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41자)

정상 작동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철책 밑 구멍은 귀순자가 떠나고 사흘 만에 메워졌다.

사 년 동안 다음 분기로 밀리던 예산이 사흘 만에 나왔다. 대대 공병 트럭이 아침 일찍 올라와 골짜기 바닥까지 모래주머니와 시멘트 포대를 날랐고, 공병 다섯이 한나절 동안 패인 자리에 콘크리트를 부었다. 한서윤 중위는 그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보았다. 굳기 전의 콘크리트는 회색 죽처럼 김이 났다. 거기에 고라니 털 몇 가닥이 같이 묻혔다.

그날 밤 감지기는 그 구간에서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고라니 부소초장은 다음 날 새벽 굳은 콘크리트 위에 코를 대고 한참 냄새를 맡더니, 칠십 미터 옆 다른 골짜기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쪽 구간에서 세 번 울렸다. 김덕배는 그 보고를 듣고 하늘을 보며 크게 혼잣말을 했다. “저노무 짐승이 감찰보다 빠르다.”

무사고 날짜는 계속 올라갔다. 귀순 유도는 사고가 아니었다. 현수막의 숫자는 「63」에서 「70」을 지나 12월 20일 아침 「77」이 되었고, 김덕배는 「7」 스티커가 모자라서 대대 행정반까지 전화를 걸었다.

같은 날 아침, 대대에서 한서윤을 불렀다.

지프에 오르기 전 그녀는 식당에 들렀다. 아침 배식이 끝나 가는 시간이었다. 주원은 식판 앞에 앉아 있었는데, 식판의 밥이 절반도 줄지 않았다. 보름 동안 그랬다. 김덕배가 「박주원 밥 남김」을 식량 상자 뚜껑에 적어 놓고 매일 아침 그 줄에 금을 하나씩 그었다. 금은 열네 개였다.

최강수는 주원의 맞은편이 아니라 두 자리 건너에 앉아 있었다. 보름 동안 둘은 근무 교대 때 말고는 말을 섞지 않았다. 내무반 라면 서열은 그대로였다. 주원은 물을 올렸고 최강수는 계란을 깼다. 국물 첫 숟갈은 여전히 최강수 몫이었는데, 최강수는 그 첫 숟갈을 뜨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한서윤이 식당 문간에서 최 병장을 불렀다. 최강수가 일어나 왔다.

“대대 가십니까?”

“네.”

“무슨 일로 가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모르겠어요. 가 봐야 알아요.” 한서윤이 주원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쟤 보름째 밥 남기는 거, 최 병장 때문이에요?”

“제 때문이면 좋겠습니다.” 최강수가 말했다. “제 때문이면 제가 풀면 되니까요.”

“그럼 누구 때문인데요?”

최강수는 주원의 등을 보았다. 주원은 식판 위 밥을 숟가락으로 반으로 갈라 놓고 있었다. 먹으려는 것도 버리려는 것도 아닌 손이었다.

“두 시 십일 분 때문입니다.” 최강수가 말했다. “저 녀석은 그 숫자를 삼키지를 못합니다, 소초장님. 저는 삼켰는데.”

전역 20일이었다. 최강수는 그날 아침 라면 계산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대대 본부는 산 아래 분지에 있었다. 지프로 산길을 내려가는 사십 분 동안 한서윤은 무릎에 올려 둔 서류 봉투를 두 손으로 눌렀다. 봉투 안에는 종이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지난 10월 대대장 이름으로 내려온 업무 메일을 출력한 종이였다.

제목은 「동계 오경보 관리 철저」였다. 본문은 짧았다. 소초별 오경보 건수를 주 단위로 집계함. 건수 상위 소초의 소초장은 대대장 면담. 오경보 다발은 근무 기강 해이로 간주함.

한서윤은 그 메일을 소초원들에게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오경보가 열 번 넘게 울리던 밤마다, 최강수가 무언가를 하는 동안 지휘통제실 화면에서 눈을 돌렸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소초장으로 부임한 첫 주에 알았다. 전임 소초장이 인수인계 마지막 날 한 말이 있었다. 3번 초소 구간은 애들이 알아서 해. 모르는 척하는 것도 소초장 일이야.

그 말을 그녀는 아홉 달 동안 지켰다.

*

대대장실은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방한복을 입은 채 들어선 한서윤의 이마에 금세 땀이 맺혔다. 창가에 화분 세 개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진급 심사 일정표가 붙어 있었다. 1월 둘째 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오대훈은 책상 뒤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손수 커피를 탔다. 설탕을 넣느냐고 묻지 않고 두 개를 넣었다.

“한 중위. 좋은 소식부터. 까치재 귀순 유도, 군단에서 표창 상신 올라갔어요. 한 중위 이름이 맨 위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른 소식.” 오대훈이 책상 위 결재판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 “정보부대 그 소령이 보고서를 따로 올렸어요. 귀순자 진술 시각하고 우리 첫 보고 시각이 사십 분 어긋난다고. 그래서 군단 감찰이 잡혔어요. 1월 5일.”

한서윤은 결재판을 보았다. 군단 감찰 통보 공문이었다. 날짜와 소초 이름과, 「경계 작전 경위 확인」이라는 여섯 글자.

“감찰관이 오면 소초원 전원한테 진술을 받을 거예요.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받아 두면 좋겠어요. 같은 내용으로.”

오대훈이 서랍에서 종이 묶음을 꺼냈다. 열여섯 장이었다. 맨 위 장의 첫 줄이 그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은 2026년 12월 6일 02시 11분, 3번 초소 담당 구간 감지기가 정상 작동하여 울린 경보를 근무 중 확인하였으며……」

사건을 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보고 들은 것을 적어 내는 종이를 진술서라고 했다. 그런데 이 종이에는 본 것이 이미 다 적혀 있었다. 맨 아래 이름과 서명 자리만 비어 있었다.

“대대장님. 그날 밤 3번 초소 근무자는 둘이었습니다. 나머지 열네 명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에 감지기가 울렸는지 안 울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요.” 오대훈이 웃었다. “모르니까 쓰기 쉽죠. 자다가 비상 소리에 깼고, 깨 보니 경보가 울렸다고 하더라. 그거면 돼요.”

“모르는 걸 안다고 쓰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같은 내용으로 쓰게 하라는 거예요. 열여섯 명 진술이 다 다르면 감찰관은 어디서부터 파겠어요? 제일 약한 데서부터 파요. 그 질문 많은 이병부터.”

한서윤은 서류 봉투를 열었다. 출력한 메일을 꺼내 결재판 옆에 나란히 놓았다. 오대훈의 이름과 10월 날짜가 맨 위에 찍혀 있었다.

“대대장님. 감찰관이 오면 저는 이것도 같이 드리겠습니다.”

오대훈은 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그는 종이를 손가락으로 끌어당겨 천천히 읽었다. 자기가 쓴 문장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오경보 다발은 근무 기강 해이로 간주함.” 그가 소리 내어 읽었다. “좋은 문장이네. 내가 썼지만.”

“이 메일 때문에 애들이 감지기를 재웠습니다. 오경보 건수를 줄이려고요. 대대장님이 건수를 세셨으니까요.”

“그래요?” 오대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한 중위는 언제부터 알았어요? 애들이 감지기 재우는 거.”

한서윤의 입이 닫혔다.

“이 메일을 감찰관한테 내밀면, 감찰관은 나한테 묻겠죠. 왜 이런 메일을 썼느냐고. 나는 대답할 거예요. 오경보를 줄이라고 했지, 감지기를 끄라고 한 적은 없다고. 그러면 감찰관은 한 중위한테 물을 거예요. 소초장은 그걸 알았느냐고.” 오대훈이 메일을 그녀 쪽으로 도로 밀었다. “한 중위는 뭐라고 할 거예요? 몰랐다고 할 거예요?”

창가 화분의 잎 하나가 난방 바람에 흔들렸다. 한서윤은 첫 주의 인수인계를 생각했다. 모르는 척하는 것도 소초장 일이야. 그 말을 한 전임 소초장은 지금 다른 사단 참모부에 있었다. 그도 그 말을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았을 터였다.

“알았습니다.” 한서윤이 말했다.

“그렇지.”

“부임 첫 주부터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메일을 애들한테 안 보여 줬습니다. 보여 주면 애들이 대대장님을 미워할 테니까요.” 한서윤이 오대훈을 똑바로 보았다. 존댓말이 깍듯해졌다. “제가 대대장님을 지켜 드렸습니다, 대대장님.”

오대훈의 웃음이 처음으로 얼굴에서 내려왔다. 아주 짧게였다. 다시 올라왔을 때는 아까보다 조금 얇았다.

“그럼 이번에도 지켜 줘요.” 그가 진술서 묶음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 “열여섯 장. 12월 31일까지. 한 중위가 지키는 건 나만이 아니에요. 열여섯 명의 휴가, 최 병장의 깨끗한 전역, 그 이병의 앞날. 이 메일을 꺼내면 그게 다 같이 꺼내져요. 나 하나 넘어지자고 열여섯 명을 넘어뜨릴 거예요?”

한서윤은 진술서와 메일을 나란히 보았다. 둘 다 같은 대대장 이름에서 나온 종이였다.

그녀는 메일을 접어 봉투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진술서 열여섯 장을 그 봉투 위에 얹었다.

“가져가겠습니다.”

“고마워요, 한 중위.”

“가져가기만 하겠습니다.” 한서윤이 일어섰다. “서명은 각자 하는 거니까요.”

*

대대 작전과 앞 복도에서 작전과장이 그녀를 붙잡았다. 오경보 열네 건 때문에 그녀에게 전화로 꾸지람을 하던 소령이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주머니에서 스티커 한 장을 꺼냈다.

“이거 김 중사가 아침에 전화로 그렇게 찾던 거. 「7」. 행정반에 하나 남은 거 내가 챙겼어.”

“……감사합니다.”

“까치재가 백 일 찍으면, 나도 대대장님한테 덜 혼나.” 작전과장이 머쓱하게 웃었다. “다들 그 숫자 하나 보고 사는 거지 뭐.”

“과장님은 그 숫자 말고 뭘 보고 사십니까?”

작전과장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한참 만에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투광등 아래 송곳니 긴 고라니 한 마리가 카메라를 빤히 보는 사진이었다. 까치재 3번 초소 화면을 누군가 찍어 대대 단체 대화방에 올린 모양이었다.

“요즘은 이거. 우리 딸이 이 고라니 팬이야. 이름도 지어 줬어. 「대위님」.”

한서윤은 그 고라니가 소초에서는 부소초장, 그러니까 중사 대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진급이 빨랐다.

한서윤은 「7」 스티커를 진술서 봉투 위에 붙여 가지고 나왔다.

*

산길은 해가 지면 다시 얼었다. 지프가 소초 마당에 닿은 것은 오후 다섯 시, 철책을 따라 투광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기온은 영하 18도였다. 하늘이 보랏빛에서 남빛으로 넘어가는 동안 철망이 우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소초 입구 위병소에 주원이 서 있었다. 방한모 위로 눈썹에 서리가 앉아 있었고, 총을 쥔 손에는 회색 털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손가락 끝이 다 들어가지 않아 장갑 끝이 조금 빈 채로 달랑거렸다. 오른쪽 엄지에 갈색 실 자국이 보였다.

한서윤은 지프에서 내려 봉투를 품에 안았다. 주원이 경례했다. 그녀는 답례를 하고 지나치려다가 멈췄다.

“박주원 이병. 그 장갑, 근무 중에 끼면 안 돼요. 보급품 아니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소초장님.”

“그럼 왜 껴요?”

“손이 기억하라고 낍니다.” 주원이 말했다. 시선은 정면에 둔 채였다. “소초장님. 대대에서 뭘 받아 오셨습니까?”

한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품 안의 봉투가 갑자기 무거웠다. 그녀는 위병소 앞에 서서, 그 질문 많은 이병의 얼굴을 처음 전입하던 날처럼 오래 보았다.

“들어가서 말해요. 열여섯 명 다 모이면.”

“제 것도 있습니까?”

한서윤이 봉투를 고쳐 안았다. 「7」 스티커가 그녀의 방한복 소매에 닿아 바스락거렸다.

“박주원 이병 것이 맨 위예요.”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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