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85자)
식당의 자리싸움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설상차는 한 대가 아니었다.
윤병욱 소령이 지휘통제실 쪽으로 걸음을 떼기도 전에 같은 비탈 아래에서 두 번째 엔진 소리가 올라왔다. 두 번째 설상차는 첫 번째보다 작고 색이 하얬다. 문이 열리자 검은 패딩을 입은 여자 하나가 내렸다. 마흔 안팎으로 보였고, 한 손에는 보온병을, 다른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그 휴대전화가 이 산마루에서 터지는지 몇 번 흔들어 보다가 포기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국가정보원 서민재 과장입니다.” 그녀가 김덕배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라 밖 정보와 대북 정보를 다루는 그 기관의 이름을 김덕배는 뉴스에서만 들어 보았다. “귀순자 합동 신문, 저희가 같이 들어갑니다. 아니, 저희가 먼저 들어갑니다.”
윤병욱이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먼저라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이제 들으셨네요.”
최강수는 지휘통제실 창가에서 둘을 내려다보았다. 귀순자를 군과 국정원이 함께 묻는 것을 합동 신문이라 불렀다. 합동이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사이좋게 하는 줄 알았다. 마당 한가운데 눈밭에서 소령과 과장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고, 둘 사이에 김덕배가 삽을 든 채 끼어 있었다. 김덕배의 얼굴은 고라니 두 마리 사이에 낀 사람처럼 보였다.
전역 34일 오후였다. 라면 서른여덟 개 중 하나가 오늘도 날아가고 있었다.
*
자리싸움은 식당에서 났다.
긴 탁자 하나에 진혁이 앉을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맞은편에 의자가 셋 있었다. 윤병욱이 가운데 의자를 당겨 앉자 서민재가 그 왼쪽 의자를 당겨 가운데로 옮겨 놓고 앉았다. 의자 두 개가 가운데에 나란히 붙었다. 둘 다 물러서지 않았다. 의자 다리가 식당 바닥을 긁는 소리가 두 번, 세 번 났다.
“과장님. 군 경계 구역에서 신병을 확보했습니다. 경로 확인은 군 소관입니다.”
“소령님. 저 사람이 넘어오기 전에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가 경로보다 급합니다. 그건 저희 소관이고요.”
“경로를 모르면 다음 귀순자가 어디로 올지 모릅니다.”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면 다음에 누가 그 사람을 찾으러 올지 모르죠.”
녹음기 두 대가 탁자에 올라왔다. 하나는 검은색, 하나는 은색이었다. 윤병욱이 검은 녹음기를 진혁의 의자 쪽으로 밀자, 서민재가 은색 녹음기를 그보다 한 뼘 더 밀었다. 윤병욱이 검은 녹음기를 다시 반 뼘 밀었다.
배식대 뒤에서 고민석이 장태오에게 속삭였다. “저거 뭐 하는 거야?”
“모르겠어. 근데 우리 라면 서열보다 심해.”
오대훈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녹음기 두 대는 진혁의 의자 앞 탁자 끝에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오대훈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양손을 들었다. 웃는 얼굴이었다.
“자, 자. 두 분 다 먼 길 오셨는데 따뜻한 것부터 드시죠. 한 중위, 보리차.”
“대대장님.” 윤병욱이 고개를 들었다. “소초 감지기 기록, 신문 전에 넘겨 주십시오. 원본으로.”
오대훈의 웃는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최강수는 배식대 옆에서 그것을 보았다. 아주 조금이었는데, 최강수에게는 크게 보였다.
“기록은 군단 보고 절차대로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길이 막혀서……”
“정리 말고 원본입니다. 출력 한 장이면 됩니다.”
“소령.” 오대훈이 존댓말을 내려놓았다. “여기는 내 대대야. 내 소초고. 내 소초원들이 밤새 눈 속에서 저 사람을 건졌어. 그 사람들 쉬게 하고, 귀순자 따뜻하게 먹이고, 그다음에 서류야. 순서가 있어.”
“순서는 저도 있습니다.” 윤병욱이 서류 가방을 탁자에 올렸다. “기록이 먼저 오고, 진술이 그다음에 와야 진술이 기록에 맞춰지지 않습니다.”
식당이 조용해졌다. 보리차 끓는 소리가 났다. 한서윤이 보리차 주전자를 든 채 배식대 앞에서 멈췄다. 김덕배가 「전투식량 재고 열넷」이라고 적힌 상자 뚜껑을 등 뒤로 감췄다. 소령과 과장이 설상차를 타고 왔으니 그 둘도 밥을 먹을 터였고, 그 둘을 태우고 온 운전병 둘도 밥을 먹을 터였다. 김덕배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열넷에서 넷을 빼고 있었다.
서민재가 보온병 뚜껑을 열어 자기 컵에 커피를 따랐다. 그리고 그 컵을 들고 말했다.
“두 분 다 좋은데요. 정작 귀순자분은 어디 계세요?”
*
귀순자를 데리러 간다는 핑계로 오대훈은 최강수를 식당 뒤 보일러실 앞까지 데리고 나왔다.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에 말소리가 묻히는 자리였다. 바닥에는 기름 냄새 밴 걸레가 깔려 있었고, 벽에 걸린 온도계는 영하 9도를 가리켰다. 실내인데도 그랬다.
“최 병장. 저 소령, 처음 봐?”
“처음 봅니다.”
“나는 두 번째야. 작년에 다른 사단에서 귀순자 한 명 들어왔을 때 저 사람이 왔어. 그 사단 대대장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오대훈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도 몰라.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대대장님이 원하시는 게 뭡니까?”
“그 이병. 신문 자리 근처에도 오지 않게 해. 오늘 밤 근무 빼 주고, 내무반에 재워. 아프다고 해.”
“박주원은 안 아픕니다.”
“그럼 아프게 해.” 오대훈이 웃었다.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농담이야. 감기 기운 있다고 하라고. 자네가 분대장이잖아.”
최강수는 보일러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더운 바람을 맞으며 섰다. 한쪽 뺨은 뜨겁고 다른 쪽 뺨은 시렸다.
“대대장님. 아까 저한테 귀순자가 살았다고, 아무도 안 다쳤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지.”
“그럼 박주원도 안 다쳐야 합니다. 감기도 안 걸리고, 징계도 안 받고, 아무 데도 안 불려 가야 합니다. 그 약속 해 주시면 오늘 하루 제가 박주원을 내무반에 묶어 두겠습니다.”
오대훈이 최강수를 오래 보았다. 그 눈이 처음으로 최강수를 계급장이 아니라 사람으로 재는 것 같았다.
“병장이 대대장한테 약속을 받아 내네.” 그가 장갑을 꼈다. “좋아. 약속하지. 그 이병이 입만 다물면.”
*
진혁은 의무실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안 갑네다.”
“리진혁 씨. 식당에서 몇 가지만 물어보려는 겁니다.” 윤병욱이 의무실 문간에 서서 말했다. 문어체 같은 말투였다. “협조해 주시면 신병 인수가 빨라집니다.”
“고라니 형 옆에서만 말하겠습네다.”
“고라니……?”
진혁이 턱으로 주원을 가리켰다. 주원은 난로 옆에서 진혁의 장갑을 마지막으로 뒤집던 참이었다. 의무실 안의 모든 눈이 주원에게 왔다. 주원은 장갑을 든 채 일어섰다.
“이병 박주원입니다. 제가…… 고라니 형입니다.”
“안 됩니다.” 윤병욱이 바로 말했다. “합동 신문에 소초 병사가 동석하는 건 절차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날 밤 현장 근무자입니다.”
“현장 근무자니까 더 좋죠.” 서민재가 윤병욱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저분이 맨 처음 손을 잡아 준 사람이잖아요. 무서운 사람 셋이 녹음기 들고 앉는 것보다 낫습니다.”
“과장님, 그러면 진술이 오염됩니다.”
“소령님, 그러면 진술이 안 나옵니다.”
둘이 또 마주 섰다. 이번에는 오대훈이 끼어들지 않았다. 문간 기둥에 기대 주원을 보고 있었다. 주원이 진혁 옆에 앉아 무슨 말을 들을지, 들은 말을 어떻게 옮길지, 오대훈이 그것을 재는 눈이었다. 최강수는 그 눈을 보고 주원의 소매를 붙잡았다.
“박주원. 너 거기 앉으면 입 다물고 있어.”
“분대장님, 저는 원래……”
“입 다물고. 앉아만 있어. 그거면 돼.”
결국 정한 것은 진혁이었다. 진혁은 침대에서 내려와, 아직 덜 마른 장갑을 주원 손에서 받아 끼고, 의무실 문을 지나 식당으로 걸어갔다. 주원의 소매를 붙잡은 채였다. 최강수의 손이 놓은 그 소매였다.
*
식당 의자에 앉자 진혁은 녹음기 두 대를 오래 보았다.
검은 것과 은색 것. 둘 다 작은 빨간 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북에서 저런 불이 깜박이는 기계 앞에 앉으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진혁은 알았다. 손바닥 안쪽이 장갑 속에서 젖었다. 기운 엄지 자리가 손가락 마디에 닿아 까슬거렸다. 어머니가 두 번째로 기울 때 갈색 실밖에 없다며 미안해하던 자리였다.
옆에 앉은 고라니 형이 탁자 밑에서 무릎을 아주 조금 진혁 쪽으로 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리진혁 씨.” 맞은편의 소령이 말했다. 여자 과장은 그 옆에서 컵을 감싸 쥐고 있었다. “철책을 넘은 시각을 기억합니까?”
“시계가 없었습네다.”
“그럼 무엇을 보고 시각을 압니까?”
진혁은 생각했다. 그 밤을 떠올리면 먼저 오는 건 시각이 아니라 추위였다. 그다음에 냄새, 철망에 얼어붙은 쇠 냄새였다.
“달이 산 뒤로 넘어갈 때 기어 나왔습네다. 달 있으면 보이니까, 달 넘어가기를 기다렸습네다.”
소령이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 과장은 그 수첩을 곁눈질했다. 문간에 선 대대장은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그리고 철망 밑으로 들어갔습니까?”
“고라니가 먼저 들어갔습네다. 이빨 긴 놈이. 그 놈 엉덩이 보고 따라 기었습네다. 땅이 파여 있어서, 배를 깔면 들어갔습네다.”
배식대 뒤에서 누군가 웃음을 참다가 사레가 들렸다. 장태오였다. 고민석이 그 등을 두드렸다. 진혁은 왜 웃는지 몰라서 고라니 형을 보았다. 고라니 형은 웃지 않고 있었다.
“들어갈 때 무슨 소리가 났습니까? 경보음 같은 것.”
“아니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아무것도 안 울렸습네다. 그래서 무서웠습네다. 남쪽 철망은 건드리면 무조건 소리가 난다고 들었습네다. 소리 나면 군인들이 와서 잡아 준다고. 그래서 소리 나기를 기다렸습네다. 철망 밑에서, 그 구덩이에서.”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진혁은 손가락을 접어 보다가 그만두었다.
“한 시간쯤입네다. 더 될 수도 있습네다. 한 번도 안 울렸습네다. 남쪽에 왔는데 아무도 안 와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했습네다. 다시 북으로 기어 가야 하나 했습네다.” 진혁이 고라니 형을 보았다. “그러다 불빛이 왔습네다. 이 형이랑, 무서운 형이랑.”
수첩 위를 달리던 소령의 볼펜이 멈췄다.
소령은 고개를 들어 문간의 대대장을 보았다. 대대장은 여전히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얼굴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얼굴 앞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 과장이 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은색 녹음기 옆이었다.
“대대장님.” 윤병욱 소령이 천천히 말했다. “첫 보고에, 두 시 십일 분 감지기 경보라고 올리셨죠?”
진혁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알지 못했다. 다만 옆에서 고라니 형의 무릎이 진혁의 무릎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라니 형이 의자에서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