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99자)
전남편의 비탈
신이 죽은 신전에서 새 신 오디션을 엽니다 · 장연무
“솥은 왜 가져갔어?”
뮐바흐 촌장이 수레 위에서 말했다. 경계석 앞의 첫마디로는 이상했다. 캐스퍼는 마르그리트를 보았다. 마르그리트는 낫을 쥔 채 대답했다.
“내가 산 솥이야.”
“내 어머니가 쓰던 솥이야.”
“네 어머니가 나한테 줬어. 너 같은 놈하고 사느라 고생한다고.”
수레 위의 뮐바흐 사내들이 웃음을 참느라 쇠스랑 자루를 고쳐 쥐었다. 촌장의 목이 붉어졌다. 아델하이트는 뒤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밤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
“솥 얘기 하러 온 거 아니잖아.”
마르그리트가 경계석에 한 손을 짚었다. 이끼가 손바닥 아래에서 축축했다.
“뮐바흐 비탈에서 찬 공기가 내려와. 여드레 뒤 첫서리야. 리베 바람 정령이 네 비탈 위에서부터 공기를 섞어야 리베가 산다. 그러려면 네 비탈을 일구는 사람들이 그 정령을 믿어야 하고.”
“그러니까 우리 보고 리베 신을 믿으라고?”
“믿어 보라고.”
“뮐바흐는 다섯 해 전에 신전을 닫았어. 우리 신은 그때 끝났고, 지금은 빛의 신을 모셔. 추기경님이 그렇게 정해 주셨지.”
촌장이 수레에서 뛰어내렸다. 마르그리트 앞 한 걸음까지 와서 섰다. 키가 그녀보다 머리 하나 컸다.
“그리고 리베는 우리 물방아 물길을 두고 벨렌스 주교 법정에 소송을 걸었지. 칠 년째. 네 집안이 걸었고.”
“네가 우리 냇물을 돌려서 물방아를 돌렸으니까.”
“냇물은 위에서 흘러. 우리 땅이야.”
“냇물은 아래로 흘러. 그러니까 우리 거야.”
캐스퍼가 끼어들 틈을 찾다가 포기했다. 아델하이트가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뮐바흐 촌장과는 어젯밤 이야기를 마쳤네. 뮐바흐 사람들이 리베 이단 집회에 발을 들이지 않으면, 대신전이 물길 소송에서 뮐바흐 편을 들 걸세. 그리고 올해 뮐바흐 포도는 제값에 사지. 셋에 셋.”
마르그리트가 고개를 돌려 추기경을 보았다. 아델하이트는 이 눈을 피하지 않았다.
“리베는 셋에 하나, 뮐바흐는 셋에 셋이네. 위아래 마을이 서로 다른 값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자네들도 곧 알게 되겠지.”
*
“길은 막아도 선술집은 못 막습니다.”
비탈을 내려오다 말고 캐스퍼가 말했다. 마르그리트가 캐스퍼를 쳐다보았다.
“뮐바흐 선술집 주인이 촌장 편이야?”
“선술집 주인은 손님 편이지요.”
이들은 경계석을 피해 밤나무 숲 사이 오솔길로 다시 올라갔다. 리베 신들이 뮐바흐 땅을 밟지 말라는 말은 있었지만, 리베 사람이 뮐바흐 선술집에서 술을 사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오린이 이 차이를 소리 내어 두 번 확인했다.
“규칙상 막을 근거가 없습니다.”
“심문관 양반, 의외로 쓸모가 있소.”
오린의 어깨 위에서 그르륵이 말했다. 무릎 높이로 돌아온 몸이 어깨에 올라앉기엔 무거워서, 오린은 한쪽으로 기운 채 걸었다. 내려놓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뮐바흐 선술집은 물방아 옆에 있었다. 물레바퀴가 냇물을 퍼 올리며 철벅철벅 돌았고, 이 소리가 탁자 위 잔을 떨게 했다. 주인은 캐스퍼가 내민 은화 한 닢을 받자마자 마당을 내주었다. 마르그리트가 바쿨이 익힌 자기 밭 포도주 한 통을 지고 왔다. 이것을 한 잔씩 돌리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리베 포도주가 왜 이렇게 달아?”
“우리 밭에서 신이 익혔어.”
마르그리트가 말했다. 웃는 사람이 반, 잔을 다시 내미는 사람이 반이었다.
캐스퍼가 술통에 한 발을 올렸을 때 마당 문으로 쇠스랑 둘이 들어왔다. 경계석에서 수레 위에 서 있던 촌장 사내들이었다.
“촌장님 말씀이오. 리베 신들은 뮐바흐 땅에 못 들어오오.”
오린이 한 걸음 나섰다. 어깨에 개구리를 얹은 채였다.
“이 마당은 선술집 주인의 땅입니다. 그리고 리베의 후보들은 아직 한 발도 뮐바흐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저 개구리는 뭐요?”
“제 어깨 위에 있습니다. 제 어깨는 대신전 소속입니다.”
“바람 정령은?”
“사제 소매 속에 있습니다.”
사내들이 서로를 보았다. 그르륵이 오린 어깨 위에서 목을 부풀려 거들었다.
“술의 신은 오늘 리베에서 외상값 갚느라 못 왔소.”
선술집 주인이 사내들에게 잔 두 개를 밀어 주었다. 사내들은 쇠스랑을 담에 기대 세우고 잔을 받았다. 첫 모금에 둘 다 눈이 커졌다. 이들은 촌장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캐스퍼는 술통 위에 올라섰다. 리베에서보다 목소리를 한 단 낮췄다.
“오늘은 후보 한 분만 모시겠습니다. 바람 정령 휘오 님입니다.”
휘오는 나오지 않았다. 캐스퍼 소매 속의 차가움이 팔꿈치까지 기어 올라갔다.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다 모르는 사람.”
“압니다.”
“리베에서는 할머니들이 있었잖아요.”
캐스퍼는 소매를 억지로 열지 않았다. 대신 마당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서른 남짓이 잔을 들고 캐스퍼를 보았다. 할 말을 찾다가 그만두고 술통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술은 마저 드십시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때 마당 구석, 물방아 그늘에 앉아 있던 늙은이가 고개를 들었다. 일흔은 넘어 보였고,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였으며, 무릎에 낡은 천 모자를 얹어 두고 있었다. 늙은이는 코를 킁킁거렸다.
“기름 냄새가 나는데.”
“예?”
“아마인 기름. 풍차 날개 돌쩌귀에 바르던 거. 그리고 밀가루.”
늙은이가 일어섰다. 지팡이 없이 섰는데 다리가 휘청했다. 캐스퍼 소매 쪽으로 다가와 코를 바짝 댔다. 소매가 움찔했다.
“다섯 해 전에 헐린 언덕 위 풍차, 그 풍차 날개 사이로 불던 바람에서 이 냄새가 났지. 날개가 돌 때 휘이오, 휘이오 소리가 나서 우리 방앗간 사람들이 그 바람을 그렇게 불렀어.”
늙은이가 소매에 대고 불렀다.
“휘오.”
소매 속이 한참 조용했다. 그러다 김이 흘러나왔다. 휘오는 늙은 방앗간지기 앞에 섰다. 허리 아래가 아직 흐렸다. 늙은이는 손을 뻗어 이 흐릿한 얼굴께에 갖다 댔다. 손이 반쯤 통과했다.
“너였구나. 물방아 생기고 풍차 헐 때, 우리가 너한테 인사도 안 했다.”
“괜찮아요.”
휘오가 말했다. 목소리가 리베에서보다 컸다.
“그 뒤로 아무도 제 이름을 안 불러서, 제가 휘오인지도 잊어버릴 뻔했어요.”
방앗간지기가 마르그리트를 돌아보았다. 마르그리트가 이 마을 촌장의 아내로 산 열 해를 방앗간지기는 다 보았다.
“마르그리트. 너는 이걸 믿냐?”
“믿어. 고모할머니 믿고 믿기로 했어. 아저씨, 나 알지?”
“알지. 헤어지고 리베로 내려가서도 우리 방아 삯은 한 번도 안 떼먹은 사람.”
늙은이가 휘오를 다시 보았다.
“나도 믿어 보마. 너 말고 마르그리트를.”
캐스퍼는 소매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휘오의 허리 아래가 진해지며 무릎이 생겼다. 마당 사람들이 술잔을 든 채 입을 벌렸다. 방앗간지기의 두 아들이 아버지 곁으로 왔다. 큰아들이 말했다.
“아버지가 믿으면 나도 믿지.”
이날 해 질 무렵까지 뮐바흐에서 휘오를 믿은 사람은 열다섯이었다. 방앗간지기 집안 식구와 이들에게 방아를 맡기는 비탈 위 다섯 집. 캐스퍼는 셌고, 이 열다섯 가운데 휘오를 믿어서 믿은 사람이 없다는 것도 셌다.
*
예배당 종이 울렸다. 뮐바흐의 옛 신전은 다섯 해 전 대신전 예배당으로 바뀌어 지붕에 해 무늬 깃발이 달려 있었다. 아델하이트가 이 마당에서 빛의 신의 축복을 시작했다. 촌장이 맨 앞줄에 섰고, 선술집에 왔던 사람들 몇도 종소리를 따라 그리로 갔다.
캐스퍼는 오린과 함께 예배당 마당 끝에 섰다. 아델하이트가 축복을 마치고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
“오늘 리베의 사제가 이 마을 선술집에서 집회를 열었다고 들었네. 그 사제에 대해 뮐바흐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네.”
아델하이트가 오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린이 품에서 천에 싼 무언가를 꺼냈다. 질그릇 단지였다.
캐스퍼는 걸어 나갔다. 오린이 반 걸음 따라왔지만 막지는 않았다. 맹세는 무엇을 하든 보기만 하라는 것이었다. 캐스퍼는 아델하이트 옆을 지나 예배당 계단 두 번째 단에 섰다. 사람들이 캐스퍼를 보았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게 빠릅니다.”
아델하이트가 손을 내리지 않은 채 캐스퍼를 보았다.
“저는 리베 신전 사제 캐스퍼 웰입니다. 삼 년 동안 신이 대답하지 않는 신전에서 제단 밑에 화로를 숨기고, 제주에 꿀을 탔습니다. 대신전에 바친 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베 사람 예순 집 문 앞에서 그저께 하나하나 고백했고, 밀가루와 소금을 맞았습니다. 그 단지가 그 꿀단지입니다. 추기경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마당이 웅성거렸다. 선술집에서 온 방앗간지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리쳤다.
“꿀 탄 사제가 제 입으로 그러는 건 처음 보네!”
몇 사람이 웃었다. 아델하이트는 웃지 않았다. 계단을 한 단 올라 캐스퍼와 같은 높이에 섰다.
“고백도 수법이네, 사제.”
“네. 수법입니다.”
캐스퍼가 아델하이트를 보았다.
“이번에는 참말로 하는 수법입니다. 그래서 오늘 뮐바흐에서 휘오 님을 믿은 열다섯 분은 저를 믿지 않으셨습니다. 마르그리트 씨를 믿고, 방앗간 어르신을 믿으셨습니다. 제 꿀이 아무리 들통나도 그분들 믿음은 안 깨집니다.”
아델하이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델하이트는 이 셈을 이미 했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 셈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열다섯이면 비탈 하나도 못 덮네.”
“압니다.”
“이 비탈의 절반은 촌장 땅이네.”
“그것도 압니다.”
*
경계석으로 내려가는 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린이 캐스퍼 옆으로 반 걸음 붙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예배당 계단에서 하신 고백, 수법이었습니까?”
“반은요.”
“나머지 반은 무엇입니까?”
“그젯밤 제단 앞에서 미리 해 본 말입니다. 심문관님도 들으셨지요.”
오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린의 어깨 위에서 그르륵이 오린의 귀가 붉어졌다고 말했고, 오린은 이 개구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경계석 앞 밤나무 아래에서 촌장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수레는 치웠고 쇠스랑을 든 사내들도 없었다. 마르그리트의 발이 멈췄다. 캐스퍼와 오린은 몇 걸음 뒤에 섰다.
“방앗간 아저씨가 믿었다며.”
“응.”
“우리 아버지 때부터 저 양반 말이면 뮐바흐 사람 반은 따라가.”
촌장이 경계석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이끼가 벗겨졌다.
“비탈 열어 줄게. 내 땅도. 내 땅 일꾼들이 뭘 믿든 안 막고, 뮐바흐 사람들한테도 막으라고 안 할게.”
“값은?”
“물길 소송 거둬. 리베가 다시는 그 냇물에 손 안 댄다고, 네 손으로.”
마르그리트가 숨을 들이쉬었다.
“그 물은 우리 아랫밭 마흔 집이 여름마다 나눠 써.”
“알아. 그래서 값이 되는 거지.”
촌장이 손을 내밀었다. 마르그리트는 이 손을 한참 보았다. 그러다 목에 걸린 가죽끈을 끌어 올렸다. 끈 끝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쇠 열쇠가 달려 있었다. 녹이 슬어 검붉었고, 머리 부분이 손때에 닳아 반들거렸다. 경계석 바로 아래 리베 쪽 물꼬를 여닫는 열쇠, 마르그리트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집안 맏이 목에 걸려 내려온 것이었다.
캐스퍼는 이 열쇠를 처음 보았다. 마르그리트가 이것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해가 비탈 너머로 떨어지며 열쇠 머리에 마지막 빛이 걸렸다.
“이걸 주면.”
마르그리트가 전남편을 보았다.
“리베 사람들은 내가 마을 물을 팔았다고 하겠지.”
“하겠지.”
마르그리트의 손가락이 열쇠를 쥐었다 폈다. 가죽끈이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