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13자)

고라니 아닙네다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눈은 밤 열 시부터 옆으로 내렸다.

위에서 떨어지는 눈이 아니라 산비탈을 타고 올라온 바람에 실려 수평으로 날아오는 눈이었고, 투광등 불빛은 그 눈발에 부딪혀 하얀 연기처럼 번졌다. 3번 초소 유리창은 바깥에서부터 얼어붙어 손바닥으로 닦아도 금세 다시 흐려졌다. 기온은 영하 24도까지 내려갔다. 초소 안 난로가 아무리 붉어도 발끝은 깔창 두 장을 뚫고 올라오는 냉기를 막지 못했다.

무사고 62일째 밤이었다. 아침에 김덕배가 붙인 「62」는 이미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터였다.

경보는 열한 번 울렸다. 열한 번 다 고라니였다. 열한 번째에 주원은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최강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원은 이틀 전 배운 대로 그 구간을 재웠다. 이번에는 최강수가 한 마디도 일러 주지 않았다. 주원의 손이 혼자 했다.

“잘하네.” 최강수가 말했다.

“칭찬이십니까?”

“아니.”

초소가 조용해졌다. 바람 소리만 남았다. 철망이 우는 소리가 눈보라 속에서 낮게 길게 이어졌다.

“나가자.” 최강수가 방탄 헬멧 끈을 조였다. “재웠으면 걸어서 본다. 그게 약속이야.”

교대 근무자를 깨워 초소에 앉히고 방한 장구를 다 챙겨 문을 나섰을 때, 손목시계는 한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칠백 미터는 낮에 걸으면 십오 분이었는데 그 밤에는 사십 분이 걸렸다. 눈이 무릎까지 차 있었고, 순찰로 계단은 눈에 묻혀 비탈이 되어 있었다. 주원은 앞서 걷는 최강수의 등에 매달린 손전등 불빛만 보고 걸었다. 숨을 쉴 때마다 목도리 안쪽에 입김이 얼어붙어 입술에 서걱거렸다. 귀가 아팠다가, 아프지 않게 되었다. 아프지 않게 된 것이 더 나빴다.

골짜기 바닥에 닿았을 때 최강수가 손을 들었다. 주원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바람이 꺾이는 자리였다. 철망 우는 소리가 거기서 한 음 높아졌는데, 그 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낮고 짧게,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소리. 주원은 처음에 고라니가 철망에 몸을 비비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라니는 숨을 그렇게 쉬지 않았다. 고라니의 숨은 짧고 가볍고, 코로 쉰다. 이 소리는 입으로 쉬는 숨이었다. 이를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그 숨에 섞여 있었다.

최강수가 손전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 그가 총을 고쳐 쥐는 쇳소리가 들렸다.

“박주원. 내 뒤에 있어.”

최강수가 손전등을 다시 켰다.

불빛이 철책 밑 그 움푹 꺼진 자리를 비췄다. 눈구덩이 안에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었다. 갈색이었다. 주원은 숨을 들이쉬었다가, 그 갈색이 털이 아니라 천이라는 걸 알았다. 낡은 솜을 누빈 겉옷이었다. 그 옷 끝으로 회색 털장갑을 낀 손 하나가 눈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정지! 움직이지 마!”

최강수의 목소리가 눈보라를 찢었다. 총구가 눈구덩이를 겨눴다.

눈구덩이가 꿈틀거렸다. 회색 장갑을 낀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다음에 다른 손이, 그다음에 얼굴이 올라왔다. 털모자 밑으로 드러난 얼굴은 눈썹과 속눈썹이 다 하얗게 얼어 있었고, 입술은 거의 검었다. 주원과 비슷한 나이, 어쩌면 더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손전등 불빛에 눈을 찡그리며,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고, 고라니 아닙네다.”

주원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웃음이 아니라 다른 것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걸렸다.

“손 머리 위로! 일어나!”

“일, 일어나지를 못합네다. 다리가……”

“일어나라고!”

병사는 일어나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한 손이 겉옷 안쪽으로 들어갔다. 최강수의 총구가 그 손을 따라갔다. 최강수가 숨을 멈추는 소리를 주원은 들었다.

주원이 앞으로 나갔다.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다리가 먼저 갔고, 그다음에 몸이 최강수의 총구와 눈구덩이 사이에 섰다. 손전등 불빛이 주원의 등을 비췄고 주원의 그림자가 병사의 얼굴을 덮었다.

“야, 박주원! 비켜!”

“분대장님, 손이 얼었습니다! 안쪽에 넣은 건 녹이려고 넣은 겁니다. 손가락이 하나도 안 굽혀집니다. 보십시오, 장갑이 손에 얼어붙었……”

“비키라고 했다!”

“못 비킵니다!”

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갔다. 최강수의 총구는 내려가지 않았다. 주원의 등 뒤에서 병사가 무어라 웅얼거렸다. 주원은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뒤로 내밀었다. 잠시 뒤 차갑고 뻣뻣한 무언가가 그 손바닥에 닿았다. 털장갑이었다. 장갑 안의 손은 돌처럼 굳어 있었고, 그 돌이 떨리고 있었다.

“무기 없습니다.” 주원이 말했다. “분대장님, 이 사람 장갑 엄지에 기운 자리가 있습니다. 두 번 기웠습니다. 누가 떠 준 겁니다.”

최강수가 주원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총구를 아주 조금 내렸다. 그 조금이 주원에게는 한 시간처럼 길었다.

“……지휘통제실에 무전 넣어.” 최강수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거동 수상자 한 명. 아니, 귀순자 한 명. 아니, 그냥 사람 한 명이라고 해.”

*

소초 의무실 난로 앞에서 병사는 담요를 세 장 덮고도 계속 떨었다. 주원은 병사의 장갑을 벗기지 않았다. 손에 얼어붙은 털실을 억지로 떼면 살갗이 같이 떨어진다. 미지근한 물을 대야에 받아 장갑 낀 손을 통째로 담그자 털실이 천천히 풀렸다. 동상 입은 손을 문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주원은 수의대 1학년 응급처치 시간에 개를 두고 배웠다. 사람에게 써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픕네다.”

“아픈 건 좋은 겁니다. 안 아프면 그게 큰일입니다.”

병사가 주원을 빤히 보았다. 그러다 물었다.

“여기, 남조선 맞습네까?”

“네. 남쪽입니다.”

“확실합네까?”

“확실합니다. 제가 남쪽 사람이라 압니다.”

병사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물이 흘렀는데, 그건 녹은 속눈썹 서리일 수도 있었다. 북에서 휴전선을 넘어와 남쪽에 몸을 맡기는 일을 귀순이라고 불렀다. 주원은 그 낱말을 교육 시간에 들었다. 그 낱말에 이렇게 얼어붙은 장갑이 딸려 있다는 건 교육 시간에 듣지 못했다.

장갑이 다 풀리자 병사는 그것을 주원 쪽으로 밀었다.

“이거, 말려 주십쇼. 어머니가 뜬 겁네다.”

“말려 드릴게요.” 주원은 장갑을 난로 옆 의자에 펼쳐 놓았다. 회색 털실이었다. 엄지 자리가 두 번, 서로 다른 색 실로 기워져 있었다. 하나는 검은 실, 하나는 갈색 실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병사가 대답하려는데 의무실 문이 열렸다.

고민석이 김이 오르는 냄비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서 있었다. 그 뒤로 장태오가 깡통 하나와 숟가락 세 개를 쥐고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둘 다 내복 바람에 방한복만 걸친 채였다. 소초에 비상이 걸리자마자 내무반에서 뛰어온 모양이었다.

“라면 끓였습니다.” 고민석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는데 추워서가 아니었다. “제가 면 넣었습니다. 물 다 끓고 넣었습니다. 안 퍼졌습니다.”

“너 그거 서열 위반이야.” 주원이 말했다.

“알아. 영창 가도 돼. 사람이 얼어서 왔는데 퍼진 면 먹일 수는 없잖아.”

병사는 냄비를 보았다. 담요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걸 깨닫고 도로 넣었다. 주원이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입에 대 주었다. 병사는 국물 한 숟가락을 삼키고 한참 가만있었다. 그러다 두 번째 숟가락에 입을 먼저 벌렸다. 세 번째에는 고개가 숟가락 쪽으로 먼저 왔다.

“맵습네다.”

“죄송합니다. 덜 매운 걸로 다시……”

“아닙네다. 더 주십쇼.”

장태오가 깡통을 내밀었다. 귤 통조림이었다. “이건 제가 크리스마스 때 먹으려고 관물대 맨 안쪽에 숨겨 놨던 겁니다. 분대장님한테 비밀입니다.”

“이름이 뭡니까?” 주원이 다시 물었다.

“리진혁입네다.” 병사가 국물을 삼키고 말했다. “올해 스물 됐습네다.”

“저도 스물입니다.” 주원이 말했다. “박주원.”

“저도 스물.” 고민석이 냄비를 든 채 말했다. 장태오가 숟가락을 든 손을 들었다. “저는 스물하나입니다. 재수해서.”

진혁이 셋을 차례로 보았다. 언 얼굴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그것이 웃음인지 우는 얼굴인지 셋 다 알 수 없었다.

*

지휘통제실 형광등 아래서 한서윤은 방한복 지퍼도 다 올리지 못한 채였다. 머리가 한쪽으로 눌려 있었고 손에는 무전기와 휴대전화와 볼펜이 한꺼번에 들려 있었다. 화면 앞에 선 최강수는 헬멧도 벗지 않았다.

“최 병장.”

“병장 최강수.”

“귀순자는 그 구간으로 왔어요. 고라니 구간. 그 구간 감지기 기록이 한 시 이십 분 이후로 비어 있어요.” 한서윤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감지기 왜 안 울렸어요?”

최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최 병장. 내가 지금 대대에 첫 보고 올려야 돼요. 오 분 안에. 감지기가 왜 안 울렸어요?”

“제가 재웠습니다.”

한서윤의 손에서 볼펜이 떨어졌다. 그 볼펜이 바닥을 굴러 주원의 군화 앞에서 멈췄다. 주원은 의무실에서 막 건너와 문간에 서 있었다.

“……최 병장이요?”

“예. 고라니가 열한 번 울려서 제가 재우고, 제가 나가서 걸었습니다. 걸어서 찾았습니다. 박주원 이병은 제 지시대로 따라왔을 뿐입니다.”

주원이 입을 열었다. 최강수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박주원. 너는 의무실 가 있어.”

“분대장님, 그건 제가……”

“의무실 가 있으라고.”

한서윤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알아챈 얼굴이었고, 알아챈 것을 지금은 묻지 않기로 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주원에게는 제일 무서웠다. 한서윤은 허리를 숙여 볼펜을 주웠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었다.

“까치재 소초장 중위 한서윤입니다. 귀순자 한 명 신병 확보했습니다. 부상은 동상, 의식 있습니다. 자세한 경위는…….”

그녀가 주원과 최강수를 한 번 더 보았다.

“자세한 경위는 확인 중입니다.”

*

눈은 동틀 녘에도 그치지 않았다. 여섯 시 사십 분, 체인 감은 지프 한 대가 산길을 기어올라 소초 마당에 멈췄다. 김덕배가 현수막 앞 눈을 삽으로 퍼내다가 차렷 자세로 굳었다. 밤새 현수막에 들러붙은 눈을 걷어 내던 참이었고, 그가 쥔 삽 끝 위로 「62」가 반쯤 드러나 있었다. 김덕배는 차렷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굴려 그 숫자를 보았다. 귀순자가 왔으니 공이라고 해야 할지, 철책이 뚫렸으니 사고라고 해야 할지, 그 숫자를 오늘 아침 「63」으로 바꿔 붙여도 되는지 그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오대훈 중령이 지프에서 내렸다. 밤새 산 아래에서 무전을 들은 얼굴이었는데, 목도리는 여전히 각이 잡혀 있었다. 그는 경례하는 한서윤을 지나쳐 곧장 지휘통제실 문 앞까지 걸었다. 문 앞에 주원과 최강수가 서 있었다.

오대훈은 귀순자가 어디 있는지 묻지 않았다. 다쳤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주원의 이름표를 한 번 보고, 최강수의 이름표를 한 번 보고,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감지기, 몇 시에 울렸지?”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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