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55자)
끄는 손은 막내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열두 번째도 고라니였다.
움푹 꺼진 자리 위로 천천히 움직이던 것이 투광등 불빛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주원은 그 긴 송곳니부터 알아보았다. 부소초장이 돌아와 있었다. 한 번 지나간 길을 잊은 것이 있다는 듯 철책 밑에 코를 박고 킁킁대다가, 이번에는 아예 그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버렸다. 철망에 등을 기댄 고라니 한 마리 때문에 감지기는 오 분 동안 세 번을 더 울었다.
주원은 열두 번째, 열세 번째, 열네 번째 전화를 걸었다. 열네 번째 전화에서 지휘통제실 당직병은 수화기에 대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야. 나 너 미워하기로 했다.”
*
아침 일곱 시, 김덕배가 현수막 앞에 사다리를 세웠다. 주머니에서 숫자 스티커 두 장을 꺼내 입김으로 녹이고, 「60」 위에 「61」을 붙인 뒤 손바닥으로 세 번 쓸었다. 밤사이 언 걸레로 가장자리까지 닦았다. 현수막 아래로 지나가던 소초원 하나가 경례를 하자 김덕배는 현수막을 가리켰다.
“나 말고 저기다 해라.”
주원은 지휘통제실에 커피를 들고 들어가다가 문 앞에서 멈췄다. 안에서 한서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기를 스피커로 켜 놓은 모양이었다. 수화기 너머는 대대에서 작전을 짜는 작전과장이었다.
“예. 열네 건입니다. 전부 동물입니다.”
“한 중위. 열네 건이 한 밤에 한 구간에서 나왔어요. 작전과장인 내가 대대장님한테 이걸 뭐라고 올려요?”
“동물에 의한 오경보로 올리시면……”
“그걸 열네 줄로요? 다른 소초는 한 밤에 두세 건이에요. 까치재만 열네 건이면 위에서는 까치재 경계 근무가 엉망이라고 읽어요. 장비가 엉망이든 고라니가 엉망이든, 읽는 사람은 소초장이 엉망이라고 읽는다고요.”
“알겠습니다.”
“어제 그 이병 있죠? 대대장님이 이름 기억하세요. 축하해요.”
전화가 끊겼다. 한서윤은 의자에 앉은 채 한동안 끊긴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주원은 커피잔을 든 손이 데는 줄도 모르고 서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둘의 눈이 마주쳤다.
“들었어요?”
“……열네 건은 제가 다 걸었습니다.”
“알아요. 규정대로 했어요. 잘했어요.” 한서윤이 커피를 받아 들었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예요.”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
“설탕 몇 개 넣었어요?”
“세 개 넣었습니다. 추우실 것 같아서.”
“나 설탕 안 먹어요.” 그렇게 말하고도 한서윤은 그 잔을 끝까지 비웠다.
*
점심 라면은 서열이 정확히 지켜졌다. 주원이 냄비에 물을 올리고, 일병이 면을 넣고, 상병이 스프를 뜯고, 최강수가 계란을 깨뜨렸다. 고민석은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분대장님. 물이 덜 끓었는데 면 넣으셨습니다.”
“그래서?”
“면이 퍼집니다.”
“그럼 너는 퍼진 면을 먹어. 일병 되면 안 퍼지게 넣어.” 최강수가 국물 첫 숟가락을 떴다. “군대는 그런 데야.”
장태오는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쥐고 있었다. “분대장님, 오늘 밤에 제가 노래 부르면 고라니 안 옵니까? 고라니가 큰 소리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거 해 본 놈 있어.” 상병 하나가 대신 대답했다. “작년에 누가 초소에서 트로트 「사랑의 배터리」를 불렀는데, 고라니 두 마리가 철책 앞까지 와서 끝까지 듣고 갔어.”
“진짜입니까?”
“진짜야. 박수만 안 쳤지.”
내무반이 한꺼번에 웃었다. 주원은 웃다가, 냄비 바닥에 붙은 면 한 가닥을 젓가락으로 떼며 최강수를 보았다. 최강수는 웃지 않고 있었다. 숟가락을 든 채 창밖 철책 쪽을 보고 있었다.
*
오후 순찰은 김덕배가 직접 앞장섰다. 철책을 따라 난 순찰로는 계단과 비탈이 번갈아 나왔고, 눈 밑에 숨은 얼음 때문에 주원은 백 걸음에 한 번씩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마다 김덕배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일어나라”라고 했다. 철망은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장갑 낀 손끝으로 쓸면 철사에 낀 서리가 가루가 되어 떨어졌고, 그 너머로는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눈밭이 산 아래까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어젯밤 그 구간은 소초에서 칠백 미터쯤 떨어진 골짜기 바닥이었다. 산비탈 두 개가 만나는 자리라 바람이 거기서 꺾였고, 꺾인 바람이 철망을 때리는 소리가 다른 데보다 한 음 높았다. 주원은 철책 밑 움푹 꺼진 자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눈이 다져져 반들거렸고, 가장자리에 갈색 털 몇 가닥이 얼어붙어 있었다. 손바닥을 펴 그 깊이를 재 보았다. 손목까지 들어갔다.
“부소초장님. 여기 밑이 패였습니다. 물길 자리라 흙이 쓸려 나간 것 같습니다. 고라니는 몸이 납작해서 이 정도면 배를 깔고 지나갑니다.”
“알고 있다.”
“아시면 보고를……”
“보고했다. 내가 여 온 지 사 년째다. 사 년 동안 봄마다 했다.” 김덕배가 담배를 꺼냈다가 철책 앞이라는 걸 깨닫고 도로 넣었다. “그라고 보고하면 뭐라 카는 줄 아나? 사진 찍어 올리라 칸다. 찍어 올리면 다음 분기라 칸다. 다음 분기 되면 담당이 바뀌었다 칸다.”
주원은 털 한 가닥을 장갑 끝으로 집어 들었다. 바람이 그 털을 손에서 채어 갔다.
“그럼 흙이라도 채우면 안 됩니까? 삽 들고 와서……”
“철책 밑을 이병이 삽으로 판다꼬?” 김덕배가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그 얼굴이 웃는 건지 화난 건지 주원은 알 수 없었다. “니 그 삽질 사진 대대 가면, 백 일이 하루 만에 영 된다. 철책 손상. 소초 임의 작업. 줄이 몇 줄 붙는 줄 아나?”
그는 꺼진 자리 위에 군화 한 짝을 얹어 꾹꾹 밟았다. 다져진 눈이 조금 더 다져졌을 뿐 꺼진 자리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내가 매일 아침 숫자를 닦는 기다.” 김덕배가 말했다. “숫자라도 반짝여야 위에서 쳐다보제.”
*
밤 열한 시의 3번 초소에서 최강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그 구간, 고라니가 왜 거기로만 다니는 줄 알아?”
“철책 밑에 눈이 다져진 자리가 있었습니다. 고라니가 드나드는 길입니다. 산 위쪽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지나가는 자리라 봄마다 흙이 조금씩 패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를 손보면……”
“손보라고 작년에도 올렸어. 재작년에도 올렸고.” 최강수가 핫팩을 꺼내 손안에서 굴렸다. “올리면 대대가 그래. 예산이 다음 분기래. 다음 분기 오면 또 다음 분기래.”
경보가 울렸다. 고라니였다. 주원이 수화기를 들자 최강수가 손을 들어 막았다.
“걸어. 그건 걸어. 첫 번째니까.”
주원이 전화를 걸고 내려놓았다. 최강수는 한참 화면 속 투광등을 보다가 말했다.
“작년 겨울에 나 일병이었어. 그날 밤 그 구간에서 스물세 번 울렸어.”
*
작년 12월, 일병 최강수는 같은 3번 초소에서 스물세 번째 수화기를 들었다.
그때 분대장은 전역을 두 달 앞둔 병장이었고, 지금 주원의 군화 안에 깔린 그 깔창을 신고 있었다. 그 분대장은 스물세 번을 다 규정대로 걸었다. 걸 때마다 깔창 뒤꿈치 자리에 볼펜으로 숫자를 하나씩 적었다. 손이 얼어서 나중 숫자들은 글씨가 아니라 줄이었다.
그리고 스물세 번째 경보에, 그들은 늦었다.
고라니였다. 사람이었으면 큰일이 났을 만큼 늦었다. 스물두 번을 달려 나가 스물두 마리를 본 다리가 스물세 번째에는 일 분 늦게 일어났고, 그 일 분이 지휘통제실 기록에 남았다. 한 달 뒤 잘잘못을 따지는 대대 감찰관이 올라왔다. 감찰관은 스물세 줄의 보고서를 넘기며 이렇게 물었다. 경보가 스물세 번 울리는 동안 소초장은 구간 점검을 몇 번이나 요청했느냐고. 소초장은 세 번 요청했다고 답했다. 요청한 서류가 대대 어느 서랍에도 없었다.
그 소초장은 봄에 다른 곳으로 갔다. 계급장은 그대로였는데 다시는 철책에 오지 못했다.
전역하던 날, 그 분대장은 최강수를 내무반 구석으로 불렀다. 그리고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고라니가 유난한 밤, 그 구간 감지기를 날이 밝을 때까지 잠깐 재워 두는 일이었다. 그 대신 그 구간은 사람이 눈으로 지킨다고 했다. 투광등을 보고, 철책을 걷고, 귀를 연다고 했다.
“기계가 안 우는 대신 사람이 운다.” 그 분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깔창을 벗어 최강수에게 주었다. “막내한테 물려줘라. 끄는 손은 늘 막내다. 막내는 잃을 게 제일 적으니까.”
*
“그래서 그게 저입니까?”
주원의 목소리가 초소 유리에 부딪혀 낮게 되돌아왔다. 최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속에서 투광등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분대장님. 그 구간이 고라니 길이면 사람도 그 길로 옵니다. 고라니가 아는 길은 사람도 압니다. 고라니가 철책 밑을 판 데를 사람이 모를 리가……”
“사람은 십 년에 한 번 와. 고라니는 하룻밤에 열네 번 오고.”
“한 번이 오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오늘 열네 번 다 걸어 봐.” 최강수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걸면 한 중위님이 작전과에 또 불려 가. 세 번 불려 가면 감찰 올라와. 감찰 올라오면 백 일이 영으로 돌아가고, 열여섯 명 휴가가 날아가고, 한 중위님은 작년 그 소초장처럼 봄에 짐 싸. 고라니 열네 마리 때문에. 그게 규정대로야, 박주원.”
경보가 울렸다. 두 번째였다. 화면에는 송곳니가 비쳤다. 부소초장이었다.
주원은 수화기를 들었다. 최강수는 막지 않았다. 대신 그 손을 오래 보고 있었다. 주원은 전화를 걸었고, 당직병의 “고라니지?” 소리를 들었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짧은 동안 손바닥에 땀이 차서 장갑 안이 미끈거렸다.
세 번째가 울렸다. 네 번째가 울렸다. 다섯 번째에 지휘통제실 쪽에서 한서윤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들렸다. 그 숨소리가 주원이 들은 어떤 꾸지람보다 길었다.
여섯 번째 경보가 울렸을 때 주원은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최강수가 일어나 주원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그 구간을 재워 두는 일을 주원의 손이 하도록 옆에서 한 마디씩 일러 주었다. 주원의 손가락은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경보가 그쳤다. 초소 안이 갑자기 넓어졌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철망 수백 미터가 한꺼번에 우는 그 소리가, 기계가 조용해지자 비로소 다 들렸다.
“이제 네 귀가 감지기야.” 최강수가 의자에 다시 앉았다. “날 밝을 때까지 화면에서 눈 떼지 마. 그리고 이건 내무반 밖으로 안 나간다.”
“소초장님도 아십니까?”
최강수는 잠깐 말이 없었다.
“한 중위님은 모르시는 걸로 되어 있어.”
주원은 화면을 보았다. 투광등 아래 부소초장이 철책 밑 그 자리에 다시 엉덩이를 대고 앉았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울지 않았다. 고라니는 조용한 철망에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주원은 그 고라니가 처음으로 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