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293자)
열두 번째도 고라니야
GOP 이등병은 오늘도 고라니와 싸운다 · 백해원
트럭 짐칸의 방수포가 바람에 부풀었다 꺼질 때마다 눈가루가 안으로 쏟아졌고, 박주원은 더플백을 끌어안은 채 자기 귀가 아직 붙어 있는지 손등으로 두 번 확인했다. 산길은 오르막만 사십 분째였다. 체인 감은 바퀴가 언 길을 씹는 소리가 엉덩이뼈로 올라왔다.
“야, 수의사.”
맞은편에 앉은 동기 고민석이 입김을 뿜으며 물었다. 훈련소에서부터 주원을 그렇게 불렀다.
“아직 수의사 아니야. 2학년 마치고 휴학했어.”
“그럼 반쯤 수의사네. 저 위에 짐승 많대. 너 출세했다.”
옆에서 장태오가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린 채 웅얼거렸다. 아이돌 연습생을 4년 하다 입대한 친구였고, 추우면 노래를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트로트 한 소절이 목도리 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트럭이 멈췄다. 방수포가 젖혀지자 하얀 빛이 한꺼번에 들이쳤다.
강원 고성 산마루의 까치재 소초였다. 휴전선 바로 남쪽에 길게 친 철책을 밤낮으로 지키는 부대를 GOP, 그중 소대 하나가 먹고 자며 철책 한 토막을 맡는 막사를 소초라고 불렀다. 낮은 콘크리트 건물 세 동이 눈 속에 엎드려 있었고, 그 뒤로 산등성이를 따라 철책이 끝없이 이어졌다. 기온은 영하 22도였다. 숨을 들이쉬자 콧속 털이 한꺼번에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막사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까치재 소초 무사고 경계 60일」. 숫자 자리만 흰 스티커였다.
현수막 아래에서 중사 계급장을 단 사내 하나가 걸레로 그 스티커를 닦고 있었다.
“어이, 신병들. 내 부소초장 김덕배다.” 소초장 다음 자리에서 살림과 근무를 챙기는 부사관이었다. “저 숫자 보이제?”
“예, 육십 일 보입니다.”
“백 되면 너거 전부 휴가다. 열여섯 명 전부. 니 같은 막내까지.” 김덕배가 걸레를 털었다. “그러니까 저 숫자 건드리는 놈은 내가 직접 고라니 밥으로 준다. 알아들었나?”
“고라니는 초식입니다.”
주원이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김덕배의 걸레가 공중에서 멈췄다.
“……뭐라꼬?”
“고라니는 풀이랑 나무껍질을 먹습니다. 사람은 안 먹습니다, 부소초장님.”
고민석이 주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장태오의 트로트가 뚝 끊겼다. 김덕배는 한참 주원을 내려다보다가 걸레를 도로 스티커에 댔다.
“니, 이름 뭐꼬?”
“이병 박주원입니다.”
“박주원. 기억해 두께.”
*
내무반은 기름 난로 냄새와 젖은 양말 냄새와, 누가 몰래 끓인 라면 국물 냄새가 한 덩어리로 엉겨 있었다. 침상 끝에 앉은 병장 하나가 달력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이름표에 최강수라고 적혀 있었다. 분대장이었다.
“막내 셋 왔다.” 최강수가 고개도 안 들고 말했다. “잘 왔다. 나 전역 37일 남았다.”
“예,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37일이면 라면으로 치면 마흔한 개야. 하루 한 개, 혹한기 훈련 날 두 개, 크리스마스 세 개, 마지막 날 하나 더.” 최강수가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그 라면 마흔한 개 먹는 동안 아무 일도 없어야 돼. 너희가 할 일은 그거 하나다.”
“아무 일도 없게 하는 거 말씀이십니까?”
“아무 일도 없게 하는 거. 그리고 라면은 서열 순서대로 끓인다. 막내는 물만 올리고 면은 못 만진다. 면은 일병부터.”
장태오가 손을 들었다. “스프는 누가 넣습니까?”
“스프는 상병.” 최강수는 진지했다. “계란은 병장. 국물 첫 숟갈도 병장. 질문 끝?”
“끝입니다.”
고민석이 주원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요리병 출신인데 물만 올리래.” 그 목소리가 세상이 끝난 사람 같았다.
*
오후 두 시, 대대장이 순시를 왔다.
산 아래 청봉 대대 본부에서 지프를 타고 올라온 오대훈 중령은 마흔넷이었고, 방한복 위에 걸친 목도리까지 각이 잡혀 있었다. 소초장 한서윤 중위가 식당 앞에서 경례를 하자, 오대훈은 그녀의 어깨에 붙은 눈을 손수 털어 주었다.
“한 중위, 육십 일이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사십 일 남았어요. 우리 대대에서 이번 겨울 백 일 찍는 소초가 까치재 하나면, 그건 한 중위 이름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오대훈이 웃었다. “내 이름도 같이 올라가고.”
식당 긴 탁자에 소초원 열여섯 명이 앉았다. 전투식량 상자가 벽에 쌓여 있었고, 배식대에서는 보리차 끓는 냄새가 올라왔다. 오대훈은 탁자 끝에 서서 손을 뒤로 모았다.
“신병이 셋 왔다고 들었습니다. 일어나 봐요.”
주원과 고민석과 장태오가 일어났다. 오대훈은 주원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눈가 주름이 반듯했다.
“이병. 경계 근무 중에 철책 감지기가 울리면 어떻게 합니까?”
훈련소와 전입 교육에서 외운 대로 주원이 대답했다. 즉시 보고, 확인, 조치. 오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됐어요. 앉아요.”
주원은 앉지 않았다.
“대대장님.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식당 공기가 한 칸 내려앉았다. 한서윤의 숟가락이 식판 위에서 소리 없이 멈췄고, 최강수가 눈을 감았다.
“해 봐요.”
“감지기가 고라니 때문에 울려도 똑같이 보고합니까? 지금이 고라니 짝짓기 철이라 수컷들이 밤에 멀리까지 돌아다닙니다. 한 밤에 열 번도 넘게 울릴 수 있는데, 열 번 다 보고하면……”
“다 보고하죠.”
“그럼 그 보고가 다 대대로 갑니까?”
“갑니다.”
“그럼 오경보가 많은 구간은 감지기를 손보거나 철책 밑에 고라니가 못 지나가게……”
“이병.” 오대훈이 웃는 얼굴 그대로 주원의 말을 잘랐다. “고라니도 적이에요.”
“예?”
“철책에 붙는 건 다 적입니다. 고라니든 사람이든. 보고서에는 「동물에 의한 오경보」 한 줄이면 되고, 그 한 줄이 적을수록 좋은 소초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적게 울리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적게 보고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정적이 길었다. 배식대 보리차가 끓어 넘쳐 철판 위에서 치익 하고 울었다.
오대훈의 존댓말이 거기서 끝났다.
“한 중위. 이 친구 오늘 밤부터 새벽 초소 세워. 고라니 공부 많이 했다니까 직접 세어 보라고.”
“예, 알겠습니다.”
지프가 떠난 뒤 한서윤은 주원을 식당 뒤로 불렀다. 그녀는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박주원 이병. 나 오늘 대대장님한테 백 일 소리 처음 들었어요. 처음.”
“죄송합니다.”
“사과 말고. 질문은 나한테 해요. 대대장님한테 하지 말고. 알았어요?”
“그럼 소초장님께 여쭙겠습니다. 오경보는 어떻게 줄입니까?”
한서윤이 주원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 장갑을 도로 끼며 말했다.
“밤에 최 병장한테 물어봐요.”
*
저녁 점호가 끝나자 내무반에 소문이 주원보다 먼저 와 있었다. 상병 하나가 주원이 들어서자마자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네가 대대장님한테 고라니 짝짓기 강의한 애냐?”
“강의는 아니었습니다.”
“식당 보리차가 끓어 넘쳤다며. 대대장님 앞에서 보리차가.” 상병은 무슨 전설이라도 들은 얼굴이었다. “나 여기 일 년 있었는데 대대장님한테 질문한 이병은 네가 처음이다.”
고민석은 침상 구석에서 물만 끓는 냄비를 원망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고, 장태오는 라면 봉지 뒷면의 조리법을 무슨 대본처럼 소리 내어 외우고 있었다. 주원이 자리에 앉자 최강수가 말없이 자기 관물대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주원의 무릎 위에 떨어진 것은 뜯지 않은 핫팩 두 개와, 털이 반쯤 빠진 낡은 군화 깔창 한 켤레였다.
“새벽 초소는 발부터 언다. 깔창 두 장 겹쳐.”
“감사합니다. 근데 이건 누구 겁니까?”
“내 일병 때 분대장 거.” 최강수가 침상에 도로 누웠다. “그 사람도 새벽 초소에서 많이 셌어.”
“고라니를 말씀이십니까?”
최강수는 대답하지 않고 돌아누웠다. 깔창 뒤꿈치 자리에 볼펜으로 쓴 숫자 몇 개가 닳아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
새벽 한 시의 3번 초소는 사방이 유리였고, 그 유리에 주원의 숨이 하얗게 얼어붙었다가 손바닥으로 닦으면 다시 얼었다. 초소 안 감시 화면에는 철책을 따라 늘어선 투광등 불빛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철책 철망 사이를 지날 때마다 낮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수백 미터 철망이 한꺼번에 우는 소리였다.
최강수는 의자에 몸을 묻고 핫팩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경보가 울렸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주원이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분대장님!”
“화면 봐.”
화면 속 투광등 아래, 철책 앞 눈밭에 갈색 짐승 하나가 서 있었다. 귀가 동그랗고 다리가 가늘었다. 고라니였다.
“한 마리.” 최강수가 말했다.
주원은 보고 절차를 밟았다. 소초의 근무를 한눈에 보는 지휘통제실로 전화를 넣고, 확인하고, 동물이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 당직병의 하품 소리가 들렸다.
이십 분 뒤 두 번째가 울렸다. 고라니였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고라니였다. 일곱 번째는 두 마리가 같이 왔다가 한 마리만 철책에 몸을 비볐다. 아홉 번째에는 지휘통제실 당직병이 전화를 받자마자 “고라니지?”라고 먼저 물었다.
열 번째가 울렸을 때, 화면 속 고라니는 다른 놈들보다 몸집이 컸다. 입가에 하얗고 긴 것이 아래로 휘어 나와 있었다.
“어, 송곳니.” 주원이 화면에 코를 박았다. “수컷입니다. 고라니는 사슴 중에 드물게 뿔이 없고 수컷한테 송곳니가 나는데, 저 정도면 나이가 꽤……”
“부소초장.”
“예?”
“저놈 이름이 부소초장이야. 내가 이병 때부터 있었어. 김 중사님한테는 비밀이다.”
고라니 부소초장은 투광등 불빛 한가운데 서서 카메라 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씹는 것도 없이 입을 우물거리다가, 철책 아래 눈이 움푹 꺼진 자리에 코를 박고 한참 냄새를 맡더니 천천히 어둠 속으로 걸어 나갔다. 주원은 그 꺼진 자리를 오래 보았다. 고라니가 드나드느라 눈이 다져진 자리였다.
열한 번째는 새벽 세 시 사십 분이었다. 고라니였다. 주원은 열한 번째 전화를 걸었고, 열한 번째로 “동물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당직병은 대답 대신 수화기에 대고 한숨만 쉬었다.
주원은 장갑 낀 손을 비비며 화면을 노려보았다. 손가락 끝이 감각이 없었다. 이 구간 어딘가에 고라니가 지나다니는 길이 있었고, 그 길은 철책 바로 아래에 있었다. 대대장은 그 길을 「한 줄」이라고 불렀다.
“분대장님. 소초장님이 오경보 줄이는 법은 분대장님께 여쭤보랬습니다.”
최강수가 눈을 떴다. 처음으로 주원을 똑바로 보았다.
“한 중위님이 그랬어?”
“예.”
최강수가 핫팩을 겨드랑이에서 빼 손 안에서 굴렸다. 그 손이 오래 망설였다.
“그건 내일 말해 줄게. 오늘은 그냥 세.”
경보가 울렸다. 열두 번째였다.
주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최강수는 귀도 돌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으며, 겨드랑이에 핫팩을 도로 끼우며 말했다.
“열두 번째도 고라니야.”
주원은 수화기를 든 채 화면을 보았다. 투광등 아래 눈발이 비스듬히 날렸고, 철책 아래 움푹 꺼진 자리 위로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