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31자)
마을 앞 심문
신이 죽은 신전에서 새 신 오디션을 엽니다 · 장연무
심문 날 새벽, 캐스퍼는 「구멍 난 술통」 뒷문을 두드렸다. 엘사가 밀가루 묻은 손으로 문을 열었다. 단골들에게 낼 아침 빵을 굽던 참이었다. 화덕 쪽에서 구운 밀 냄새와 장작 연기가 섞여 흘러나왔다.
“일찍 왔네. 먹고 가.”
엘사가 갓 구운 빵 한 덩이를 반으로 갈라 캐스퍼의 손에 쥐여 주었다. 빵 속에서 김이 올라와 손바닥이 뜨거웠다.
“엘사 씨, 오늘 광장에 나올 물건이 있습니다.”
“알아. 오린이 그젯밤 신전에서 뭘 들고 나오는 거 우리 대장장이가 봤대. 뭔데?”
“단지입니다. 그 안에.”
“사제님!”
뒷마당 쪽에서 그르륵이 소리쳤다. 염소가 그르륵의 풀잎 관을 물고 달아나는 중이었다. 엘사가 웃음을 터뜨리며 빗자루를 들고 뛰어나갔다. 염소를 마당 끝까지 몰아 관을 빼앗아 그르륵 머리에 다시 씌워 주고 돌아온 손을 털었다.
“단지 안에 뭐?”
캐스퍼는 손에 쥔 빵을 보았다. 반으로 갈린 단면에서 아직 김이 났다.
“광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싱겁긴. 오늘 내가 증인 서 줄게. 걱정 마.”
엘사가 문을 닫았다. 캐스퍼는 뒷문 앞에 서서 빵을 다 먹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빵은 달았고, 이 단맛이 꿀이 아니라 밀이라는 것을 알았다.
*
보리수 아래에 긴 탁자 하나가 놓였다. 탁자 뒤에 아델하이트가 앉았고, 이 옆에 오린이 섰으며, 탁자 위에는 흰 천을 덮은 무언가가 두 덩이 있었다. 리베 사람들은 광장을 빙 둘러 섰다. 장날보다 많았다. 지붕 위에 올라간 아이들은 어른들이 끌어 내렸고, 빵집 안주인은 남은 빵을 바구니에 담아 와서 팔았다.
캐스퍼는 탁자 앞 맨땅에 섰다. 뒤로 후보 셋이 섰다. 바쿨은 아침부터 술병이 없어 손을 바지에 문질렀고, 그르륵은 보리수 뿌리 위에 올라 목을 가다듬었으며, 휘오는 캐스퍼 소매 속에 있었다. 엘사는 사람들 맨 앞줄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엘사의 단골들이 뒤에 섰다.
오린이 한 걸음 나섰다.
“리베 신전 사제 캐스퍼 웰을 세 가지로 고발합니다. 첫째, 대신전 봉인을 손으로 뜯었습니다. 둘째, 닫힌 신전에서 이단 집회를 열었습니다. 셋째, 신이 아닌 것들을 신이라 부르며 마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틀렸습니다.”
캐스퍼가 말했다. 아델하이트가 눈만 들었다.
“믿으라고 한 적 없습니다. 믿어 보시라고 했지요.”
광장에서 웃음이 조금 일었다. 오린은 웃지 않았다.
“증인을 부르겠습니다. 개구리, 앞으로.”
“반신이오.”
그르륵이 보리수 뿌리에서 뛰어내렸다. 탁자 앞에 서서 풀잎 관을 고쳐 썼다.
“증인은 묻는 말에만 답하게.”
아델하이트가 말했다.
“나흘 전 새벽 신전 포도밭에 개구리 떼를 부른 것이 그대인가?”
“그렇소. 다만 개구리 떼라는 말은 바로잡아야겠소. 그날 온 것은 청개구리 삼백, 참개구리 이백, 두꺼비 마흔인데 두꺼비는 이 몸 친척이 아니오. 부친 쪽으로는 강의 신 핏줄이고 모친 쪽으로는 강가 참개구리 집안인데, 두꺼비들은 백 년 전 둑을 쌓을 때 영주 편을 들어서 이 몸 집안과는 그 뒤로 말을 안 섞었소. 그때 영주가 누구였냐 하면.”
“증인.”
“묻는 말에 답하는 중이오. 떼가 아니라 친척과 친척 아닌 것의 연합이었다는.”
오린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그 연합을 누가 부르라 했습니까?”
“저 사제가 믿어 보겠다고 했소. 소개도 다 안 들었는데 말이오. 그게 이 몸 생에 처음이었지. 소개를 다 안 듣고 믿어 준 사람.”
그르륵이 목을 부풀렸다가 천천히 꺼뜨렸다. 광장이 잠깐 조용해졌다. 오린이 다음 증인을 불렀다.
바쿨은 탁자 앞에 서자마자 딸꾹질을 했다. 아델하이트는 바쿨을 보지 않고 질문을 오린에게 넘겼다. 오린이 엘사네 반쪽 포도를 하룻밤에 익힌 것이 그대냐고 묻자 바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증거로 압수했나?”
“무엇을 말입니까?”
“그 포도로 담근 술. 증거면 내가 맛을 봐야 증언이 정확하지.”
광장이 웃음으로 터졌다. 오린의 귀가 붉어졌다. 휘오는 이름을 불렀는데도 소매에서 나오지 않았고, 대신 캐스퍼의 앞머리가 한 번 솟았다가 내려앉았다. 이 모습에 또 웃음이 났다.
엘사가 손을 들었다. 증인석에 불린 적이 없었지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도 말할게요. 내 마당에서 바람이 불었고, 내 반쪽 포도가 익었어요. 내가 믿었으니까요. 나는 캐스퍼를 믿었어요. 저 사람 혀는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리베에서 포도 맛을 저 사람만큼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광장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늘었다. 캐스퍼는 엘사를 보지 못했다. 탁자 위 흰 천을 보고 있었다.
*
아델하이트가 일어섰다. 흰 천 하나를 걷었다. 질그릇 단지였다. 다른 천을 걷자 그을린 쇠 화로가 나왔다. 광장 앞줄에서 누군가 저게 뭐냐고 물었다.
“두 분, 앞으로 오시겠습니까?”
아델하이트는 두 할머니에게만 존대를 했다. 지팡이 할머니와 앞니 빠진 할머니가 서로 팔을 끼고 탁자 앞으로 나왔다. 오린이 의자 둘을 내주었다.
아델하이트가 수레에서 가져온 병 하나를 땄다. 대신전 해 무늬 밀랍 아래에 리베 신전의 벌 무늬가 한 번 더 찍혀 있었다.
“작년 가을 리베 신전이 대신전에 올린 제주입니다. 포도밭 어머니가 익힌 술이라 했지요.”
아델하이트가 두 잔에 따라 할머니들 앞에 놓았다. 지팡이 할머니가 먼저 한 모금 마셨다. 주름진 입가가 풀렸다.
“어머니 술이네.”
아델하이트가 엘사의 선술집에서 가져온 가장 싼 포도주를 다른 두 잔에 따랐다. 그리고 단지의 밀랍을 긁어 내고 나무 숟가락으로 꿀을 떠서 잔마다 반 숟가락씩 녹였다. 꿀이 술 속에서 실처럼 풀려 내려갔다. 들꽃 냄새가 탁자 위에 올라왔다.
“이것도 드셔 보시겠습니까?”
앞니 빠진 할머니가 마셨다. 지팡이 할머니도 마셨다. 두 사람은 잔을 내려놓고 서로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델하이트는 할머니들에게 다시 묻지 않았다. 탁자를 돌아 나와 캐스퍼 앞에 섰다. 회색 눈이 한 뼘 앞에 있었다.
“이 단지와 화로는 제의실 바닥 돌 아래에서 나왔네. 화로 위 돌에는 제단 뒤로 이어지는 구멍이 뚫려 있었지. 그래서 제단 돌이 따뜻했던 것이고.”
아델하이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광장 맨 뒤의 사람들이 들으려고 숨을 죽였다.
“자네가 넣었나?”
캐스퍼는 거짓말 셋을 떠올렸다. 전임 사제가 남긴 단지라고, 대신전 사람이 몰래 묻은 것이라고, 꿀은 약으로 쓰던 것이라고. 셋 다 그럴듯했고 셋 다 캐스퍼의 혀에서 쓴맛이 났다.
“제가 넣었습니다.”
광장이 숨을 들이켰다.
“삼 년 전 수확 축일부터 포도밭 어머니가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단 돌이 차가웠고 제주가 시었습니다. 미사 전날 밤마다 화로에 숯을 넣었고, 제주에는 꿀을 탔습니다. 대신전에 올린 술에도 탔습니다. 어머니가 아직 계신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오는 사람이 끊기지 않게요.”
이 순간 소매가 가벼워졌다.
캐스퍼는 팔을 내려다보았다. 소매 속에 웅크리고 있던 휘오의 무게가, 원래 무게라고 할 것도 없던 이 작은 차가움이, 반쯤 빠져나가 있었다. 소매 끝으로 김이 새어 나왔다. 사람 꼴이 아니었다. 아침 물가에 서리는 입김 정도의 흐릿함이 캐스퍼의 손목에 겨우 붙어 있었다.
“휘오 님.”
대답이 없었다.
엘사가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엘사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 있었다. 캐스퍼를 보았고, 단지를 보았고, 다시 캐스퍼를 보았다.
“그럼 내가 믿은 건 뭐야?”
“엘사 씨.”
“당신 혀는 거짓말을 안 한다고, 내가 방금 저기서.”
엘사가 팔짱을 풀었다. 손이 떨렸다.
“안 믿어. 이제 안 믿어.”
이 말이 떨어지자 엘사 뒤에 서 있던 단골들의 얼굴이 하나씩 굳었다. 이들은 엘사를 믿어서 믿은 사람들이었다. 엘사의 믿음이 깨지자 이 줄을 타고 건너간 믿음도 소리 없이 끊어졌다. 대장장이가 엘사의 어깨를 짚었고, 방앗간 일꾼이 고개를 저었고, 빵집 둘째가 바닥을 보았다. 사람들 맨 끝에서 일꾼 우두머리가 모자를 벗어 쥐었다.
보리수 뿌리 위에서 그르륵이 쪼그라들었다. 다 자란 사내만 하던 몸이 순식간에 줄어 강가에서 흔히 보는 참개구리 크기가 되었다. 풀잎 관이 툭 떨어져 그르륵의 몸을 다 덮었다. 관 밑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났다.
“이, 이 몸이.”
바쿨이 무릎을 짚고 섰다. 손이 다시 떨렸다. 캐스퍼를 보지 않고 땅을 보았다.
“어떡해. 다들 어떡해.”
누군가 울먹였다. 빵집 안주인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제가 속였다는 말, 삼 년 동안이라는 말, 대신전에 올린 술까지라는 말이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커졌다.
*
캐스퍼는 손목을 보았다. 흐릿한 김이 아직 붙어 있었다. 다 흩어지지 않았다. 이 까닭을 몰랐다. 엘사도 단골들도 우두머리도 돌아섰는데, 손목에 붙은 차가움이 아직 남아 있었다. 바쿨의 떨리는 손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르륵의 작은 몸이 관 밑에서 아직 꼼지락거렸다.
누군가 아직 믿고 있었다.
탁자 앞 의자에 두 할머니가 아직 앉아 있었다. 앞니 빠진 할머니는 꿀 탄 잔을 마저 비우고 있었고, 지팡이 할머니는 지팡이 끝으로 땅을 두 번 짚더니 캐스퍼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캐스퍼는 이 끄덕임의 뜻을 알 수 없었다.
“판결하겠네.”
아델하이트가 탁자 뒤로 돌아가 앉았다.
“사제 캐스퍼 웰은 거짓 이적으로 신도를 속였고, 대신전에 거짓 제주를 올렸으며, 봉인을 뜯고 이단 집회를 열었네. 오늘 해 지기 전 벨렌스 주교좌 감옥으로 옮기고, 왕도 대신전 재판에 넘기네. 신전은 지금 닫네. 마당의 포도나무는 내일 새벽 뽑네.”
아델하이트가 반지 낀 손을 들었다. 경비병 둘이 다가와 캐스퍼의 양팔을 잡았다. 쇠 장갑이 팔뚝을 죄었다. 캐스퍼는 버티지 않았다. 그르륵 쪽을 보았고, 관 밑의 작은 개구리가 캐스퍼를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
“후보들은요?”
“신이 아닌 것들은 법정에 세울 수도 없네. 흩어지겠지. 믿는 사람이 없으면 원래 그렇게 되네.”
경비병이 캐스퍼를 끌었다. 캐스퍼의 구두 뒤축이 광장 돌바닥을 긁었다. 사람들이 길을 텄다. 엘사는 돌아서 있었다. 바쿨은 따라오지 않았다. 휘오의 김이 손목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잠깐.”
광장 끝에서 목소리가 났다.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다 돌아보았다. 마르그리트였다. 밀짚모자를 손에 들고, 낫은 어깨에 걸치지 않고 땅에 끌었다. 엘사 옆에 일꾼 우두머리가 모자를 쥔 채 서 있었다.
엘사가 걸어 나왔다. 길을 트던 사람들이 엘사 앞에서 더 넓게 비켰다. 엘사는 경비병 앞에서 멈추고 캐스퍼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사제 양반, 거짓말쟁이 맞네.”
캐스퍼가 고개를 숙였다.
마르그리트가 탁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르그리트의 앞치마 주머니가 불룩했다. 사흘 전 말뚝 서쪽에서 끊어 간 송이였다. 이 사람이 이것을 꺼내 아델하이트의 탁자 위, 꿀단지 옆에 내려놓았다. 껍질이 검붉고 분이 하얬다.
“근데 이건 꿀 안 넣었어. 내가 땄으니까 알아.”
아델하이트가 송이를 보았다. 마르그리트가 경비병의 쇠 장갑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심사는 끝까지 한다. 저 사제 말고,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