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24자)

바람은 믿는 땅에만 분다

신이 죽은 신전에서 새 신 오디션을 엽니다 · 장연무

아델하이트는 손을 내렸다⁠. 경비병들의 칼은 칼집에 반쯤 들어간 채 멈췄다⁠.

“⁠사제 하나 잡자고 칼을 뽑지는 않네⁠. 이단은 법정에서 다루는 것이지⁠.⁠”

아델하이트는 바쿨에게서 눈을 떼고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이 길을 텄다⁠. 마차 문이 닫히기 전에 아델하이트가 오린에게 무언가를 짧게 일렀고⁠, 마차는 촌장 집 쪽으로 굴러갔다⁠. 바쿨은 이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딸꾹질을 멈추지 못했다⁠.

*

새벽 안개가 아직 강에서 걷히지 않았을 때 오린이 일꾼 여덟을 데리고 신전 마당에 왔다⁠. 곡괭이와 삽⁠, 밑동을 끌어낼 쇠사슬까지 챙겨 왔다⁠. 오린의 사제복은 어제와 같이 단추가 목 끝까지 채워져 있었고⁠, 염소가 씹었던 소매는 밤새 빨아 다렸는지 반듯했다⁠.

캐스퍼는 두레박 줄을 잡은 채 우물가에 서 있었다⁠.

“⁠대신전의 명입니다⁠. 비켜 주십시오⁠, 사제님⁠.⁠”

“⁠나무를 뽑으면 신전 땅이 패고⁠, 판 땅에 곳간이 들어서겠지요⁠. 그 곳간에 리베 포도가 셋에 하나 값으로 들어갈 거고요⁠.⁠”

“⁠제가 정한 값이 아닙니다⁠.⁠”

“⁠압니다⁠. 오린 심문관님은 정하는 분이 아니라 지키는 분이지요⁠.⁠”

오린이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칭찬으로 들은 모양이었다⁠. 손짓하자 일꾼들이 첫째 줄 첫 나무 밑동에 곡괭이를 댔다⁠. 캐스퍼는 두레박을 끌어 올렸다⁠. 줄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물 위에 개구리가 앉아 있었다⁠. 크기는 다 자란 사내만 했다⁠. 초록 등에 누런 배⁠, 목 아래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꺼졌고⁠, 물갈퀴 달린 손으로 두레박 테두리를 짚고 있었다⁠. 머리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풀잎으로 엮은 관을 썼다⁠.

“⁠이 몸이 바로 반신 그르륵이오⁠.⁠”

개구리가 말했다⁠. 목소리가 우물 안을 울려 두 번씩 들렸다⁠.

“⁠오디션이 열렸다는 소식을 우물 바닥에서 들었소⁠. 이 몸으로 말하자면 강의 신이셨던 부친과 강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개구리이셨던 모친 사이에서 나신 몸인데⁠, 부친께서는 백 년 전 강이 둑에 막히면서 돌아가셨고 모친께서는 그 이듬해 왜가리에게⁠, 아니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접수는 어디서 하오⁠?⁠”

“⁠재주가 뭡니까⁠?⁠”

“⁠물이오⁠. 이슬⁠, 안개⁠, 우물⁠, 그리고 개구리⁠.⁠”

곡괭이가 첫 나무의 뿌리를 찍었다⁠. 마른 나무껍질이 튀었다⁠. 캐스퍼가 우물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신전 포도밭은 제가 일구는 땅입니다⁠. 저는 지금 당신을 믿어 보겠습니다⁠. 저 나무들을 지켜 주십시오⁠.⁠”

“⁠믿어 보겠다니⁠, 소개도 다 안 들었는데⁠?⁠”

“⁠지금 듣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르륵이 목을 크게 부풀렸다⁠.

“⁠그르르르륵⁠.⁠”

우물 안에서 대답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하나⁠, 다음은 열⁠, 다음은 셀 수 없었다⁠. 포도나무 밑 이슬 맺힌 풀 사이에서⁠, 돌담 틈에서⁠, 우물 테두리에서 개구리들이 튀어나왔다⁠. 손톱만 한 청개구리⁠, 주먹만 한 참개구리⁠, 등에 혹이 난 두꺼비까지 포도밭 고랑을 덮으며 몰려갔다⁠. 일꾼 하나가 곡괭이를 든 채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이 위로 개구리 스무 마리가 올라앉았다⁠. 다른 일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당 밖으로 뛰었다⁠.

오린은 뛰지 않았다⁠. 오린의 반짝이던 구두 위에 참개구리 한 마리가 올라앉아 목을 부풀렸다⁠. 이 개구리를 내려다보며 수첩 대신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신전 땅에서 신이 아닌 것의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단 집회의 증거로 추기경님께 올리겠습니다⁠.⁠”

“⁠개구리가 증거입니까⁠?⁠”

“⁠개구리 떼가 증거입니다⁠.⁠”

오린이 구두를 흔들었다⁠. 개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가다가 마당 문간에서 멈췄다⁠.

“⁠한 가지 더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오디션에 발을 들인 집의 포도는 대신전 매입상이 사지 않습니다⁠. 셋에 하나 값도 없습니다⁠.⁠”

구두 위의 개구리가 그제야 뛰어내렸다⁠.

*

캐스퍼는 신전 종을 떼어 들고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종을 칠 때마다 정오에 오디션이 열린다고 외쳤고⁠, 빵집 앞에서 세 번째로 외쳤을 때 리베 촌장이 캐스퍼의 팔을 잡았다⁠. 촌장의 손에서 추기경에게 대접한 고기 기름 냄새가 났다⁠.

“⁠사제⁠, 당신 하나 때문에 마을 포도가 안 팔리면 누가 책임지오⁠?⁠”

“⁠오디션에 오시는 분 포도는 제가 사겠습니다⁠.⁠”

“⁠무슨 돈으로⁠?⁠”

“⁠신전 곳간에 묵은 포도주가 서른 통 있습니다⁠.⁠”

촌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신전 곳간에는 빈 통이 서른 개 있었다⁠. 캐스퍼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이 마을에 자기 하나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촌장의 손을 공손히 떼어 내고 다시 종을 쳤다⁠. 종소리가 광장 돌바닥에서 튀어 올랐고⁠, 이 소리에 묻혀 캐스퍼의 목 뒤로 흐르는 땀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

정오에 신전 문을 열자 스무 명쯤이 들어왔다⁠. 믿으러 온 사람은 없었다⁠. 장날도 아닌데 구경거리가 생겼으니 온 사람들이었고⁠, 엘사는 선술집 문을 닫고 왔으며⁠, 두 할머니는 늘 앉던 맨 앞자리에 앉았다⁠. 캐스퍼는 제단 앞에 포도 바구니 셋을 놓았다⁠. 바구니마다 후보의 이름을 쓴 나무패를 꽂았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재주를 보시고 마음에 드는 후보 바구니에 포도알을 하나씩 넣어 주십시오⁠. 포도알은 입구에서 엘사 씨가 나눠 드립니다⁠. 한 사람 한 알⁠, 드시면 안 됩니다⁠.⁠”

앞니 빠진 할머니가 받은 알을 벌써 먹고 있었다⁠.

첫 차례는 바쿨이었다⁠. 바쿨은 제단 계단에 올라 술병을 들어 보이고 손가락으로 병목을 쓸었다⁠. 그리고 병째 들이켰다⁠.

“⁠달다⁠.⁠”

바쿨이 만족해서 말했다⁠. 객석이 조용했다⁠. 캐스퍼가 웃는 얼굴 그대로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사람들한테 보여 주셔야지요⁠.⁠”

“⁠믿는 놈이 너 반쪽이랑 나뿐인데 누구 잔을 달게 해⁠? 내 병이 그나마 내 거잖아⁠.⁠”

두 번째는 그르륵이었다⁠. 그르륵은 소개를 시작했고⁠, 부친과 모친과 왜가리 이야기를 지나 강둑을 쌓은 옛 영주의 고조할아버지 흉을 보는 대목에서 엘사가 하품을 했다⁠. 캐스퍼가 손뼉을 세 번 쳐서 끊었다⁠. 그르륵은 서운한 얼굴로 제 바구니 옆에 쭈그려 앉았다⁠.

세 번째 바구니의 나무패에는 아무 이름도 없었다⁠. 캐스퍼는 종탑 계단 쪽을 올려다보았다⁠. 아침부터 계단 위에서 먼지가 혼자 날리고 종 줄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나오셔도 됩니다⁠.⁠”

종 줄이 멈췄다⁠.

“⁠아무도 안 잡아먹습니다⁠. 개구리도 안 먹어요⁠.⁠”

“⁠이 몸은 채식이오⁠.⁠”

그르륵이 거들었다⁠. 한참 뒤 계단 위에서 김 같은 것이 흘러내려 왔다⁠. 사람 꼴을 하고 있었는데 무릎 아래가 없었고⁠, 뒤가 비쳐 계단 돌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것은 사람들 쪽을 한 번 보더니 곧장 캐스퍼 등 뒤로 와서 사제복 소매 속으로 반쯤 들어갔다⁠.

“⁠휘⁠, 휘오예요⁠. 바람이에요⁠. 작은 거⁠.⁠”

목소리가 소매 안에서 났다⁠. 사람들이 웃었다⁠. 휘오가 소매 속으로 더 들어갔다⁠.

“⁠재주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소매가 부르르 떨더니 캐스퍼의 앞머리가 위로 솟구쳤다가 내려앉았다⁠. 다른 사람 머리카락은 한 올도 움직이지 않았다⁠. 객석에서 박수 대신 웃음이 터졌다⁠.

*

“⁠바람이 우리 마당 빨래 좀 말려 주면 믿을게요⁠.⁠”

엘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술집 뒷마당에는 사흘째 안 마른 행주와 앞치마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믿으셔야 붑니다⁠.⁠”

“⁠그게 뭐예요⁠, 순서가 거꾸로잖아요⁠.⁠”

“⁠바람이 먼저 불면 그건 바람이고⁠, 믿고 나서 불면 그건 휘오입니다⁠.⁠”

엘사가 캐스퍼를 오래 보았다⁠. 캐스퍼는 웃지 않았다⁠.

“⁠좋아요⁠. 저 꼬마 바람을 믿는 게 아니라 캐스퍼 당신을 믿어 볼게요⁠. 당신 혀는 거짓말을 안 하잖아요⁠. 그 혀가 저걸 바람이라고 하면 바람이겠죠⁠.⁠”

캐스퍼의 입꼬리가 아주 잠깐 굳었다⁠. 소매 안에서 휘오가 꿈틀했다⁠.

“⁠가 봐도 돼요⁠?⁠”

사람들이 우르르 신전 옆 비탈길로 몰려 내려갔다⁠. 선술집 뒷마당은 신전 담 아래 두 번째 단에 있었고⁠, 이 아래 세 번째 단부터 강가까지가 마르그리트의 포도밭이었다⁠. 이 사이를 사람 허리 높이의 돌담 하나가 갈랐다⁠.

휘오가 소매에서 빠져나와 엘사의 빨랫줄 위로 떴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바람 정령의 흐릿한 몸이 한 번 부풀었다⁠.

행주가 펄럭였다⁠. 앞치마가 줄에서 솟구쳐 집게 하나를 튕겨 냈고⁠, 엘사의 치맛자락이 다리에 감겼다⁠. 마당 흙먼지가 낮게 일었고⁠, 바람은 비탈을 따라 내려가 돌담에 부딪쳤다⁠.

그리고 거기서 멎었다⁠. 돌담 위에 얹혀 있던 마른 포도 잎 하나가 담 이쪽으로는 날아가는데 저쪽으로는 한 치도 넘어가지 않았다⁠. 담 너머 마르그리트 밭의 포도 잎들은 바람 한 점 없는 정오처럼 가만히 늘어져 있었다⁠. 엘사네 마당은 빨래가 펄럭이는데⁠, 돌담 하나 건너서는 매미 소리만 들렸다⁠.

사람들이 담 앞에 줄지어 서서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보았다⁠.

“⁠저기는 왜 안 불어요⁠?⁠”

“⁠저 밭 주인이 안 믿으니까⁠.⁠”

바쿨이 술병을 든 채 대답했다⁠. 어느새 내려와 돌담에 기대 있었다⁠.

“⁠신은 자기를 믿는 사람이 손대는 데에만 손이 닿아⁠. 엘사는 믿었고⁠, 이 마당은 엘사가 쓸고 빨래 너는 데지⁠. 저 밭은 마르그리트가 일구는 데고⁠.⁠”

“⁠믿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믿는 사람이 늘수록 한 번에 크게 불지⁠. 하나면 빨랫줄⁠, 열이면 마당 하나⁠, 쉰이면 저만 한 밭 하나⁠, 마을이 다 믿으면 골짜기⁠.⁠”

그르륵이 끼어들었다⁠.

“⁠덧붙이자면 이 몸들이 기적을 일으켜도 믿음이 닳지는 않소⁠. 바람을 백 번 불어도 엘사 양의 믿음은 그대로요⁠. 깨지는 건 딱 하나⁠, 엘사 양이 저 사제를 못 믿게 될 때뿐이오⁠. 믿음이란 게 원래 사람한테서 사람한테로 건너가는 것이라⁠.⁠”

“⁠왜 하필 저 사제예요⁠?⁠”

“⁠엘사 양이 저 사제를 믿어서 믿었으니까⁠.⁠”

엘사가 캐스퍼를 돌아보았다⁠. 캐스퍼는 담 너머 고요한 포도 잎을 보고 있었다⁠.

다시 신전으로 올라가 포도알 투표를 했다⁠. 엘사가 휘오 바구니에 알을 넣었고⁠, 구경꾼 몇이 장난삼아 그르륵 바구니에 넣었다⁠. 투표가 끝나 캐스퍼가 바구니를 셌을 때 그르륵 바구니는 비어 있었고 그르륵의 볼이 불룩했다⁠.

“⁠세기 전에 드시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표는 이 몸에게 바친 것 아니오⁠?⁠”

이때 오린의 전갈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문을 빠져나갔다⁠. 대신전이 포도를 안 사 준다는 말은 개구리 떼보다 빨리 돌았다⁠. 해가 기울 무렵 신전 안에 남은 것은 엘사⁠, 두 할머니⁠, 그리고 염소였다⁠.

*

저녁 예배 시간에 문이 열렸다⁠. 마르그리트가 들어왔다⁠. 밀짚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고⁠, 다른 손에는 낫이 있었다⁠. 통로를 똑바로 걸어와 제단 앞에서 멈췄다⁠. 땀과 흙냄새가 났다⁠.

“⁠내 밭 앞에서 바람이 멎었다며⁠.⁠”

“⁠네⁠.⁠”

“⁠동네 사람 스물이 그걸 봤다며⁠.⁠”

“⁠열아홉입니다⁠. 한 분은 포도알 드시느라 못 보셨습니다⁠.⁠”

마르그리트는 웃지 않았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포도알 하나를 꺼내 제단 위에 놓았다⁠. 강가 맨 아랫단⁠, 마르그리트 밭에서 가장 늦게 익는 줄의 알이었다⁠. 초록빛이 아직 껍질 아래 남아 있었다⁠.

“⁠사흘 줄게⁠. 사흘 안에 이 알이 달아지면 따는 날을 미룬다⁠. 안 달아지면 나흘째 아침에 딴다⁠. 그리고 이 신전 문에 내 손으로 못을 박을 거야⁠. 추기경 봉인보다 단단하게⁠.⁠”

“⁠마르그리트 씨⁠.⁠”

“⁠내 혀로 판정한다⁠. 사제 양반 혀 말고⁠.⁠”

캐스퍼는 돌아보았다⁠. 바쿨이 긴 의자 끝에 앉아 이 포도알을 보고 있었다⁠. 늘 풀려 있던 술꾼의 눈이 처음으로 가늘어졌다⁠.

“⁠사제⁠.⁠”

바쿨이 낮게 말했다⁠.

“⁠저 알에는 내 손이 안 닿아⁠. 저 여자가 안 믿으니까⁠. 사흘이 아니라 삼 년을 줘도⁠.⁠”

마르그리트가 낫 끝으로 제단 돌을 두 번 두드렸다⁠.

“⁠들었지⁠? 사흘이야⁠.⁠”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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