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790자)
심사위원장 마르그리트
신이 죽은 신전에서 새 신 오디션을 엽니다 · 장연무
아델하이트는 탁자 위의 포도송이를 집지 않았다. 대신 마르그리트를 올려다보았다.
“포도밭 주인. 자네는 신을 안 믿는다고 들었네.”
“안 믿어.”
“그런데 심사를 하겠다고?”
“내 밭이 걸렸으니까. 따는 날을 열흘 미뤘어. 그 열흘 동안 저 사제가 감옥에 있든 말든 상관없는데, 오디션이 멈추면 내 열흘이 헛것이 돼.”
마르그리트가 경비병의 쇠 장갑에서 손을 떼고 탁자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낫 끝이 돌바닥을 긁었다.
“내기하자, 추기경.”
광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첫서리 밤까지 오디션을 계속한다. 사제는 감옥 대신 저 심문관이 데리고 다니고. 첫서리 밤에 골짜기 포도가 얼면, 그때는 내가 내 포도밭을 통째로 대신전 값에 넘긴다. 셋에 하나 값으로. 신전 문도 마을이 닫아 주고, 사제도 묶어서 벨렌스로 보내 줄게.”
“안 얼면?”
“대신전은 리베 신전을 닫지 않는다. 마당 나무도 안 뽑고.”
아델하이트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만 움직였다.
“강가 바닥, 리베에서 제일 큰 밭이지. 대신전 성찬 포도주의 절반이 거기서 나오네.”
“알아. 사제 양반이 혀로 맞혔잖아.”
“그 밭을 셋에 하나 값으로 내놓겠다는 건가?”
“얼면.”
아델하이트가 오린을 보았다. 오린이 한 걸음 나섰다.
“맹세는 대신전의 이름으로 하시고, 증인은 제가 섭니다. 한 번 한 맹세는 대신전 법정의 심리 없이는 무를 수 없습니다. 양쪽 다입니다.”
마르그리트가 오른손을 들었다. 아델하이트도 반지 낀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했고, 오린이 이 말을 한 글자씩 따라 외웠다. 경비병이 캐스퍼의 팔을 놓았다. 팔뚝에 쇠 장갑 자국이 붉게 남았다.
“오린. 오늘부터 첫서리 밤까지 자네가 사제 곁에 있게. 잘 때도.”
“잘 때도입니까?”
“잘 때도.”
오린의 목젖이 한 번 움직였다.
*
마르그리트는 이날 오후 신전 계단에 술통 하나를 엎어 놓고 이 위에 앉았다. 심사위원장 자리였다. 후보 셋이 이 앞에 섰다. 바쿨은 손을 떨었고, 그르륵은 참개구리 크기로 계단 한 칸에 겨우 올라앉았으며, 휘오는 캐스퍼 손목에서 김처럼 흔들렸다.
“이름 말고, 할 줄 아는 걸 말해.”
“이 몸은 반신 그르륵.”
“이름 말고.”
그르륵이 입을 다물었다.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얼굴이었다.
“물. 이슬, 안개, 그리고 개구리들 말을 알아듣소. 개구리가 입 다무는 밤을 맞히오.”
“다음.”
“익혀. 포도랑 술.”
바쿨이 짧게 말했다. 마르그리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휘오의 김이 캐스퍼 손목에서 떨렸다. 소리가 너무 작아 마르그리트가 몸을 숙였다.
“위랑 아래를 섞어요. 공기를.”
“좋아. 하나 더 묻자. 셋 다 저 사제가 꿀 탄 거 알았어?”
“몰랐어.”
바쿨이 말했다.
“이 몸은 그게 어머니의 숨인 줄 알고 그 벽에 등을 대고 잤소.”
그르륵이 말했다. 휘오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따뜻해서 좋았어요.”
마르그리트가 캐스퍼를 보았다.
“사제 양반. 집집마다 돌아.”
“네?”
“이 마을 예순 집, 한 집도 빼지 말고 문 앞에 서서 뭘 속였는지 하나하나 말해. 꿀, 숯, 곳간 술통, 다. 문을 안 열어 주면 문에 대고 말해. 문을 열고 소금을 뿌리면 소금을 맞고 말해.”
“그게 심사입니까?”
“아니. 심사위원장 명령이야.”
*
오린이 문을 두드렸다. 캐스퍼의 손으로 두드리면 아무도 안 열어 줄 거라고 마르그리트가 정했다. 오린은 문을 정확히 세 번 두드리고 반 걸음 물러섰고, 이 어깨 위에는 참개구리만 한 그르륵이 앉아 있었다. 혼자 두면 우물에 빠질 것 같아서였다.
“심문관 양반, 이 몸이 어깨를 빌려 미안하오. 원래 몸이면 이 몸이 심문관 양반을 업고 다녔을 텐데. 그런데 그 구두는 매일 닦소? 어떻게 개구리 발자국 하나 안 남지?”
“매일 닦습니다.”
“무엇으로?”
“침묵으로 닦습니다.”
그르륵이 이 말을 곱씹느라 다음 집까지 조용했다.
빵집은 문을 열었다. 안주인이 캐스퍼의 고백을 끝까지 듣고 나서 밀가루 한 줌을 그르륵의 얼굴에 던지고 문을 닫았다. 대장장이는 문을 안 열었다. 캐스퍼는 문짝에 대고 곳간의 빈 술통 서른 개 이야기까지 다 했다. 문 안에서 쇠망치 소리가 한 번 났다. 촌장 집 하인은 소금을 뿌렸다. 캐스퍼는 소금을 맞고 말했다.
「구멍 난 술통」 뒷문 앞에서 캐스퍼는 오래 서 있었다. 오린이 세 번 두드렸다.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엘사 씨. 오늘 새벽 빵을 받았을 때 말하려고 했습니다. 말 안 했습니다. 그게 제일 큰 거짓말이었습니다.”
문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가.”
캐스퍼는 갔다.
*
해 질 무렵 마지막 집은 두 할머니가 같이 사는 신전 아래 돌집이었다. 마르그리트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팡이 할머니는 마르그리트와 엘사의 고모할머니였고, 앞니 빠진 할머니는 이 오랜 친구였다. 둘은 마당 평상에 앉아 콩을 까고 있었다.
캐스퍼가 평상 앞에 섰다. 꿀과 숯과 차가운 제단 이야기를 처음부터 했다. 할머니들은 콩 까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앞니 빠진 할머니가 말했다.
“알았어.”
“네?”
“꿀 넣은 거 알았어. 첫해부터.”
지팡이 할머니가 콩깍지를 바구니에 던졌다.
“우리가 몇 해를 그 술을 마셨는데 모르겠냐? 어머니 술은 혀 뒤에서 달았어. 네 술은 혀 앞에서 달았고.”
캐스퍼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오린이 캐스퍼의 뒤에서 몸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르륵이 오린 어깨 위에서 숨을 죽였다.
“그럼 왜 오셨습니까? 삼 년이나.”
“네가 문을 열었으니까.”
지팡이 할머니가 콩 하나를 그르륵의 손바닥에 놓았다.
“어머니가 안 계셔도 너는 매일 그 문을 열었어. 우리 둘하고 염소 하나 보자고. 그거 보고 믿은 거야. 어머니 말고, 네가 문 여는 거.”
캐스퍼는 손바닥의 콩을 쥐었다. 손이 떨렸다. 앞니 빠진 할머니가 이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그래서 너 끌려갈 때 그 꼬마 바람이 안 흩어진 거야. 우리 둘이 붙잡고 있었거든.”
캐스퍼의 손목에서 휘오의 김이 한 번 진해졌다.
마르그리트가 평상 끝에 앉았다. 고모할머니를 오래 보았다.
“고모할머니. 정말 저것들 믿어?”
“믿지. 엘사 반쪽 포도알 내 손으로 땄다. 꿀맛 아니더라. 그리고 저 애가 믿어 보라 해서 믿는 게 아니야. 저 애가 삼 년 혼자 문 여는 걸 내가 봤으니까 믿어.”
마르그리트는 대답 없이 콩깍지 하나를 집어 손가락으로 비볐다. 마른 깍지가 부스러졌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모할머니 말이 틀린 적은 없었지.”
“없었지.”
“그럼 나도 고모할머니 믿고 한번 믿어 본다. 저 사제 말고.”
오린의 어깨에서 그르륵이 미끄러졌다. 아니, 무거워져서 미끄러졌다. 땅에 떨어진 개구리가 순식간에 부풀어 무릎 높이까지 올라왔다. 휘오의 김이 캐스퍼 손목에서 풀려나와 평상 위에서 사람 꼴을 다시 갖췄다. 아직 허리 아래가 흐렸지만 얼굴이 보였다. 신전 쪽 비탈에서 바쿨이 술병 없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손을 앞으로 뻗어 쥐었다 폈다 했다.
“떨림이 멎었어.”
바쿨이 말했다.
*
오린은 이날 밤 신전의 긴 의자에 등을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잘 때도 곁에 있으라는 명이었고, 누워서 곁에 있으라는 말은 없었다. 두 의자 건너에서 캐스퍼가 사제복을 덮고 누워 있었고, 성수반 안에서는 그르륵이 코를 골았다. 개구리가 코를 곤다는 것을 오린은 처음 알았다.
자정 무렵 캐스퍼가 몸을 일으켜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린은 무엇을 비는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신전이 작아서 다 들렸다. 캐스퍼는 포도밭 어머니에게 빌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신에게 삼 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하나씩 말하고 있었다. 낮에 집집마다 한 말과 같았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자리에서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오린은 오랜만에 보았다.
문간에서 경비병이 오린을 불렀다. 계단 아래 마차 안에 아델하이트가 앉아 있었다. 망토를 여미고 여행 장갑을 꼈다.
“오늘 밤 뮐바흐로 올라가네. 자네는 맹세대로 사제 곁에 있게. 그가 무엇을 하든 막지 말고, 보기만 하게.”
“추기경님.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묻게.”
“그 강가 밭을 왜 그렇게 원하십니까? 대신전은 이미 그 포도를 싸게 삽니다.”
아델하이트가 장갑 낀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밭을 원하는 게 아니네, 오린. 작은 신이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걸 이 골짜기 사람들 눈앞에서 끝까지 보여 주고 싶은 것이네. 한 번은 보여 줘야 서부 전체가 알아듣지.”
마차가 비탈길로 굴러갔다. 오린은 계단 위에 서서 바퀴 소리가 윗마을 쪽으로 멀어지는 것을 들었다. 신전 안으로 돌아와 다시 등을 곧게 펴고 앉았다. 캐스퍼는 아직 제단 앞에 있었다.
*
이튿날 마르그리트가 일꾼들을 불러 모았다. 이들에게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고모할머니 집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자기가 왜 믿어 보기로 했는지만 말했다. 우두머리가 모자를 벗고 들었다. 나흘 전 밤 엘사를 믿었다가 어제 광장에서 이 믿음을 잃은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마르그리트를 믿었다.
마르그리트의 일꾼 열넷, 이 식구들, 마르그리트에게 해마다 포도를 맡기는 언덕 아래 여섯 집, 마르그리트가 빚을 탕감해 준 적 있는 방앗간집. 저녁이 되자 캐스퍼가 센 사람은 쉰을 넘었다. 그중에 캐스퍼를 믿어서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날 밤 바쿨은 마르그리트 밭 한가운데에 앉아 밤새 눈을 감았다. 강가 바닥부터 세 번째 단까지, 밭 하나가 통째로 바쿨의 손 안에 들어왔다. 새벽에 일꾼들이 고랑을 돌며 알을 맛보았다. 하룻밤 새 사흘 치가 익어 있었다.
해 질 녘 그르륵이 강가 바위에 올라 오래 귀를 기울이다 돌아왔다. 무릎 높이 몸으로 마르그리트의 술통 앞에 섰다. 볼이 꺼져 있었다.
“틀렸소.”
“뭐가?”
“열나흘이 아니오. 오늘 밤 천에서 백이 입을 다물었소. 하루 일흔이 아니라 백이오. 북쪽에서 마른 바람이 내려오고 있소. 아흐레 뒤, 맑은 밤이오.”
마르그리트가 손가락을 꼽았다. 바쿨이 하룻밤에 사흘 치를 당기면 아흐레 안에 마르그리트 밭은 거의 다 익고, 일꾼 열넷이 따는 데 닷새가 걸렸다. 빠듯했다. 문제는 마르그리트 밭 말고 나머지 밭이었다. 그리고 그르륵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찬 공기는 리베에서 생기지 않소. 위에서 내려오오. 뮐바흐 비탈에서. 저 위 밭과 숲에서 식은 공기가 밤새 비탈을 타고 흘러내려 이 강가 바닥에 고이는 거요. 휘오가 리베에서 아무리 섞어도 위에서 계속 쏟아지면 소용없소. 비탈 위에서부터 섞어야 하오.”
“뮐바흐 비탈은 뮐바흐 사람들이 일구지.”
캐스퍼가 말했다. 마르그리트의 얼굴이 굳었다.
*
다음 날 아침 마르그리트와 캐스퍼는 윗마을로 가는 길을 올랐다. 오린이 세 걸음 뒤에서 따랐고, 그르륵이 오린 발치를 뛰어서 따랐다. 리베와 뮐바흐를 가르는 경계석은 비탈 중턱 밤나무 아래에 있었다. 사람 키만 한 돌에 이끼가 끼어 있었다.
이 앞에 짐수레 세 대가 가로로 서서 길을 막고 있었다. 수레마다 뮐바흐 사내들이 쇠스랑을 들고 섰다. 뒤로 붉은 망토가 보였다. 아델하이트였다. 그젯밤 리베를 떠났다는 말은 들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다. 오린은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묻지 않은 것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델하이트 옆에 키 큰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마흔 남짓, 볕에 탄 얼굴에 수염을 짧게 깎았고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사내가 수레 위로 올라서서 마르그리트를 내려다보았다.
“뮐바흐 땅에 리베 신들은 못 들어온다. 촌장으로서 말하는 거다.”
마르그리트가 걸음을 멈췄다. 캐스퍼는 마르그리트의 어깨가 처음으로 움츠러드는 것을 보았다.
사내가 덧붙였다.
“오랜만이네, 마르그리트.”
“누굽니까?”
캐스퍼가 낮게 물었다. 마르그리트는 대답 대신 낫을 어깨에서 내려 쥐었다.
“내 전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