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94자)
비빔밥 세 개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전역 34일이었다. 라면으로 치면 서른여덟 개였고, 최강수는 그 서른여덟 개 중 오늘 몫을 먹을 수 있을지 아침 일곱 시에 이미 의심하고 있었다.
“감지기, 몇 시에 울렸지?”
대대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지휘통제실 문 앞 눈바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최강수는 옆에서 주원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들었다. 저 녀석은 지금 사실대로 말하려고 숨을 들이마시는 중이었다. 고라니 송곳니 길이를 말할 때도, 대대장 앞에서 오경보를 물을 때도 저렇게 숨을 들이마셨다.
“확인 중입니다.” 최강수가 먼저 말했다.
오대훈이 최강수를 보았다. 그 눈길이 최강수의 이름표에서 계급장으로, 계급장에서 얼굴로 천천히 올라왔다.
“최 병장. 전역 얼마 남았지?”
“서른나흘 남았습니다.”
“서른나흘.” 오대훈이 장갑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들어가지.”
*
그 아침 산길이 막혔다.
대대장 지프가 올라온 지 한 시간 만에 눈이 길을 덮었고, 제설차는 중턱에서 바퀴가 헛돌았다. 군 헬기는 눈보라 속에서 뜨지 않았다. 귀순자를 데려갈 사람들은 산 아래에서 발을 굴렀고, 귀순자를 데려온 사람들은 산 위에서 대대장과 함께 갇혔다. 김덕배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창고로 뛰어가 식량 상자를 세기 시작했다.
전투식량은 비닐 봉지에 담긴 군 비상식량이었다. 봉지를 뜯고 뜨거운 물을 선까지 부어 십 분을 기다리면 비빔밥이 되었다. 최강수는 의무실 문간에 기대서, 리진혁이 그 비빔밥 봉지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김을 쐬는 모습을 보았다. 손가락은 아직 잘 굽혀지지 않았다. 진혁은 숟가락을 주먹으로 쥐었다.
첫 봉지는 말없이 사라졌다. 숟가락이 봉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의무실 안을 몇 번 돌았다.
두 번째 봉지에 주원이 물을 붓자 진혁이 처음으로 물었다.
“이거 매일 먹습네까?”
“아뇨. 훈련 나갈 때나 비상일 때요.”
“그럼 오늘이 비상입네까?”
“…….” 주원이 최강수를 돌아보았다. 최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비상입니다.”
“내 때문에?”
“네.”
진혁은 두 번째 봉지를 첫 번째보다 천천히 먹었다. 다 먹고 봉지 안쪽에 붙은 밥알을 숟가락 끝으로 하나씩 떼어 먹었다.
세 번째 봉지를 뜯을 때 김덕배가 의무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손에 서류철 대신 식량 상자 뚜껑을 들고 있었다. 거기에 매직으로 숫자를 적어 놓았다.
“이 사람. 세 개째가?”
“세 개째입네다.”
“산길이 언제 뚫릴지 모르는데, 이 사람아.” 김덕배가 뚜껑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크게 했다. “열여섯에 대대장님에 귀순자에, 하루 세 끼에, 길 막힌 게 이틀이면……”
진혁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럼 이거 안 먹겠습네다.”
“먹어라.” 김덕배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 빨리 나와서 본인도 놀란 얼굴이었다. “먹으라꼬. 내 그 말 한 거 아이다. 니가 남조선 와서 처음 먹는 밥인데, 남조선 밥이 세 개에서 끊기면 쓰겠나? 내는 그냥 세는 기다. 세는 기 내 일이다.”
진혁은 세 번째 봉지를 다 먹었다. 그리고 빈 봉지 셋을 차곡차곡 접어 주원에게 내밀며 물었다.
“그런데 남조선 고라니도 귀순합네까?”
“예?”
“넘어오는 밤에, 내 앞에 고라니 한 마리가 먼저 철망 밑으로 들어갔습네다. 이빨이 이만큼 긴 놈이었습네다. 그놈 따라 기어 왔습네다.” 진혁이 손가락 두 개를 벌렸다. “그놈도 북에서 온 놈입네까?”
주원과 최강수가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최강수는 웃음이 터지는 걸 이를 악물고 참았다. 부소초장이었다. 그 늙은 고라니가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놈은……” 주원이 겨우 말했다. “그놈은 여기 소속입니다. 계급도 있습니다.”
*
지휘통제실 문이 닫혔다.
오대훈은 한서윤에게 귀순자 상태를 보고서로 정리해 오라고 일렀고, 한서윤은 문을 나서기 전에 최강수를 한 번 보았다. 문이 닫히자 형광등 소리가 커졌다. 화면에는 밤새 비어 있던 그 구간이 한 줄로 떠 있었다. 오대훈은 그 줄 앞의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최강수에게도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최 병장. 내가 산 아래에서 밤새 무엇을 했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기도했어.” 오대훈이 웃었다. “귀순자가 다치지 말라고. 우리 쪽에 아무도 안 다치라고. 그리고 둘 다 됐어. 자네들이 해냈어. 내가 오늘 군단에 올리는 첫 보고는 이거야.”
그는 메모지 한 장을 화면 앞 책상에 내려놓았다. 손글씨였다. 최강수는 고개를 숙여 읽었다.
두 시 십일 분, 3번 초소 담당 구간 감지기 경보. 두 시 십사 분, 초동 조치조 출동. 두 시 삼십 분, 귀순 의사 확인 및 신병 확보.
초동 조치조는 경보가 울리면 맨 먼저 뛰어나가는 몇 사람을 가리켰다. 그 밤 3번 초소에서 뛰어나간 사람은 최강수와 주원 둘뿐이었고, 둘은 뛰지 않고 걸었다.
“이렇게 됐지?” 오대훈이 물었다.
최강수는 메모지를 보았다. 두 시 십일 분이라는 숫자가 볼펜 자국으로 종이를 살짝 파고들어 있었다. 그 시각에 감지기는 울리지 않았다. 그 시각에 최강수와 주원은 무릎까지 차는 눈 속을 걷고 있었다. 감지기가 울려서 걸은 것이 아니라, 감지기를 재웠기 때문에 걸었다.
“대대장님.”
“말해.”
“그 구간 감지기는 한 시 이십 분부터 재워 두었습니다. 고라니가 열한 번 울려서……”
“알아.” 오대훈이 말을 끊었다. “기록 봤어. 한 시 이십 분 이후로 비어 있지. 그 빈 자리를 지금 내가 채우고 있는 거야.”
“그건 기록을 고치시는……”
“기록은 안 고쳐. 기록은 군단이 봐. 나는 보고서를 쓰는 거야. 보고서는 사람이 쓰는 거고.” 오대훈이 메모지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최 병장.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해 줄까? 귀순 유도는 경계 실패가 아니라 경계 성공이야. 무사고 백 일은 계속 가. 까치재 소초 열여섯 명 전원, 전역 앞둔 자네까지 포상 휴가. 한 중위는 표창. 자네도 표창.”
“그럼 사실대로 쓰면 어떻게 됩니까?”
“감지기 임의 차단. 경계 실패.” 오대훈은 그 말을 메뉴 읽듯이 읽었다. “백 일은 영. 한 중위는 봄에 짐 싸. 자네는 전역 전에 징계위원회. 그리고 그 막내.”
최강수의 어깨가 굳었다.
“제가 재웠다고 보고드렸습니다.”
“그래, 그렇게 들었어. 그 시간 3번 초소 근무자는 둘이었지. 자네랑 그 질문 많은 이병.” 오대훈이 처음으로 의자를 끌어 앉았다. 앉으니 눈높이가 최강수의 가슴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최강수를 올려다보았다. “최 병장. 감찰이 오면 누구 손이었는지 감찰이 정해. 자네가 아니라. 감찰관은 이병한테도 물어. 그 이병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아?”
최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알았다.
“귀순자는 살았어. 아무도 안 다쳤어. 철책 밑 그 구멍은 내가 이번에 반드시 메워. 이번엔 예산 나와. 귀순자가 들어온 자리니까.” 오대훈의 목소리가 다정해졌다. “숫자 하나 바꾸면 다 이겨. 사실대로 쓰면 누가 이기는데? 고라니가 이겨?”
형광등이 웅웅거렸다. 최강수는 메모지의 두 시 십일 분을 보았다. 그 숫자 뒤에 열여섯 개의 이름이 있었다. 한 중위가 있었다. 일병 시절 봄에 짐을 싸던 그 소초장의 등이 있었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지 않던, 떨지 않던 막내의 손가락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오대훈이 일어나 최강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 번이었다. 이틀 전 밤 최강수가 주원의 어깨를 두드린 것과 같은 횟수였다. “전역 잘해, 최 병장.”
*
복도 끝 창가에 한서윤이 서 있었다. 보고서를 정리해 오라던 그녀의 손에는 아무 종이도 들려 있지 않았다. 창유리에 이마를 댄 채 마당의 눈을 보고 있다가, 최강수의 군화 소리에 몸을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최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 마당에서 김덕배가 삽으로 현수막 밑 눈을 다시 퍼내고 있었다. 퍼낸 자리에 금세 눈이 다시 쌓였고, 김덕배는 다시 퍼냈다.
“두 시 십일 분입니다.”
한서윤이 눈을 감았다. 오래 감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얼굴은 소초장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최 병장. 그 시각, 최 병장이 직접 말한 거예요? 대대장님이 불러 준 거예요?”
“제가 받아들였습니다.”
“그건 대답이 아니에요.”
“소초장님도 대답 안 하셨습니다.” 최강수가 말했다. “그 요령, 아시는 걸로 되어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아셨습니다. 첫날 박주원한테 저한테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한서윤의 턱이 굳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그만두었고, 그만둔 말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화가 날 때면 늘 그렇듯 존댓말이 더 깍듯해졌다.
“최강수 병장님. 열여섯 명 휴가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최 병장 표창도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그러니까 박주원한테는, 최 병장이 직접 말하세요. 제 입으로는 못 합니다.”
*
주원은 의무실 앞 복도에서 진혁의 장갑을 난로 바람에 뒤집어 가며 말리고 있었다. 최강수가 다가가자 주원이 일어섰다.
“분대장님. 대대장님이 뭐라고……”
“두 시 십일 분.”
“예?”
“그날 밤 두 시 십일 분에 그 구간 감지기가 울렸어. 두 시 십사 분에 우리가 출동했고, 두 시 삼십 분에 저 친구를 찾았어.” 최강수가 주원의 눈을 보지 않고 말했다. “외워. 누가 물어도 그거야.”
“그 시간엔 감지기가 꺼져 있었습니다. 제가 껐……”
최강수의 손이 주원의 입을 막았다. 장갑 낀 손바닥이었다. 털실이 아니라 군용 장갑의 거친 천이 주원의 입술에 닿았다.
“네가 안 껐어. 내가 재웠어. 너는 따라 나왔어.” 최강수가 아주 낮게 말했다. “박주원. 열여섯 명이 집에 가. 한 중위님이 남아. 너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게 다야.”
주원이 최강수의 손을 떼어 냈다. 거칠지 않았다. 손목을 잡고 천천히 내렸다.
“그럼 분대장님은요?”
“나는 서른나흘이면 가.”
최강수가 돌아섰다. 그때 바깥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지프 엔진이 아니었다. 더 낮고, 더 무겁고, 바퀴 대신 쇠사슬이 눈을 긁는 소리였다.
창밖으로 눈 위를 다니는 궤도 차량, 설상차 한 대가 산길이 아닌 비탈을 타고 소초 마당까지 기어올라 오고 있었다. 지붕에 쌓인 눈을 털며 문이 열렸고, 방한복 위에 군 정보부대 표지를 단 소령 하나가 내렸다. 사단 여럿을 거느린 큰 부대인 군단에서, 적의 움직임을 캐는 일을 맡은 부대였다. 서류 가방을 든 손에 장갑을 끼지 않았다. 그는 경례하는 김덕배에게 답례도 하지 않고 지휘통제실 쪽을 보았다.
“군단 정보부대 소령 윤병욱입니다. 귀순자 신병 인수 전에 확인할 게 있습니다.” 그가 서류 가방을 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귀순자 진술과 소초 감지기 기록을, 분 단위로 맞춰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