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71자)
엄지를 두 번 기운 장갑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고라니 형은 의자에서 다 일어서지 못했다.
식당 문이 벌컥 열리고 무서운 형이 들어왔다. 철책 밑에서 진혁에게 총을 겨누던 그 병장이었다. 병장은 탁자를 돌아와 고라니 형의 팔을 잡았다. 세게 잡지는 않았는데, 고라니 형은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박주원 이병이 감기 기운이 있어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저 감기 아닙니다, 분대장님. 대대장님, 그 시각은……”
“기침해.” 병장이 낮게 말했다.
고라니 형은 기침하지 않았다. 병장은 고라니 형을 끌고 식당 문을 나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고라니 형이 진혁을 돌아보았다. 진혁은 그 얼굴을 알았다. 북에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하려던 말을 목구멍에 도로 밀어 넣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탁자 맞은편에서 대대장이 부드럽게 말했다.
“소령. 두 시 십일 분은 3번 초소 담당 구간의 경보 시각이에요. 귀순자는 달을 보고 시각을 말했고요. 달 보고 말한 시각하고 기계가 찍은 시각하고, 어느 쪽이 정확하겠어요?”
“기계가 찍었다면 기계 쪽이겠죠.” 소령이 수첩을 덮었다. “찍었다면요.”
*
그 밤 진혁은 의무실 침대에서 잠들지 못했다.
천장 형광등은 꺼져 있었고, 난로의 붉은 빛만 벽에 어른거렸다. 난로 옆 의자에 펼쳐 둔 장갑에서 털실 마르는 냄새가 났다. 젖은 양털이 마를 때 나는, 조금 비리고 조금 따뜻한 냄새였다. 집에서 겨울마다 맡던 냄새였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 장갑을 널어 두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아 다음 장갑을 떴다.
장갑은 두 켤레였다. 형 진호 것 하나, 진혁 것 하나. 같은 회색 실로 같은 날 떴다. 진혁은 무엇이든 엄지로 먼저 쥐었고, 그래서 진혁 것은 엄지가 먼저 닳았다. 어머니가 처음 기울 때는 검은 실이 있었다. 두 번째 기울 때는 검은 실이 없어서 갈색 실로 기웠다. 그 가을, 어머니는 기침을 오래 했고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형은 진혁보다 다섯 살 많았다. 진혁이 군에 끌려간 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형의 부대가 있었다. 형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었다. 말을 아끼고 윗사람 눈에 들고, 동생 몫의 배급이 빠지면 자기 몫을 덜어 주되 왜 빠졌는지는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진혁은 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말하면 형이 막을 것 같았다. 아니면 형이 같이 오겠다고 할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진혁은 끝내 정하지 못했다.
넘어오던 밤은 손으로 기억났다. 얼어서 감각이 없는 손이 눈을 헤치고, 돌을 짚고, 앞서가는 고라니의 엉덩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허공을 더듬던 것. 발밑이 어딘지 몰라 한 걸음마다 숨을 멈추던 것. 그리고 남쪽 철망 밑 구덩이에 몸을 밀어 넣었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던 것.
진혁은 그 고요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그 한 시간 동안, 진혁은 철망 밑에 엎드려 장갑 낀 손으로 철사 한 가닥을 쥐고 있었다. 놓으면 다시 북으로 미끄러질 것 같았다.
난로 너머 문틈으로 복도 불빛이 새어 들었다. 그 불빛 속에서 누가 서성이고 있었다. 발소리로 알았다. 고라니 형이었다. 무서운 형이 내무반에 묶어 둔다던 그 고라니 형이, 의무실 문 앞을 세 번 지나갔다가 네 번째에 멈췄다.
“진혁 씨. 자요?”
“안 잡네다.”
“장갑, 다 말랐어요?”
“거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라니 형은 문 너머에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미안해요.”
“뭐가 말입네까?”
대답이 오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진혁은 그 미안하다는 말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그 밤 내내 생각했다. 생각하다가, 철망 밑에서 기다린 그 한 시간과 그 말이 같은 자리에 있다는 걸 아침이 되어서야 알았다.
*
눈은 아침 일곱 시에 그쳤다. 하늘이 쨍하게 파래졌고, 투광등이 꺼진 철책이 산등성이를 따라 반짝였다. 헬기가 열 시에 온다고 했다.
아침밥은 귤 통조림을 숨겨 두었던 형이 가져왔다. 장태오라는 이름이었다. 쟁반에 흰죽과 김치와, 어디서 또 났는지 모를 귤 통조림 하나가 더 올라 있었다.
“이건 진짜 마지막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없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엇입네까?”
장태오가 쟁반을 든 채 굳었다.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남쪽에서 십이월 말에 케이크 먹고 선물 주고받는 날입니다. 원래는 외국 종교 명절인데, 여기선 그냥 다 같이 노는 날입니다.”
“군대도 놉네까?”
“군대는 라면 세 개 먹는 날입니다. 우리 분대장님 계산으로는.”
진혁은 죽을 먹으며 장태오가 낮게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었다. 가락이 이상하게 귀에 붙었다. 사랑이 어쩌고 배터리가 어쩌고 하는 노래였다. 진혁이 물었다.
“그게 고라니 쫓는 노래입네까?”
“아뇨. 이건 고라니가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작년에 두 마리가 끝까지 듣고 갔대요.” 장태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쫓는 노래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진혁은 웃었다. 남쪽에 와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고 나서 놀라서 입을 막았다. 장태오는 아무것도 못 본 척 귤 통조림 뚜껑을 따 주었다.
곧이어 소초장이라는 여자 중위가 옷 한 벌을 들고 왔다. 남쪽 군인들이 입는 두꺼운 방한복이었는데 가슴의 이름표 자리만 실밥이 뜯겨 있었다. 소초장은 진혁이 그 옷을 입는 동안 창밖을 보고 서 있었다. 다 입자 지퍼를 턱밑까지 올려 주었다. 손이 차가웠다.
“헬기 안은 추워요. 거기 가면 좋은 옷 줄 거예요. 그때까지만.”
“이름표가 없습네다.”
“거기 가서 새로 달아요.” 소초장이 말했다. “여기 이름 말고, 진혁 씨 이름으로.”
여덟 시에 소령이 혼자 의무실에 들어왔다. 녹음기는 검은 것 하나뿐이었다. 그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수첩을 폈다.
“리진혁 씨. 달이 산 뒤로 넘어간 다음, 철망 밑까지 기어 오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모르겠습네다. 오래.”
“숫자로 말해 주십시오. 십 분입니까, 삼십 분입니까?”
“숫자로 하면 어찌 됩네까?”
소령이 볼펜을 멈췄다.
“진혁 씨가 철망 밑에 들어간 시각을 알면, 남쪽 군대가 진혁 씨를 언제 알아챘어야 했는지 압니다.”
“그럼 그 형들 어찌 됩네까? 고라니 형하고 무서운 형.”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일입네까?”
소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혁은 그 침묵이 북에서 들은 침묵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무서운 사람들은 남쪽에도 북쪽에도 있었다. 다만 남쪽의 무서운 사람들은 자기가 무섭다는 걸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령 동지.”
“동지 말고 소령님이라고 하십시오.”
“소령님. 내가 숫자를 말하면 그 형들이 벌을 받습네까?”
“진혁 씨가 말하는 숫자가 사실이면, 사실대로 처리됩니다.”
“그럼 말 안 하겠습네다.”
소령이 처음으로 진혁을 똑바로 보았다. 정보만 세던 눈에 다른 것이 잠깐 지나갔다. 귀찮음이었는지 놀람이었는지 진혁은 알 수 없었다.
“진혁 씨. 남쪽에서 처음 하는 거짓말은 오래 따라다닙니다. 저는 그걸 많이 봤습니다.” 소령이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진혁 씨가 말을 안 해도, 숫자는 다른 데서 나옵니다. 달은 진혁 씨가 말 안 해도 집니다.”
*
헬기는 열 시 이 분에 왔다.
소초 아래 공터에 내려앉은 헬기가 눈가루를 하늘로 날렸다. 프로펠러 바람에 숨이 막혔고, 소초원들이 일렬로 서서 그 눈보라를 맞았다. 무서운 형은 맨 앞에 서 있었다. 그 옆에 냄비를 들고 왔던 형과 귤 통조림을 숨겨 두었던 형이 있었다. 현수막 숫자를 닦던 아저씨는 진혁에게 전투식량 비빔밥 봉지 두 개를 비닐에 싸서 안겨 주었다. “가는 길에 무라. 거 가면 물 줄 기다.” 아저씨는 진혁이 고맙다고 말하기 전에 돌아섰다.
고라니 형은 줄 맨 끝에 서 있었다.
진혁은 소령에게 이끌려 헬기 쪽으로 가다가 멈췄다. 소령이 팔을 당겼다. 진혁은 그 팔을 빼냈다. 빼내는 데 힘이 많이 들지 않았다. 소령도 아주 세게 잡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진혁은 줄 맨 끝까지 걸어갔다. 눈이 무릎까지 빠졌다. 고라니 형 앞에 서서, 손에서 장갑을 벗었다. 오른쪽부터, 그다음 왼쪽. 엄지를 두 번 기운 쪽이 오른쪽이었다.
“이거.”
“아니에요, 진혁 씨. 그건 어머니가……”
“그래서 주는 겁네다.” 진혁은 장갑을 고라니 형 가슴에 밀었다. “어머니가 이거 낀 손으로 남쪽에서 제일 먼저 손잡은 사람한테 주라 했습네다.”
거짓말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진혁이 남쪽으로 올 줄 몰랐다. 진혁이 남쪽에서 처음 한 거짓말이었다. 소령의 말대로 이 거짓말은 오래 따라다닐 것 같았다. 진혁은 그래도 좋았다.
고라니 형이 장갑을 받았다. 받아서 바로 꼈다. 손이 진혁보다 커서 손가락 끝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갈색 실로 기운 엄지 자리가 고라니 형의 엄지 마디에 걸렸다.
“작네요.” 고라니 형이 말했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늘어납네다. 양털이라.”
진혁은 돌아섰다. 헬기 계단을 오르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고라니 형이 회색 장갑 낀 손을 들고 있었다. 흔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들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는 대대장이 서 있었다. 그 옆에 사진기를 든 병사가 하나 있었다. 대대장이 진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진혁 씨. 잘 가요.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만. 우리 대대가 진혁 씨를 지킨 기록이니까.”
진혁은 그 손을 보았다. 장갑을 낀 손이었다. 진혁의 손은 맨손이었다. 사진기를 든 병사가 렌즈를 들이댔다.
“모자 좀 벗어 주시겠어요? 얼굴이 나와야 해서.”
“안 벗겠습네다.”
“그래도 기록인데……”
“북에 형이 있습네다.” 진혁이 말했다. “내 얼굴이 남쪽 사진에 나오면 형이 어찌 되는지 압네까?”
대대장의 손이 공중에 멈췄다. 소령이 진혁과 대대장 사이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진혁 편에 선 것처럼 보였는데, 실은 그저 시간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대대장님. 사진은 저희가 판단합니다. 신병은 지금부터 정보부대 소관입니다.”
진혁은 대대장의 손을 잡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헬기 문이 닫히기 직전, 프로펠러 소리가 잦아든 틈에 진혁은 계단 아래의 말소리를 들었다. 소령이 대대장 쪽으로 돌아서서 말하고 있었다.
“대대장님. 달이 진 시각, 기상대 자료로 확인했습니다. 그날 밤 한 시 삼십 분 전후입니다.” 소령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대대 첫 보고의 두 시 십일 분과, 귀순자 진술이 사십 분 어긋납니다. 보고서대로라면 감지기는 귀순자가 철책 밑에 들어가고 사십 분이 지나서야 울렸습니다. 귀순자는 한 번도 안 울렸다고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