 건 어떻게 아세요?”
“저희가 그런 걸 알아야 먹고살아서요. 이쪽은 저희 법률 자문 맡은 최 변호사고요. 어머님 안 계세요?”
“밭에 가셨어요.”
“그럼 팀장님이랑 먼저 얘기해도 될까요? 사실 이게 가족이 같이 정하실 일이라서.”
영희는 평상을 가리켰다. 마이클 정과 최 변호사가 앉았다. 변호사가 가방에서 얇은 판 하나를 꺼내 평상에 펼치자 공중에 글자가 떠올랐다. 「이주권 지명 승계 합의서(안)」. 맨 아래 숫자가 하나 있었다.
“30억입니다. 세금은 저희가 정리해 드리고요. 계약금 10퍼센트는 서명 당일에 들어갑니다.”
영희는 숫자를 봤다. 숫자를 보는 동안 은행 알림이 머릿속에서 다시 떴다. 납입일 3일 경과. 영희는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30억이요?”
“네.”
“지난달 「경제 투데이」 기사 봤어요. 2차 선단 때 이주권 뒷거래가 50억까지 갔다던데요.”
마이클 정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변호사는 고개를 숙이고 판을 만지작거렸다.
“그건 젊은 당첨자 얘기예요, 팀장님. 어머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부적격 처리가 쉬워요. 쉬우면 값이 내려가요. 그게 시장이에요.”
“쉬우면 그쪽 비용이 덜 드는 거잖아요. 덜 드는 만큼 저희 몫이 올라가야죠.”
“와, 팀장님 협상 잘하시네요.”
“콜센터 팀장이에요. 매일 깎아 달라는 사람이랑 싸워요. 올려 달라는 건 처음이지만요.”
“40까진 볼 수 있어요. 그 이상은 고객분 확인이 필요하고요.”
“그럼 확인하세요. 45.”
“팀장님—”
호미가 평상에 떨어졌다. 떨어진 게 아니라 내리꽂혔다. 쇠 날이 평상 나무에 박혀 부르르 떨었고, 공중에 뜬 합의서 글자가 한 번 흔들렸다. 할머니가 평상 옆에 서 있었다. 바짓단에 흙이 묻었고, 머릿수건 아래로 땀이 흘렀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십오라.”
할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엄마, 그게 아니라—”
“니가 내 값을 매기냐?”
영희는 일어섰다. 일어서니 할머니가 작았다. 십 년 전에는 이렇게 작지 않았다.
“엄마가 몰라서 그래. 저 사람들, 엄마 안 보내려고 서류 꾸밀 거야. 어차피 꾸밀 거면 우리가 받을 건 받아야지.”
“우리?”
“그래, 우리. 엄마는 거기 가서 몇 년이나 살 것 같아?”
할머니 얼굴이 굳었다. 마이클 정이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변호사는 판을 접었다.
“니는 십 년 전에도 그랬어.”
“무슨 소리야?”
“느그 아부지 묻고 이레 만에, 니가 논 팔자고 혔어. 나는 팔았어. 니가 그 돈 들고 가서 십 년 동안 전화 한 통을 안 했어. 그 돈이 어디 갔는가 나는 몰라. 묻도 안 혔어.”
영희의 입이 열렸다.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영희는 알았다. 평상 끝에서 어묵 상자를 정리하던 태수의 손이 멈췄다. 영희는 태수를 보지 않았다. 보면 말이 나올 것 같았다. 말이 나오면 남편이 부산에서 택시 회사를 차렸다가 자율주행 차가 들어와 망한 이야기, 그 빚을 논 판 돈으로 막은 이야기를 이 마당에서, 이 브로커 앞에서 다 해야 했다.
영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침묵을 다른 쪽으로 읽었다.
“동반은 니 빼고 정할란다.”
할머니가 평상에 박힌 호미를 뽑았다. 나무에 패인 자국이 하얗게 남았다. 할머니는 마이클 정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라고 양반. 나 사십오억짜리 아니여.”
“네, 그럼 얼마짜리세요?”
마이클 정이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이클 정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일어나 영희에게 명함을 건넸다. 영희는 받았다. 받는 걸 새별이의 카메라가 찍고 있었다.
“팀장님, 마음 바뀌시면요.”
마이클 정과 변호사가 대문을 나가자 정민이 마루 끝에서 내려왔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모양이었다.
“엄마, 진짜 45억 부른 거야?”
“너는 어제 아무 말도 안 했다며.”
정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새별이가 카메라를 내렸다. 태수는 어묵 상자를 들고 일어나 괜히 냉장고 쪽으로 갔다.
그때 다섯 개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할머니 휴대폰은 부엌에서 울렸다. 국가우주이주청 호남 심사센터에서 온 알림이었다. 「이주 당첨자 오분례 님 신체검사 일정 안내: 3월 22일 오전 열 시, 광주. 동반 후보자도 함께 검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흘 뒤였다. 영희는 명함을 지갑 안쪽에 넣었다. 버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