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34자)
끄면 312명이 길을 잃어요
신들이 내 방송에 후원을 끊었다 · 한도윤
7월 10일 오전 열한 시 이 분, 나는 해운대 구역 체육관 뒤쪽 체육 창고에서 뜀틀을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박 반장이 열 시 오십팔 분에 철문을 열어 준 조건은 하나였다.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벽만 볼 것. 그래서 나는 뜀틀과 벽 사이 한 뼘 틈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뜀틀 가죽은 오래돼서 갈라졌고 갈라진 틈마다 고무 냄새가 났다. 누가 매직으로 「3학년 7반 김준호 바보」라고 써 놓았다. 붉은 눈은 그 글씨를 하늘에 크게 띄우고 있었다.
「벽이네」 「지루해」 「김준호가 누구야」
신들의 글씨가 시들시들하게 흘렀다. 처형 방송을 보러 왔더니 뜀틀만 나오니 그럴 만했다. 그래도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언제 내가 고개를 돌릴지, 그때 무엇이 비칠지 기다렸다.
사람 쪽 채팅은 반대로 뜨거웠다. 달맞이길에서 마용팔이 물것에 다리를 물린 영상을 누군가 잘라 올렸고, 그 아래 밥솥 영상이 붙어 돌아다녔다. 동시 시청자는 점심 무렵 1,000을 넘었다. 「신규: 밥솥 형 여기임?」 「신규: 김준호 바보 ㅋㅋㅋ」 「삼십대백수: 공지) 방향은 형 몸 기준. 신규들 숙지 바람」.
민아는 체육관 안쪽에서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구역에 간호조무사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다. 나는 그 장면을 못 봤다. 민아가 문자로 보내 준 사진만 봤다. 퉁퉁 부은 발목에 압박 붕대가 감겨 있었고, 사진 끝에 「벽 잘 봐」라고 적혀 있었다.
열두 시 반에 점심이 왔다. 창고 문이 빼꼼 열리고, 쓰레받기 하나가 바닥을 미끄러져 내 엉덩이 옆에 와 멈췄다. 쓰레받기 위에 주먹밥 하나와 종이컵 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주먹밥은 소금만 쳤고 내 주먹의 반만 했다.
“하나요?”
“하나다.” 박 반장의 목소리였다. “여기 육백이 다 하나다. 니만 두 개 주면 니가 방송에서 떠들 거 아이가. 박용구 구역은 밥을 두 개 준다꼬.”
“저 안 떠들어요.”
“니 직업이 떠드는 기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는 주먹밥을 반으로 쪼개 반을 먹고, 반은 비닐에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민아 몫이었다. 채팅창에 「쭈꾸미99: 형 그거 민아 씨 주려고?」 「민결이엄마아님: 아이고」 「해운대불주먹: 박용구 구역 밥 하나 줌. 기억함」이 올라왔다. 박 반장이 정확히 맞혔다. 나는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기 전에 박 반장이 한 마디 더 했다.
“돌아보지 마라. 니 돌아보면 내가 그 눈깔부터 각목으로 친다.”
“그거 치면 아저씨 손 타요.”
“그라믄 니 대가리를 친다.”
*
오후 세 시에 그 사람이 왔다.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고무장화 밑창이 마룻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둘인지 셋인지 몰랐다. 나는 돌아보지 못했다. 돌아보면 하늘에 그 사람들이 나간다.
“조민결 씨죠. 그대로 계세요. 돌아보지 마시고요.”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서두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접이식 의자 펴는 소리가 났다.
“국가정보원 방송 대응팀 서경란 과장입니다. 국가정보원은 나라의 정보기관이에요. 이 일이 터지고 팀이 하나 생겼고, 저는 어제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신분증 보여 주시면 안 돼요?”
“보시려면 돌아보셔야 하는데요.”
“아. 그럼 됐어요.”
뜀틀 가죽 틈에서 개미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나는 그 개미를 보면서 서 과장의 말을 들었다. 등 뒤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어제 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부산에서 구역 세 곳이 무너졌습니다. 세 곳 다 방송인이 들어간 다음이었어요. 하늘에 구역 안이 비치고, 신들이 보고, 거기로 그것들이 왔습니다. 금정구 한 곳은 아흔 명 중에 서른 명이 나왔어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개미가 뜀틀 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붉은 눈은 저희도 못 끕니다. 대신 파도TV 쪽, 사람 쪽 송출은 끌 수 있어요. 그걸 꺼 주세요. 지금 민결 씨 방송에 사람 시청자가 천 명이 넘게 붙어서 위치를 추측하고, 퍼 나르고, 오겠다는 사람까지 있어요. 사람들이 몰리면 구역이 드러납니다.”
“그 방송은 하늘에 안 나가요. 사람만 봐요.”
“사람도 하늘 아래 삽니다.” 서 과장이 의자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조금 가까워졌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꺼 주시면 민아 씨는 부산 밖 대피 차량 첫 줄에 태워 드릴게요.”
동생 이름이 나왔다. 서 과장은 이미 다 알고 왔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봤다. 채팅창에 「등대빵」의 글이 떠 있었다.
「등대빵: 형 저희 빌라 삼층까지 물 참. 할머니랑 옥상 왔어요. 반여동 ○○빌라. 구역까지 못 갈 듯」
그 밑으로 「누나는퇴근중: 반여 쪽 지금 내가 보는 지도로는 재송동 넘어가는 고가 아직 안 잠김」 「쭈꾸미99: 등대빵님 옥상에 뭐 있음? 사다리?」 「해운대불주먹: 나 반여 2동임 그 빌라 알아」가 줄줄이 붙었다. 내 방송인데 내가 하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시청자들이 자기들끼리 길을 찾고 있었다.
“과장님, 7단계 해방은 읽어 보셨어요?”
“읽었습니다.” 서 과장이 바로 대답했다. “사람 시청자 백만이 한 채널을 동시에 보면 그 채널의 하늘이 닫힌다. 저희 팀이 사흘 동안 그 한 줄만 들여다봤어요.”
“그럼……”
“신이 쓴 문장이에요. 신이 쓴 문장을 믿고 백만 명을 한 방송 앞에 모으면, 그 방송에 비친 곳이 어떻게 될지 저희는 모릅니다. 저는 모르는 데 백만 명을 걸 수 없어요.”
그 말은 맞았다. 나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대답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제가 끄면 312명이 길을 잃어요.”
“천 명이 넘는다면서요.”
“천 명 중에 312명은 처음부터 있던 사람들이에요. 지금 반여동 옥상에 할머니랑 있는 사람이 그중 하나예요. 이 채팅창이 그 사람 지도예요. 제가 끄면 지도가 꺼져요.”
등 뒤가 조용했다. 빗소리만 함석지붕을 두드렸다.
“알겠습니다.” 서 과장이 의자를 접었다. “그럼 저희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이 구역 반경 일 킬로미터 기지국을 오늘 밤 여덟 시부터 내립니다. 원래 구역 보호 지침이에요. 민결 씨 때문에 앞당길 뿐입니다.”
“그럼 여기 육백 명 다 전화 안 되잖아요.”
“전화가 안 되면 위치도 안 샙니다.” 고무장화 소리가 문 쪽으로 멀어졌다. “민아 씨 차량 자리는 내일 아침까지 비워 두겠습니다.”
*
밤 여덟 시 정각, 휴대폰 화면 왼쪽 위의 안테나가 하나씩 꺼졌다. 체육관 안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누군가 「아 씨, 엄마랑 통화 중이었는데」 했다. 나는 벽을 보며 그 웅성거림을 들었다. 육백 명이 동시에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 소리가 났다. 플라스틱 케이스가 부딪치는 소리, 혀 차는 소리.
마지막 채팅은 「등대빵: 형 저희 사다리 찾음 근데 어디로」였다.
민아가 창고로 왔다. 목발 대신 대걸레 자루를 짚고, 붕대 감은 발을 바닥에 안 닿게 들고. 민아는 내 등 뒤에 서서 한참 말이 없었다.
“지붕.”
“뭐?”
“체육관 지붕. 아까 아주머니가 그랬어. 지붕 꼭대기에선 저 동쪽 바닷가 송정 쪽 기지국이 한 칸 잡힌대. 거기서 빨래 널다가 남편이랑 통화했대.”
“지붕에서 고개 돌리면 하늘에 구역 다 나가.”
“바다 쪽만 봐. 뒤 돌아보지 말고.” 민아가 대걸레 자루로 내 등을 툭 쳤다. “오빠 그거 잘하잖아. 어제부터 계속 그러고 있잖아.”
체육관 뒤편 비상계단은 녹이 슬어 손에 쇳가루가 묻어났다. 계단 끝에서 철제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랐다. 지붕은 함석판이 물고기 비늘처럼 겹쳐진 경사면이었고,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나는 무릎으로 기어 꼭대기 용마루에 걸터앉았다. 바다 쪽을 향해서. 해운대 앞바다는 까맸고, 그 위 하늘에 수천 칸이 떠서 바다를 희미하게 비췄다. 바다에 하늘이 비치는 게 아니라 하늘에 바다가 비쳤다. 그중 붉은 테두리의 칸에 까만 바다만 가득했다.
안테나가 한 칸 떴다. 채팅창이 쏟아졌다.
「해운대불주먹: 형!!!」 「누나는퇴근중: 등대빵님 지금 사다리로 옆 건물 옥상 건넜대요」 「쭈꾸미99: 그 옆 건물에서 재송 고가까지 몇 미터?」 「등대빵: 할머니가 무섭다고 안 건넌다 하심」
나는 바다만 봤다. 그리고 말했다.
“등대빵 님,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등대빵: 옥순이요 강옥순」
“옥순 할머니. 저 밥솥 형이에요. 할머니 손주가 제 방송 첫날부터 봤어요. 312명 중 하나예요. 걔가 건너면 할머니도 건너셔야 돼요. 걔는 할머니 없으면 안 건넌대요.”
그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었다. 등대빵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채팅창이 한참 조용했다. 빗소리가 함석을 두드렸고, 내 엉덩이 밑으로 차가운 물이 스며들었다.
「등대빵: 할머니가 밥솥 형이 누구냐고 하심」
「삼십대백수: 설명하지 마 길어짐」
하늘의 글씨들은 그 사이에도 내 칸 위를 맴돌았다. 「바다네」 「또 바다」 「돌아봐」 「뒤에 뭐 있어?」. 신들은 내 등 뒤를 궁금해했다. 등 뒤 체육관 천장 아래에서 육백 명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바다 쪽으로 턱을 조금 더 들었다. 목덜미가 쑤셨다. 어제부터 한 번도 마음 놓고 고개를 돌려 본 적이 없었다.
밤 열 시 사십 분, 고가 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열한 시 반, 「누나는퇴근중」이 자기가 모는 시청 비상 버스가 재송 고가 밑을 지나간다고 했다. 그 사람이 정말 버스 기사인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새벽 한 시 십 분, 채팅 한 줄이 올라왔다.
「등대빵: 버스 탔어요. 할머니가 형한테 고맙대요. 밥솥 꼭 새로 사래요」
나는 용마루에 걸터앉은 채 바다를 봤다. 동시 시청자 4,180. 그 숫자보다 그 한 줄을 오래 봤다. 눈이 따가웠다. 빗물 때문이라고 해 두기로 했다.
그때 함석지붕이 울렸다.
내 발밑 처마 홈통에서, 빗물이 흘러내리는 쪽으로 무언가 거꾸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바다를 비추는 내 칸을 신들이 몇 시간째 지켜보는 동안, 그 시선은 바다에서 지붕까지 물것을 끌어올렸다. 다리 끝이 함석 이음매를 긁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몸을 돌릴 수 없었다. 돌리면 체육관이 나간다. 바다를 본 채로 뒷걸음질 쳐 용마루를 타고 내려가는데, 아래에서 손전등 불빛이 올라왔다. 박 반장이 각목 든 청년들과 비상계단에 서 있었다. 청년 하나가 각목으로 홈통을 내리쳤고, 물것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져 버둥거렸다.
박 반장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내일 해 뜨면 나가라. 동생은 둬라. 내가 정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쥔 휴대폰이 진동했다. 파도TV 메시지함에 처음 보는 이름이 떠 있었다.
「보람찬밥상 왕보람: 합방하실래요? 서면 지하상가. 밥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