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86자)
엮인 줄 열둘
신들이 내 방송에 후원을 끊었다 · 한도윤
7월 12일 오후 세 시, 나는 영도대교 북쪽 끝 난간에 기대 서서 보람의 휴대폰 화면을 네 칸으로 나눠 보고 있었다.
왼쪽 위 칸은 나였다. 오른쪽 위는 보람, 내 옆에 서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 대신 생수를 부어 불리고 있는 보람이었다. 왼쪽 아래 칸은 바다였다. 흔들리는 뱃전과 감아 놓은 밧줄 너머로 영도 앞바다가 회색으로 일렁였다. 오른쪽 아래 칸에서는 반짝이 재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노래방 기계 앞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자, 다음 곡은 신청곡입니다. 해운대불주먹 님 신청, 「돌아와요 부산항에」. 근데 여러분, 지금 부산항이 돌아오고 있어요. 그것도 육지로.”
류형근이었다. 마흔일곱, 동래 온천장 골목에서 노래방을 하다가 손님이 끊긴 뒤로 노래방 기계 앞에서 방송을 켰다고 했다. 구독자 칠천. 그의 어깨 위에는 연두색 방송 눈이 떠 있었는데, 형근은 그 눈에 스티커를 붙이려다 실패했다며 어제 밤새 웃었다. 형근의 칸 위로 신들의 글씨가 드문드문 흘렀다. 「시끄러」 「또 그 노래」. 그래도 그는 사람 시청자 채팅창에 노래 신청이 올라오는 대로 다 불렀다.
바다 칸의 주인은 강태오였다. 서른셋, 영도 토박이, 구독자 만 이천의 낚시 방송인. 그는 말이 짧았고 웃는 걸 아직 못 봤다. 배는 육 미터짜리 작은 낚싯배였다. 뱃머리에 「경자호」라고 흰 페인트로 쓰여 있었는데, 경자의 자 글씨만 다른 사람 글씨처럼 삐뚤었다. 어젯밤 합방을 처음 열었을 때 내가 물었다. 태오는 아버지가 쓰다가 덜 쓰고 돌아가셔서 자기가 마저 썼다고만 했다. 경자는 어머니 이름이었다.
넷이 엮인 하늘은 볼만했다. 하늘의 수천 칸 중에 우리 넷의 칸이 금줄로 서로 이어져 있었다. 나에게서 셋으로, 셋에게서 나에게로. 보람에게서 태오와 형근으로, 그들에게서 보람에게로. 줄마다 방향이 있어서 넷 사이에 줄이 열둘 생겼다. 하늘에 「엮인 줄 12」가 떴다. 동시 시청자는 오늘 아침 80,000을 넘었다. 내 채널 혼자였을 때의 이백오십 배였다.
「삼십대백수: 공지) 이제 형 화면 왼쪽 위. 왼쪽은 형 몸 기준 왼쪽. 화면 왼쪽 위는 화면 기준 왼쪽 위」 「왼손잡이: 그만해 머리 아파」
*
하늘 시계가 다섯 시를 넘었을 때 물길이 그려졌다.
하늘 화면 위 부산 지도에 붉은 선 하나가 남쪽 바다에서 기어 올라왔다. 남항에서 시작해 자갈치 시장을 지나고, 중앙동을 지나고, 부산역 앞 큰길을 따라 초량까지 올라갔다. 선은 굵어지며 꿈틀거렸다. 해 질 녘에 바다가 저 선을 따라 들어온다. 그 선 위에 선 구역은 남지 못한다.
“저거 지금 저기 사람 있어요.” 보람이 컵라면을 내려놓았다. “자갈치 쪽 구역 있잖아. 어제 지도에 흰 점 있었어.”
“구역 사람들이 하늘 지도 보고 있을까요?”
“보고 있으면 이미 뛰었겠지.”
신의 방송은 신들을 위한 방송이었다. 하늘 지도는 보이지만 누가 어느 구역 사람인지, 그 사람이 지금 지도를 올려다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통신이 살아 있는 동네도 있고 끊긴 동네도 있었다. 서 과장 같은 사람이 기지국을 내린 동네도 있었다.
나는 화면을 봤다. 동시 시청자 82,000. 그 숫자 안에 자갈치 사람이 몇은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이모와 사촌과 거래처 사장님까지 치면 더 많았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 방송은 지도예요.” 나는 왼쪽 위 칸, 내 칸을 향해 말했다. “하늘에 붉은 선 보이시죠? 저 선 위에 아는 사람 있으면 지금 전화하세요. 문자하세요. 전화 안 되면 그 동네 사는 다른 사람한테 하세요. 위로 올라가라고. 산복도로 쪽으로.”
산복도로는 부산 원도심 산허리를 감아 도는 높은 길이다. 물길에서 가장 가까운 높은 땅이었다.
형근이 노래를 끊었다. 반짝이 재킷 소매로 이마를 훔치고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자, 형근이 노래방 손님 여러분. 오늘은 노래 말고 전화 돌립시다. 자갈치 이모들 전화번호 아는 분. 중앙동 인쇄 골목 사장님들 아는 분.”
태오의 칸에서 엔진 소리가 커졌다. 그는 경자호를 남항 쪽으로 돌리면서 짧게 말했다. “자갈치 앞 물양장. 배 대 있는 사람들 다 아는 사람이에요. 무전 칩니다.”
물양장은 작은 배를 대는 부두 자리다. 태오의 화면 속에서 그는 낡은 무전기를 입에 대고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영진호 형님」 「은숙이 누나」 「박 선장님」.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다가 대답이 왔다.
열두 줄로 엮인 채팅창이 한꺼번에 미쳤다. 「중앙동 우리 삼촌 연결됨 올라간대」 「자갈치 2층 건어물 사장님 아들입니다 아빠한테 전화 함」 「초량 사는 친구 문자 씹음 ㅠ 누가 초량 가 줄 사람」 「저 초량 근처 편의점 알바 지금 뛰어감」. 글자가 너무 빨리 흘러 무늬가 됐고, 무늬 사이사이에 사람 이름과 동네 이름이 박혔다.
*
그때 다리 남쪽 끝에서 그들이 올라왔다.
마용팔은 붕대 위에 무릎 보호대를 찼고, 고추장 자국은 어제 지운 듯했다. 뒤에 다섯이 섰다. 어제보다 둘이 늘었다. 그들 모두 어깨에 하얀 눈을 띄웠다. 하늘의 붉은 글씨가 그들 쪽에도 내 쪽에도 똑같이 몰렸다. 「왔다」 「싸워」 「다리 위에서」.
영도대교는 영도와 부산 시내를 잇는 오래된 다리다. 다리 한쪽 상판이 하늘로 들리게 만들어져 있어서 평소엔 하루에 한 번씩 다리가 일어섰다. 하늘이 열린 뒤로는 일어서지 않았다. 우리는 그 다리 한가운데서 마주 섰다.
“형님, 오늘은 안 봐줍니다.” 마용팔이 다리 난간을 쇠파이프로 긁으며 걸어왔다. “오늘은 저도 안 보고 칩니다. 하늘에 저 크게 나와도 상관없어요. 물것 오면 같이 맞으면 되죠.”
“용팔 씨, 지금 저 아래 바다로 물 들어와요. 자갈치 사람들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중이에요. 그거 좀 같이 해요.”
“그건 형님 시청자 일이고요.” 그가 멈췄다. 다섯 걸음 앞이었다. “제 일은 형님이에요. 열 배.”
보람이 내 옆에서 컵라면 용기를 손에 쥐었다. 떡볶이 냄비보다는 약했다. 보람도 그걸 알았는지 용기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후원이 끊긴 보람의 다리가 떨리는 게 보였다.
마용팔이 뛰었다. 가호가 든 몸은 빨랐다. 내가 한 걸음 물러나는 동안 그는 세 걸음을 왔다. 쇠파이프가 내 왼팔을 쳤다. 팔 안쪽에서 무언가 우두둑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를 귀보다 이빨로 먼저 들었다. 난간에 등이 박혔다. 다리 아래로 회색 바다가 보였다. 칠 미터쯤.
바다가 차오르고 있었다. 다리 교각 아래 물살이 평소와 반대로,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흘렀다. 물빛이 검어지고 있었다.
「태오낚시: 민결 씨 아래」
보람 휴대폰 속 왼쪽 아래 칸에, 다리 교각이 보였다. 경자호가 교각 바로 아래까지 와 있었다. 태오가 뱃전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무표정이었다.
“용팔 씨.”
“네.”
“근육은 물에 뜨나요?”
마용팔이 대답하기 전에 나는 난간을 넘었다.
떨어지는 동안 하늘 화면이 내 눈앞에 거꾸로 펼쳐졌다. 수천 칸 사이로 붉은 테두리의 내 칸에서 하늘과 바다가 빙글 돌았다. 신들의 글씨가 폭죽처럼 터졌다. 「뛰었다」 「죽었나」 「아직」. 물이 얼굴을 쳤다. 짰고, 차가웠고, 생각보다 딱딱했다. 귀로 물이 밀려들어 와 세상의 소리가 웅웅거리는 한 덩어리가 됐다. 팔이 안 움직였다. 왼팔 아래로 바다가 무겁게 감겨 왔다.
손 하나가 내 뒷덜미를 잡았다.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 목덜미 피부를 쓸며 나를 끌어올렸다. 뱃전에 배가 걸리고, 다리가 걸리고, 나는 경자호 바닥에 생선처럼 엎어졌다. 바닥에서 미끼 냄새와 기름 냄새와 오래된 비린내가 났다.
“물 뱉어요.” 태오가 말했다.
나는 물을 뱉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다리 난간에서 마용팔 무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용팔도 뛰어내릴 것처럼 난간에 발을 올렸다가, 패거리 하나가 그의 허리를 잡아끌었다. 그 대신 보람이 뛰어내렸다. 보람은 뛰어내리기 전에 휴대폰을 비닐봉지에 넣고 입으로 매듭을 묶었다. 그 동작이 너무 침착해서 나는 물속에서도 웃었다.
태오가 갈고리 장대를 내밀었다. 보람은 장대 끝을 잡지 않고 장대를 쥔 태오의 팔뚝을 잡았다. 태오가 한 번에 끌어올렸다. 경자호가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보람은 뱃바닥에 주저앉아 머리카락에서 물을 짜고, 이빨 사이에 물고 있던 비닐봉지 매듭을 퉤 뱉었다.
“아저씨, 이 배 몇 명 타요?”
“넷이요. 낚시꾼 넷.”
“그럼 됐네. 우리 둘이면 반이야.” 보람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방수 비닐 속 화면이 멀쩡하게 빛났다. “봐요. 먹방하는 사람은 국물에 폰 빠뜨려 본 적이 백 번이라 이런 건 몸이 알아.”
네 칸 화면 오른쪽 아래에서 형근이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둘 다 살았답니다! 박수! 신청곡 받습니다!” 형근의 채팅창에 「바다가 육지라면」 신청이 여섯 개 올라왔다. 형근은 진짜로 그 노래 전주를 틀었다. 신들의 글씨가 「또 시끄러」를 띄웠다. 태오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엔진을 올렸다. 그래도 그의 발끝이 박자를 탔다.
*
경자호가 남항을 가로질러 자갈치 앞 물양장 쪽으로 붙었을 때 해가 졌다.
바다가 들어오는 소리는 파도 소리가 아니었다. 오래 참은 숨을 내쉬는 소리였다. 물양장 바닥이 잠기고, 자갈치 시장 일층 셔터가 잠기고, 물은 그대로 큰길을 타고 원도심 안쪽으로 밀려 올라갔다. 하늘 지도의 붉은 선을 정확히 따라갔다. 물길 위 흰 점 하나가 깜박이다 꺼졌다.
나는 꺼진 점을 봤다. 비닐봉지에서 꺼낸 보람의 휴대폰 화면도 같이 봤다. 열두 줄로 엮인 채팅창이 천천히 정리되고 있었다. 「삼촌 산복도로 도착 확인」 「건어물 사장님 이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심」 「초량 편의점 알바 친구 찾음」. 그리고 그 사이에 하나. 「중앙동 인쇄 골목 우리 아버지 전화 안 받음」.
그 사람은 그 뒤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내 휴대폰은 바다에 있었다. 312명이 처음부터 모여 있던 채팅창, 등대빵의 할머니가 고맙다던 그 한 줄이 남은 화면은 영도대교 아래 어딘가 바닥에 있을 것이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로 퉁퉁 부어 올랐다. 태오가 낚싯대 받침대 두 개로 부목을 대고 낚싯줄로 감았다. 줄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파요?”
“아파요.”
“다행이네요. 안 아프면 끊어진 거예요.”
태오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 한쪽만 올라갔다.
그때 하늘의 붉은 글씨들이 한꺼번에 흩어졌다. 수천 칸 위를 떠돌던 글씨들이 길을 비켰다. 사흘 전 밤, 반지하 창 너머에서 봤던 모양이었다. 큰 글씨 하나가 비켜 준 길로 천천히 내려왔다. 그 글씨는 우리 넷의 칸을 잇는 금줄 열두 개 위에 멈췄다.
「한 줄은 끊는다」
오른쪽 아래 칸에서, 형근이 노래방 기계 앞에 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반짝이 재킷이 화면 빛을 받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